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dos1130 黃汝一 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 정도령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guriever.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는 진경(眞經)이 있다고 전해 오는데,
혹자는 신라 최치원 선생이 남겨놓은 81자의 천부경(天符經)을 진경(眞經)이라고 하는데 맞습니까?” 라고
한사람이 묻자,
명산 선생이 대답하였다.
“지금부터 300여년 전에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1622~1673, 광해군 14~현종 14) 선생이 천인(天人)을
직접 만나 뵙고 들어, 아들에게 전했다는 초창결(蕉蒼訣)을 보면,
초창결(蕉蒼訣)
『問眞經(문진경) 何昭載乎(하소재호)
曰格庵遺錄也(왈격암유록야)』
아들이 묻기를 진경(眞經) 어디에 있습니까?
이르기를 격암유록(格菴遺錄)이라 하였다.
『眞經眞經(진경진경) 何眞經(하진경) 妖魔不侵(요마불침) 是眞經(시진경)
上帝豫言(상제예언) 聖經說(성경설) 毫釐不差(호리불차) 眞眞經(진진경)』
진경진경(眞經眞經) 어떤 것이 진경(眞經)이냐 하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성경(聖經)이라 하는데,
요사한 마귀(妖魔)가 침범하지 못하는,
즉 털끝만큼도 틀림이 없는(毫釐不差)
100% 하나님의 예언(豫言)의 말씀을 진실로 진경(眞經)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진경(眞經)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河上公之(하상공지) 道德經(도덕경) 異端主唱(이단주창) 將亡兆(장망조)...
八十一載(팔십일재) 道德經(도덕경) 河上公(하상공) 長生不死(장생불사)
死而復生(사이부생) 一氣道德(일기도덕)*****
上帝豫言(상제예언) 聖眞經(성진경)
生死基理(생사기리) 明言判(명언판)
無聲無臭(무성무취) 別無味(별무미)
大慈大悲(대자대비) 博愛萬物(박애만물)
一人生命(일인생명) 貴宇宙(귀우주) 有智先覺(유지선각)
合之合(합지합) 人人還本(인인환본) 道成德立(도성덕립)
人人不覺(인인불각) 寒心(한심)』
하상공(河上公)의 도덕경(道德經)을 이단이라고 주창(異端)하니, 장차 망(亡)할 징조(徵兆)라고 하였다.
팔십일장(八十一載)까지 있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하상공은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게 하며
또한 죽어도 다시 살게 하는 것이 일기(一氣)인 도덕(道德)이라고 하였다.
도덕경(道德經)은 하나님의 예언(預言)의 말씀으로 성진경(聖眞經)이며,
생사(生死)의 그 이치(理致)를 분명하게 나누어 구별하여 밝히는 내용(內容)으로,
무성(無聲) 무취(無臭) 무미(無味)하고
대자대비(大慈大悲)하고 온 만물(萬物)을 두루 널리 사랑하는(專愛) 것이 일기(一氣) 도덕(道德)이라고 하였다.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宇主)보다도 귀(貴)한 것으로, 지혜가 있어 먼저 깨달아서(有智先覺),
거듭거듭(合之合) 사람사람마다 도를 이루어 덕(德)을 세워서, 근본으로 되돌아 오게 하는 예언의 말씀인데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니 한심(寒心)하다고 하였다.
도덕경(道德經)에서,
도(道)
또는 박(朴)
또는 영아(嬰兒:어린아이)
혹은 적자(赤子:어린아기)라고 하며,
무성(無聲), 무취(無臭), 무미(無味)하고 대자대비(大慈大悲)하다고 한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설명을 하겠다.
이와 같이 진경(眞經)속에는 생사(生死)의 이치가 명확히 쓰여져 있는데,
도덕경(道德經)이 한마디로 하나님의 예언(豫言)의 말씀을 전(專)하는 진경(眞經)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도교(道敎)에서는, 도덕경(道德經)을 도덕진경(道德眞經)이라 부른다.
『斥儒尙佛(척유상불) 道德經(도덕경)
上帝降臨(상제강림) 東半島(동반도)
彌勒上帝(미륵상제) 鄭道令(정도령)
末復三合(말복삼합) 一人定(일인정)
三家三道(삼가삼도) 末運(말운)
一仙之造化(일선지조화) 蓮花世(연화세)
自古由來(자고유래) 預言中(예언중)
革舊從新(혁구종신) 訪道覺(방도각)
末世聖君(말세성군) 容天朴(용천박)
弓乙之外(궁을지외) 誰知人(수지인)』
유교(儒敎)를 배척(排斥)하고 불교(佛敎)를 높이는(상尙) 도덕경(道德經)이란
하늘의 상제(上帝)가 동반도(東半島)인 우리나라에 강림(降臨)하는데,
이 분이 미륵불(彌勒佛)이며 정도령(鄭道令)으로,
말세(末世)에 나타나서 통합하기로 이미 정(定)하여진 한 사람에 대한 것이다.(一人定).
지금까지 삼가(三家) 삼도(三道) 즉 유불선(儒彿仙)으로 나누어져 왔으나, 말세(末世)의 운(運)에는
한 사람의 신선(一仙)이, 이 세상(世上)을 조화로 연화세계(蓮花世界)를 만든다고 하는 예언서(豫言書)이다.
옛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예언서(豫言書)에,
옛것을 타파하고 새것을 쫓는 도(道)를 찾는 사람들아(訪道),
말세성군(末世聖君)인 용천박(容天朴), 즉 도(道)인 박(朴)과 하나된 자(者)가 말세성군인 것을 깨달아라.
즉 박(朴)과 하나된 자가 궁을(弓乙)인데, 궁을(弓乙) 이외에 누가 지인(知人)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즉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란,
미래(未來)의 말세(末世)에 동반도(東班島)인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유불선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정해진 하나(一)인 사람이신 신선(神仙)에 대한 예언서(豫言書)라는 것이다.
이 하나(一)이신 분이 이 세상을 조화로 연화세계(蓮花世界)를 이루기로 이미 정(定)하여진 신선(一仙)으로,
이분이 미륵불(彌勒佛)이며 상제(上帝)이며 정도령(鄭道令)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분을 궁을(弓乙)이며, 지인(知人)이며 말세성군(末世聖君)인 용천박(容天朴)이라고 하였다.
약 삼천년(三千年)전(前) 중국(中國)의 고전(古典)으로, 본문(本文)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고,
또한 그 해석(解釋)도 여러갈래로 나뉘어져 왔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본문(本文)은 크게 나누어,
왕필본(王弼本), 하상공본(河上公本), 부혁본(傅奕本), 개원어주본(開元御註本) 등이 있는데,
하상공본(河上公本)은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
하상(河尙)에 살았던 은둔(隱遁)한 선비의 작품(作品)이라고 전(專)하여 진다.
사람들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단순한 도교(道敎)의 경전(經典)으로만 알아왔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의 예언(預言)의 말씀을 기록한 진경(眞經)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경에 주(註)를 달고 해석(解釋)하기는 했으나,
노자(老子) 당시 시대의 환경이나 자신들의 가치관(價値觀)에 입각(立脚)해서 해석을 하다 보니,
제대로 해석(解釋)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하상공(河上公)만이 어느 정도 제대로 해석을 하였는데,
그것을 유학자(儒學者)들이 이단이라 주장하니 망할 징조(徵兆)라는 것이다.
유학자(儒學者)들은 도덕경(道德經)이, 하나님의 예언(預言)의 말씀으로 미래에 되어질 일을 기록한 것임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다만 노자(老子)가 공부하고, 또한 생활에서 터득한 지혜(智慧)로 쓴 것이라 생각하고,
노자(老子)의 철학적(哲學的) 사고(思考)를 반영(反影)한 철학서(哲學書)로만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노자(老子)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관점에서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라고 추측(推測)하여 해석(解釋)하거나,
사람들마다 가지각색으로 해석을 하기는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식이 되어
도덕경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은 노자(老子)의 개인적인 사상과는 사실상 큰 관련이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예언(預言)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예언서(豫言書)인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노자(老子)의 시대적 배경(背景)과 사상(思想)을 위주로 풀이한 해석(解釋)은
엉터리 해석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도덕경(道德經)의 주된 내용은 미래에 일기(一氣)가 나오는데, 그 일기가 정도령(鄭道令)이며,
그 사람이 성인(聖人)이며, 후왕(侯王)이며, 그 사람이 박(朴)이며
또한 박곡(朴谷)에서 왕(王)이 되어 천하(天下)를 통치(統治)하게 된다는 내용인 것이다.
진실로 정감록(鄭鑑錄)의 뿌리는 이미 삼천년(三千年) 전에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속에 있는 것이다.
일반적(一般的)으로 유학(儒學)을 하는 선비들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풀이한 하상공(河上公)의 글 속에 있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영생론(永生論)을 이단시(異端視) 하고, 오히려 잘못된 해석(解釋)이라고
보는 입장(立場)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하상공(河上公)의 해석(解釋)이 진리(眞理)라고 격암유록(格菴遺錄)에서는 밝히는 것이다.
앞으로 도덕경(道德經)의 본문(本文)을, 하상공(河上公)의 장구(章句)와 주해(註解)를 기본으로 하여,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겠다.
포박자(抱朴子)를 쓴 갈홍(葛洪)의 종조(從祖)인 갈현(葛玄, 164~244) 공이,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서문(序文)에서 밝히기를,
태상도군(太上道君)이 세상 사람들이 도덕경(道德經)의 의미를 다 통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특별히 신인을 보내서 깨우치도록 했는데, 그 신인(神人)이 바로 하상공(河上公)이라고 하였다.
하상공(河上公)이란, 성(姓)과 이름을 알지 못하고,
다만 하상(河上) 즉 강가에서 초막을 짓고 있는 분이라는 말이다.
즉 하상공은(河上公) 신인(神人)이라, 성(姓)과 이름을 모른다고 하였다.
『儒佛仙(유불선) 各分派(각분파)로 相勝相利(상승상리) 말하지만
天堂(천당)인지 極樂(극락)인지 彼此一般(피차일반) 다못가고
平生修道(평생수도)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 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일세
春末夏初(춘말하초) 四月天(사월천)을 當(당)코보니 다虛事(허사)라
儒曰知識(유왈지식) 平生人道(평생인도) 名傳千秋(명전천추) 死後論(사후론)과
佛曰知識(불왈지식) 越一步(월일보)로 極樂入國(극락입국) 死後論(사후론)과
仙曰知識(선왈지식) 又越步(우월보)로 不死永生(불사영생)
入國論(입국론)을 三聖各異(삼성각리) 主張(주장)하나 儒佛勝運(유불승운) 되옴으로
河上公(하상공)의 永生論(영생론)을 眞理不覺(진리불각) 儒士(유사)들이
異端主張(이단주장) 猖認(창인)하야 儒生(유생)들을 가라치니
坐井觀天(좌정관천) 彼此之間(피차지간) 脫劫重生(탈겁중생) 제알소냐
富死貧生(부사빈생) 末運(말운)에는 上下分滅(상하분멸) 無智者(무지자)일세』
유불선(儒彿仙)이 각기(各其) 서로 나뉘어져서, 서로가 나은 종교라고 말들은 하지만,
천당(天堂)인지 극락(極樂)인지, 피차일반(彼此一般) 다 못가고.
일찍(平生)이 수도(修道)하고 또한 십년(十年) 공부(工夫)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있는데,
춘말하초(春末夏初) 사월천(四月天)이 닥쳐오면,
즉 진사월(辰巳月) 중 사월천(四月天)이 닥쳐오면 모두가 허사(虛事)라고 하였다.
유교(儒敎)의 지식이란, 평생 인도(人道)를 공부하여 죽은 뒤에 천추(千秋)에 이름이나 전(專)하는 것이고,
불교(佛敎)의 지식이란, 한단계 위로 사후(死後)에 극락(極樂)이나 간다는 것이고,
선도(仙道)의 지식이란, 한 차원 더 위로 죽지 않고 영생(永生)한다고 하며,
각 종파가 삼성(三聖) 즉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신(聖神)을 서로 다르게 부르며 주장(主張)들을 하지만,
유불(儒彿)이 크게 번성하니
하상공(河上公)이 전(專)하는 영생론(永生論)이 진리(眞理)인데도 깨닫지 못하는 유사(儒士)들이,
이단(異端)이라고 주장(主張)하며, 잘못 알고 큰소리치며 유생(儒生)들을 가르치지만,
피차간(彼此間)에 우물 속에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격(坐井觀天)이니,
탈겁(脫劫) 즉 겁(劫)을 벗어버리고 중생(重生) 즉 거듭 태어나는 것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즉 이 글을 보면,
기존 유불선(儒彿仙)의 모든 종교(宗敎)들이 서로들 자기네가 진짜이고 더 나은 종교라고 주장(主張)하지만,
오히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일찍이 수도(修道)하여 십년(十年)을 공부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
있다는 것이다.
춘말하초(春末夏初) 사월천(四月天), 즉 진사(辰巳)의 사월천(四月天)이 닥쳐오면 모든 것이 드러나는데,
지금까지 크게 성했던 유불선(儒彿仙)은 모두가 허사(虛事)가 된다고 하였다. *****
일찍이 십년(十年)을 공부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진사(辰巳)년에 세상에 드러날 때에는
유불선(儒彿仙)의 각 종교(宗敎)들이 서로 상대방의 종교 보다는 나은 종교라고 종교 싸움을 벌이지만,
의미없는 일 즉 허사(虛事)가 된다고 하는 말이다.
『地出天使(지출천사) 渡南來(도남래)
東西道學(동서도학) 不合前(불합전) 各自避心(각자피심) 相嘲笑(상조소)
東西之學(동서지학) 相親後(상친후) 天下人心(천하인심) 同兄弟(동형제)
東西兩道(동서양도) 十字運(십자운)
東西合運(동서합운) 十勝出(십승출)
東西兩書(동서양서) 縱橫書(종횡서) 合之見之(합지견지) 十勝出(십승출)』
지상(地上)에서 천사(天使)가 나와서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
동서양(東西洋)의 종교가 하나로 합하기 전에는
각자가 서로 피하면서 조소(嘲笑)와 조롱(嘲弄)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서양(東西洋)의 종교가 하나로 합한 다음에는, 천하(天下)가 모두 한 형제(兄弟)라고 하였다.
이 동서양(東西洋)의 종교가 하나로 되는 것이 십자(十字) 즉 정도령의 운(運)이라고 하였으며,
동서(東西)가 합운 될 때에 십승(十勝)인 정도령이 나온다고 하였다. *****
동서양(東西洋) 종교(宗敎)의 모든 경서(經書)가 바로 정도령에 대한 글이니,
서로 합(合)하여 잘 보면, 그 안에 십승(十勝)인 정도령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알 수가 있다고 하였다. *****
더욱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설명하겠다.“
이렇게 청산유수같은 설명을 하던 명산 선생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옛부터 전(專)해오는 말로,
‘격암유록(格菴遺錄)을 보았으면 마상록(馬上錄)과 홍세록(紅細錄, 紅細志, 紅袖錄)을 보라’는 말이 전해
왔는데, 그 이유(理由)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명산 선생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격암유록(格菴遺錄)에 밝힌 내용(內容)보다,
더 깊은 내용(內容)을 담고 있으니 보라는 것이다.
즉 격암유록(格菴遺錄)의 내용(內容)을 제대로 알아야만
마상록(馬上錄)의 의미를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
그런데
마상록(馬上錄)을 자세히 보니까,
마상록(馬上錄)에는 또한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를 보라고 한 것이다.
마상록을(馬上錄) 보면, 또한 대문장가(大文章家)인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를 보아야 정확(正確)하게
그 때(時)를 알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라뇨?
해월(海月) 선생이란 어떤 분이기에 그의 시(詩)를 보라며
격암(格菴) 선생이 마상록(馬上錄)에다 말씀하셨습니까?”
하며 다들 놀라는 표정으로 명산 선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명산 선생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띠더니 이윽고 설명을 시작하였다.
“해월(海月)은 황여일(黃汝一, 1556~1622, 명종 11~광해군 14)이란 분의 호(號)인데,
호(號)가 처음에는 하담(霞潭), 해월(海月), 매월(梅月), 후에는 만귀(晩歸)이었으며,
남사고(南師古, 1509~1571, 중종 4~선조 4) 선생과 같은 울진(蔚珍) 사람인 것이다.
남사고 선생보다는 47년 늦은 1556년에 태어나, 일찍부터 문장(文章)으로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분으로
7책(冊) 14권의 문집(文集)이 전(專)해오는데,
그 문집(文集) 속에는 직접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서 동행(同行)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그의 글 속에는 하나님의 복음(福音)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는 이제까지 예언서(豫言書) 속에 감춰진 모호(模糊)한 내용(內容)들을,
명확(明確)히 밝혀주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
그렇지만 먼저 격암유록(格菴遺錄)의 내용(內容)을 분명히 알아야만이,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 내용(內容)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자세히 설명해 나가겠다.”
그러자 모두들 그 책 속의 내용(內容)이 무엇인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호(號)는 격암(格菴)이며, 자(字)는 경원(景元), 또는 경초(景初), 복초(複初) 등이며,
본관은 영양(英陽)으로 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역학(易學), 풍수(風水), 천문(天文), 복서(卜筮), 상법(相法)의 비결(秘訣)에 도통하였으며
사직 참봉(社稷參奉)과 천문학(天文學) 교수(敎授)를 지냈다.
어릴 때부터 뜻 세움이 견고하여 깊이 연구하기를 좋아하였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항상 독서를 좋아해서 소학(小學) 한 질은 언제나 손에 갖고 있었다 한다.
또한 산수(山水)의 승경(勝景)을 찾아 자연에 심취하였으며,
시부(時賦)를 즐기면서 두주(斗酒)를 불사(不辭)하였으며,
세속에 잡다한 영욕(榮辱)에 초연(超然)하여 조그마한 오두막집에 거적으로 문을 달고 살면서도
항상 의연자적(依然自適) 하였다 한다.
역수(易數)에 더욱 정밀하여 음양변화(陰陽變化)를 추산하는 술(術)이 신통(新通)함은 물론이고,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와 복서(卜筮)에까지도 그 요체를 깊이 터득하였기 때문에,
하늘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땅에서 보이는 증상을 신(神)처럼 꿰뚫어 보았으며,
현기(玄機)와 묘용(妙用)의 기변(奇變)에도 극치(極致)에 달하여
사람들이 해동(海東)의 강절(康節)이라 칭하였다.
당대 주역(周易)의 대가(大家)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선생이 격암 선생의 명성을 일찍부터 들어온 터라,
강릉(江陵) 부사로 부임해서 격암(格菴) 선생을 초청하여 역리(易理)를 토론하였는데,
천(天)과 인(人)의 관계와 귀(鬼)와 신(神)의 정상(情狀) 등에 있어서
양사언 선생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듣지도 못한 논설(論說)을 듣고 나서는 깜짝 놀라 절을 하고 하는 말이,
내가 지금에 와서야 비로서 선생을 신인(神人)인 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상대하기를 극히 존경(尊敬)하였고,
편지로 안부를 물을 때면 혹 사씨(師氏)라고도 쓰고
혹 자동(紫洞) 선생이라고 썼을 정도로 그 예우(禮遇)함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격암(格菴) 선생은 여러 번 향시(鄕試)에는 합격하였으나 끝내 과거(科擧)에는 등과하지 못하였고
명종(明宗) 말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사직참봉(社稷參奉)을 제수받아 잠시 서울에 있다가 사은(謝恩)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만년에는 더욱 역상에 유의하여 이기(二氣)가 유행(流行)하는 도(圖)를 작성하여 걸어두고,
음양(陰陽)의 소장(消長)하는 자연법칙을 사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만년(晩年)을 보내려 하였으나,
선조(宣祖) 초에 천문학(天文學) 교수(敎授)로 특별히 부름을 받아 봉직하다가 병으로 63세에 세상을 마쳤다.
사후(死後) 서울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많이 와서 조문(弔問)을 하였는데,
서로 힘을 모아 혹자는 상포와 관을 준비하여 염습(殮襲)을 담당하였고,
혹자는 역부(役夫)를 데려와 울진까지 운구도 하고 장례일까지도 도와주고 갔다고 한다.
사직참봉(社稷參奉)에 재직시 승려 보우(普雨)의 몰락, 문정(文定)왕후가 죽어 태릉(太陵)에 장사지낼 것,
덕흥군(德興君 宣祖)이 임금이 될 것, 동서(東西) 분당의 화(禍), 임진왜란(壬辰倭亂), 순회(順懷)세자의 죽음,
명(明)나라 융경(隆慶) 황제의 책립,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죽음 등을 정확히 예언(預言)했다고 한다.
천문학(天文學) 교수(敎授)로 재직시 태사성(太師星)이 빛을 잃어가는 것을 보고,
관상감정(觀象監正)인 이번신(李蕃臣)이 나이가 많은지라 자신의 명(命)이 다했다고 말하니,
공(公)이 웃으면서 해당(該當)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했는데,
며칠 후 공(公)이 과연 병으로 작고하게 됨을 보고,
격암(格菴) 선생이 바로 태사성(太史星)의 정기(精氣)를 받고 태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공(公)에 대한 일화(逸話)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이지만 몇 가지만 더 소개해보겠다.
격암(格菴) 선생이 아주 소시(少時)에 평해에 사는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 해월 선생의 仲父)선생과 어디로 가게 되어
격암(格菴) 선생이 앞서고 대해(大海) 선생이 뒤에 따라 가고 있었는데,
길에 붉은 천으로 만든 패도(佩刀)가 매달린 채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도 선생은 못 본 척하면서 지나갔었다.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성인(聖人)도 하기 어려운 의연한 행동에 모두 감탄했다고 한다.
[만휴(萬休) 임유후(林有後)의 격암선생유전(格菴先生遺傳)]
격암(格菴) 선생이 어릴 적에 책을 끼고 불영사(佛影寺)에 가다가 마침
바랑을 짊어지고 길가에 서 있는 탁발승을 만났는데,
선생에게 하는 말이 ‘빈도가 짊어진 것이 무거워 걸어가기 어려우니 짐을 갖다 주기를 부탁한다’ 고 하니
선생이 흔쾌히 응락하고 같이 절까지 가서 며칠을 지내게 되었다.
하루는 탁발승과 함께 부용성(芙蓉城)에서 노는데,
그 탁발승의 말이 장기를 둘 줄 안다면 내기 장기를 두자고 하여 선생이 승락하고 소나무 밑에서 장기를 두었는데,
반쯤 두었을 무렵 갑자기 큰 기합소리와 함께 어디로 갔는지 탁발승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으려니 땅으로부터 코끝이 뾰족이 나오더니 점차 전신(全身)이 나타나서는 선생에게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상황에서도 선생은 웃으면서 무엇이 두려우냐고 대답하니
탁발승이 말하기를
바랑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수없이 사람들에게 부탁하였지만,
늘상 욕이나 얻어먹고 매질이나 당하였는데 그대는 아무 말없이 부탁을 들어 주었고,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여러 사람을 시험해 보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하였는데,
그대만은 두려워하지 않으니 가히 가르칠 만하다 하고 비술(秘術)을 전수하면서 다시 부탁하기를
‘너는 참으로 보통 사람이 아닌 자라.
도(道)를 배워 행동을 조심하면 충분히 깊고 높은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니 힘써 노력하라.’ 하고 말을 마치자
옷을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격암(格菴) 선생이 이로부터 현묘(玄妙)한 조화(造化)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게 되고,
언사(言辭)가 모두 신기하리만큼 영험(靈驗)하였다 한다.
하루는 영동(嶺東)을 지나다가 홀연히 하늘을 쳐다보고 깜짝 놀라면서 말에서 떨어지듯 내려와 근심스러운 말로,
지금 이 시간에 조선을 잔해(殘害)할 놈이 태어났다고 하더니,
뒤에 들어보니 일본에 풍신수길이 그 날에 출생하였다고 한다.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海東異蹟)]
일찍이 강릉(江陵)에 갔다가 한송정(寒松亭)이 불에 탄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탄식하기를,
지금부터 30년 동안에는 강릉에서 과거에 오라는 선비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 남사고(南師古)의 예언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읍중(邑中) 유사(儒士) 최운부(崔雲溥가) 과거에 급제한 뒤 양친을 위하여 경연(慶宴)을 장차 열려고 하자
격암(格菴) 선생이 읍인(邑人)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모름지기 잔치에 가 보시오.
이 후로는 이 읍(邑)에서는 30년 동안 이와 같은 경사는 다시 없을 것이오.’
후에 이오(李傲)가 비로소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그 일이 있은지 바로 31년 후였다.
선생이 여러 번 향시(鄕試)에는 합격하였으나, 끝내 과거(科擧)에는 실패하자
어떤 사람이 농담삼아 말하길
선생은 남의 운명(運命)을 헤아리는 것은 능하면서 어찌 자신의 운명은 헤아리지 못하는가 하였더니,
웃으면서 대답하길
사적인 일에는 욕심이 개입하기 때문에 추산(推算)하는 술(術)도 분명히 판단하지 못하는 법이라 하였다.
어느 날 과거 보려고 길을 떠나면서
‘진정 괴롭구나. 이렇게 이(利)한 것 같기도 하고, 불리(不利)한 것 같기도 한 이번 길을 가야만 하다니’ 라고
탄식하였다.
이에 문인 남세영(南世榮)이
‘선생님이 역리(易理)에 밝으신 터에 이(利)하면 가시고 불리(不利)하면 안가시면 되는 일을 가지고 어찌하여 이렇게
탄식하십니까?’ 하고 위로하였더니,
선생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 운명을 점쳐보니 글귀 중에 「부디 공명일랑 짓지 마라.
또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놀라게 할 사람이 될 것이다(不作功名客亦作驚天動地人)」 하였으니,
우리가 오늘에 살면서 입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과거를 통하는 길 뿐인데,
이 길을 택하지 않으면 도저히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업을 이룰 수 없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이룰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고 혹시 이룰 수 있지 않겠나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밀암(密菴) 이재(李栽)의 남격암유적(南格菴遺蹟), 만휴(萬休) 임유후(林有後)의 격암선생유전(格菴先生遺傳)]
세상에 전하기를 선생이 소시(少時)에 풍악산에 들어가 신이한 스님(또는 神人)을 만나 석실로 인도되어 도서 세 편을
전수받았다 한다.
밀암(密菴) 이재(李栽)의 남격암유적(南格庵遺蹟),
만휴(萬休) 임유후(林有後)의 격암선생유전(格菴先生遺傳)
또한 신인(神人)으로부터 진결(眞訣)을 얻어서 비술(秘術)에 능통하였다고 전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設)]
저서(著書)로는 임광기(林廣記), 동상유초(東床遺草), 완역도(玩易圖), 천자주(千字註)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병화(兵火)로 불타버렸고,
묘지명(墓誌銘) 한 편과 과거에 응시할 때 쓴 사륙부(事六賦)인 해옥첨주부(海屋添籌賦))등이 남아 있으며,
세간에 전(傳)하는 비결서(秘訣書)로는 격암유록(格菴遺錄)이 단연 으뜸인데,
마상록(馬上錄)과 홍세지(록)(紅細志(錄))는 지금까지 숨겨져 전해 오다가 근래에 밝혀진 진결(眞訣)인 것이다.
공(公)에 대한 일화(逸話)나 학문(學問)의 깊이에 대한 평가는,
밀암(密菴) 이재(李栽)의 남격암유적(南格菴遺蹟),
만휴(萬休) 임유후(林有後)의 남격암유전(南格菴遺傳)을 비롯하여,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海東異蹟),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設),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상촌집(象村集),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 등의 명사(名士)들의 저서(著書)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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