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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유록(海月遺錄) 중 남조선(南朝鮮)의 배<3>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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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雪中梅 2021. 6. 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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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유록(海月遺錄) 중 남조선(南朝鮮)의 배<3>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

 

http://cafe.daum.net/dos1130 黃汝一 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 정도령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s://blog.daum.net/e-one8899 해월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s://draft.blogger.com/blog/posts/7867224050020833104?tab=rj해월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남조선(南朝鮮)의 배 <3>

 

 

왜냐하면 도하지(稻下止)에는,

상제지자(上帝之子)인 두우(斗牛) 즉 북두칠성(北斗七星)인 정도령이 내려와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균공(米囷公)은 정도령을 의미하며,

을해(乙亥: 1995)년에 드디어 자신의 존재(存在)를 깨닫고,

이 세상에 알릴 일을 시작하게 된다는 말이다.“ 라고 설명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어찌해서 초계년(草溪年)이 을해(乙亥)년이 되는 것입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은 대답하였다.

 

(甲) 나무(木)를 의미하고,

(乙) 풀(草)을 의미하고,

또한 (溪)자는 시내 계(溪)자로(水)을 의미하며,

(亥) 또한 십이지지(十二地支) 물(水) 의미하니, 바로 을해(乙亥)년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을해(乙亥)년이 1995년으로,

 

1. 기러기와 쌍무지개가 나타나고,

2. 삼풍(三豊) 백화점 사건과

3. 일본인들이 삼각산의 정기(精氣)를 막기 위하여 지은 중앙청을 헐기 시작한 때도 바로 을해년인 것이다.

 

이 때가 하늘이 기러기를 통해 천명(天命)을 내린 연도(年度)인 것인데,

이 을해(乙亥)년에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自身)의 존재(存在)를 깨닫게 되고,

또한 이 세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고 해월(海月) 선생이 정확하게 밝힌 것이다.“

 

“아 - ! 초계년(草溪年)이란 말이 을해(乙亥)년이 되는 것이로군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런데 양양(襄陽)이란 예천(醴泉)의 옛날 이름이 아닙니까?” 라고 한 사람이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명산 선생은 이어 설명하였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해월(海月) 선생이 뛰어난 문장가(文章家)라는 것은,

바로 당대(當代) 사람에게는 양양(襄陽)이 지명(地名)으로 보이게 썼지만,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떠오르는 태양(襄陽)이 되도록 교묘(巧妙)하게 감추어서 표현했다는 것이다.

대문장가(大文章家)이기에, 시(詩) 속에다 미래의 비밀(秘密)을 감추어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 Ⓟ402에,

 

『文席(문석) 大海月(대해월)

寒療(한료) 明倫禮(명윤례) 付時中(부시중)

赤日(집적일) 東方(동방성) 道元(도원)

 

문장(文章)으로 크게 이름난 해월(海月) 선생이,

바다 속에 잠긴 달처럼 환하게 윤리(倫理)와 예(禮)를 밝혔고, 또한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때맞춰서,

동방(東方)의 성인(聖人)이며, 도(道)이며, 원(元)이신, 떠오르는 태양(太陽)을 가지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赤日(적일) : 경기 고을에 있는 태양

 

이렇게 격암(格菴) 선생 또한 해월(海月) 선생이,

떠오르게 되는 태양(太陽)을 손에 넣게 된다(執赤日:집적일)고 밝혀 놓고 있다.

 

 

경고(鏡古)의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최고운결(崔孤雲訣) Ⓟ4를 보면,

 

赤日(적일) 出東尾(출동미) ***

 

體像(체상) 不滿(불만) 七尺帝(칠척제)

北應星辰(북응성진)(하)

山河(산하) 璞玉(박옥) 處瓦石(처와석)

誰知(수지) 是天寶(시천보) ***

 

此必符(차필부) 是帝(시제)

社號則(사호즉) 天地之元(천지지원) 萬物之先(만물지선) ***

 

 

붉은 태양(赤日: 경기 고을에 있는 태양)이 동방에서 떠오르는데,

 

그 붉은 태양의 몸의 모습(體像)을 보면, 키가 일곱 자 미만인 천자(七尺帝)인 것이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이 세상에 강림(降臨)하여,

쓸모 없는 기와의 자갈 속에서 갈지 않은 옥(璞玉)으로 섞여 있으니,

어느 누가 이 사람을 하늘이 인간을 위하여 보내어 준 선물(膳物)인 것을 알겠는가?

 

이 사람이 틀림없이 천명(天命)을 받고 온 천자(帝)인데,

이 사람을 사람들이 부르기를 천지의 원(天地之元)이요, 만물의 선(萬物之先)이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이미 자세히 앞에서 설명하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다.

 

 

경고(鏡古)의 최치원(崔致遠) 선새의 최고운결(崔孤雲訣) Ⓟ1에,

 

丁未方色之姓出(정미방색성출)

後復見(후복견) 天日(천일) ......

以下大運(이하대운) 否塞(비색) 應至(응지) 兩白(양백)

受命之帝出(수명지제출)

我東綿祚(아동면조)

 

또한 황(黃)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는데,

후에 다시 보게 되는 하늘의 태양(天日) 즉 천자(天子)인 것이다.

이 사람이 즉 양백(兩白)인 정도령으로,

하늘로부터 천명(天命)을 받고 우리 나라에서 태어난 황제(帝出)인데,

천자(天子)의 위를 이어 나갈 것(我東綿祚:아동면조)이라고 한 것이다.“

 

라고 설명하자

 

다시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어찌하여 정미방색지성(丁未方色之姓)이 황(黃)씨가 되는지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십시오”

 

“정(丁)은 만나다 당하다 라는 뜻이 있으며, 미방색지성(未方色之姓)이라 하였다.

즉 미(未)의 방향(方向)의 색(色)에 해당하는 성(姓)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고 하였다.

즉 미(未)는 팔괘(八卦)로 곤(坤)방이 되는데,

(坤)방은 오행(五行)으로는 토(土)가 되고 색(色)으로는 노란색이 되는데,

이 노란색이 뜻하는 성(姓)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누를 황(黃)자인 것이다.

그래서 황(黃)씨가 되는 것이다.“ 라고 설명을 하자

 

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일가(一家)의 맑고 깨끗함(淸白)이,

갑자기 세상에 전해지게 된다는 의미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라고 하자

 

“떠오르는 태양(太陽)인 천자(天子) 즉 하나님의 아들인 정도령이,

어느 가문(家門)에서 태어나느냐 하면 아무 가문(家門)에서나 태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덕(德)을 많이 쌓고 깨끗하게 살아 온 집안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상(世上)에는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나 있는 가문(家門)이 많이 있지만,

(神)의 눈으로 볼 때, 진실로 해월(海月) 선생의 집안이 가장 맑고 깨끗한 가문(家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신(神)의 눈과 인간(人間)의 눈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인간(人間)은 실수(失手)가 있고 잘못 볼 수 있지만,

(神)은 인간(人間)의 깊은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고르고 고른 가문(家門)이, 바로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이라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이, 틀림없이 자손에게 경복(慶福)이 따르는 가문(家門)이라고 하였다.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 Ⓟ400에,

有德之家(유덕지가) 逢眞人是也(봉진인시야)***

 

(德)이 있는 집안에서 진인(眞人) 정도령을 영접하게 된다.

 

라고 하여 진인(眞人)이 태어난 가문(家門)은 덕(德)을 쌓은 깨끗한 집안임이 온 세상(世上)에 갑자기

알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태양(太陽)을 손에 넣은 사람이 바로 해월(海月) 선생이라 했으니,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 시(詩)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면,

이 시(詩)의 풀이 글에서 미균공(米囷公)은 고려조의 문신으로 본관이 평해(平海)인 한성판윤(漢城判尹)

황유정(黃有定)으로 본 것이다.

이 분이 평해(平海)에서 영천(榮川)으로 이사를 갔는데, 공(公)의 나이가 48세에 초계(草溪) 군수였고,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논어(論語)를 다독(多讀)하였는데, 일부 사람들이 그를 미균공(米囷公)이라

불렀다고 한다.“ 라고 하자,

사람들은 해월(海月) 선생의 선견지명(先見之明)과 탁월(卓越)한 문장력(文章力)에 놀라는 모습들이었다.

 

그 때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사람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말씀을 해 주시지요” 라고 하자

 

명산 선생은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뜨면서, 다시금 예의(銳意) 맑은 눈빛을 보이면서 이야기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은

(諱)가 여일(汝一)이며, (字)가 회원(會元), 본관(本貫)은 평해(平海)이며,

(號)가 처음에는 하담(霞潭), 해월(海月), 매월(梅月)이고 나중에는 만귀(晩歸)이다.

 

(黃)씨는 중국 강하(江夏: 호남성 무창현 여남) 백익(伯益)의 후예로 전하며,

 

우리 나라 황(黃)씨의 연원(淵源)은 조선 씨족통보(氏族統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신라 3대 유리왕(儒理王) 5(戊子)년인 서기 28(後漢 光武帝, 建武 4)년에

후한(後漢)의 유신(儒臣) 학사(學士) 황락(黃洛)구대림(丘大林: 평해 구씨의 시조)이 함께 사신(使臣)으로

교지국(交趾國: 현 베트남 북부 하노이 지방의 옛 이름)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안아진(安我鎭: 지금의 경북 울진군 평해 월송정)에 표착(漂着)하여

그 곳 월송(越松) 북쪽 언덕에 정착(定着)하여 세거(世居)하였다.

 

황락(黃洛)의 아들로는 갑고(甲古), 을고(乙古), 병고(丙古)의 삼형제가 있어,

그 중 갑고(甲古)기성군(箕城君)에 봉해져서 평해황씨(平海黃氏)의 시조(始祖)가 되었고,

箕城(기성) : 평해의 옛 지명

둘째 을고(乙古)는 장수군(長水君)에 봉해졌으므로 장수황씨(長水黃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고 하며,

셋째 아들인 병고(丙古)는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져서 창원황씨(昌原黃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黃)씨의 본관(本貫)은 평해(平海), 장수(長水), 창원(昌原), 상주(尙州), 회덕(懷德), 덕산(德山), 우주(紆州), 황주(黃州) 등 184개의 본(本)이 전하지만, 현존하는 황씨는 20본(本) 미만이다.

그 중에서 창원(昌原), 평해(平海), 장수(長水), 상주(尙州)가 대본(大本)이다.

 

해월(海月) 선생의 본관(本貫)이 평해황씨(平海黃氏)이므로 평해황씨(平海黃氏)에 대하여 이야기하겠다.

시조 황락(黃洛)의 아들 갑고(甲古)기성군(箕城君)에 봉(封)해지고

그의 자손(子孫)온인(溫仁) 고려조(高麗朝) 금오위대장군(金五衛大將軍)을 지내고

평해(平海)에 세거(世居)하였으므로,

후손들은 락(洛)을 시조(始祖)로 하고,

온인(溫仁)일세(一世)로 계대(繼代)하면서 본관(本貫)을 평해(平海)로 삼았다.

 

삼세(三世)유중(裕中)이 고려조(高麗朝)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그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으니,

 

첫째(璡)으로 관직이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으며,

평해황씨(平海黃氏)검교공(檢校公)파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둘째(瑞)는 충렬왕 때 시호(諡號)는 충절(忠節), 관직이 첨의평리(僉議評理) 문하시중(門下侍中)

이르렀으며, 충절공(忠節公)파로 불려지게 되었다.

 

셋째의 시호(諡號)는 충경(忠敬), 관직이 숭록대부 삼중대광보국(崇祿大婦 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으며 이를 충경공(忠敬公)파라 부르게 되었다.

 

해월(海月) 선생은 둘째인 충절공(忠節公)의 후손인 것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는

온인(溫仁) 8세손으로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유보(有甫)의 아들인 (厚)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을,

(厚)의 아들인 옥숭(玉崇)이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으며, 이분이 해월(海月) 선생의 고조(古祖)가 된다.

 

증조(曾祖)인 보곤(輔坤)성균관의 생원(生員)이었으며,

조부(祖父)인 우(瑀)성주목사(星州牧使)를 지냈으며,

 

첫째 아들이 응하(應河)로 일찍 사망하였고,

둘째응청(應淸)으로 호(號)가 대해(大海)이며,

셋째응징(應澄)으로 해월(海月) 선생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며,

(號)가 창주(滄州)이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로 증직(贈職)받았다.

 

해월(海月) 선생의 중부(仲父)인 황응청(黃應淸, 1524~1605)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字)는 청지(淸之), (號)는 대해(大海)로 1552(명종7, 壬午)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560(명종15, 庚申)년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응시하려고 시험장에 들어갔으나,

시제(詩題)가 불미하므로 응시하지 않고 퇴장한 후, 고향에서 학문에 전력하며 덕행(德行)과 도의(道義)

숭상하고 있는데, 천거(薦擧)되어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584(선조17, 甲申)년에 다시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에 발령되어 취임하였다가 곧 귀향하였다.

 

1594(선조27, 甲午)년에 장원서별좌(掌苑署別座)가 되어, 4가지 폐정(弊政)을 임금에게 상소하여 이를 채택케 하고,

진보현감(眞寶縣監)에 임명되었다.

취임후 왜란중(倭亂中)에 각처로 분산된 백성들을 귀가정착(歸家定着)시켜 생업을 권장하고 민심(民心)을 수습하였다.

얼마 후 벼슬을 내놓고 귀향하여, 월천(月川) 조목(趙穆), 대암(大菴) 박성(朴惺),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선생 등과 교유하며, 독서와 후진을 양성하며 낙(樂)을 삼았다.

 

평해적소(平海謫所)에 와 있던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선생과는 특히 교분이 두터웠는데,

아계(鵝溪) 선생은 평소부터 대해(大海) 선생의 덕행(德行)과 탁견(卓見)을 흠모하고 있던 차에 하루는

 

대해(大海) 선생에게 사람을 보내어 처세술을 물었다.

 

대해(大海) 선생은 이에 대답하기를

‘일어나는 먼지는 털면 더 일어나는 것이니 가만히 둠만 같지 못하고,

흐린 우물은 젓으면 더 흐려지는 것이니 젓지말고 가만히 두어 저절로 맑기를 기다림만 같지 못한 것과 같이,

사람에게 있어서도 난동하는 자에 대하여는 조용한 가운데서 그 난동을 제재하는 것이 상책이다’ 라고 하니,

 

이산해(李山海) 선생은 대해(大海) 선생의 말을 듣고 크게 탄복하였고,

그 후에 유명한 『정명촌기(井明村記)』를 저술하여 자경(自警)하였다 한다.

 

특히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선생과는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평해(平海)의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셋째인 해월 선생의 아버지가 되는 창주(滄州) 황응징(黃應澄: 1533~1608)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선생, 약포(藥圃) 정탁(鄭琢), 월천(月川) 조목(趙穆) 선생 등과 교유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의 사동리(沙銅里) 생가(生家)의 연원(淵源)을 말한다면,

황씨(黃氏)의 시조(始祖)가 되시는 락(洛)이 중국의 강하(江夏)에서 우리 나라 강원도(현재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의

월송정 북쪽에서 터를 잡고 살아오다가, 충절공(忠節公)이 군(郡)의 북쪽에 있는 정명리(正明里)이주(移住)하여

살아왔었다.

그런데 해월(海月) 선생의 아버지 되시는 창주공(滄州公)이, 사동리(沙銅里)의 사직(司直) 영덕정씨(盈德鄭氏)

정창국(鄭昌國)의 여식(女息)과 혼인(婚姻)하게 됨으로써, 사동리(沙銅里)에 터를 마련하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해월(海月) 선생은

명종(明宗) 11년(1556: 丙辰年) 10월 21일 병오일(丙午日)(巳)시에

사동리(沙銅里, 현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집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

 

2세 때부터 풍골(風骨)이 남달리 뛰어나, 사람들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비범(非凡)아이라고 하였으며,

5세 때부터 비로소 독서를 시작하였다.

8세 때에는 선생은 사동리(沙銅里) 집에서 남쪽으로 10여 리 떨어진 정명리(正明里)에 계신 중부(仲父)

대해(大海) 선생에게 가서 수업을 받았다.

해월(海月) 선생은 한 번 들은 것도 그대로 외우고 그 이치를 통했으며,

아버지인 창주공(滄州公) ‘이 아이가 틀림없이 우리 가문(家門)을 일으킬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한다.

이 당시 해월(海月) 선생의 집안은 워낙에 가난하여 해월(海月) 선생의 어머니는, 10여 리씩 떨어진 대해(大海) 선생의

집으로 어린 아들이 매일 수업받으러 다니는데, 밥을 해서 먹여 보내지 못하고 조석(朝夕)으로 멀건

죽을 먹여 보내니 매우 가슴 아파하며, 사흘에 하루라도 진하게 쑨 죽이라도 먹여 보냈으면 하며,

불쌍히 여겼다고 한다.“ 라고 명산 선생의 이야기가 끝나자

 

한 사람이 말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의 생가(生家)에 대하여 좀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선생도 해월(海月) 선생의 생가(生家)에 대하여,

난새(鸞)가 선회(旋回)하고 봉황(鳳凰)이 날아올랐다가 돌이켜서 품어안는 형(形)의 집터라고 하였는데,

 

해월(海月) 선생은 그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없으신가요?” 라고 하자

 

명산 선생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16장 74편 1수

 

得見豚允書中有詩(득견돈윤서중유시) 是夕無寐遂於枕上疊和(시석무매수어침상첩화)

二首(이수) 回寄允兒(회기윤아) 以爲林泉(이위임천) 卜築之南針云(복축지남침운)

 

우룡사하립암간(牛龍寺下立巖間)

몽매평생기왕환(夢寐平生幾往還)

곡호임천원득직(谷號林泉爰得直)

옹칭해월숙쟁한(翁稱海月孰爭閒)

청류굴곡엄릉뢰(淸流屈曲嚴陵瀨)

열수참치사조산(列岫參差謝眺山)

처세처향구매책(處世處鄕俱昧策)

휴가종차노운관(携家從此老雲關)

 

제목-장남인 중윤(中允)의 글 중에 시(詩)를 보고서,

저녁 침상에서 잠 못 들며 첩화시(疊和詩) 두 수를 지어,

돌아와 윤아(允兒: 중윤)에게 주며 임천(林泉)에서 터를 가려 집을 짓는데 정남향으로 하라고 이름.

 

우룡사(牛龍寺) 아래에는 조용한 석굴이 있으니,

평소 잠도 자며 꿈도 꾸며 자주 갔다 돌아오는 곳이다.

()을 일러 임천(林川)이라 하는데,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되었으니,

해월을 부르며 누군가가 당겨 맞이하는데 한 노인이구나.

맑게 흐르는 물이 이리저리 굽고 꺾이며 차가운데 더하여 물살은 빠르고,

물러나 멀리 산을 바라보니 봉우리가 연이어 있구나.

이 세상과 고향에서 살아나가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인지라,

집을 떠나서 이 노인을 쫓아,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도다.

 

2수

풍진분주무문간(風塵奔走武文間)

모경방지권조환(暮境方知倦鳥還)

자한오향편벽애(自恨吾鄕偏僻隘)

인언차토략관한(人言此土略寬閒)

소청현시호중계(小靑縣是壺中界)

태백지위획리산(太白支爲畵裏山)

시식건곤간비의(始識乾坤慳秘意)

시문수설주의관(柴門雖設晝宜關)

 

속세(風塵)의 문관과 무관사이(文武間)를 분주(奔走)히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바야흐로, 고달픈 새는 돌아온다(鳥還:조환)는 것을 알겠구나.

스스로 한(恨)하는 것은, 내 고향 마을이 외져 막혀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길, 이 곳은 대체로 넓고 한가하며,

작지만 맑고 고요한 고을로, 이 곳이 호중계(壺中界)라 하는구나.

태백(太白)산의 한 가지로 나누어진, 모태(母胎)가 되는 산으로,

처음으로 건곤(乾坤)이 굳게 감춰 둔, 신(神)의 뜻을 알게 되었다.

비록 사립문(柴門:시문)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낮에는 마땅히 관통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詩)는 1618(광해10, 戊午)년 8월에 동래부사(東萊府使)로 있다 관직을 물러나,

고향집으로 돌아와서는 해월헌(海月軒)을 만귀헌(晩歸軒)으로 고쳐 현판을 걸었으며, 그 이후 지은 시(詩)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우룡사(牛龍寺) 아래에 바위 석굴이 있는데,

이 곳을 임천(林川)이라 하고 이 곳에서 한 노인을 만나서 모시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노인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 구절은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질문하자

 

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 글 내용으로 보면 이 세상과 고향 마을에서 잘 살고자 꾀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하여,

이 노인을 따라 구름이 낀 산속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분명히 신선(神仙)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은 시인(是認)도 부인(否認)도 하지 않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두번째 시(詩)를 보면, 해월(海月) 선생이 속세(俗世)에서 무관(武官)과 문관(文官)으로 분주히 살아오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고달픈 새는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크게 한(恨)하는 것은, 고향 마을이 도회지와는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꽉 막혀서,

이 곳 사람들은 좋은 스승을 만날 수도 없고,

아무리 똑똑해도 배경이 없으니, 중앙(中央)에 나아가 출세(出世)할 수도 없는 울진 사람들을 보고 매우

가슴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곳 고향 마을은 비록 작지만, 맑고 고요한 마을로 이 곳은 호중계(壺中界)라 한다고 하였다.

이 곳은 태백산(太白山)의 한 가지로 나누어진 모태(母胎)가 되는 산이며,

이 곳은 하늘이 비밀(秘密)에 부쳐둔 숨겨 둔 곳인데,

해월(海月) 선생도 늦게서야 그 신(神)의 비밀(秘密)을 알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곳은 신성(神聖)한 곳으로, 아무나 출입(出入)시켜서는 안되는 곳이라, 속이 탄다고 하였다.

차라리 외부(外部)와의 교제(交際)를 끊고, 문을 만들어 닫아 걸어서 출입(出入)을 막고 싶은데,

그러나 어찌 대낮까지 사람들을 드나들 수 없게 할 수야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만일에 그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사람들이 이상스럽게 생각하여,

(神)이 숨기는 뜻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쉬우니, 답답한 심정을 시(詩)로써 남긴 것이다.“ 라고 설명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호중계(壺中界)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하여 주십시오.” 라고 질문하자,

 

호중계(壺中界)란,

별천지(別天地), 비인간(非人間), 선경(仙境), 술그릇속, 바가지속이라는 말로, 한 마디로 신선(神仙)이 머무는 곳이란

말이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세계(理想世界)라고 이제껏 알아왔지만,

사실은 이 시에서는 호중계(壺中界)가 바로 해월(海月) 선생 자신의 고향(故鄕),

즉 해월(海月) 선생 자신의 집이 호중계(壺中界)라 한 것이다.

 

토정(土亭) 선생의 조카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선생은, 이를 꿰뚫어보고 사동기(沙銅記)를 남긴 것이다.

바로 여기가 태백산(太白山)의 한 가지로서 모태(母胎)가 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즉 금강산(金剛山) 태백산(太白山)의 정기(精氣)가 모여 있는 정혈처(正穴處)인 곳이다.

하늘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우주(宇宙)를 개벽(開闢)하여야 하는데,

개벽(開闢)의 주인공인 건곤(乾坤) 즉 하나님의 아들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정기(精氣)를 축척해 감추어 둔 곳이 바로 이 곳이니, 어느 누구도 출입(出入)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지(聖地)라는 것이다.

그러나 밤에는 사립문을 걸어서 닫으면 되겠지만,

낮에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통과시킬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내용이다.“ 라고 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의 생가(生家)를 호중계(壺中界)라 하고 신선(神仙)이 머무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하여 주십시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2장 51편에,

 

차이청강 해월헌운(次李淸江 海月軒韻)

 

소헌탄진일창명(小軒呑盡一滄溟)

량월장풍진차정(凉月長風盡此亭)

불유적선유일구(不有謫仙留逸句)

좌래안득상금령(坐來安得爽襟靈)

 

조그만 정자(小軒)이나, 창해(滄海)를 한 번에, 마셔 없앨 수 있고,

맑고 깨끗한 달(凉月:량월)과 장풍(長風)이, 이 정자에서 그치는데,

천상에서 귀양온 신선(謫仙:적선)이, (남의) 훌륭한 구절을 엿보겠는가?

앉아서 찾은즉, 밝고 빛나는 옷을 입은 신(爽襟靈:상금령)이, 이르는도다.

 

이 시(詩)는 이청강(李淸江) 선생의 시(詩)를 차운(次韻)하여, 해월헌(海月軒)에 대하여 읊은 시(詩)이다.

 

해월헌(海月軒)이란,

해월(海月) 선생이 선생의 호(號)를 따서, 지은 정자(亭子) 이름이다.

이 해월헌(海月軒)은 해월 선생이 1588(선조 21, 戊子)년 4월 고향에 돌아와서 해월헌(海月軒)지었는데,

현판(懸板)은 영의정(領議政)으로 있던,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선생이 썼으며,

약포(藥圃) 정탁(鄭琢),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상촌(象村) 신흠(申欽),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지봉(芝峯) 이수광(李晬光) 선생 등등, 당대의 명망(名望)있는 많은 인사(人士)들이, 찬양(讚揚)하는 시(詩)

(文)을 남겼다.

 

해월헌(海月軒)은 조그마한 정자(亭子)이지만, 단 한(一) 번에 넓고 푸른 바다(滄溟:창명)를 마셔버릴 수 있고,

맑고 깨끗한 달(凉月:량월)과 장풍(長風)도, 이 정자에 와서는 머문다고 하였다.

 

또한 천상에서 귀양온 신선이 남의 아름다운 구절을 엿보고 흉내내어, 큰소리나 치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즉 해월 선생이 이 정자에 앉아서 신선(神仙)을 찾은즉, 밝게 빛나는 옷을 입은, 신선(神仙)이 온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시(詩)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시사(示唆)하는 내용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해월 선생은 자신이 신선(神仙)에 대하여 하는 말은, 이름이 나 있는 문장가(文章家)들이 써 놓은 글이나 보고,

흉내내어 지껄이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해월 선생이 신선을 찾으면, 밝게 빛나는 옷을 입은 신선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 남들이 신선(神仙)을 보지도 못하고, 옛날 책이나 남들이 신선(神仙)에 대하여 써 놓은 글을 보고 흉내내어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해월 선생이 직접 신선(神仙)을 찾으면, 신선(神仙)이 나타나서, 신선(神仙)과 더불어 같이 지낸다는 말이다.

 

그러면 신선(神仙)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자세히 알아보자.

 

우리는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4권 1장 1편을 보면

 

더욱 확실(確實)하게 ,그 신선(神仙)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여유소부이(與有巢父耳)

녕위할관롱(寧爲鶡冠聾)

여위기자노(與爲箕子奴)

녕위수옥용(寧爲樹屋傭)

불문불수세(不聞不須洗)

불출불수광(不出不須狂)

소이현달인(所以賢達人)

행장순천상(行藏順天常)

명관무위초(冥觀無爲初)

즉지유위후(卽知有爲後)

헌앙천지간(軒昻天地間)

독여지도우(獨與至道友)

욕형불가형(欲形不可形)

욕명불가명(欲名不可名)

왕왕창해수(汪汪滄海水)

난탁역난청(難濁亦難淸)

 

소부(巢父)와 같이 귀를 씻기보다는,

차라리 할관(鶡冠)이나 하고, 귀가 먹겠으며,

기자(箕子)와 같이, 종(奴)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통나무집을 짓고, 품팔이를 하겠다.

듣지 않으니, 모름지기 씻을 필요도 없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으면, 모름지기 미친 듯이 떠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명하고, 사물에 통달한 사람(賢達人)이라면,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하는 일과, 물러나 숨는 일(行藏)은, 천명을 따르는 것(順天)이, 상식(常)이다.

어리석게도 처음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보았으나,

다시 말해 나중에는, 할 수가 있슴을 알겠구나.

의기 양양(軒昻)하게, 천지 사이(天地間)에서

내가 홀로(獨:독) 지극한 도(至道:지도)와 벗(友:우)하고 있지만,

드러내고 싶어도(欲形:욕형), 드러낼 수 없고(不可形:불가형),

누구라고, 지칭하고 싶어도(欲名:욕명), 지칭할 수 없구나(不可名:불가명).

깊고 넓은(汪汪(왕왕) 푸른 저 바닷물은(滄海水:창해수),

탁해지기도 어렵지만(難濁:난탁), 역시 맑아지기도 어렵구나(亦難淸:역난청).

 

이 시(詩)는 1617(광해 9, 丁巳)년 12월 62세 때 지은 시(詩)인데, 그 당시 해월(海月) 선생은 동래(東萊) 부사(府使)

있었다.

이 때 폐비(廢母: 인목대비)의 논(論)이 일어났으며,

또한 조정의 대신들 사이에서는 한 당파(黨派) 속에서 패가 갈리면서, 여러 각료들의 벼슬을 빼앗고,

멀리 내쫓는 일이 벌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이 시(詩)를 쓰고, 즉시 사직서(辭職書)를 제출하고는,

고향에 돌아갔다.

조정(朝廷)에서는 계속 근무(勤務)하기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고는 돌아간 것이었다.

 

소부(巢父)

(堯)임금 때의 고사(高士)로, 요(堯)임금이 천하(天下)를 맡기고자 하였으나, 사양(辭讓)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천하(天下)를 맡기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 귀가 더럽혀졌다 하여, 냇가로 가서 귀를 씻었다고 전해 오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한 마디를 하였는데,

이 넓고 넓은 천지(天地) 사이에서, 홀로(獨), 지극한 도(至道)와 벗(友)하고 있다고 하였다.

(道)와 벗(友)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바로 정도(正道)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과 더불어 동행(同行)

한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낼 수가 없고,

누구라고, 지칭하고 싶어도(欲名), 이름을 밝힐수가 없다고(不可名)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깊고 넓은 저 푸른 바닷물은, 탁해지기도 어렵고, 또한 맑아지기도 어렵다고 한 것이다.

바로 해월(海月) 선생이 벗(友)하고 있는 지극한 도(道)가, 변하지 않는 진리인 바다(海)라고, 은연중(隱然中)에 밝히는

것이다.

 

바다(海),

진인(眞人) 정도령을 뜻하는 별칭(別稱)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밝힌 것이다.

 

우리는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 속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마음속 깊이 숨겨 왔던, 밝히기가 곤란(困難)

혼자만의 큰 비밀(秘密)을, 마음 크게 다져먹고 고백(告白)하여, 세상에 드러낸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를 더 밝힌다면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3장 13편을 보면,

『인종상계사초하(人從上界槎初下)

 

사람들은 하나님을 , 천상의 세계(上界)에 있는 것으로 알고 쫓지만,

울진(仙槎)이, 바로 천상세계에 계신 하나님 또는 신선이 내려와 계신 곳(初下)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울진의 옛 지명(地名)이 선사(仙槎)인 것이며,

(始)와 초(初)라는 말은, 도(道)를 의미하는 말로 부처님 또는 상제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가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하늘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해월(海月) 선생은 바로 선사(仙槎: 신선의 뗏목),

즉 울진(蔚珍)에 하나님이 내려와 계신다고 밝힌 것이다." 라고 명산 선생이 말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제가 알기로는, 그 당시에 당파(黨派) 싸움이, 아주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월(海月) 선생은, 당파(黨派) 싸움에 휘말려 들어가서, 해를 당한 적이 없습니까? " 라고 질문하자

 

명산 선생은 이어 말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은 일생(一生)의 관직(官職) 생활에서, 당파(黨派) 싸움에 휘말린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당파(黨派)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해월(海月) 선생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을 보면,

 

朝廷分黨禍(조정분당화) 人不得避(인불득피)

而公能見幾(이공능견기) 一櫂歸山(일도귀산)

不以有無累(불이유무루)

其心(기심) 凌凌(릉릉) 有披雲(유피운)

萬里之像志(만리지상지)

 

조정(朝廷)에 당(黨)이 나누어지니, 사람들은 그 화(禍)를 피할 수가 없었는데,
(公: 해월)은 능히 그 기미(幾微)를 미리 알아보고는, 노를 저어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 연루(連累)되어 해(害)를 입지 않은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의 마음속에는 구름을 헤치고 하늘 높이 올라가
만리(萬里) 기상(氣像)의 웅지(雄志)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

앞에서 해월(海月) 선생은, 스스로 시(詩)에서 밝히기를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을, 천명(順天)에 따른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났기 때문에,
당연히 해월(海月) 선생은, 당파(黨派) 싸움에 연루되어
(害)를 당하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해월(海月) 선생의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쓰신 분은, 이유원(李裕元) 선생인데,
이항복(李恒福) 선생의 후손(後孫)인 것이다.

 

※ 이항복(李恒福, 1556 ~ 1618, 명종 11∼광해 10) 선생은
(號)가 필운(弼雲), 백사(白沙)이며,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항상 당쟁(黨爭)에 초연(超然)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광해군(光海君) 때 영창대군(永昌大君)구원하려고 힘썼으며,

폐모(廢母)의 논(論)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 반대했으므로 북청(北靑)귀향가서 적소(適所)에서 사망했던 것이다.
또한 백사(白沙) 선생과 해월(海月) 선생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분이며,
사망(死亡)하신 시기는 해월(海月) 선생이 4년 뒤인 것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선생과 해월(海月) 선생과의 우정은, 남달리 돈독(敦篤)했는데,
이와 같은 화(禍)를 당한 것을 매우 마음아파 하면서, 이에 대한 시(詩)도 남겼다. 〕


※ 이유원(李裕元, 1814 ~ 1888, 순조 14∼고종 25) 선생은

조선 말기의 문신(文臣)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춘(京春), 호는 귤산(橘山), 묵농(默農)이다.
1841(헌종 7)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규장각 대교를 거쳐,

의주 부윤, 함경도 관찰사를 지내고,

고종 초에 좌의정에 올랐으나,

흥선대원군과의 반목으로 1865(고종 2)년 수원 유수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 해 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전임되고,

1873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실각(失脚)하자 영의정(領議政)이 되었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서임되었다.

또한 학문과 예서에 능하였다고 하며,
저서(著書)로는 임하필기(林下筆記), 귤산문고(橘山文庫)가 전한다." 〕라고 하자

 

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의 조그마한 정자(亭子)가,
넓고 푸른 바다 즉 창해(滄海)한 번에 , 마셔 없앨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묻자

 

명산 선생은 곧 설명을 하였다.

 

◈ 영의정을 지낸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의 해월헌(海月軒)에 대한 시(詩) ◈를 보면,

수지북두동명(誰持北斗酌東溟)

공설군가해상정(共說君家海上亭)
응유란참과벽락(應有鸞驂過碧落)

계궁고처문선령(桂宮高處聞仙靈)

누가 북두칠성(北斗)을 손에 넣어, 동해바다(東溟)를 잔()질 하겠는가?
그대의 집 바다 위의, 해월헌(海上亭)이라는 정자에서 함께 말했지,
난새(鸞)가 끄는 수레가, 푸른 하늘을 지나가니,
달속의 궁전(桂宮)에, 신선(仙)의 신령(靈)한 소리가 들리는구나.


※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 ∼ 1628, 명종 21∼인조 6)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으로 본관(本貫)은 평산(平山),(字)는 경숙(敬叔), (號)는 현헌(玄軒),
상촌(象村), 방옹(放翁)이다.

1585(선조 18)년 진사시와 생원시에 차례로 합격하고,
1586년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사헌부 감찰, 병조좌랑으로,

1599년 동부승지, 우부승지, 이조참의, 도승지, 병조판서, 예조판서, 경기감찰사를 역임하고,

1610년에는 예문관 대제학을,
1623년 인조 즉위년에 이조판서겸 예문관 홍문관의 대제학에 등용되었고,

같은 해 7월에 우의정에 발탁되었으며,

1627년에는 좌의정으로,

같은 해 9월에는 영의정에 올랐다가 사망했다.

그는 장중하고 간결한 성품과 뛰어난 문장으로 선조의 신망을 받았으며,

이정구(李廷龜), 장유(張維), 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이른바, 한문 사대가(四大家)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저서(著書)로는 상촌집(象村集), 야언(野言) 등이 있으며 시호(諡號)는 문정공(文貞公)이다.

이 글을 보면 상촌(象村) 신흠(申欽) 선생은 해월(海月) 선생과 더불어,
해월(海月) 선생의 고향 바닷가가 있는, 해월헌(海月軒)에 올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누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손에 넣어서, 동해(東海) 바다를 잔질하겠는가?
하고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고, 상촌(象村) 신흠(申欽) 선생은 말하는 것이다.

이 시(詩)를 보면,
누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손에 넣어서, 동해(東海) 바다를 잔질할 수 있는가? 라는 말은,
해월(海月) 선생 자신이, 그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가지게 될 것을, 은연중(隱然中)말하였지만,

상촌(象村) 선생은, 해월(海月) 선생이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 시(詩)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거의 짐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다만 시(詩)의 내용으로 보아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손잡이가 달린 술잔 모양으로 생겼으니,
단순히 선비의 호기(豪氣)로운 말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고

명산 선생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서로들, 이 시(詩)의 내용으로 보아 진실로 신선(神仙)을 이야기하는 해월(海月) 선생과 다만 단순히 이야기 만 듣고,
서책(書冊)으로만 대하던 신선(神仙)을 이야기 하는 상촌(象村) 선생과의 글은 구분이 된다며 서로들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해월(海月) 선생께서 직접적으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손에 넣었다고 하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 때 명산 선생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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