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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유록(海月遺錄) 중 정감록(鄭鑑錄)이란..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

★ 해월유록 본문

by 雪中梅 2021. 4. 24.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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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유록(海月遺錄) 중 정감록(鄭鑑錄)이란..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 

 

 

http://cafe.daum.net/dos1130 黃汝一 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 정도령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guriever.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정감록(鄭鑑錄)이란

 

정감록(鄭鑑錄), 격암유록(格菴遺錄), 홍세록(紅細錄), 마상록(馬上錄),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등의

숨겨진 깊은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적으로 용어의 의미부터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명산 선생을 찾아서 용어해석(用語解釋)을 부탁했다.

용어(用語)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가운데, 이 책 속에서 옛 분들이 우리들에게 전해 주려고 했던 깊은 내용이

밝혀지리란 기대(期待) 속에, 그동안 따르던 사람들과 관심이 많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명산 선생을 맞이했다.

그동안 명산 선생을 통하여 알아왔던 내용에 대해, 따르던 일행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요청했다.

 

"세간(世間)에 나와 있는 정감록(鄭鑑錄)을 해석해 놓았다는 책들을 보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데 왜 그렇습니까?" 라고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우선 책을 내고 주석서(註釋書)를 쓴 사람들조차도, 용어(用語) 하나 제대로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책을

내놓으니, 그 책을 보는 사람은 당연히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먼저 용어(用語) 하나하나를 모르는 상황(狀況)에서 그러한 책을 썼으니,

그 다음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래도 한문(漢文)이나 역학(易學)에 능통(能通)한 사람은 제대로 풀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명산 선생은 이어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예언서(豫言書)를 정감록(鄭鑑錄)이라고 하는데,

정감록(鄭鑑錄)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면서 정감록(鄭鑑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감록(鄭鑑錄)에 대하여 흔히 말하기를 비결서(秘訣書)도 한다.

 

정감록(鄭鑑錄)이란,

말하자면 성경(聖經)의 신약(新約) 중에 요한계시록,

구약(舊約) 다니엘서나 이사야서와 같은 예언서(豫言書)인 것이다.

그러니 다만 단순히 읽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해석(解釋)할 수 있는 글은 아닌 것이다.

비결(秘訣)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비결(秘訣)이란, 우리나라 선각자(先覺者)

또는 성인(聖人)들의 예언서(豫言書)인 것이다.

 

그런데 한자(漢字)나 역학(易學)에 능통(能通)하다 해서 누구나 풀 수 있는 글이라면,

비결(秘訣) 즉 예언서(豫言書)라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결(秘訣)이란 말 그대로 누구나 보고 쉽게 해석할 수 있도록 남겨 놓은 글이 아니라,

일부러 아무나 알지 못하게, 하늘이 그 의미를 숨겨서 전하는 예언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깊은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이 아는 단편적인 지식(知識)만으로 제멋대로 해석(解釋)하고 또한 주해서(註解書)를 내고는,

정감록(鄭鑑錄)이 황당무계(荒唐無稽)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 하는 믿을 것이 못되는 책이라고

혹평(酷評)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우리나라에는 옛부터 전(傳)해오는 예언서(豫言書)가 많이 있는데,

지금까지 전하여 내려오는 예언서(豫言書) 가운데,

 

기록(記錄)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신라시대(新羅時代)

원효대사(元曉大師), 의상대사(義相大師),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 등의 기록이 있고,

 

또한 신라말 (新羅末) 고려초(高麗初)의 왕사(王師)인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남긴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태조(太祖)의 왕사(王師)무학대사(無學大師), 북창(北窓) 정렴(鄭磏),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서산대사(西山大師), 퇴계(退溪) 이황(李滉), 율곡(栗谷) 이이(李珥),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 고산(高山) 윤선도(尹善道),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강산(疆山) 이서구(李書九) 선생......등 많은 분들이 기록을 남겼던 것이다.

 

시대적으로 구분한다면,

삼국시대(三國時代), 고려시대(高麗時代), 조선시대(朝鮮時代)로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와 고려왕조(高麗王朝) 때에는 국교(國敎)가 불교(佛敎)라서 그런지,

대부분의 예언서(豫言書)저자(著者)가 큰스님들었던 것이다.

 

조선왕조(朝鮮王朝) 때에는 주로 유학자(儒學者)가 많았으며,

조선 중기(朝鮮中期) 이후에는 실학자(實學者)들이었으며,

조선 말기(朝鮮末期)에는 유불선(儒彿仙)의 합일(合一)을 주장하는 종교(宗敎)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시대(時代)와 저자(著者)는 서로 달라도, 내용은 서로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것이다.

(傳)해오는 예언서(豫言書)의 종류는 많지만, 하나같이 한양(漢陽) 이씨 왕조(李氏王朝) 후에,

진인(眞人: 義人)이 나타나는 것으로 예언서(豫言書)의 끝을 맺고 있다.

이 진인(眞人)이 바로 정도령(鄭道令) 또는 「正道令」, 「正道靈」, 「井道令」 등으로 표기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 진인(眞人) 정도령이 계룡산(鷄龍山)에 도읍(都邑)을 정(定)한다고 쓰여져 있기 때문에,

지금도 계룡산(鷄龍山) 주위에는 정도령을 찾는 신흥종교(新興宗敎)가 많이 있는 것이다.

(傳)하여 내려오는 모든 예언서(豫言書)가, 진인(眞人) 정도령의 출현(出現)을 예고(豫告)하기 때문에,

우리의 예언서(豫言書)를 총칭(總稱) 정감록(鄭鑑錄)이라 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예언서를 쓰신 분들은, 당대(當代)에 제일 가는 정신적(精神的) 지도자로서,

고승(高僧)이거나 대유학자(大儒學者)이며, 또는 이인(異人)이라 알려진 분들로,

지금도 후세인(後世人)들에 의해 추앙(推仰)을 받고 있는 분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글을 남기겠는가?

후세(後世) 사람들에게 난세(亂世)에 대처해 나갈 방법(方法)을 일러주셨는데도,

고맙게 여기기보다는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고 추리하여 해석하는 것도 모자라,

선각자(先覺者)들의 말씀은 잘못된 것이고, 자신들의 추리가 진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분들의 글이 아니라 이름있는 분들의 이름을 도용(盜用)

글이라고까지 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말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예언서(豫言書)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놓고 밝히는 글이 아닌 것이다.

오직 후세(後世)에 인연(因緣)있는 사람만이 그 뜻을 알라고 전(傳)하는 글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면 정감록(鄭鑑錄) 중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의 앞부분을 보도록 하자.

 

『吾雖死(오수사) 豈不可爲(기불가위) 子孫遠慮乎(자손원려호)

敢泄天機(감설천기) 略識年運(략식연운) 以敎汝等(이교여등) 愼勿虛漏(신물허루)

妄傳陰譎之人(망전음휼지인) 只爲保家之方也(지위보가지방야)

 

내가 비록 죽지만 어찌 자손(子孫)들을 위해서 먼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감히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하여 대강 연운(年運)을 말하노니, 부디 공연히 누설(漏泄)하거나,

음침하고 간사한 사람에게 함부로 전(傳)하지 말고, 다만 보가(保家) 하는 방책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후손(後孫)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천기(天機)까지 누설하여 기록(記錄)을 남긴 것이다.

어떠한 심정(心情)으로 비결책(秘訣冊)을 후손(後孫)들에게 전(傳)하려고 하였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토정(土亭)선생의 심정(心情)을 헤아려 본다면, 깊이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정감록(鄭鑑錄) 감결(鑑訣) 초장(初章)을 보면

 

完山伯李公有子三人(완산백이공유자삼인)

長曰早死(장왈임조사) 次曰(차왈심) 三曰(삼왈연)

與鄭公同遊八道山水倚絶處(여정공동유팔도산수기절처)

 

완산백(完山伯) 이공(李公)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장자(長)는 임(淋)으로 일찍 죽고, 차남(次)은 심(沁), 셋째는 연(淵)으로,

이심(李沁)은 정감(鄭鑑)과 더불어 팔도(八道)의 산수(山水)가 기이하고 뛰어난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이 구절을 들어 이씨(李氏) 족보(族譜)를 아무리 조사해보아도 그런 사람이 없으니 정감록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사고(南師古) 선생의 격암유록(格菴遺錄)이나 삼역대경(三易大經)과 하락요람(河洛要覽) 등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들을 보면, 정감(鄭鑑, 鄭堪)과 이심(李沁)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삼역대경(三易大經)은 이민제(李民濟) 선생이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으로부터 천명(天命)을 받아

기록한 글(書)인 것이다.

 

 

삼역대경(三易大經)의 일월성정감장(日月星正鑑章) Ⓟ260을 보면,

 

陽性正鑑也(양성정감야) 陰心靈坮也(음심영대야)

此非心性合德而問答之說乎(차비심성합덕이문답지설호)

先館老少問答之說(선사노소문답지설) 如一鑑李心問答也(여일감이심문답야)

 

양성(陽性)은 정감(鄭鑑)이요 음심(陰心)은 영대(靈坮)라.

이 어찌 심(心)과 성(性)이 합덕(合德)하여 문답(問答)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선사(先師)인 노소(老少)의 문답으로, 일(一)인 감(鑑)과 이(二)인 심(心)의 문(問答)이라고 하였다.

 

 

하락요람(河落要)의 정감록(正鑑錄)에

 

西方庚辛(서방경신) 來鄭鑑(래정감) 東方甲乙(동방갑을) 逢李沁(봉이심)

兩人左右(양인좌우) 還四時(환사시) 易理乾坤(역리건곤) 來運論(래운론)

 

서방경신(西方庚辛)인 정감(鄭鑑)이 와서, 동방갑을(東方甲乙)인 이심(李沁)을 만나,

두 사람이 좌우(左右)로 돌아와 사시절(四時節)이 되니,

(易)의 이치로 건곤(乾坤:정도령)이 돌아오는 운수를 논(來運論)것이라고 하였다.

 

즉 삼역대경(三易大經)과 하락요람(河洛要覽)에서 말한 것을 정리해보면,

 

정감(鄭鑑)이란(天),(陽), (性), 서방경신(西方庚辛), 하늘(乾)을 나타내는 말이며,

 

이심(李沁)이란(地),(陰),(心), 영대(靈坮), 동방갑을(東方甲乙), 땅(坤)을 표현한 말이 라는 것이다.

 

즉 정감(正堪)과 이심(李沁)은 구체적인 어떠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음양(天地陰陽)의 문답(問答)말한 것이다.

 

천지음양(天地陰陽)이란, 우주(宇宙)의 근본(根本)이 되는 태극(太極)이니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

 

따라서 우리나라의 선각자(先覺者)들이 정감(正鑑)과 이심(李沁)이라는 역리학적(易理學的)으로 상징적 인물의 대화로

엮은 정감록(鄭鑑錄)은, 천지음양(天地陰陽)문답(問答), 즉 하나님의 말씀이니 우리나라 성현(聖賢)들이 전(傳)하는

우리의 (聖經)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감(鄭鑑)을 양성(陽性), 정감(正鑑)이라 했는데,

즉 성(性)이란 바로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부처님 자리인 것이다.(견성성불:見性成佛).

 

주자학(朱子學)을 성리학(性理學)이라고도 하는데, (性)과 리(理)를 정감(鄭鑑)이라 했으니,

바로 만(萬物)의 근원(根源)되시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신 정감(鄭鑑) 선사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을,

우리가 흔히 정감록(鄭鑑錄)이라 하는데,

결과적으로 정감록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놓은 책이라는 것이다. *****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선생의 초창결(蕉蒼訣)에,

 

無知鑑則(무지감즉) 不保其命(불보기명 ) 愼之愼之也(신지신지야)

 

말세(末世)에 감(鑑)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그 명(命)을 보존(保存)할 수 없으니 신중하고 신중하라고 하였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라마단이(羅馬單二)P 47에

 

『天以鑑之善惡(천이감지선악)行報應(각행보응)

 

하늘이 (鑑)으로 선악(善惡)을 비추어서 각기 행(行)한대로 보응(報應)한다 한 것이다.

즉 감(鑑)이란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신(神)인 것이다.

 

 

성경의 에레미야 11장 20절을 보면,

『공의(公儀)로 판단(判斷)하시며 사람의 심장(心臟)을 감찰(鑑察)하시는 만군(萬軍)의 여호와여......』

 

사람 마음을 정확하게 감찰(監察)하시는 하나님을 뜻하는 말을 감(鑑)이라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감(鑑)은 인(人間)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라고 명산 선생이 말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어떤 사람은 정감록의 원래 제목은 정감여록(井堪輿錄)인데, 이것을 줄여서 정감록(井堪錄)이라 하던 것을,

이서(異書)가 생기는 과정에서 잘못 기록되어 정감록(鄭鑑錄)으로 오기(誤記)되었다며, 틀렸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선각자(先覺者)들이 그러한 것도 구별하지 못해 잘못 전했겠나?

예언서(豫言書) 내용(內容) 중 크게 중요하지 않은 한두 글자가 와전(訛傳)되어 잘못 전(傳)해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예언서(豫言書)의 제목(題目)을 천하(天下)가 다 아는 정감록인데도 불구하고, 그 제목(題目)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무지(無知)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옛말에 「일지불이무지자(一知 不二 無知者)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이 있어 왔으니,

이런 사람을 두고 한 말인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승운론(勝運論) Ⓟ100~101을 보면,

 

易理(역리)속의 秕藏文句(비장문구) 不勞自得(불로자득) 彼此之間(피차지간)

無知者(무지자)가 알게되면 勝己厭之(승기염지) 此世上(차세상)

眞人出世(진인출세) 못한다네

是故古訣(시고고결) 預言論(예언론)

隱頭藏尾(은두장미) 着亂(착란)하야 上下疾序(상하질서) 紊亂(문란)키로

有智者(유지자)게 傳(전)했으니 無智者(무지자)는 愼之(신지)하라

識者憂患(식자우환) 되오리라』

 

역리(易理) 속에 감춰진 글귀(秘藏文句) 노력없이는 알 수가 없는 것인데,

무지자(無知者)가 알게 되면, 자기 자신보다 능력이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세상(世上)이기에,

진인(眞人)이 출세(出世)할 수가 없으므로,

자고로 옛 비결(秘訣)의 예언(預言)을 논(論)할 때에는,

(言)의 머리와 꼬리를 숨기고(隱頭藏尾), 상하질서(上下秩序)를 문란(紊亂)시켜서 알지 못하게 하여,

지자(知者)에게 전(傳)한 것이니, 무지자(無知者)는 신중히 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연히 아는 척 하였다가는 식자우환(識者憂患)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일부러 예언서(豫言書)의 앞뒤 내용을 숨기고, 순서와 마디를 섞어 놓아 알아보지 못하게 했는데

제대로 해석(解釋)이 되겠는가?

그래서 조그만 지식으로 공연히 아는 척했다가는 식자우환(識字憂患)이 된다고 경고(警告)한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을 보면,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豫言)은 사사(私私)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豫言)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聖靈)의 감동(感動)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3장 16~17절에

『또 그 모든 편지(便紙)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無識)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無法)한 자들이 미혹(迷惑)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이와같이 성경의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함부로 풀지 말라고 하였다.

함부로 풀다가는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경의 다니엘 12장 2~13절을 보면,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永生)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羞辱)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智慧)있는 자는 궁창(穹蒼)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永遠)토록 비취리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看守)하고 이 글을 봉함(封緘)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往來)하며 지식(知識)이 더하리라.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江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江) 저편 언덕에 섰더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細麻布)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奇事)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細麻布)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左右)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永生)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盟誓)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聖徒)의 권세(權勢)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主)여 이 모든 일의 결국(結局)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大抵)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看守)하고 봉함(封緘)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鍊鍛)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惡)한 사람은 악(惡)을 행하리니 (惡)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智慧)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每日) 드리는 제사(祭祀)를 폐(廢)하며

멸망(滅亡)케할 미운 물건(物件)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삼백삼십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福)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平安)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業)을 누릴 것임이니라』

 

이 성경의 내용은

다니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命令)으로 예언(豫言)의 말씀을 받아 기록하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그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네가 알 바가 아니니 인봉(印封)하여 두라,

말세(末世)에 마지막 때까지 간수(看守)하고 봉함(封緘)하여 비밀로 하여둔 것이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智慧)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라고 하였다.

 

즉 지자(智者)만이 예언(豫言)의 말씀을 깨닫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이 숨겨 놓은 예언(豫言)의 말씀을 풀 수가 있겠는가?" 라고 명산 선생이 묻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명산 선생은 한참 심사숙고(深思熟考)한 후 조용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풀어 밝히겠는가?

예언(豫言)의 말씀을 쓰게 한 본인(本人)이 직접 인간 세상에 와서 풀어 밝히는 것이다.

그가 지혜있는 자로 지자(智者, 知者) 또는 지인(知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예언서(豫言書)와 성경(聖經)은 같은 말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인 것이다.

지인(知人) 또는 지자(智者, 知者)라는 말을 후에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다."

 

이와 같은 명산 선생의 설명에 주위에 있던 한 사람이 말하였다.

"예언서(豫言書)를 기록한 선지자(先知者)들도 다만 기록하여 전(傳)하기만 할 뿐 예언(豫言)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하였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 아는 척 해봐야 무엇을 알겠습니까?" 라는 말이 끝나자,

 

"정감록을 해석해 놓은 어떤 책에서는

하늘의 이치를 감(堪)이라 하고,

땅의 이치를 여(輿)라고 하여,

이는 단순한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인 감여사상(堪輿思想)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데

그러한 말이 맞는 말입니까?" 라고 또 한사람이 질문하자,

 

명산 선생은

그건 바로 한 마디로 무지(無知)의 소치라 할 수 밖에 없다 하시며, 예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격암유록(格菴遺錄)이 어떻게 남겨졌는지를 알아보자.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밀암(密菴) 이재(李栽)의 남격암유적(南格菴遺蹟),

만휴(萬休) 임유후(壬有後)의 격암선생유전(格菴先生遺傳),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海東異蹟 ) 등에서 밝힌 바와 같이

 

『公少時(공소시) 入楓岳(입풍악) 遇神人우신인(僧:승)

引入石室(인입석실) 授道書三卷수도서삼권(三篇삼편)』

 

격암(格菴) 선생이 소시풍악(少時)에 풍악산(楓嶽山, 금강산)에서 신인(神人)을 만나

석실(石室)로 인도 되어 도서 3권(道書三卷, 眞訣)을 받았다고 전(傳)한다.

 

『少時(소시) 逢神人(봉신인) 受秘訣(수비결) 風水天文(풍수천문) 俱得通曉(구득통효)

 

격암유록(格菴遺錄) 첫머리에도 소시(少時)적에 신인(神人)으로부터 비결(秘訣)을 받아서 풍수(風水)

천문(天文)을 다 알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감록(鄭鑑錄) 중 반계(磻溪) 선생의 초창결(蕉窓訣)을 보면,

『磻溪公(반계공) 余之家親也(여지가친야) 學觀天人(학관천인) 不求聞達(불구문달)......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선생의 아드님이, 부친의 말씀을 기록하여 놓은 것으로써,

반계(磻溪) 선생이 천인(天人)을 직접 만나 들어 알게 된 것이지,

소문이나 전해 들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서구(李書九) 선생의 채지가(採芝歌) 칠월식과(七月食瓜) Ⓟ641에,

 

『三伏更炎(삼복경염) 저문날에 北窓淸風(북창청풍) 잠이들어 한 꿈을 이루어 글귀 한首(수) 받았더니

七月食瓜(칠월식과) 글 넉字(자)라 解釋(해석)하라 吩咐(분부)하네

그뉘신지 몰랐더니 우리東方(동방) 先生(선생)일세 仔細仔細(자세자세) 외운글귀

넉넉히도 生覺(생각)나서 꿈을깨서 記綠(기록)하니 이러하고 저러하다]

 

이렇게 현몽(現夢)으로 받아썼다는 것이다.

이서구(李書九) 선생은 1754(영조 30)~1825(순조 25)년의 인물로, 조선 순조 때의 문신이다.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척재(惕齋), 강산(薑山)이며,

1774(영조 5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호조판서, 홍문관 대제학을 거쳐

1824(순조 24)년 우의정에 이르렀다.

정조(正祖) 때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과 더불어 한학사가(漢學四家)로 알려졌다.

시호는 문간공(文簡公)이며 저서로는 척재집(惕齋集)과 강산초집(薑山初集)이 있다.

 

 

삼역대경(三易大經) Ⓟ248에,

 

是以(시이)로 皇天(황천)이 有命(유명)하사

畵出三天三地之六圖(화출삼천삼지지육도)하야

以敎衆生(이교중생)하노니 立志誠意(입지성의)하야

正心修身(정심수신) 而通其治平之道(이통기치평지도)하라......

 

 

팔괘구궁십승장(八卦九宮十勝章) Ⓟ253을 보면,

『非我言耄(비아언모)라 惟天之命也(유천지명야) 하시니라』

 

하나님(皇天)의 명령(有命)으로, 삼천삼지(三天三地)의 육도(六圖)가 나와 중생을 가르치게 되었으며,

내 말은 털끝만큼도 없이 오직 천명(天命)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선생의 마상록(馬上錄)에서도,

『上唪逆二首也(상봉역이수야)』

 

하늘에서 큰 소리가 있어, 두 편의 시(詩)를 받았다고 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로는,

전해 오는 우리의 예언서(豫言書)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감여사상(堪輿思想)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명백(明白)히 알 수 있다.

우리의 선각자(先覺者)들이 예언서(豫言書)를 남기게 된 연유는,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가르쳐 주고 일깨워

주고 전(傳)해 주어서 알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후손(後孫)에게 전(傳)하게 된 것이다.

삼역대경(三易大經)이나 채지가(採芝歌)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기록하여 전(傳)하라 하여, 천명(天命)을 받아

기록하였다고 했으며,

더구나 퇴계(退溪), 율곡(栗谷), 이서구(李書九),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선생 등은,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유학자(儒學者)이지, 단순한 감여가(堪輿家:풍수지리를 하는 사람)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예언서(豫言書)의 내용(內容) 가운데 풍수지리학적(風水地理學的) 용어(用語)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 추측(推測)하고 추리(推理)한 것이다.

선각자(先覺者)들의 예언서(豫言書)가 단순한 감여사상(堪輿思想)에서 나온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예언서(豫言書) 내용(內容)을 너무나 모르고 하는 말인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말운론(末運論 ) Ⓟ32에

『東西末世(동서말세) 豫言書(예언서) 神人豫言(신인예언) 世不覺(세불각)』

 

그래서 동서양(東西洋)의 말세(末世) 예언서(豫言書)는 신인(神人)이 전(傳)해 준 예언(預言)의 말씀임을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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