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을 우러러 받들고
땅에 엎드려 어루며(撫)
크게 네번 절하여 찬경종필(撰經終畢)을 삼가 고한후에 정좌하고 서를 쓰노라
한울은 광대하여 신(神)스럽고,높이 비여 있고
땅은 중후(重厚)하여 덕(德)스럽고 깊이 차(滿) 있음이여.천지이치가 참으로 신령(神靈)하도다
한울이 비우시니 내가 올수 있었고
땅이 차(滿) 있으니 내가 의지하여 살아갈수 있음이여.만유(萬有)가 또한 같은 이치로다
고로 천지가 비고 차는 법에 따라
말씀하시고 글을 쓰나니 한울님 말씀은 형상이 없을세 빈대로 돌아가고
글은 형상을 그려 실(實)답게 채우나니 이로써 이땅에 길이 남을사
천지개벽경이로다
이 경을 지어 세상에 내놓음에 어찌 나의 소술(所述)이라 말할수 있으리오.
칠장(七章)삼백절(三百節)분류(分類)로 천지공사를 담아 실은바
이 경에 실은 한울님 말씀을 나는 한번도 보듣지(見聞)지 못하였으니
이 글과 말씀은 오직 전한 분들의 소술(所述)이라아니할수 없느니라
이로써 글과 말로 전하신 선생제공(先生諸公)의 공덕이 본경이 길이 전하고 널리 보급되는 바에 따라
그 공덕 또한 널리 길이 전하시리라
천지공사를 보듣지(見聞)못한 내가 이 경을 찬술(撰述)함에 있어 크게 두가지 원칙을 굳게 세우니
첫째는 선존(先存)한 대순전경에 기록된 대목을 중복되지 않게 쓰자는 것이요
둘째는 전하는 공사내용의 진부확실(眞否確實)을 재삼 확인하자는 것이니라
그러나 천지공사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탈락되였음으로 부득히 보완하지니 거듭된바 있으며
공사 내용의 진부를 가리자니 이치에 부합여부를 취사하여,
위작(僞作)인 듯한 글을 많이 더러(除)버리고(棄)실지(載)않으니라
본경을 찬술하는 바 소의(所意)는 이 경을 받아 가져 보고 읽는 자나 듣는자나 내지 경의
이름만 들은 자라도 대순지도(大巡之道)에 환희(歡喜)하는 마음을 나투어 하염없는(無爲) 교화(敎化)로
그 마음에 자광명(自光明)을 발하여 후천선경으로 구출되기를 앙천복축(仰天伏祝)하노라
대순 일백십칠년 음 오월 초파일(大巡一百十七年 陰 五月 初八日)
잠어 망선대 봉소(潛於 望仙臺 鳳巢)
후학 회상 정영규 근 찬경서(後學 回祥 丁永奎 謹 撰慶序)
목차
제일장(第一章) 천강인세(天降人世)
제이장(第二章) 개벽도세(開闢度世)
제삼장(第三章) 임운조화(任運造化)
제사장(第四章) 천훈신칙(天訓神則)
제오장(第五章) 무죄무참(無罪無懺)
제육장(第六章) 선경출세(仙境出世)
제칠장(第七章) 생사일여(生死一如)
제일장 천강인세(天降人世)
一 구천(九天) 태을내원궁(太乙內院宮)에 상제(上帝)계시드니
이마두(利瑪竇)가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佛陀)와 보살(菩薩)들로 더불어
인류(人類)와 신명계(神明界)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하소연하므로
상제께서 서천서력대법국(西天西域大法國)천계탑(天啓塔)에 강림(降臨)하사
삼계(三界)를 둘러보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모악산(母岳山)금산사(金山寺)미륵금상(彌勒金像)에 임어(臨御)하여 삼십년(三十年)을 지내실세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최수운(崔水雲)에게 내려 대도(大道)를 세우게 하였드니
능히 유교(儒敎)의 테(圈)밖에 벗어나 진법(眞法)을 들쳐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표대(表對)를 지으며 대도(大道)의 참빛(眞光)을 열지 못함으로
드디어 갑자년(甲子年)에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거두시고
스스로 세상에 내려왔노라 하시니
인신하강(人身下降)하신곳은
조선국(朝鮮國)전라도(全羅道)고부군(古阜郡)우덕면(優德面)객망리(客望里)강씨문(姜氏門)에
단군기원(檀君紀元)사천이백사년(四千二百四年)이요
이조(李朝)고종팔년(高宗八年;辛未)구월(九月;戊戌)십구일(十九日;丙午)영시(零時;戊子)에
이신화인(以身化人)으로 진주강씨(晋州姜氏) 성(姓)을 갖으시고
명함(名啣)을 일자(一字)순자(淳字)로 쓰시며
아호(雅號)를 증자(甑字)산자(山字)라 쓰시니라
재세(在世) 삼십구년(三十九年)에
유시(幼時)로부터 신이(神異)하심과 성철(聖哲)하심은
고금(古今)에 초유(初有)하시고 만방(萬方)에 극존(極尊)하사
신축년(辛丑年/檀君紀元 四千二百三十四年)으로부터 기유년(己酉年)
(檀君紀元四千二百四十二年)까지 구년간(九年間)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시여
다한(盡)선천(先天)의 운수(運數)를 닫으시고 무궁(無窮)한 후천(後天)의 운도(運度)를 열어
천지(天地)를 개벽(開闢)하시니라.
二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함은
선천(先天)수만년(數萬年) 동안 쌓여 온 인신(人神)의 원한(寃恨)을 풀어 해원(解寃)시키고
그릇된 모든 류기(謬氣)를 뜯어고쳐 인신만행(人神萬行)의 상극(相剋)을 상생(相生)으로 조화(造化)하며
천지(天地) 은현만리(隱現萬里)와 인간(人間)만사(萬事)를 도리(道理)에 맞게 도수(度數)를 제정(制定)
하심으로 새 도수(度數) 돌아 닿는대로 신기개척(新機開拓)의 조화대운(造化大運)이 열리니
이로써 무위이화(無爲而化)하시고 무언이교(無言以敎)하실세
이를 일러 오만년(五萬年)선경(仙境)건설(建設)의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하시니라
三 상제께서
아홉살 되시던 해 후원(後園)별당(別堂)에 거처(居處)하시다가 문득 어디로 나가시였더니
돌아오신후 외접(外接:남의 동내에서 운영하는 書堂)에 다니시더라.
어느날 훈장(訓長)이 학동(學童)들에게 글(詩)을 지으라 하며 운자(韻字)를 부르니 놀랠경자(驚字)였더라
훈장(訓長)의 운자(韻字)가 떨어지자 곧 붓을 들어 종이에 글(詩)을 써 들고 크게 한번 읽으시니
그 글(詩)에 이르기를
遠步恐地拆(원보공지탁)이요
大呼恐天驚(대호공천경)이라 하시더라
譯
遠步恐地拆(원보공지탁):걸음을 멀리 뛰려하니 땅이 찢어질까 염려되고
大呼恐天驚(대호공천경):큰 소리로 부르짖자니 하늘이 놀랠까 염려스럽다 하심이더라
四 어느날 서당에서 공부하시다가 글을 써서 벽에다 붙이시니 그 글에 이르기를
明朝有客是何人(명조유객시하인)고
必是西來柳瑞九(필시서래유서구)라 하시였더라
이 글을 본 훈장이 누가 여기에 글을 써 붙였더냐하고 학동들에게 물으니
학동들이 대답하되 강(姜) 아무개가 썼읍니다 하는지라.
훈장이 괴이하게 여기더니 그 이튿날 아침(朝)에 과연 유서구(柳瑞九)가 이르거늘
훈장이 깜짝 놀래 비록 자기가 가르치는 학동이나 상제님 앞에서는 극히 조심했다하니라
譯
明朝有客是何人(명조유객시하인):내일 아침에 손님이 있으리니 이는 어떠한 사람인고
必是西來柳瑞九(필시서래유서구):반드시 이는 서쪽으로부터 오는 유서구(柳瑞九)리라 하심이더라
五 갑오년(甲午年) 가을 어느날 꿈을 꾸시니 하얀 백발노인이 찾아와 드릴 말씀이 있다 하며
문밖에서 고하거늘 문을여시고 맞이하여 대좌하니 노인이 인사를 청하여 가로대
나도 후천의 진인(眞人)이라 그러므로 후천의 무위기추(無爲機樞)를 알고자 찾아 왔음이라 하며
여러가지를 문의(問議)한 후 상제께 인사하고 표연(飄然)히 가니라
六 고부 본댁에서 진주강씨 종문에 전하여 내려오던 진천군(晋川君;君은 임금의 친족이나 공훈이 많은
신하에게 내리는 奉爵이라)의 교지(敎旨)에 박혀있는 어보(御寶:옥새玉璽)의 인(印)자리만 오려서
옥식기(食器)에 담고 또 엽전(葉錢)을 담은 후에 복직개(蓋)를 덮고 붉은 보자기에 싸서 어경(御頸/목)
에다 거르시고 두 어수(御手/손)로 식기(食器)를 싸쥐고 위 아래로 뒤집어 가며 흔드시니 엽전(葉錢)소리가
딸그락 딸그락하여 흡사 요령(鐃鈴)흔드는 소리와 같더라
이와같이 수년(數年)을 계속하시니 이때에 부근(附近) 십여리(十餘里) 산천(山川)이 울리여 그 근동(近洞)
사람들이 공포증이 들어 밤에는 대문을 일찍 닫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여 인적이 없었다고 전하니라
이와같이 소리를 내시며 천음(天音)을 크게 하여 가라사대
도통줄(道通乷)나온다 도통줄((道通乷)나온다 하시면서 진법주(眞法呪)를 외우시며
손바래기(客望里)로부터 도득골(道得谷)을 거쳐 샘이 넘어로 돌아 시루봉을 주야로 오르내리시더라
七 경자년(庚子年)으로부터 신축년(辛丑年)유월(六月)초생(初生)까지 고부 객망리 시루봉에 앉아 계실때
샘이넘어에서 머리를 풀어 흐트리시고 시루봉에 오르시어 때로는 크게 우시니(痛哭)그 우시는
항성(吭聲)은 산천을 울리어 산이 우는지 상제께서 우시는지 분간(分看)할수 없으며 근동(近洞)사람들은
늘 두려움증(恐懼)이 자연히 들더라 하니라
때로는 산을 내려오시어 유덕안(兪德安)의 집에서 서목태(鼠目太)한줌을 얻어 냉수로 잡수시고
올라가 앉아 계시더라.
八 하루는 근동 나뭇군들이 나무를 하려고 시루봉을 넘어 가려다 보니
시루봉 위에 큰 대호(大虎) 한마리가 앉아 있거늘
나무군들이 대경실색하여 마을로 도망쳐 내려와
사실을 동내 사람들에게 전하니 사람들이 놀래며 말하기를
그 곳에는 증산(甑山)이 앉아 있는 곳이거늘
필시 그 범으로부터 해를 당했으리라 그러니
이 괴변을 속히 증산의 부친에게 알려야 하겠다 하며 그 부친께 전하니
부친께서 이를 갈며 산으로 올라가시더라
성부(聖父)께서는 기골(氣骨)이 장대하시고
양팔이 무릎밑에까지 내려가며 입은 쭉 찢어진 범(虎)의 상으로써
씨름판에 가면 두루마기 앞자락을 허리 뒤에다 꽂고 씨름판으로 들어가 집어 던지는 장사로써
호환(虎患)이라는 말을 들으시고 분기충천(忿氣衝天)하여 홀로 산에 올라가시더라
마을 사람들은 장정을 동원하여 몽둥이를 가지고 시루봉에 올라가니
범은 없고 상제께서 홀로 앉아 계시더라 하니라
후일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내가 시루봉에서 호둔(虎遁)을 하고 바라보니 세상 사람들이
돼야지나 개 짐승들과 같이 허약해보이니
범을 그대로 풀어 두었다가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있으리라
그러므로 종자만 남기고 없이 하노라" 하시니 이는 이때의 호둔(虎遁)을 말씀하심이니라
九 오래동안 시루봉에 계시니 고부 원근에 소문이 퍼져 나가기를
증산(甑山)이 공부를 하는데 차력(借力)이 솟아나고,둔갑(遁甲)도 한다하니
이 소문이 점점 커져 관부(官府)에 까지 전해져서 관부로부터 순검(巡檢)들을 내보내니라
이때는 갑오년(甲午年)동학(東學)의 거사(擧事)가 있은후라.
관부(官府)에서 단속이 심히 엄중한 터에 그런 소문(所聞)이 나도니
순검(巡檢)들은 혈안이 되여 증산을 잡으려하나
그럴 때면 먼저 알으시고 순검이 오는 길가에서 삿갓을 쓰고 앉아 계시되
순검들은 범연(凡然)히 지나가 버리니라
또 어느때는 안개를 심히 지어서 지척(咫尺)을 분간치 못하게 해놓고 옆으로 지나시나
순검들은 모르고 지나쳐 버리였다 하더라
十 신축년(辛丑年) 유월(六月)초사흩날(初三日) 고부 시루봉에 오르사
이칠일간(二七日間)을 계실세
하루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거늘
정부인(鄭夫人)이 점심(點心)을 올려야 하겠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할 수 없어 밥함지(函支)를 이고 첨하(檐下)끝을 나오려 하였을 뿐인데
문득 시루봉 공부막(工夫幕)앞이거늘
점심 갖어 왔음을 고하고 공부막(工夫幕)에 들어서는 순간
앞에서 함지(函支)를 받아 내리기에 바라보니 상제님이시더라.
그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옷이 조금도 젖지 않았더라 하니라
이때 시루봉에 계시다가
유월(六月) 열엿샛날(十六日) 시루봉을 떠나 전주 모악산 대원사(大願寺)로 들어가실세
좌우에 동서양 각국의 제왕신(帝王神)과 이십사장(二十四將)들이 호위(護衛)하여 따르고 상공(上空)에서 외쳐 가로대 만국천자(萬國天子)강천자(姜天子)가시노라 하고 외치며 따르나 듣지 못한듯 대응치 않고 대원사로 가시었다 하시더라
十一 대원사를 출발하여 하실세 천하만국(天下萬國) 제왕신(帝王神)과 이십사장(二十四將)들을 부르사 만동묘(萬東廟)에 응신(應神)을 시키신후 가라사대 이 다음에 만동묘(萬東廟)가 쑥대밭이 될것이요 그 때에는 만국제왕신(萬國帝王神)과 이십사장(二十四將)들을 금산사(金山寺)로 옮겨 호위(護衛)하게 하리니 이 신명(神明)들을 잘 대접(待接)하라
그러나 지금은 당분간 만동묘에 응신시킬수 밖에 없느니라하시더라
譯 만동묘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 있는바 우암(尤庵)송시열의 유지에 따라 그의 제자 수암(遂菴)권상하(權尙夏)가 이조 숙종(肅宗)삼십년(三十年)에 건립하여 임진왜란때 우리나라에 원병(援兵)해준 명나라(明)의 은의(恩惠)를 기리여 명나라 신종(神宗)과 말제(末帝)의종(毅宗)의 위패(位牌)를 모시고(慕侍)고 제사하는 묘당(廟堂)인바 만동묘(萬東廟)를 향사관리(享祀管理)하는 화양서원(華陽書院)이 고종(高宗)칠년(七年)에 대원군(大院君)에 의해 철거되고 만동묘(萬東廟)만 있더니 그후 신사년(辛巳年;檀君紀元 四千二百七十四年)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던해 음력 사월 일본인들이 만동묘에 불을 지르고 묘정비(廟庭碑)를 뽑아다 멀리 파둗은 것을 해방후 찾어다 그 자리에 세웠으나 일본인들이 글자를 정으로 쪼아버렸으니 전면에 대자(大字)다섯자와 소자(小字)삼백삼십구자 우측면에 이백십오자와 좌측면에 이백구십자 또 후면에 팔십일자를 쪼아 없애 총 구백삼십자를 전혀 알아볼 수 없게 하였드라.
이로써 미루어 볼진데 오늘날에는 천하만국의 제왕신(帝王神)과 이십사장(二十四將)이 금산사 미륵불을 호위하고 있음을 믿겠더라
청주만동묘시(淸州萬東廟詩)
이거임진신종덕(已去壬辰神宗德)
화피초목뢰급만(化被草木賴及萬)
비례물동동하처(非禮勿東東何處)
동거동래기서동(東去東來氣瑞東)
지성경봉이다년(至誠敬奉已多年)
지은보은반위은(知恩報恩反爲恩)
귀신역재차산하(鬼神亦在此山下)
오국강산하불감(吾國江山何不感)
산산수수석석간(山山水水石石間)
일타부용향서개(一朶芙蓉向西開)
譯
이거임진신종덕(已去壬辰神宗德);지나간 임진란에 명나라신종황제의 크나큰 덕택은
화피초목뢰급만(化被草木賴及萬);덕화(德化)를 일만 생류(生類)와 초목에까지 입히시니
비례물동동하처(非禮勿東東何處);동방(東方)어느 곳이든지 예(禮)답지 않은 동방(東方)이라 이르지 마라(勿)
동거동래기서동(東去東來氣瑞東);동방(東方)에서 가며는 동방(東方)으로 오느니 상서(祥瑞)로운 기운(氣運)은 동(東)에 있으리라
지성경봉이다년(至誠敬奉已多年);이왕(已往)에 다년간 지성스럽게 공경으로 받들었으니
지은보은반위은(知恩報恩反爲恩);은혜를 알아서 은혜을 갚음에 도리어 은혜가 되어
귀신역재차산하(鬼神亦在此山下);귀신도 역시 이산 아래에 있으니
오국강산하불감(吾國江山何不感);내나라 이강산에 어찌 감응치 않으리
산산수수석석간(山山水水石石間);산과 산이나 물과 물이나 돌과 돌사이에
일타부용향서개(一朶芙蓉向西開);한떨기(一朶)부용화(芙蓉花)가 서쪽을 향하여 활짝 피리라
註
此山下(차산하);차산(此山)이란 이산(山)이니 모악산(母岳山)을 일명 이산(山)이라 부르니라.모악산 서편(西便)에서는 주로 모악산(母岳山)이라 부르나 모악산(母岳山)동편(東便)인 구이면(九耳面)과 전주(全州)지방(地方)에서는 이산(山)이라 혼용(混用)하니라
芙蓉(부용):芙蓉(부용)이란 연꽃의 별명이니라
十二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일후에 때가되면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장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은 용화기지(龍華基地)를 옹위하며,삼만(三萬)의 철기신장(鐵騎神將)은 원평장상(院坪將相)대기지(大基地)를 옹위하리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옛 말에 이르기를 수양산(首陽山)그늘이 강동(江東)팔십리(八十里)간다고 하는 말과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한 용화(龍華)도장(道場)은 장광(長廣)이 팔십리(八十里)니라
十三 문공신(文公信)이 말하되 상제께서는 항상 어두정상(御頭頂上/머리위)으로부터 청광(淸光)이 나와 공중(空中)으로 뻗쳐서 흡사 큰 기둥(柱)이 서(立)있는 것과 같으며 방(房)에 드시면 집의 지붕위로 청광(淸光)이 꽂여 저 허공상상(虛空上上)으로 뻗치고 비가 오거나 구름 낀날에도 운무(雲霧)가 청광(淸光)의 기운을 가리지(遮) 못하니 이는 종도(從徒)들이 늘 보는 바라고 하더라.
十四 임인년(壬寅年)어느날 김형렬에게 가라사대 이제 후천 선경을 건설하려고 천지공사를 보아 도수를 제정하고자 하나 공사의 미단(未端)이 많은 연고로 수부(首婦)가 필요하니 수부(首婦)를 택정(擇定)하여 모든 공사를 순서대로 도수(度數)를 놓아 천지운로를 결정하여 끝마쳐야 되리라하시고,이어서 가라사대 이제까지 수부를 미정한 연고로 천지공사가 중체되여 왔으니 속히 수부를 천거(薦擧)하도록 하라 명하시며
또 가라사대 수부의 책임하에 이룩될 공사가 십여성상(十餘星霜)이 남어 있느니라 하시니 형렬이 고하여 가로대 저의 여식(女息)이 미거(未巨)하오나 처분(處分)대로 용납(容納)하소서 하고 수차(數次)고(告)하였으나 그럴때마다 그리하여 될까 하실 따름이더라
解 수부(首婦)를 필요로 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
천지만물이 음양으로 생성변화하나니 불음불양(不陰不陽)이면 천지만물중에 일물(一物)도 이 우주간에 생성할 수 없을 것이니라
그러나 선천개벽(先天開闢)이후로 음양이 불균(不均)하여 만유이치(萬類理致)가 과부족(過不足)에 떨어져 오직 생명이 지은바 한도를 다하지 못하고 괴멸해 버리니 모든 사물이 분잡(紛雜)을 면치 못할뿐 기리 안정을 얻지 못하므로 상제께서 삼계(三界)를 개조(改造)하실세 첫째 음양을 골라 천지수화지정(天地水火之精)을 화순(化順)시킴으로 만리만사(萬理萬事
)가 순서에 따라 개창(開倉)하니 그에 따른 사물이 자연히 상생의 정도(正道)로 화현(化顯)되여 세상에 나타나리니 이렇게 천지를 뜯어고쳐 만유이치(萬有理致)를 다스려야 일물일사(一物一事)도 서로 방해되지 아니하여 무위이화(無爲而化)하리라.
十五 형렬이 그후로 자기 혼자 생각해 볼때 자기의 딸과는 연령의 차이도 너무 많고 더욱이 양반의 처지로서 남의 이목이 부끄러워 체면상(體面上) 그리할 수 없어서 다른 혼처가 나타나면 딸을 혼인 시키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더라.
十六 그후 김형령의 딸의 혼처가 생겨서 혼인을 시키기로 결정하고 선폐금조(先幣金條)로 돈 쉰냥(五十兩)을 받으니라
그 돈을 가솔(家率)에게 주며 잘 간수하라 하였던바 형렬의 아내는 부엌방 자초리 속에 깊이 싸두니라
十七 어느날 저문밤에 상제께서 임어(臨御)하시더니 가라사대 내가 몹시 시장(澌腸)하니 저녁상을 가져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난처해 하다가 황공히 여쭈어 가로대 집안에 양식(糧食)이 떨어져서 솥에 저녁불도 지피지 못하였나이다 하고 아뢰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허허 돈두고 굶는거야 먹으나 짐(同)배없지 하시거늘 형렬이 답답(沓沓)하여 머뭇거리다 여쭙기를 돈을 두고서야 식솔(食率)들과 굶을리 있으리까하니 가라사대 부엌방 자초리 속에 돈 쉰냥이 있지 않은가 하시니라
十八 이 말씀을 듣고 형렬이 급히 부엌방에 건너가서 가솔(家率)에게 말하며 자초리를 보니 과연 그 속에서 쉰냥의 돈이 나오거늘 그 즉시 사람을 시켜 양식을 사다 저녁 진지를 지어 올렸더니 그 진지를 잡수시며 가라사대 어허 그 밥맛 좋다는 말씀을 여러번 반복하시며 진지를 다 잡수시고 가라사대 양반이 집안 망친다 하더니 과연이로다하시니라
十九 임인년(壬寅年) 여름 하운동(夏雲洞)제비창골 김형렬의 집에 계실세
하루는 형렬에게 물어 가라사대 이 골짝의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느냐 하시니 형렬이 대답하여 가로대 전부터 부르기를 제비창골(谷)이라 하옵니다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는 그릇된 부름(呼稱)이로다.이곳은 제비창골이 아니오 제업창골(帝業創谷)이니라 하시니라
二十 임인년(壬寅年) 가을에 김형렬을 데리고 김제 초처면(草處面) 내주평에(內住坪) 사는 정남기(鄭南基)의 집을 찾아가 정남기를 불러 가라사대 내가 그대의 집에서 수련을 하고자하니 허락하겠느뇨 하시니 정남기 가로대 그렇다면 나도 수련에 참가시켜 주심이 어떠하나이까 하니 가라사대 그는 그대의 생각대로 하라 하시거늘 이리하여 남기(南基)와 같이 수련(修練)을 시작하시였더라
밤중이 되니 천지신명을 수련석에 호위시켜 엄숙하기 이를데 없더니 뜻밖에 늙은 중이 들어와 호위한 모든 신명들을 하나하나 지휘하여 정남기를 옹위하게 하더라
그후 조금 있으니 점잖은 노신명(老神明)이 들어와 중신명(神明)을 꾸짖어 가로대 그대는 천지 도수를 위반하려 드느냐 하니 중 신명(神明)이 문밖으로 쫒겨나가더라
점잖은 노신명(老神明)은 모든 신명들을 지휘하여 전과같이 호위시킬세 느닷없이 형렬이 신기(神氣)가 솟더니 돌연(突然)대담(大膽)한 어조(語調)로 남기(南基)를 호통하여 가로대 내가 신술(神術)을 통하였노라.네 어찌하여 쓸데없는 망상(妄想)으로 천지에 모역(謀逆)을 하려드느냐 하며 남기를 무수히 호령하니 남기가 핍박을 받다가 일어나 가로대 이 공부를
하면 미친광증(狂症)도 나 낫게 한다 하더니 오히려 멀정한 놈이 미쳐(狂)버렸구나하며 문밖으로 나가 버리니라.
이때에 상제 가라사대 광증(狂症)이건 헛증(虛症)이건 신보(信保)만 잘 해두면 공주자사(公州刺史)는 하련만 그도 마다하니 하시며 탄식하시더라
수련을 종결한후 형렬에게 대패침(針)을 구해 오라 명하시니 형렬이 대패침을 구해다 드리거늘 대패침을 받아 남기가 출입하는 문 위 귀틀에 아무도 모르게 박아놓고 형렬을 거느리고 구릿골(銅谷)로 돌아오시니라
註 公州刺史(공주자사):옛날에는 주(州)의 자사(刺史)가 목백(牧伯)을 겸하므로 지금의 도백(道伯)과 같으면서 주(州)를 직할(直轄)하여 다스니니라.당시는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가 공주(公州)였느니라.
二十一 정미년(丁未年)가을에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 공사를 보시고 돌아 오실세 경석을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천지공사에 수부(首婦)가 있어야 순서대로 공사를 진행하겠거늘 수부를 미정한 연고로 공사를 보는 도중에 중체되는 일이 허다히 많도다
이어서 가라사대 천지간에 독음독양(獨陰獨陽)은 만사불성(萬事不成)이니라.또 가라사대 중대한 수부의 책임공사가 산적(山積)하니라
내 일은 수부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만약 일을 하려거든 수부를 들여 세우라 하시니 이로써 차경석이 상제님을 모시고 정읍으로 돌아와 고부인(高夫人)을 천거(薦擧)하니라
二十二 어느날 공사를 행하실세 종도들을 늘려 앉히고 대학 한권과 부도책(符圖冊)한권을 마당으로부터 번갈아 깔으시며 고부인(高夫人)으로 하여금 책을 밟아서 방으로 들어와 방가운데 눕게하시고 고부인의 배위에 걸터앉아 큰 칼을 부인의 목에 대고 가라사대 천지대업(天地大業)을 이루려 함에 있어서 네가 중도에 번개(變改)하여 그릇침(誤謬)이 있겠느냐 하시며 물으시니 고부인이 대답하여 가로대 변개함이 없겠나이다하고 대답하거늘 이때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그러면 그렇지 하고 기뻐하시더니
상제께서 방가운데 누우시며 고부인으로 하여금 상제님의 배 위에 걸터 앉으라 명하시며 전과같이 묻도록하여 상제께서 변할리 있으리까 조금도 염려마시라 대답하시고 글과 부도(符圖)를 써서 불사르시며 천지에 확약(確約)하셨음을 선포하시였다 하니라
二十三 이때에 상제께서 문명(文命)을 써놓고 고부인에게 읽히시며 같이 읽으시니 이러하니라
구정만리산하우(驅情萬里山河友)
공덕천문일월처(供德千門日月妻)라
또 조금 계시다가 읽으시기를
명월천강심공조(明月千江心共照)요
장풍팔우기동구(長風八隅氣同軀)라
오군합덕(吾君合德)으로
삼계개조(三界改造)니라 하시더라
二十四 어느날 정읍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세 고부인으로 하여금 글을 읽으시게 하시니 이러하니라
천반저이지고(天反低而地高)하고
중앙비이오십(中央備而五十)이라 하시며 이어서 가라사대 육십사괘 중에서 지천태괘(地天泰卦)가 그중 크니라.앞으로는 모든 일에 있어서 여자의 권한이 크리니 이후로는 여자의 명(命)을 듣지 않고 남자의 마음대로 경영치 못하리라 하시니라
譯
천반저이지고(天反低而地高):하늘이 도리어 낮아지니 땅은 절로 높아지고
중앙비이오십(中央備而五十):가운데서 다섯오(五)와 열십(十)으로 이루어지니라.
二十五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내가 천하에 가망량(假魍魎)을 배치해 놓았으되
일심으로 닦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진망량(眞魍魎)을 응하도록 하리라 하시니라.
二十六 하루는 김형렬에게 명하사 육십사괘에 점을 치라하여 해인공사(海印公事)를 보실세 잘 믿는 자에게 해인(海印)을 주리라 하시며 가라사대 세상 사람들은 합천(陜川)해인사(海印寺)에 해인(海印)이 있다고 말하나 실지의 물건은 없고 해인(海印)의 기운만 있나니 내가 그 기운을 갖어 왔노라.
二十七 임피(臨陂) 강장한(康壯翰)의 집을 종종 왕래하시더니 어느날 임어하사 계실세 밤중에 출행하시려 하거늘 장한이 놀래며 만류하여 가로돼
어찌하여 밤중에 출행을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가라사대 내가 볼일이 있노라 곧 돌아오리니 그리 알라 하시며 가시더라
장한이 자지않고 기다리더니 자정쯤 되여 오시거늘 장한이 물어 가로대 야심한 밤중에 어데를 다녀 오시나이까 하고 여쭈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응 오성산(五聖山)에 다녀 오느니라.장한이 늘래며 다시 묻기를 밤중에 오성산은 무슨일로 다녀 오시나이까 가라사대 큰 말뚝을 박고 오는 길이니라.하시였으며 그 후에도 이와같은 공사를 세 차례나 보시였다 하니라
註 五聖山(오성산):전북 옥구군 성산면 성덕리 소재 하니라
고부인께서 단군기원 사천이백육십육년(癸酉)동지달(冬至月)초여샛날(初六日)오성산(五聖山)으로 가시어 계시다가 단군기원 사천이백육십팔년
(乙亥)시월(十月)초엿샛날(初六日)새벽 두시에 선화(仙化)하시더라
二十八 어느날 공사를 보시며 김병선(金炳善)에게 글 한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파진구기이삼차(破盡舊器二三次)하고
일재하기정신기(一在下器定神器)니라
譯
파진구기이삼차(破盡舊器二三次):옛 그릇은 두세차례 다 부서지고
일재하기정신기(一在下器定新器):아래 그릇을 새그릇으로 정하여 하나를 두니라
二十九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참으로 어렵구나.내 금산사를 도득(圖得)하기가 천하를 얻기보다 더 어렵다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시지(時至)하며는 금산사 칠칸(七間)법당(法堂)자리는 사무실(事務室)자리로나 쓰면 마땅할 것이니라 하시더라
註 이러한 공사가 전하여 올 따름이더니 뜻밖에 병인년(丙寅年:단군기원 사천삼백십구년)음력 동지달 초닷샛날 자시(子時;零時三十分境)에 칠칸법당(七間法堂:大寂光殿 寶物 第三百七十六號)에 불이나 기둥하나 남지않고 다 타버리니라
三十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금산사 육장(六丈)미륵은 금의불정화위전녀(金依佛頂化爲全女)니라하시니 세인들은 이 말씀을 풀어 말하되 온전전자(全字)아래에 계집녀자를 하면 성강자(姜字)가 되니 즉 미륵이 강씨가 되었다는 말씀이라이르더라
三十一 기유년(己酉年) 어느날 구릿골 약방에서 종도들을 늘어세우고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너희들이 세상에 형체있듯 형체(形體)있는 미륵으로만 대하지 말고 형체(形體)없이(無)무형계(無形界)의 나를 또한 대(對)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하시더라
三十二 하루는 구릿골 약방에 계실세 손을 드시어 그 앞의 금난바위(金生岩)를 가리키시며 가라사대 저기 저곳으로부터 금산(金山)에 이르기 까지 문안(門內)이 되고 저곳으로부터 원평(院坪)방면으로는 문밖(門外)이 되니라하시더라
三十三 어느날 종도들에게 용화동(龍華洞)뒤를 가리키시며 가라사대 이곳이 불무발판이니 불무는 두 발판을 부지런히 밟아야 바람이 나는것이라
그러니 이곳을 자주 밟어야 바람이 나게 되리라 하시드라
三十四 하루는 안필성을 데리고 용화동(龍華洞)뒤 계룡봉(鷄龍峰)아래를
가시어 내려다보시며 손짓하여 가라사대 참으로 좋다 늙은중이 팔대장삼을 벌린것 같지 아니하냐
이것이 용(龍)이니 용(龍)은 뿔(角)이 나야 되는 법이니라 하시었다 전하니라
三十五 어느날 종도 한 사람이 여쭈어 가로대 병든 사람을 낫게하여 주시고 죽은 사람도 살려 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도 마련하여 주시어 잘 되게하여 주시고 자식없는 사람에게 자식을 태어 주시면서 어찌하여 선생님 스스로는 슬하에 아드님을 두시려하지 않으시고 후계를 적막하게 하시나이까 하고 아뢰여 궁금함을 고하니라
이때 상제께서 마침 그 사람을 등지고 돌아앉아서 무엇을 하고 계시던참이드니 고개를 돌려 흘겨보시며 가라사대 "도둑놈 만들려고" 하시더라 전하니라
三十六 어느날 공사를 보신후 경석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내 앞에 대리석(大理石)을 써서 뢰옥(牢獄;굳은 감옥)을 건축(建築)하지 말지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들 스스로 생각하기를 너희는 이 세상에 잘 한다하리라
그러나 모두가 세상에 배반(背反)되나니 이는 너희속에 싸둔 생명(生命)의 껍질이 말러(枯)버린 탓이로다.
또한 헛된 예법으로 세상에 폐해가 되나니 그러므로 헛된 예법을 써서 나를 대하지 말며 헛된 마음을 써서 나를 대하지도 말라하시더라
三十七 하루는 종도들에게 옛 글을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打起黃鶯兒(타기황앵아)하여
莫敎枝上啼(막교지상제)하라
啼時驚妾夢(제시경첩몽)하니
不得到遼西(부득도요서)니라
譯
打起黃鶯兒(타기황앵아):노란 꾀꼬리 새끼를 회초리로 쳐서 일으키여
莫敎枝上啼(막교지상제):나무가지에 올려놓고 울음을 가르치려 하지마라
啼時驚妾夢(제시경첩몽):울때는 첩의 꿈속에서 해마다 놀래 깨리니
不得到遼西(부득도요서):저 멀리 아득한 서역 고향에 도달치 못하리라
*요서(遼西)란 요동(遼東)에 전쟁왔던 사람이 요하(遼河)건너 요서(遼西)를 지칭함이니 즉 고향집을 그리워하는 대칭(代稱)으로 사용(使用)하니라
그러나 이 글에서는 요서(遼西)가 일년의 가을을 의미함이니 봄에 금방 깨어나온 꾀꼬리 새끼를 가지고 아름다운 울음소리를듣고자 하여 버드나무 위에 올려놓고 회초리로 치면서 울음을 가르치려 하지말라.만약 꾀꼬리가 울음을 울때에는 어느듯 첩실의 단꿈에 젖어 있으리라 그러나 단꿈에서 깨어났을때는 이미 양유청청(楊柳靑靑) 여름이 어느듯 지났으리라
이때는 꾀꼬리가 이미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잊어버리고(꾀꼬리는 여름이 지나면 울지를 못함)마렀으리라.그러니 그 소리를 가지고 가을까지 못 간다는 말씀이니라(이글은 가을에 울지못하는 꾀꼬리와 같이 후천에 무용한 증산교인이 되지말라 경계하신 글이니라).
상제께서 공사를 보三十八 시며 종도들에게 도수를 붙이고 임무를 정하시나,종도들은 깊으신 성지(聖旨)를 헤아리지 못하고 서로간에 별명(別名)같이 부르기로 하였으니 열거하면 다음과 같으니라
------------------------------------------------------------------
소임 및 도수 성 명 본 명 호(號) 본 거(本 居)
------------------------------------------------------------------
지인지감(知人知感) 김 형렬 - 태운(太雲) 하운동제업창골
구복대장(九復大將)
부원군(府院君)
------------------------------------------------------------------
출장입상(出將入相) 김 광찬 - - 남원(南原)
------------------------------------------------------------------
기연미연(其然未然)
미라풍람(美羅風覽) 안 내성 내선(乃善) 경만(敬萬) 경남함안군
------------------------------------------------------------------
만사불성(萬事不成) 김 송환 청도원(淸道院)
------------------------------------------------------------------
만국대장(萬國大將) 박 공우 인암(仁菴) 고창군 흥덕
------------------------------------------------------------------
육조병판자청천자
六曹兵判自請天子 차 경석 윤원(允元) 월곡(月谷)정읍군입암면대흥
초패왕도수
(楚覇王度數)
------------------------------------------------------------------
동헌집장(東軒執杖)
대학교도수 김 경학 시은(市隱) 태인(泰仁)
(大學校度數)
------------------------------------------------------------------
용두사미(龍頭蛇尾) 백 남신 전주
------------------------------------------------------------------
평생불변(불생불변) 김 갑칠 판식(判植) 구릿골(銅谷)
------------------------------------------------------------------
독조사임(獨釣士任)
문왕도수(文王度數)
이윤도수(伊尹度數) 문 공신 남용(南龍) 고부(古阜)
저울끈도수
천지대팔문도수
(天地大八門度數)
-------------------------------------------------------------------
수명소임(壽命所任)
일월대어명도수
(日月大御命度數) 신 경수 부안(扶安)
저울갈괭이도수
(秤鉤度數)
-------------------------------------------------------------------
저울추도수(秤錘度數) 황 응종 고부와룡
-------------------------------------------------------------------
년중통제사(年中統制使)차 공숙 정읍군입암대흥리
-------------------------------------------------------------------
공신변성(功臣變姓) 배 도삼 李道三 정읍
-------------------------------------------------------------------
복록소임(福祿所任) 신 경원 태인
제이장 개벽도세(開闢度世)
一 계묘년(癸卯年)에 공사를 보시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선천은 육합(六合)이 팔격(八隔)하여 신명계(神明界)도 역시 폐색(閉塞)하였으니 이에 따라 천하만국의 신명(神明)들도 자방(自邦)만 굳게 지켜 각기 자기의
판국(版局)대로 용사(用事)하니 이는 폐색(閉塞)의 원본(原本)이라
이제 앞으로 이 시국(時局)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세계만방을 개뱡하여 각
국의 신명(神明)들이 상호간에 교대(交替)하여 넘나들며 출입함으로 인간계에 세계통일 시국을 정함으로써 사상과 물화(物貨)를 교용(交用)하여 서로 유리(有利)하도록 쓰는 법을 내려는 것이니라 하시더라
二 계묘년(癸卯年)봄에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재주기운(財主氣運)을 서양에다 두나니 후일에 서양으로부터 많은 재화(財貨)를 보급받을것이라 하시니라
註 이 공사는 백남신의 십만냥으로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건너보내 역사를 시키는 공사에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더니 과연 해방후 수십년 동안 많은 물화(物貨)를 서양으로부터 공급 받았으며 현금(現今)에도 물화(物貨)의 생산원료가 서양으로부터 공급되니라
三 구릿골을 출발하시며 김형렬에게 가라사대 내가 공사차 다녀오리니 너는 이곳을 떠나지 말라
조선이 동과혈(冬瓜穴)인데 수기(水氣)가 뿌리로부터 말러 들어가니 죽을 지경에 이르렀느니라하시며 인하여 가라사대 백두산이 조선의 근본인즉 그 곳으로부터 수기(水氣)를 집주(集注)시켰으니 다시금 회생되리라하시였다 하니라
四 하루는 천지공사를 행하실세 가라사대 기우는 지운(地運)을 바루기 위해서는 먼저 높은 곳으로부터 지운(地運)을 뽑아당겨서(拔出) 써야 되리라하시며,장백산맥(長白山脈)에 결실(結實)한 백두산의 기운을 뽑아 당겨서 남해(南海)제주도(濟州道)한라산(漢拏山)으로 옮겨 쓰니라 하시고
덕유산(德裕山)에 뭉쳐있는 기운을 뽑아서 남도(南道)무등산(無等山)으로 옮겨 쓰니라 하시고 또 강원도 금강산(金剛山)일만이천봉(一萬二千峯)기운을 뽑아 당겨서 영암(靈岩)월출산(月出山)으로 옮겨 쓰리라 하시면서
조선 명산기운 천발공사(遷拔公事)를 보시니 한사람이 물어 가로대 그와같이 하시는 사유가 무엇이오니까 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뭉쳐있는 기운을 뽑아서 골라(調)잡아야 때를 마추어 쓰리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백두산 상봉(上峯)에는 천지(天池)라는 못이 있고 한라산 상봉(上峯)에도 백록담(白鹿潭)이라는 못이 있느니라
강원도 금강산도 일만이천봉이요 전라도 월출산에도 일만이천봉의 기운이 있으니 이는 여일지의(如一之義)로다 하시며 이어서 가라사대 전주 모악산은 순창 회문산과 서로간에 마주서서 부모산(父母山)이 되었으니 지운을 통일하려면 부모산으로부터 비롯할지라 하시면서 계속하시여 지운통일공사(地運統一公事)를 보시며 산하대운(山河大運)진귀차도(盡歸此道)라 하시고,이 강산의 산하대운을 돌려 발음(發蔭)하게 하노라 하시며 연일(連日)공사를 계속하시였다 하노라.
五 어느날 종도들을 불러 가라사대 세상 사람들이 이르기를 정읍 산외면(山外面)평사리(坪沙里)에 평사낙안(坪沙落雁)이란 혈(穴)이 있다하며 그 곳에서 가히 만인(萬人)의 재난을 피화(避禍)할 곳이라 이르니 오늘은 내가 그 기운을 뽑아 쓰리라 하시며 종도들을 거느리고, 원평 김명보(金明甫)의 술집(酒家)에 이르사 개정국과 술을 많이 가져오라 하여 종도들과 더부러 잡수시고, 옹동(甕東)과 원평(院坪)사이에 있는 소투원재(솥은재)에 이르시어 동향(東)을 하시고 서시드니 한편 발은 태인(泰仁)쪽으로 밟으시고 또 한편 발은 원평(院坪)쪽을 밟으시고 머리를 좌우로 돌려 가며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가며 구르시면서 무어라 말씀하시고 개벽주(開闢呪)를 읽으시니 산천대지(山川大地)가 진동하면서 발을 구르시는 대로 산천이 기웃둥 기웃둥 하더라.
이와같이 한참을 하시더니 가라사대 산외(山外)의 평사낙안(坪沙落雁)기운을 원평으로 옮기노라 이르시고 또 가라사대 이제 운암(雲岩)은 물방죽을 만드리라 하시더라
註 단군기원 사천이백칠십구년(丙戌)에 이르러 운암(雲岩)에다 담수(淡水)하니 과연 운암이 물방죽이 되었더라
개벽주(開闢呪)
천상옥경천존신장(天上玉京天尊神將)
천상옥경태을신장(天上玉京太乙神將)
상하변국뇌성벽력장군(上下變局雷聲霹靂將軍)
백마원수대장군(白馬元帥大將軍)
뢰성벽악장군(雷聲霹惡將軍)
악귀잡귀금란장군(惡鬼雜鬼禁亂將軍)
삼수삼계도원수(三首三界都元帥)
지신벽력대장군(地神霹力大將軍)
천지조화풍운신장(天地造化風雲神將)
태극두파팔문신장(太極斗破八門神將)
육정육갑둔갑신장(六丁六甲遁甲神將)
삼태칠성제대신장(三台七星諸大神將)
이십팔수제위신장(二十八宿諸位神將)
감아미성(感我微誠) 조아대력(助我大力)역발산(力拔山)
오봉(吾奉)구천상세군(九天上世君)즉속즉속(則速則速)엄엄급급(唵唵急急)여율령(如律令)
六 하루는 공사를 보실세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세상에서 이르기를 충청도 계룡산이 정씨(鄭氏)의 도읍지라하며 그 때에 배씨(裵氏)가 개국공신(開國功臣)이된다고 하니,세상에서 이르는 대로 될진데 어찌 부당(不當)하지 아니하랴.이조(李朝)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이 배씨(裵氏)거늘 정씨(鄭氏)
세상에서 또 개국공신이 된다함은 배(裵)로써 배(倍)하려 하는바라
세상을 불균(不均)하게 함이니 이를 바루워야(正)되리라 하시며,이도삼(李道三)을 불러 앞에 앉히시더니 도삼(道三)에게 가라사대 너는 배도삼(裵道三)이라 부르면 대답하겠느냐 하시며 응답을 받으신후 이도삼에게 배도삼이 하시니 도삼(道三)이 예 하고 대답하거늘 가라사대 이로써 충청도 계룡산 정씨의 운(運)을 걷어 버리니라 하시더라
註 이조의 개국공신이 배씨라 하심은 배극렴(裵克廉)을 이르심이니 극렴(克廉)의 본관은 경산(慶山)이요 호(號)는 필암(筆菴)이며 고려조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경상도 도순무사(都巡撫使)로 있을때, 진주성(晋州城)에 쳐들어온 왜구(倭寇)를 무찔러 명성을 얻은후 이성계밑에 있다가 위화도(威花島)에서 이성계와 함께 군사를 돌이키였으며, 그후 조준(趙浚)등과 모의하여 왕을 몰아내고 이성계를 왕으로 앉혀서 조선개국 일등공신이 되니라.이 공사가 있은 후부터 종도들은 이도삼(李道三)을 배도삼(裵道三)이라 부르드라 전하니라
七 하루는 정읍 대흥리 거사막(巨沙幕)술집에서 술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느닷없이 도령(道齡)하나가 나타나 술상앞에 고개를 숙이고 앉았더라
상제께서 술을 다 잡수시고 차경석의 집으로 가시니 그 도령도 또한 따라와,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앉아만 있거늘
저녁때가 되여 경석에게 이르사 저녁밥을 주신후에 상제께서 그 도령에게 가라사대 마음을 잘 가지라 하시며 훈계하시메 도령은 공손히 대답하고 있더니,그날밤 상제님 침소(寢所)에서 재워 보내시니라
다음날 종도들이 그 도령이 누구이며 무슨 연유로 왔는지를 물어보니 가라사대,정도령(鄭道齡)이 찾아 왔느니라 하시며
이어서 공사를 행하실세 충청도 계룡산 정씨(鄭氏)등극(登極)이나 합천(陜川)가야산(伽倻山) 조씨(趙氏)등극(登極)이나 전라도 칠산(七山)에 범씨(范氏)등극설화(登極說話)를 모두 허사(虛事)로 돌리노라 하시니라.
八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팔을 앞으로 내미시더니 손으로 물건을 움켜쥐는것 같이 하시면서 가라사대 내가 뒤에 앉아 천하를 가만히 훔쳐내어도 세상에서는 아무도 모르노라 하시었다 하니라
九 어느날 구릿골 정자나무 그늘에 누워 계시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시더니 두 팔을 들어 손으로 허공을 잡아 당기시면서 천음(天音)을 크게 소리쳐 가라사대 너희들도 빨리 잡아당겨라.동양이 지금 서양으로 둥둥 떠밀려 가노라 하시며 어서 당기라고 다급하게 재촉하시니 종도들도 일어나 그와같은 모습으로 허공을 쥐고 당기더라
한참을 계속 당기신 후에 두 손을 내려놓으시며 한숨쉬여 가라사대 동양이 서양으로 마구 떠밀려 가는것을 이제 막 당겨 놓았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로다 하시더라 전하니라
十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천지대사는 신인(神人)으로서 이루나니 大道之極神人一致(대도지극신인일치)니라 하시며 글을 써서 불(燒)사르시니라
譯
大道之極 : 大道의 至極한 자리는
神人一致 : 신명(神明)과 사람이 하나에 이르는 것이니라
十一 계묘년(癸卯年)동짓날(갑자월)에 전주에서 공사를 행하실제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삼국시절에 제갈량의 재주가 전무후무하다 이르니 이는 남병산(南屛山)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공(功)을 드려,동남풍(東南風)을 빌어서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성공시킴이 아니더냐
하시니 종도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러하나이다 하고 아뢰드라
가라사대 그렇다면 공들이는 동안에 큰 일이 그르쳐 버린다면 어찌하리오
내 이제 즉시 동남풍을 불리리니 사십구일을 한 도수로 정하여 동남풍으로 밀려드는 서양의 기세를 물리치고 동양을 붙드러야 동양이 부지(扶支)
할 수 있을 것이라 하시며 종도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그와같이 할진데 너
희들은 그 재주를 어떻다고 하겠느뇨하시메
종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대 참으로 그와 같으실진데 이는 제갈량에 비할 바가 아니오 옛 사람들이 미치지 못할바라 생각하나이다 하니라
종도 몇 명을 거느리고 전주 남고산(南固山)에 가시어 만경대(萬鏡臺)에
자리를 정하시고 동남풍을 불리는 법술(法術)을 베푸시니 긴 간짓대에 종이지간(紙幹)을 달아서 세우시고 글을 써서 읽으신후에 종도들은 그 곳에
남아서 풍운(風雲)을 기다리라 하시고 그 뒤에 있는 남고사(南固寺)로 들어가시드라
금시(今時)에 난데 없이 동남풍이 크게 일어나니 종도들이 남고사(南固寺)로 달려가 동남풍이 일어났음을 고(告)한즉 가라사대 차길피흉(此吉彼凶)이로다 하신후에 종도들과 같이 내려 오시니라
이로써 동남풍을 사십구일간 불리시며 계속하여 대공사를 보실세 어느날은 동남풍이 그치거늘 가라사대 일인지원이폐색천지지기(一人之怨而閉塞天地之氣)로다.비록 미물곤충(微物昆蟲)이라도 불평(不平)이 있으면 오도불성(吾道不成)이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十二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땅속 깊숙히 있는 지중(地中)의 보배(寶貝)가 본래 너나 나의 소유가 아닐진데 이 어째서 쟁탈(爭奪)하랴 하시며 꾸짖더라 전하니라
十三 어느날은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변산(邊山)과 같은 큰 불덩이(火塊)
가 천지에 둥글면 세계가 초토(焦土)가 되리니
그럴때에 너희들이 어찌해야 살꼬 하시며 수식남방매화가(誰識南方埋火家)라고 문명(文命)을 써서(書) 공사를 보신후 그 뒤에 태인 백암리(白岩里)매화공사(埋火公事)를 행하셨다 하니라
十四 병오년(丙午年)어느날 공사를 보실세 종도들을 모아놓고 선포하시기를,충청도 대덕(大德)에 복해혈(伏蟹穴)이 있다하니 그 기운을 걷어서 공사에 쓰리라 하시며 가라사대 게(蟹)들이 구멍 밖에 벗어나서 각기 분산이 되어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 다니다가는 사람에게 짓밟히고 잡히여 죽기 쉬우며 게(蟹)가 나온 빈구멍을 막으면 게(蟹)는 하릴없이 돌아들지 못하고 길(途)이 막혀 오도가도 못할것이고 게(蟹)의 집은 헛구멍이 되느니라 하시며 헛집도수(虛度數)공사를 계속하여 보시드라 하니라
註 제2차 세계대전때 일본이 저의 나라를 텅 비우고 병력을 분산하여 만주를 비롯한 중국 일대와 필리핀 인도네시아등 동아(東亞)일대에 풀어놓고 하와이를 습격하니 남양(南洋)제도(諸島)에 병력을 흩어놓은 꼴이 흡사 게들이 구멍을 이탈하여 뻘뻘그리고 다니는 격(格)일러니 미국이 일본본토에 원자탄이라 부르는 핵폭탄을 투하하니 꼭 게구멍을 틀어막은 격이되고 마니라.
十五 하루는 구릿골 약방에서 오운회(五運回)공사(公事)를 보실세 김형렬
에게 명하여 너에 딸을 데려오라 하시니 형렬이 딸을 데려오거늘 형렬의 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방 한가운데 청수를 모시라
그리고 방의 네 구석에 돌아가며 한번씩 앉았다 일어나 방가운데 모신 청수그릇을 한 바퀴 돌아서 나가라 하시니 형렬의 딸이 그와같이 하고 나간
후 종이에 문명(文命)을 쓰시니(書)이러하니라
天下陰陽神全州運回(천하음양신전주운회)
天下通情神井邑運回(천하통정신정읍운회)
天下是非神淳昌運回(천하시비신순창운회)
天下上下神泰仁運回(천하상하신태인운회)
天下自己神古阜運回(천하자기신고부운회)라 써서 불사르시며 계속하여
천하운(天下運) 운회도수(運回度數)를 정(定)하시였다 하니라
解 상제께서 구년간 천지공사를 보시니 만리만사에 상제의 필단과 언단이 미치지 않은바 없으나 그 많은 공사를 간추려서 묶어보면 오직 오운회공사(五運回公事)의 범주 속에 드나니라
그렇다면 오운회(五運回)란 도대체 무엇인가.오운회(五運回)란 상제께서 후천을 지으실세 천하의 새 운도(運度)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돌리심이니 이 다섯 가지 운도(運度)가 마치 후천의 기둥과 같아서 이 기둥이 하나씩 섬(立)에 따라 천하는 새로운 국면(局面)으로 접어들어 새 세상이 벌어지느니라
그러니 후천의 기둥과 대들보의 재목을 다섯 가지로 정하신 그 까닭은 이 천지 내에 만물이 벌어져 있으나 오직 다섯 가지 재료속에 드나니 그를 이르는바 수화금목토(水火金木土) 오행이니라.이러한고로 오행의 이치에 따라 오운(五運)을 배정(配定)하여 돌리시니 이로써 후천의 기둥인 오운(五運)을 오행(五行)에 대(對)하여 설명하고자 하는바이니라
天下陰陽神全州運回(천하음양신전주운회)는 수도수(水度數)요
天下通情神井邑運回(천하통정신정읍운회)는 화도수(火度數)요
天下是非神淳昌運回(천하시비신순창운회)는 금도수(金度數)요
天下上下神泰仁運回(천하상하신태인운회)는 목도수(木度數)요
天下自己神古阜運回(천하자기신고부운회)는 토도수(土度數)라
十六 하루는 청국공사(淸國公事)를 보시기 위하여 청도원(淸道院)으로 가시다가 청도원(淸道院)고개에 있는 성황당(城隍堂)마루에 누우시어 가라사대 좀 지체하여 가자 하시며 감깐 졸으시는듯 하더니 일어나시어 가라사대 아라사(俄羅斯)군사(軍士)가 래군사니라 하시고 김송환(金松煥)의 집으로 가시어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유찬명(柳贊明)의 집으로 가시어 그날밤에 대신문(大神門)을 열고 공사를 보시며 무수한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註 이 공사에서 아라사(俄羅斯)군사가 래군사니라 하고 말씀하심으로 6.26사변후에 부산에 있는 태극도(太極道)가 군(軍)특무기관(特務機關)으로부터 이 구절(句節)을 가지고 조사(調査)를 받게되니 대답(對答)하기를 우리는 모르는 일이오.대순전경(大巡典經)을 쓴 이상호(李祥昊)를 찾아가라고 미루니라
관리들은 전라도까지 조사(調査)를 나와 이 구절을 가지고 심문(審問)하니 이때에 명확한 대답을 못하고 오직 수십년 전에 성인(聖人)의 공사(公事)가 그러했으며,우리 나라의 남북분단(南北分斷)이전(以前)일정시대(日政時代)에 간행한 책이라는 사유(事由)와 수집원고(蒐集原稿)를 보이며 이 책이 개인의 사상작(思想作)이 아니라고 밝힘으로써 무사(無事)히 되였다 하니라
그러나 이 말씀은 내군사(軍士)가 아니요 래군사(來軍士)임을 확실하게 해명했으면 좋았을터인데 그렇지 못했다 하니라
제2차세계대전 말기에 소련군이 만주(滿洲/淸나라 本據)를 무풍지대같이 밀고 내려(來)왔으니 이로써 청나라 공사(淸國公事)가 확험(確驗)하니라
이와같은 관헌(官憲)의 조사사건(調査事件)이 있은 후로 대순전경에 이 대목(對目)을 수정하여 현금(現今)의 대순전경에는 아라사 군사에게 맡낄수 밖에 없노라로 수정기술(修正記述)하였기에 원전(原典)을 밝히고자 이 절(節)을 쓰노라.
十七 병오년(丙午年)칠월에 종도들을 거느리고 익산군 북일면 배산(舟山)아래에 있는 만중리(萬中里)정춘심(鄭春心)의 집에서 산하대운을 돌려 남조선(南朝鮮)배 도수(度數)를 보실세 종도 여덟사람을 선발하여 한 곳에 두 사람씩 다음과 같이 보내시니라
동방의 솜리(裡里/이리)에 두사람을 보내시고 서방의 만경입석(萬頃立石)에 두사람을 보내시고 남방의 김제(金堤)에다 두사람을 보낸다 하시고
북방의 함열(咸悅)함라(咸羅)에 두사람을 보낸다 하시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두 사람씩 보내시며 가라사대 너희들은 이 길로 지정한 곳에 도착하여 길 가는 노상행인(路上行人)에게 술을 사서 대접하라 명하여 출발시키시니라.
그들이 지정한 장소에 당도했을 시간을 재어 물으시기를 지금(只今)쯤이면 각기 사방에 당도(當到)했겠느냐 하시고 물으시거늘 종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대 당도했을시각이로소이다 하고 고하니
이로부터 공사를 시작하실세 이레동안을 방에다 불을 때지 않으시다가 정춘심(鄭春心)을 시켜 청솔(靑松)가지(枝葉)한 짐을 베어다가 부엌에다 불을 때게 하시면서 중옷(僧衣)을 불살러 공사를 보시니 굴뚝의 연기가 흡사 큰 화물선 연기와 같이 나더라
이때에 뇌성이 뱃고동 소리와 같이 크게 일어나고 연기가 석탄냄새 같으면서 사람들이 혼도(昏倒)했다 하니라.
十八 하루는 백남신(白南信)과 더부러 전주 남문루각(南門樓閣)에 오르시더니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조금 기다리시다가
또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조금 기다리시다가
또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풍채가 잘 생긴 젊은 호걸남아(豪傑男兒
)가 상제님앞에 대령하여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두손을 잡고서서 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애걸하며 서있더라
이때에 상제께서 호령하여 가라사대 한번 부르면 올일이지 어찌하여 세번만에 이르니 무슨 곡절이뇨 하시며 숯검정을 드시어 그 사람의 양미간에 먹점(墨點)을 찍으시며 가라(去) 하시니,그 사람이 말없이 물러가더라
이 공사후 한식경(一食頃)이 지난다음 김갑칠(金甲七)이 상제님계시는 곳에 당도하여 가로대 완산(完山)밑 서천교(西川橋)다리를 지나는데 잘 생긴 젊은 호걸남자(豪傑男子)가 죽어 있더라하니 그 말을 들으시고 가라사대 그는 북학주(北學主)니라
앞으로 무고한(無辜)생민(生民)을 무수(無數)히 죽이겠기에 천도(天道)에서 벌을 줌이로다 하시더라 하니라.
十九 정읍대흥리에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차(車)는 고동을 틀어야 가는 것이니라.이곳은 양 병방(兩 丙方)이 막혀있으니 터야만 일이 되리라 하시면서 종도들을 거느리고 군령교(軍領橋)위에 가시더니 산에다 지팡이 끝으로 구멍을 뚫으시며 가라사대 장차 두고보라 삼국대전이 터지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二十 상제님께서 박공우를 거느리고 전주를 가실세 세내(細川)에 당도하시니,점심때가 가까워지니라.
공우 스스로 헤아리건데 전주부중에(全州府中)에 까지 가게되면 점심시각이 너무 늦으니 점심시각이 조금 이르더라도 아는 친구의 집이 마침 여기에 있으니 그리로 모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상제님을 모시고 그 친구의 집으로 들어가 친구를 찾으니라
그런데 친구는 전주 고송암(高松庵)을 좇아 친근히 사교하는 사람이든바 그날은 출타하고 집에 없으므로 그 부인이 손님을 맞거늘 공우 들어가 점심을 부탁하고 상제님을 사랑방으로 모시어 쉬시더라.한참 후에 점심상이 들어왔거늘 상을 대하여보니 식은 꽁보리밥에 냉수를 떠놓았더라.공우 잡수시기를 권할세 이때에 저붐을 드시더니 별안간 들었던 저붐으로 밥상을 콱 내려 찍으시며 천음(天音)을 크게하여 가라사대 서양 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氣味)가 있음을 이상하게 여겼더니 뒷 골방에서 딴전보는 놈이 있었음을 몰랐도다 하시고 공우에게 명하시기를 고송암
(高松庵)의 집에 가서 문상(問喪)하고 오너라 하시며 이어서 칠성경(七星經)에 문곡(文曲)의 위차(位次)를 바꾼다 하시더라
이때에 세상에는 붉은 안개가 삼일 동안을 끼었더니 이로써 붉은 안개를 걷으시며 가라사대 고사(古事)에 이르기를 치우(蚩尤)가 작란(作亂)하여 큰 안개를 지으므로 황제(皇帝)가 지남거(指南車)로써 정하였다하나니 작난(作亂)하는자도 조화요 정란(靖亂)하는자도 조화니라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전명숙(全明淑)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亂)을 동(動)하게 하였나니라 하시니라
이때에 공우는 전주부중(全州府中) 고송암의 집을 찾아가보니 지붕에 흰옷이 올라있고 곡성이 낭자하거늘 들어가 문상하니 상가에서는 방금 고송암이 죽어서 부고할 겨를이 없었는데 낯선 문상객(問喪客)이 이르렀음을 이상히 여겼을 뿐이라 하니라
註1)
신축년(辛丑年) 칠월 초닷샛날 상제께서 처음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니 천상(天上)에서 어찌나 많은 신명(神明)들이 내려오던지 넘치는 신기(神氣)로 인하여 이 땅에서 공부(工夫)하던 사람중에 열네명이 일시에 도통하였다 하니라.고송암(高松庵)도 그때에 도통(道通)한 사람중의 하나인데 천하사(天下事)를 하고자 골방에 들어앉아 서양기운(西洋氣運)을 끌여들여 서세(西勢)에 의지해서 세상을 개발하려 하고 서세(西勢)를 끌어들임으로 붉은 안개가 삼일 동안 세상을 덮었더니 상제님께 들켜서 벌(罰)을 면(免)치 못했다 하니라
註2)
삼성기에 가로대 한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涿)의 북쪽에 대효(大撓)가 있었고
동쪽에 창힐(倉頡)이 있었으며
서쪽에 황제헌원(皇帝軒轅)이 있었더니라.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니라
처음 황제헌원은 치우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大撓)에게 의존하고자 했으나 이룰 수 없고 또 창힐(倉頡)에게 의존하고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아니되니 이는 두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라
대효(大撓)는 일찌기 간지(干支/六甲)의 술(術)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符圖)의 글을 배웠으니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 섬기지 않은자가 없음이 이때문이더라
(삼성기원문:時天下鼎峙,涿之北有大撓,東有倉頡,西有軒轅,自相以兵,欲專其勝而未也。初,軒轅稍後起於蚩尤,每戰不利,欲依大撓而未得,又依倉頡而不得。二國,皆蚩尤之徒也。大撓嘗學干支之術,倉頡受符圖之文,當時諸侯罔不臣事者,亦以此也。)
태백일사 신시본기 제삼
時有公孫軒轅者 土着之魁. 始聞蚩尤天王入城空桑大布新政 而敢有自代位天子之志 乃大興兵馬來與欲戰 天王先遣降將少昊 圍迫涿鹿而滅之. 軒轅猶不自屈 敢出百戰,天王動令九軍分出四道 自將步騎三千直與軒轅 連戰于涿鹿有熊之野 縱兵四蹙斬殺無算 又作大霧 咫尺難辨而督戰 賊軍乃心慌手亂奔逃命百里 兵馬不相見 於是冀淮垈之地 盡爲所據 乃城於涿鹿 宅於淮岱. 軒轅之屬 皆稱臣入貢 盖當時西土之人 徒憑矢石之力 不解鎧甲之用 又値蚩尤天王之法力高强 心驚膽寒 每戰輒敗 雲笈軒轅記之所謂蚩尤始作鎧甲兜時人 不知以爲銅頭鐵額者 亦可想見其狼狽之甚矣
때에 공손헌원이란 자가 있었으니 토착백성들의 우두머리였다. 처음 치우천왕이 공상(空桑)에 입성해서 크게 새로운 정치를 편다는 말을 듣고 감히 저 혼자 즉위하여 천자가 될 뜻을 갖고,크게 병마를 일으켜 공격해와 더불어 싸우려 했으므로, 치우천왕은 먼저 항복한 장수 소호(少昊)를 보내 탁록에 쳐들어가서 에워싸 이를 전멸시켰다. 헌원은 그래도 스스로 굴복치 않고 감히 백번이나 싸워오는지라, 치우천왕은 구군에 명을 내려 네 갈래로 나누어 출동케 하고 자신은 보병 기병 3000을 이끌고 곧바로 헌원과 탁록(涿鹿)의 유웅(有熊)이라는 벌판에서 계속해서 싸우면서 명령을 내려 사방에서 압축하여 참살하니, 그 숫자를 셀 수 없었고 세지도 않았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 하면서 싸움을 독려하니 적군은 마침내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켜 혼란을 일으키고 도망가 숨으며 달아나니, 백 리 안에 병사와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연의 회대의 땅을 모조리 점령하고자 하여 곧 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지방을 점령하였다. 이에 헌원의 무리들은 모두 다 신하되기를 원하며 조공을 바쳤다. 대저 당시의 서쪽에 살던 사람들은 함부로 활과 돌의 힘을 믿고 갑옷의 쓸모조차 알지 못했는데, 치우천왕의 법력에 높고 강력함에 부딪쳐 마음에 놀랍고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매양 패했다. <운급헌원기>라는 책에 '치우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라고 치우를 말한다'라고까지 썼으니, 멱시 그 낭패한 모습이 대단했음을 상상해 알 것이다.
蚩尤天王 益整軍容 四面進擊 十年之間 與軒轅戰七十三回 將無疲色 軍不退後 軒轅 旣屢戰敗 尤益大興士馬. 效我神市 而廣造兵甲 又制指南之車 敢出百戰 天王 赫然 震怒 使兄弟宗黨 務要大戰而立威 使軒轅之軍 不敢生意於追襲. 與之大戰 混殺一陳 然後 方熄 是役也 我將蚩尤飛者 不幸有急攻 陳沒 史記所謂'擒殺蚩尤'者 盖謂此也. 天王赫怒動師 新造飛石迫擊之機 成陳聯進 賊陳終 不能抗也. 於是 分遣精銳 西守芮涿之地 東取淮岱爲城邑 而當軒轅東侵之路 及至崩逝數千載 而猶有萬丈光烈 能起感 於後人者也 今據漢書地理志 其陵 在山東東平郡 壽張縣闕鄕城中 高七丈 秦漢之際 住民 猶常以十月祭之 必有赤氣 出如疋絳 謂之蚩尤旗 其英雄魂魄 自與凡人逈異 曆 數千歲而猶不泯者歟 軒轅 以是索然 楡罔亦從以永墜矣
치우천왕은 더욱더 군대의 힘을 갖추고 사방면으로 진격했던 바 10년 동안 헌원과 싸우기를 73회였으나 장수는 피로의 기색이 없고 군은 물러설 줄 몰랐다. 뒤에 헌원은 열 차례 싸웠으나 매양 졌으므로 원한은 더욱더 커졌다.군대를 일으켜 우리 신시를 본 따 크게 별기와 갑옷을 만들고 또 지남거를 만들어 감히 싸움터마다 출전하는지라, 치우천왕은 불같이 진노하사 형제와 종당들로 하여금 싸움의 준비에 힘쓰도록 하면서 위세를 떨쳐서 헌원의 군으로 하여금 감히 공격해 올 뜻을 품지도 못하도록 하였다. 더불어서 한바탕 크게 싸움이 일어나자 한 무리를 마구 죽여 버린 후에야 비로소 멈췄으니 이 싸움에서 우리 쪽 장수 가운데 치우비라 하는 자가 있어 불행하게도 공을 서둘다가 진중에서 죽게 되었다. <사기>에서 말하는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고 기록한 대목은 아마도 이를 말하는 것인 듯하다. 치우천왕은 크게 화가 나시어 군을 움직여 새로이 돌을 날려 보내는 기계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니 적진은 종내 저항할수조차 없었다. 이에 정예를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은 예탁의 땅을 지키고 동쪽은 회대의 땅을 취하여 성읍을 삼게하고, 헌원의 동쪽 침략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치우천왕이 돌아가신 지 수천년이 된 지금 오히려 만장의 광열이 있어 능히 후인으로 하여금 흥분하여 떨쳐 일어나게 하는 듯하다. 지금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높이가 7척으로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늘 여기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반드시 붉은 기운이 있어 마치 한필의 진홍색 같은 것이 뻗는데 이를 치우의 깃발이라 한다고 한다. 그의 영걸스러운 혼백과 사내다운 기백은 스스로 보통 사람과는 매우 다른 바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오히려 없어지지 아니 하는 듯하다. 헌원이 이로써 망연히 사라지니 유망도 이에 따라 영원히 떨어져 버렸다.
삼성기(三聖紀)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倍達桓雄定有天下之號也 其所都曰神市
배달환웅정유천하지호야 기소도왈신시
배달환웅은 천하를 평정하여 차지한 호(號)이니 그 도읍지는 신시이다
後徙靑邱國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후사청구국 전십팔세 역일천오백육십오년
뒤에 청구국으로 이사해서 십팔세를전하였고 1,565년의 세월이 지났다
一世曰 桓雄天皇(一云居發桓) 在位九十四年 壽一百二十歲
일세왈 환웅천황(일운거발환)재위구십사년 수일백이십세
二世曰 居佛理桓雄 在位八十六年 壽一百二歲
이세왈 거불리환웅 재위팔십육년 수일백이세
三世曰 右耶古桓雄 在位九十九年 壽一百三十五歲
삼세왈 우야고환웅 재위구십구년 수일백삼십오세
四世曰 慕士羅桓雄 在位一百七年 壽一百二十九歲
사세왈 모사라환웅 재위일백칠년 수일백이십구세
五世曰 太虞儀桓雄 在位九十三年 壽一百一十五歲
오세왈 태우의환웅 재위구십삼년 수일백일십오세
六世曰 多儀發桓雄 在位九十八年 壽一百十歲
육세왈 다의발환웅 재위구십팔년 수일백십세
七世曰 居連桓雄 在位八十一年 壽一百四十歲
칠세왈 거련환웅 재위팔십일년 수일백사십세
八世曰 安夫連桓雄 在位七十三年 壽九十四歲
팔세왈 안부련환웅 재위칠십삼년 수구십사세
九世曰 養雲桓雄 在位九十六年 壽一百三十九歲
구세왈 양운황웅 재위구십육년 수일백삼십구세
十世曰 葛古桓雄(又曰瀆盧韓) 在位一百年 壽一百二十五歲
십세왈 갈고환웅(우왈독로한)재위일백년 수일백이십오세
十一世曰 居耶發桓雄 在位九十二年 壽一百四十九歲
십일세왈 거야발환웅 재위구십이년 수일백사십구세
十二世曰 州武愼桓雄 在位一百五年 壽一百二十三歲
십이세왈 주무신환웅 재위일백오년 수일백이십삼세
十三世曰 斯瓦羅桓雄 在位六十七年 壽一百歲
십삼세왈 사와라환웅 재위육십칠년 수일백세
十四世曰 慈烏支桓雄(世稱蚩尤天王徙都靑邱國) 在位一百九年壽一百五十一歲
십사세왈 자오치환웅(세칭치우천왕도도청구국)재위일백구년수일백오십일세
十五世曰 蚩額特桓雄 在位八十九年 壽一百一十八歲
십오세왈 치액특환웅 재위팔십구년 수일백일십팔세
十六世曰 祝多利桓雄 在位五十六年 壽九十九歲
십육세왈 축다리환웅 재위오십육년 수구십구세
十七世曰 赫多世桓雄 在位七十二年 壽九十七歲
십칠세왈 혁다세환웅 재위칠십이년 수구십칠세
十八世曰 居弗檀桓雄(或云檀雄) 在位 四十八年 壽八十二歲
십팔세왈 거불단환웅(혹운단웅)재위 사십팔년 수팔십이세
二十一 하루는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태인 살포정을 지나실세 들(野)가운데 큰 소 두마리가 어우러져 서로 싸우고 있거늘 상제께서 소 곁에 가시더니 두 소의 뿔을 각각 잡으신 다음 소들의 귀에대고 무슨 말씀을 하신다음 소 뿔을 놓으시니 두 소가 싸움을 그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져 가더라 하니라.이 때에 문공신은 생각하기를 사람은 말로써 훈계하면 듣지만 짐승까지 가르치시니 이는 사람으로써 미치지 못할 바라.고로 한울에서(天)오신 천선생님(天先生任)이 분명하다 생각하였다 전하니라
二十二 정미년(丁未年) 가을에 차경석과 여러 종도들을 거느리고 순창 오선위기(五仙圍碁)도수(度數)를 보실제 형렬과 경석을 데리고 장군바위에 가시더니,형렬을 데리고 장군바위 아래에서 차경석에게 명하사 장군바위 위로 올라가 앉으라 하시거늘 경석이 바위에 올라앉으니 가라사대 이제 너에게 초패왕(楚覇王)의 도수(度數)를 붙이나니 범사(凡事)를 잘 맡어 진행하라 엄명(嚴命)하시고 여러 가지 법을 행하신후 형렬을 불러 다짐하여 가라사대 너는 오늘의 이 공사에 증인(證人)이니 명심하라 하시니라
解
초패왕이란 진(秦)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도모하려 했던 역발산(力拔山)기개세(氣蓋世)한 항우(項羽)를 말씀하심이니라
항우는 팔년동안에 칠십여전을 싸웠으나 패하는 일이 없다가 해하(垓下)의 일전(一戰)에서 패배하여 마침내 자몰(自歿)하니 이로써 천자가 못된 사람이니라
이와같은 초패왕의 도수를 차경석에게 붙이셨으니 천하가 양분하여 패권을 다툼이 있을 것은 물론이요 초한풍진(楚漢風塵)과 같은 도수도 있지 않을까
二十三 회문산 오선위기도수를 보시며 조선 국운을 정하리라 하시고 공사를 행하실세 천하시비신순창운회(天下是非神淳昌運回)라 쓰시어 가라사대 천하의 모든 약소국(弱少國)이 이 공사로 인하여
조선(朝鮮)이 풀리며 자연히 따라 풀려나리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천하대세(天下大勢)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總角版)이 지난 후에는 상씨름이 될것이요 씨름판에는 소(牛)가 나가면 판은 걷어치우게 되느니라
또 가라사대 씨름판때는 나무 삼팔때를 세우고 만국 재판소(萬國裁判所)를 우리나라에 설치하노라 하시였다 하니라
二十四 정미년(丁未年)가을에 순창 농바우(籠岩)에서 회문산 오선위기 공사를 마치시고 형렬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성천(成川)강선루(降仙樓)의 일만이천(一萬二千) 골물(谷水)은 녹줄이 붙어있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겁살(劫殺)이 끼여 있으니 이제 그 겁살(劫殺)을 벗겨야 하리라
너는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돌아가 조석으로 청수한 동이씩 길어서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놓고 밤에는 칠성경 스물한번씩 읽으며 백지를 사방 한치되게 오려서 모실 시자(侍字)를 쓰되 한 사람이 하루에 사백자씩 열흘 동안 써서 사방벽에다 돌려 붙이고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 형렬이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구릿골로 돌아와 명하신 대로 행하고 김갑칠을 순창 농바우로 보내 명하신 대로 일을 다 마쳤음을 고하니라
상제께서 양(羊)한마리를 사서 갑칠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끌고가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그 후에 상제께서 구릿골에 오시어 양(羊)을 잡아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벽에 돌려붙인 일만이천 모실시(侍) 자(字)의 머리위에 바르시니 글자수가 다함에 양(羊)의 피도 다한지라.이때에 상제께서 김갑칠에게 물어 가라사대 저 글자의 모양이 무엇과 같으냐 하시니 갑칠을 비롯하여 모두 대답이 없거늘 이에 가라사대 그 글자의 모양이 아라사(俄羅斯)병정(兵丁)의 대가리(頭)와 같다.모든일을 잘 알아서 하라 하시고 청수 그릇을 가리키시며 사기(砂器)는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 하시더니 마침 김제(金堤)수각(水閣)에 사는 임상옥(林相玉)이 이르거늘 청수기(淸水器) 스물네개를 개정국(改政局)에 씻어 주시며 인부를 많이 부릴때 쓰라(使用) 하시고 가라사대 이 공사로써 금강산 일만이천봉겁살을 제거하여 아세강성(俄勢强盛)을 진압함이라 하시더라
解1)
겁살(劫殺)이란 무엇을 뜻함인가 하면 겁(劫)이란 위협(威脅)한다 강탈(强奪)한다는 뜻이요,살(殺)이란 죽이는것을 뜻하니 합하여 말하건데 죽이려고 위협(威脅)하는 것을 말함이니라
금강산같이 좋은 명승지가 또 어디 있기에 겁살이 끼였다하시는가
예로부터 금강산은 그 이름이 저 멀리 중국에 까지 전해져서 당나라의 시인(詩人)한사람은 금강산을 보고지고 하며 시 한수를 읊으니 그 시에 왈
願生高麗國(원생고려국)하여
一見金剛山(일견금강산)하였으면 하고 소원(所願)했다 하니 이 시를 풀이하면 이러하니라
원하노니 고려나라에 태어나서
한번만 금강산을 보았으면 하고 죽은 후에라도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구경하기를 소원할 정도로 경치가 수승한 금강산은 만폭의 병풍을 두른듯한데,비로봉 중허리에 실구름이 피여나서 이리저리 휘감아 돌고 산하 골골(谷谷)자욱한 안개는 세속 시름을 다 묻었으니 산수는 선경(仙境)이요 사람은 신선(神仙)이라.온갖 산새는 지저귀고 송풍(松風)은 금슬(琴瑟)되여 자지러지니 선악(仙樂)이라
글 한수 읊조리며 신선찾아 답보(踏)하면 사람도 신선같고 신선역시 사람같으니 인선분간(人仙分間)없을 때에 신선스친 선풍향(仙風香)에 흠뻑취한 사람들이 신선보고 조롱하면 신선은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있다
세속인간 술에 취해 신선곁에 잠이들어 속진(俗塵)의 일천고락(一千苦樂)
이 한잠 속에 녹아드니 불노불사(不老不死)가 구망(具忘)이라
이 좋은 이 경계(境界)를 보고 겁살운운(劫殺云云)한 이는 유사이래(有史以來)없었건만 오직 상제께서 금강산 겁살(劫殺)을 선언하시니 이세상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과연 믿을 것인가
그러나 상제께서 하신 말씀이니 아무 내용도 모르고 그런가보다 하며 지났으나 이제한번 금강산 겁살을 설파하여 겁살유무 가려보리라.
산서(山書)에 이르기를 용유팔살(龍有八殺)하니 그 중에 참암절용(巉岩絶龍/산서에서는 산을 용이라한다)이라 했으니 험석(險石)이 날카롭게 쏘아 데면 살(殺)이라하여 산가(山家)들은 이를 기피(忌避)하는 것인데 금강산은 절용(絶龍)이요 또한 참암험석(巉岩險石)이 대진삽창(對陣揷槍)이라.이 어찌 겁살(劫殺)이 아니라 하리요.우리 나라의 남한 산천은 금강산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산맥이 흐르고 있으니 남한의 오대산맥(五大山脈)의 조산(祖山)은 금강산인바 이 금강산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면 장백산맥(長白山脈)이 수두(垂頭)백두산(白頭山)하여 이 나라의 태조산(태조산
)이 되어서 북역(北域)에 십대산맥(十大山脈)을 배포(配布)하면서 그중에
간용(幹龍)으로 낭림산맥(狼林山脈)이 내려오다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과 강원도 평강군(平康郡) 사이에 이르러 느닷없이 산맥들이 꺾(絶)이고 무너져(崩)소위(所謂)추가령(楸哥嶺)지구대(地構帶)를 이루니 이로써 내려오던 산맥이 일단 꺾이고 문득 동안(東岸)에 금강산이 솟아 비로봉 오천사백다섯자 일만이천봉이 중기(衆起) 하였드라
선천이 끝나고 후천이 솟아날때 그 모습이 그와 같으리라
우리나라는 선천산운이 끝나고 후천운이 금강산으로부터 시작되는바 조봉(祖峯)인 금강산에 겁살(劫殺)이 끼여있게 되면 그로부터 뻗어내린 오대산맥(태백산맥,광주산맥,차령산맥,소백산맥,노령산맥)에 겁살기가 흘러들어 이 강산에 겁기가 쌓이리니 이로써 금강산 겁살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으심이더라
解2)
성천(成川)강선루(降仙樓)의 일만이천 고물이라 전하는바 이는 말씀의 와전(訛傳)이리라.일만이천 골물(골짝에서 흐르는 고을물)즉 고을 물(水)이란 말씀이니라.그렇다면 성천(成川)강선루(降仙樓)의 일만이천 고을(谷)물(水)에는 녹줄이 붙어 있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강선루(降仙樓)고을(谷)물(水)은 녹줄이 붙어 있는가.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에 무산(巫山)
십이봉이 있고 이 십이봉을 감돌아 흐르는 비류강(沸流江)이 있는바 무산하(巫山下)비류강안(沸流江岸)에 강선루(降仙樓)가 있으니 성천 강선루 일만이천 고을(谷) 물(水)이라 하심은 즉 성천(成川)비류강(沸流江)일만이천 고을(谷) 물(水)이란 말씀이니라
이 비류강물이 흘러서 평양 대동강(大同江)이 되였으니 비류강은 대동강의 상류라.그런고로 상제님 말씀의 깊으신 의취(意趣)는 성천(成川)강선루(降仙樓)아래 비류강(沸流江)으로 흐르는 일만이천 고을 물은 녹줄이 붙어있다 하심이라
그렇다면 비류강으로부터 흐르는 대동강물은 녹줄이 붙어있다 하시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겁살이 끼여있다 하셨으니 이 무슨 말씀인가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에서 흐르는 물은 흘러 흘러서 한강이되여 한양 서울을 감돌아가니 한말(一言)로 설파(說破)하자면 강선루(降仙樓)앞을 흐르는 대동강(大同江)물은 녹줄이 붙어있으되 금강산에서 흐르는 한강 물은 겁살이 끼여있다는 말씀이라
그렇다면 녹(祿)은 생녹이니 살리는 것이요 살(殺)은 사살(死殺)이니 죽이는 것인바 대동강물은 살리고 한강물은 죽인다는 말씀이니 왜 그렇다고 하시는가.대동강 물은 흘러서 죽일 일을 않으니 살리는데만 쓰일 것이요
한강 물은 모아서(聚合) 죽일 일을 하려하니 이것이 겁살(劫殺)이라
금강산 겁살을 벗겨야 하리라 하시고 아침 저녁으로 청수 한동이씩 길어 스물네그릇에 나누어 놓고 칠성경을 읽으라 하시여 겁살 제거공사를 보셨으니 망정이지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이 겁살을 받을 때에 살아날자 몇몇이나 되리요
청수 한동이를 스물네그릇에 나누어 놓았으니 한곳에 모일 물을 이십사방에 흐트심이라.만약 흐트시지 않았다면 이백억톤의 물이 쏟아져 강원도 동쪽부터 경기도 서쪽까지 가로질러 우리 나라 허리 중간을 꺾어놓고 말았으리라
* 움직이는 것은 양의 바탕이요
고요한것은 음의 바탕이라
물은 흘러 움직이니 양의 바탕 되여있고
산을 높아 고요하니 음의바탕 됨이로다
성천(成川)의 양수(陽水)는 오히려 녹이있다 하시고
금강의 음산(陰山)은 어찌하여 살띠였다 하시는가
북방물(北方水)은 흘러서 내려갈 수록 녹이지만
남쪽에 있는 산은 막히니 거듭 쌓일수록 살(殺)이로구나.
二十五 어느날 공사를 보시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내가 전날에 선비들 모임에 갔을때 글을 짓고 있기에 나는 이와같이 글을 지었노라 하시며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金剛絶景聞天下(금강절경문천하)하고
遊子今登萬歲樓(유자금등만세루)하니
如彼峯巒皆特起(여피봉만개특기)인데
微斯蒼海亦難收(미사창해역난수)로다
中宵玉壁玲瓏面(중소옥벽영롱면)인데
大陸蓮花浩蕩秋(대륙연화후탕추)로다
已有三山遐擧意(이유삼산하거의)든가
忘却千里獨來愁(망각천리독래수)로구나
이와같이 시를 지으신후 좌중에 선비들이 한 사람도 시를 짓지 못했다하시며 가라사대 이 시는 압축시(壓縮詩)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譯
金剛絶景聞天下(금강절경문천하)하고;
금강산 절경이 천하에 소문나서
遊子今登萬歲樓(유자금등만세루)하니
타향의 나그네(遊子)가 만세루에 이제사 올라보니
如彼峯巒皆特起(여피봉만개특기)인데
저같이 봉봉마다 다 특별하게 일어섰건만
微斯蒼海亦難收(미사창해역난수)로다
차애를 조금이라도 거두워 들이기가 그렇게 어렵던가
中宵玉壁玲瓏面(중소옥벽영롱면)인데
한밤중에 아름다운 별이 영롱하게 비치는 쪽에
大陸蓮花浩蕩秋(대륙연화후탕추)로다
넓은 육지에 피어난 연꽃은 질펀하게 흐르는 물결.가을 이루었다
已有三山遐擧意(이유삼산하거의)든가
이미 삼신산이라하고 있으며 무슨생각을 들어내는가
忘却千里獨來愁(망각천리독래수)로구나
천리먼길 잊어버리고 나홀로 달려와서 근심하고 있노라
註 壁 : 벽(壁)은 성(星)이라.동벽(東壁)의 두 별은 문장(文章)을 주장하니 천하도서(天下圖書)의 비부(秘府)니라
또 벽(壁)은 이십팔수중에서 열네번째에 속하여 서북에 위치하니라
二十六 순창 농바우(籠岩)에서 공사를 마치시고 돌아 오실세 피노리(避老里) 이화춘(李化春)의집에 이르러 계시더니,이때 마침 황응종이 이르거늘
응종을 보고 가라사대 고부 사람이 이르니 바둑판을 가히 운전하리라 하시니라.
解 고부 사람이 이르니 바둑판을 운전한다 하심은 무슨 뜻인가하면 황응종이 고부땅에 거주하였음으로 고부 사람이라 하심이요
또한 그 성이 황가(黃哥)이니 황(黃)은 중앙이요 중앙은 자기신(自己神)의 자리라.그러니 고부자기신(古阜自己神)의 선인포전(仙人布氈)도수를 띠고 황응종이 이르므로 순창시비신(淳昌是非神)의 오선위기도수(五仙圍朞度數)를 운전(運轉)한다(빨리돌린다)하심이니라.그러면 바둑판 운도(運度)를 돌리시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동방래물거지동(東方來物去之東):동에서 온 물건은 동으로 갈것이요
서방래물거지서(西方來物去之西):서에서 온 물건은 서로 갈것이요
사방제물귀지각(四方諸物歸之各):사방에서 온 모든 물건이 각각돌아가면
중앙본래선인좌(中央本來仙人坐):중앙은 본래부터 선인의 자리니라
二十七 背恩忘德萬死神(배은망덕만사신)公事(공사)를 보실세 만사신(萬死神)다음에 일분명(一分明)이라 쓰시니 이러하니라(이절은 大巡經에 一分明이 빠졌기에 여기에 올리노라)
背恩忘德萬死神 一分明 一陽始生
배은망덕만사신 일분명 일양시생
作之不止聖醫雄藥 一陰始生
작지부지성의웅약 일음시생
二十八 정미년(丁未年)겨울에 종도들을 거느리고 고부로 가실세 장승백이를 지나시며 박공우에게 가라사대 세상에서 이곳을 장승백이라 부르나 이를 장상백(將相百)이란 말이요 장상백(將相百)이라 했으니 이로써 이곳에다 장상대기지(將相大基地)를 정하고 대흥리에는 玉子布政分野度數(옥자포정분야도수)를 놓으리니 장차 그곳에는 가작천간옥(可作千間屋)이리라
하시였다 전하니라
二十九 하루는 종도들과 더부러 원평에다 미리 준비시켜둔 개고기와 술을
잡수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은 바로 구미산(龜尾山)에 오르라 명하신후 상제께서는 유문거리(柳門距里)를 돌아서 구미산(龜尾山)에 오르시더니 물으시기를 지금 어느때나 되었느뇨 하시거늘 어느 종도가 여쭈어 가로대 정오시쯤 되었을듯 하옵나이다 하고 아뢰는데 이때 문득 김자현(金自賢)이 원평을 내려다보더니 놀래며 말하기를 원평장에서 장꾼들이 서로 대가리 다툼을 하나이다 하고 고(告)하거늘 모든 종도들이 장터를 내려다 보니 이때 오고가는 장꾼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치고 다니며 앉아서
전(廛)을 보는 사람은 기둥이나 옆에 있는 벽에라도 자기머리를 부딪치며 비비대더라.종도들이 놀래어 물어가로대 어찌하여 장꾼들이 저러하나이까 하고 물으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날 한시에 천하사람들을 저와같이 싸움을 붙일 수 있노라.너희들은 부디 조심할지니 나의 도수는 밖으로부터 안으로 우겨드는(聚入)도수(度數)니라.천하대세를 잘 살피도록 하고 오늘의 이 일을 잘 명심하도록 하라 하시더라
三十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오랫동안 조선에서 조공(朝貢)받은 죄로 인하여 중국은 여지없이 망하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三十一 전주에서 공사를 끝마치시고 돌아오실세 용머리 고개밑에 오시더니 두주먹을 불끈쥐고 걸음을 빨리하여 다급하게 뛰여 오르시니 모든 종도들이 황급히 따르는데 뒤를 한번 흘끔 돌아보시고 여전히 다급하게 뛰여 오르시며 또 뒤를 흘끔 돌아보시고 또 다급하게 뛰어올라 용머리 고개를 썩 올라 서시더니 세번째 뒤를 홱 돌아보시고 가라사대 이 고개를 몇 사람이나 넘을 수 있으리요 하시며 탄식 하시더라 전하니라
三十二 어느날 차경석에게 병과무용(兵戈無用)을 음영(吟詠)하시니 그 글이 이러하니라
吟兵戈無用(음병과무용)
兵以爲名卽害人(병이위명즉해인)
自古帝王不已事(자고제왕불이사)
聊憐種德千尋樹(료린종덕천심수)
枝枝葉葉一般春(지지엽엽일반춘)
吟兵戈無用(음병과무용):군병(軍兵)과 전쟁은 쓸데없음(無用)을 읊으니라
兵以爲名卽害人(병이위명즉해인):군병(軍兵)이라 이름함은 곧 사람을 해하는 것이니
自古帝王不已事(자고제왕불이사):예로부터 제왕된자 마친일이 아니든가
(**예로부터 제왕된자들이 끊임없이 일삼는 것이로다**)
聊憐種德千尋樹(료린종덕천심수):애오라지 불상히 여겨 여러 가지 덕혜(德)를 많이 찾아심어서(尋樹)
枝枝葉葉一般春(지지엽엽일반춘):가지가지 잎잎마다 다같이 봄을 맞으라.
三十三 정미년(丁未年) 섣달 스무닷샛날(12월25일) 고부 문공신의 집에서 백의군왕(白衣君王)백의장상(白衣將相)도수(度數)<일명 王者被擒度數>를 보실세 마침 그곳의 면장(面長)과 동리장(洞里長)이 마을 정사(政事)로 인하여 공신(公信)의 집에 들어오메 문득 꾸짖어 가라사대 너희들이 어찌하여 감히 천지공사장(天地公事場)에 들어오는고 하시니,그들이 그 말씀을 들을때 너무나 엄청나고 생소한 말로써 분간할 수 없으나 공사장(公事場)이라 하였으니 필시 큰 모의(謀議)를 하는바라 생각하고 의병으로 관부에다 고발하였다 하니라.
三十四 백의군왕(白衣君王)백의장상(白衣將相)도수(度數)를 보시려 하실세 김광찬(金光贊)과 박공우(朴公又)는 정읍 차경석의 집으로 보내시고 신원일(辛元一)은 태인 신경원(辛京元)의 집으로 보내시니라
이때에 약간의 돈을 김갑칠에게 주시어 차경석에게 전하라 하시며 갑칠을 보내신후 공사를 시작한다 선언하시고 그날밤 일찍 자라 명하시더라
새벽에 순검들이 들어 닥쳐 포박되여 가시다가 덕천면(德川面)달천리(達川里)에서 큰 되야지(猪)를 잡게 하시어 술을 잡수실세 종도들과 순검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이신 후 고부 경무청으로 가시더라
갑칠은 구릿골로 가서 있다가 관액(官厄)이 일어난(惹起)후에 정읍 차경석에게 달려가 그 돈을 전하니 차경석이 고부로 와서 이부자리와 식사를 차입(差入)하며 기다리더라
三十五 상제께서 경칩절(驚蟄節)에 방면(放免)되시니 이때에 차경석과 안내성이 문공신의 집에서 공사보실세 비치해둔 돈 일백 이십량을 공신으로부터 찾아다 새옷을 지어드리려하니 그리마라 금지(禁止)시키시고 그 금전을 모두 순검과 빈궁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3일을 그 곳에서 유(留)하신후 고부 와룡리(臥龍里) 황응종의 집으로 가시니 이에 차경석과 안내성이 따르니라
三十六 백의군왕(白衣君王) 백의장상(白衣將相)도수(度數)를 정미년(丁未年)섣달 스무닷샛날(12월25일)부터 시작하여 무신년(戊申年)정월(正月)초하룻날까지 고부 경무청(警務廳)구류간(拘留間)에서 보시니 이때 스물한사람이 변심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속에서 구류하는 기간이 길어져감에 따라 종도들의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상제께 원망하기를 천지를 개벽하여 조화선경을 열어 따르던 종도들에게 큰 복록을 먼저 마련하여 주실줄 믿었더니 이러한 화지(禍地)로 몰아 넣으심은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가 허탄한 일이요 우리들을 기만한 일이 아니리하며 원망을 하니 그 중에서 문공신과 이화춘 박장근등은 더욱 분격하여 자주 패설을 하며 순검에게 이르기를 이 모두가 증산의 탓이요 우리들은 아무 잘못이 없노라하며 상제님께 책임을 돌리었다 하더라
출옥후 삼월에 이화춘이 의병에게 포살되고 박장근은 의병에게 구타를 당하여 절골(折骨)이 되었으며,문공신은 경무청에서 경관에게 발길로 채인곳이 출옥후 도져서 사경(死境)일러니 상제께서 황응종에게 찹쌀밥 아홉때를 짓어먹으라 하시여 그대로 하였더니 곧 낫으니라
그해 여름에 문공신이 구릿골에 와서 상제께 배알하거늘 공신을 보시고 경계하여 가라사대 너도 마음을 고쳐라. 만약에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의 천노(天怒)를 벗어나지 못하리라.하시며 이어서 가라사대 이화춘은 귀신으로나 잘되게 하리라 하시며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三十七 어느날 공사에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낙서(洛書)에 배열되어 있는 석줄아홉개의 숫자가 종횡으로 매행(每行)마다 각각 십오수(十五數)가
되는 것을 말씀하여 가라사대 세속(世俗)에 가구(假九)라는 노름판이 있어서 십오수가 차면 판모리를 하는 것이 곧 후천에 이루어질 비밀을 세간에 누설한 것인데 내가 천지공사에 이 일을 도수(度數)로 정하여 쓰노라
하시며 문명(文命)을 이르시니 이러하니라
厥有四象包一極(궐유사상포일극)
九州運祖洛書中(구주운조낙서중)
龜馬一圖今山河(구마일도금산하)
幾千年間幾萬里(기천년간기만리)
天人天地天天(천인천지천천)
地人地地地天(지인지지지천)
人人人地人天(인인인지인천)
九 四 二
五 三 七
一 八 六
知
心
大
道
術
左旋(좌선)
二 九 四
七 五 三
六 一 八
譯
厥有四象包一極(궐유사상포일극):그 사상에 일극이 싸여 있으니
九州運祖洛書中(구주운조낙서중):구주(九州)를 낙서(洛書)가운데서 시작하여 돌리고
龜馬一圖今山河(구마일도금산하):구(龜)와 마(馬)의 한 그림을 지금까지 이 산하(山河)에서
幾千年間幾萬里(기천년간기만리):몇 천년 동안 몇 만리에서 썼으니
天人天地天天(천인천지천천)
地人地地地天(지인지지지천)
人人人地人天(인인인지인천)
解
1)厥有四象包一極(궐유사상포일극):그 사상에 일극이 싸여있다하심은 태음태양 소음소양의 사상을 말씀하심인바 태음과 태양 소음과 소양을 아래(도1)과 같이 그려놓고 보면 종횡 십자의 교차점이 생기는바 교차된 지점이 사상의 중앙이라.이 중앙점을 일컬어 황극이라하나니 일태극과 십무극과 오황극인 일극(一極)이 태음태양소음소양에 둘러싸였다는 말씀이니라
태음 |
소음 |
소양 |
태양 |
(사상도1)
2)九州運祖洛書中(구주운조낙서중):구주(九州)를 낙서(洛書)가운데서 시작하여 운행시킨다 하심은 무슨 말씀인가 하면 낙서의 가운데는 오(五)이니 오(五)로부터 시작하여 一六七二九四三八을 운영한다는 말씀이니(낙서2도참조)그렇다면 수화그목(水火金木)의 팔궁(八宮)을 중궁(中宮)인 오황극(五黃極)이 조종(祖宗)하여 운영한다는 말씀이니라
四 九 二
三 五 七
八 一 六
洛書數2圖
3)龜馬一圖今山河(구마일도금산하):구(龜)와 마(馬)의 한 그림을 지금까지 이 산하(山河)에서 써왔다는 말씀이니 이는 무슨 뜻인가 하면 구(龜)라하심은 낙서(洛書)를 말씀하심이요,마(馬)라 하심은 하도(河圖)를 말씀하심이라.구(龜)가 왜 낙서(洛書)며 마(馬)가 왜 하도(河圖)인가하면 신구(神龜)가 낙수(洛水)에서 나왔는데 그 등에 문점(文點)이 배열되여 있음을 보고 낙서(洛書)를 지였다 하였으니 구(龜)는 낙서(洛書)요 또 용마(龍馬)가 하수(河水)에서 나왔는데 등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하도(河圖)를 만들었다 하였으니 마(馬)는 하도(河圖)니라
그러니 낙서와 하도의 한 도를 지금까지 이 산하에서 즉 이 강산에서 써왔다 하심이니라
4)幾千年間幾萬里(기천년간기만리):몇 천년 동안을 몇 만리지경이 구마도(龜馬圖)를 써왔으니 구마(龜馬)의 하낙지수(河洛之數)에 따라 천하의 도수를 짜신다는 말씀이니라
5)天人天地天天(천인천지천천)
地人地地地天(지인지지지천)
人人人地人天(인인인지인천)이라 쓰셨으니 이 글이 낙서 구위(九位)에 배열하시는 구궁배치법(九宮配置法)이니라
그러니 이를 낙서에 배치하면 천인은 이위(二位)에 치(置)하고 천지는 칠위(七位)에 치(置)하고 천천은 육위(六位)에 치(置)하며 지인은 구위(九位)에 치(置)하고 지지는 오위(五位)에 정(定)하고 지천은 일위(一位)에 치(置)하며 인인은 사위(四位)에 치(置)하고 인지는 삼위(三位)에 치(置)하고 인천은 팔위(八位)에 치(置)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으니라
四 九 二
人人 地人 天人
三人地 地地五 天地 七
人天 地天 天天
八 一 六
天地人九宮配置圖
본래에 천인 천지 천천 지인 지지 지천 인인 인지 인천이란 글은 상제께서 공사를 보실때 후천 갱생지법으로 삼계개조라 하시며 천갱생 지갱생 인갱생 갱생 갱생 천인 천지 천천 지인 지지 지천 인인 인지 인천이라 읽게 하시고 가라사대 사람뿐만이 아니요 천지도 이번에는 갱생치 않고는 제법(諸法)이 허사(虛事)니라.그런고로 너희들은 이 갱생주(更生呪)를 많이 읽으라 하셨으니 이 공사에서 천갱생 지갱생 인갱생 갱생 갱생 갱생의 열다섯자를 제하시고 열여덟자만 쓰셨느니라
6)
九 四 二
五 三 七
一 八 六
知
心
大
道
術
여기에서 주목할바 낙서의 행렬을 바꾸어 놓으시어 二七六은 자기자리에 있으나 九五一과 四三八을 바꾸시니 좌변 四三八열이 중렬(中列)인 九五一자리로 오고 九五一이 좌변으로 밀려나니 오황극이 三과 그 위치를 바꾸게 되니라
九 四 二
五 三 七
一 八 六
본도(本圖)를 감히 명(名)하여 개도(開圖)라 하리라
7)
左旋(좌선)
二 九 四
七 五 三
六 一 八
이 도서(圖書)는 전도(前圖)에 우변렬(右邊列)인 二七六을 좌변(左邊)으로 옮기심으로 九五一이 중앙렬(中央列)로 들어가게 됨으로 오황극(五黃極)이 자기 자리인 중궁(中宮)을 차지하게 되니 비로소 황극이 정위(正位
)하니라.여기에서 유의할 바는 본래 있는 낙서(洛書)를 한번에 백팔십도로 돌려 놓으심이 아니요,九五一을 뽑아서 四三八 밖으로 놓으시고 다음에 첫째줄인 二七六을 뽑아서 변방으로 나간 九五一밖으로 놓으시니
四 九 二
三 五 七
八 一 六 의 낙서(洛書)가
九 四 二
五 三 七
一 八 六 로 변(變)하고
二 九 四
七 五 三
六 一 八 으로 변(變)하니라
二 九 四
七 五 三
六 一 八
본도(本圖)를 감히 명(名)하여 벽도(闢圖)라 하리라
三十八 무신년(戊申年)사월에 문공신의 집 벽에다가 정의도(情誼圖)를 그려 붙이시고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김준상의 집 방 한칸을 수리하여 만국의원(萬國醫院)을 설치 하실세 약장(藥欌)을 짜게 하시니 이러하니라
아래 하단에는 크게 한칸으로 하시고 그 위 중단에는 빼닫이를 가로(橫) 세칸을 놓으시고 또 그 위 상단에는 가로(橫) 다섯칸으로 하여 세로(縱)
올라가며 삼단을 놓으시니 삼오는 십오 열다섯개의 빼닫이를 놓았더라
三十九 또 약장에 글을 써서 붙이시니 이러하니라
한가운데 칸에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쓰시고
烈風雷雨不迷(열풍뢰우불미)라 쓰시고
太乙呪(태을주)를 쓰시고
洋紙(양지)를 오려서 칠성경(七星經)을 외줄로 내려쓰신 뒤에 그 끝에
禹步相催登陽明(우보상최등양명)이라 가로쓰시고
陽曆六月二十日(양력유월이십일)
陰曆六月二十日(음력유월이십일)이라 쓰시니 약장(藥欌)을 그리고(圖書)
글을 쓰면 대개 다음과 같으니라
(藥欌圖:도면 생략)
四十 하루는 태을주(太乙呪)를 쓰시어 가르치시니 이러하니라.
太乙天上元君吽哩哆耶都來吽哩喊哩娑婆訶
태을천상원군훔리치야도래훔리함리사바하라고 열아홉자를 안띠고 한줄로 내려 써놓으시고 가라사대 이글이 태을주(太乙呪)니라 하시며 위에다 훔치(吽哆)넉자를 두줄로 써 놓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은 앞으로 이 넉자를
더 첨가하여 읽으라 하시며,또 가라사대 이 형상이 무슨 모양과 같으냐 하고 물으시니 이때에 김갑칠이 여쭈어 가로되 흡사 밥 퍼먹는 숫가락과
같사옵니다 하고 아뢰니라.네 말이 옳도다.이 모양이 밥 숫가락과 같으니
숫가락은 밥 퍼먹는 것이라.그런고로 이 글에 녹(祿)이 붙어 있느니라
이러서 가라사대 이 숫가락으로 동서양을 내가 밥 비비듯 하리니 너희들은 앉아서(坐) 이 숫가락으로 많이 퍼먹으라 하시였다 하니라
解1)
태을주(太乙呪):태을주란 무슨 뜻인가 하면 본래의 어원이 선가(仙家)의 천일태일(天一太一)지분(之分)에서 유래하여 천중태을(天中太乙)이라 하였으니 천상(天上)의 태을선경(太乙仙境)을 말하는 것이니라
천상(天上)의 태을선(太乙仙)이란 무슨뜻인가 하면 태중분반(太中分半)이라.콩(太)은 반드시 반(半)으로 나누어(分)있는 것이니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분반(分半)하여 후천선경(後天仙境)을 이루는 이치가 그와 같은 고로 태을(太乙)이라 하며 을(乙)자(字)의 자양(字樣)도 좌상우하(左上右下)로 양분(兩分)하여 콩(太)의 을자(乙字)가 나누어진 모양과 같을세 그래서 태을(太乙)이라 하니 이는 선가(仙家)의 용어(用語)니라
천성을신궁(天星乙辛宮)에 천을태을(天乙太乙)이 있고 옥추경(玉樞經)혼합장(婚合章) 제칠(第七)에 보면 태을재문(太乙在門)하고 사명재정(司命在庭)이라는 말씀이 나오고 또 오뢰참감장(五雷斬勘章)제십사(第十四)에 보면 삼관고필(三官鼓筆)하며 태을이문(太乙移文)이라는 말씀이 나오니 이 모두가 태을선(太乙仙)에 대한 말씀으로써 선(仙)은 태을(太乙)에 있음을 깨달어야 하리라
解2)
吽哆吽哆(훔치훔치):훔치훔치란 무슨뜻인가 선가(仙家)의 금광신주(金光神呪)에 보면
啼口+發哽口+鬱,口+夔口+順噒嗗。吽啵咭唎,噓哼口+巠嗶。口+軒口+興哆啹,口+壘口+霆唏咈。唌噂口+逆口+役,嚋呼口+隆吃。喥囉口+釋口+离
입구자(口字)변(邊)에 쓴 삼십육자(三十六字)가운데 아홉번째에 훔자(吽字)가 들어있고 열아홉번째에 치자(哆字)가 들어있으니 훔치훔치는 선가의 금광신주(金光神呪)로부터 근원이 출래(出來)했다 할것이니라
그런데 본래의 태을주는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훔리함리사바하 열아홉자인데 그중 일곱번째 훔자와 아홉번째 치자를 태을의 머리에 두번놓아
훔치훔치하셨으니 이로써 열아홉자의 태을주가 스물석자가 되니라.그러나 훔치훔치를 두줄로 놓으시므로 글자의 자층으로 보면 삼칠은 이십일 스물한층이 되느니라.태을주를 한줄로 내려 쓰시고 태을 위에다 훔치훔치 넉자를 吽吽 哆哆두줄로 써 놓으시고 물러 가라사대 이 형상이 무슨 모양과
같으냐 하시니 이때에 김갑칠이 여쭈어 가로대 흡사 밥 퍼먹는 숫가락과 같사옵니다하고 아뢰니 네말이 옳다. 이 모양이 밥 숫가락과 같으니 숫가락은 밥 퍼먹는것이라.그런고로 이 글에 녹이 붙어있느니라
이어서 가라사대 이 숫가락으로 동서양을 밥비비듯 하리니 너희들은 이 숫가락으로 많이 퍼먹으라 하셨으니 녹(祿)을 붙이신 숫가락에는 입(口)
이 있어야 되는 법이라.고(故)로 입구자를 붙이심이리라.이때에
吽吽
哆哆
하고 쓰시어 입구자 네개를 한곳에 모으시니 田밭전자의 자양(字樣)이
되여 이는 녹(祿)이 밭(田)에 있음이라.(이하생략)
四十一 또 가라사대 이 모양이 밥 숫가락과 같으니 이것이 녹표(祿票)요
이 녹표를 붙이면 말대(末代)에 병겁(病劫)이 온 세상을 휩쓸지라도 녹지불범(祿紙不犯)이 아니드냐 이를 본 괴질신졸(神卒)들이 도인(道人)의 집
이라하여 들어가지 않고 지나치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四十二 기유년(己酉年)신농씨 공사를 보실때 가라사대 태고에 염제 신농씨는 입으로 백가지 풀잎의 맛을 보아 약을 써서 병을 낫게 하였으되 너희들은 입으로 글을 읽어서 창생을 구출하라 하시며
이어서 가라사대 소가 풀을 먹을때 입(口)으로 훔처 먹으니 훔치소리(聲)요,이 또한 천지 부모를 부르는 소리니라.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는 것과 같으니 이는 곧 한울님을 부르는 소리요
낙반사유(落盤四維)가 인의예지(仁義禮智)니 이 네개의 젖꼭지를 잘 빨아야 살 수 있을 것이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천지만물이 한울을 떠나면 명(命)이 떠나는 것이니 태을(太乙)을 떠나서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으리요
태을주는 곧 약이니 이 약을 먹지 않고는 살지 못하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四十三 어느날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상씨름할 사람은 술 고기 많이 먹고 콩밭(太田)에서 잠을 자며 판(版)을 넘겨다보는 법이니라
콩밭은 태을주 판이고 태을주는 구축병마주(驅逐病魔呪)이니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시니라.
四十四 또 하루는 태을주를 읽으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나무가 땅에다
뿌리를 박지 않으면 하늘이 우로(雨露)를 내린들 그 나무가 어찌 기름지게 자라며 그 어미의 젖을 마다고 먹지 아니하면 그 자식이 어찌 삶을 구하리 하시였다 전하니라
四十五 기유년(己酉年)어느날 종도들을 거느리고 정읍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 이르사 태을주를 쓰시고 절후주와 진액주를 쓰시고 칠성경과 그 밖에 여러 가지 주문을 차례로 쓰시어 남쪽 벽에다 붙이라 하시더니 종도들로 하여금 정좌(正坐)시키고 뒤에가 서시어 명하시기를 글 아는 자는 글을 보고 읽고 글 모르는자는 손을 합하고 공경하게 생각해 가며 읽으라 하시니 모두들 읽ㄹ기 시작할세 재촉하여 가라사대 시간이 바쁘다 하시면서 외우기를 더욱 재촉하실세 조금 후에 글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 고성대독(高聲大讀)하며 읽어나가니 이때에 상제께서 무릎을 치시며 기뻐하여 가라사대 그러면 그렇지 무식도통(無識道通)났느니라 하시며 기뻐하시기를 마지아니 하시드러 전하니라
四十六 종도들에게 주문을 읽게하실때는 항상 음절을 맞추어 읽으라 하시면서 가라사대 주문을 읽을때 소리가 맞지않으면 신명들이 불쾌하게 여기니 반드시 음절을 잘 맞추어 가며 읽으라 하시니라
四十七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 속 마음이 성(聖)이니 주경(呪經)을 읽을때 그 소리를 중하게 여기며 읽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四十八 어느날은 종도들에게 양치질을 깨끗이 시키시고 공사를 보려고 하면서 이르시기를 신명들로 하여금 너희들의 몸에 나들게(出入)하여 병든 뼈와 병든 오장으로부터 질고(疾苦)를 긁어내리니 항상 양치질을 잘해 두라고 경계하시며 또 가라사대 이는 신명들이 사람의 입을 통하여 출입하는 연고니 입속 양치질을 잘해두지 않으면 신명들이 입속 냄새를 싫어하여 신명 출입이 불성력(不誠力)하리라 하시였다 전하니라
四十九 기유년(己酉年)에 차경석이 선영 제사를 지낼세 상제께서 가라사대 차려 놓은 제사상을 내 앞으로 돌리라 하시니
경석이 명하시는대로 제사상을 상제님 앞으로 돌려 놓았더라
차경석 형제및 종도들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그 앞으로 늘어서서 반천무지(攀天撫地)사배(四拜)를 하고 심고(心告)하라 하시는지라.그대로 행하였더니 물어 가라사대 너희들이 누구에게 심고하였느뇨 하시니 모두 고하여 가로되 저의 선영신을 해원시켜 주시라고 한울님께 심고하였나이다 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일이관지(一以貫之)로다 하시며 제상(祭床)의 음식을 맛보신 후에 이르시되 진평(陳平)이 분육(分肉)하듯 고루 나누어 먹으라하시니라
解
반천무지사배:반천무지 사배란 한울을 받들고 땅을 어루만져 네번절함이니 이 절은 천지대배(天地大拜)로써 한울님과 땅님에게만 드리는 절이니라
攀天謂之自援上:한울님을 받들자면 아래로부터 위로 받쳐 올려야하니 두손으로 받들어 올림을 일컬어 반천이라하고
撫地謂之手按也:땅님을 어루만지자면 손을 내려 쓰다듬어야 하니 두손을 내려 어루만짐을 일컬어 무지(撫地)라 하니라
四拜謂之天下大稽首:사배함은 천하가 크게 머리 숙임이라.천하가 비록 광대하다 하나 사방외에 더 없으니 사방에서 중앙을 받들면 사배가 되느니라.반천무지사배에 큰 도가 있나니 그 도(道)가 지음을 이르자면 이러하니라.한울을 우러러 받들어 한울에서 내리시는 천기의 명을 받아 내 중심에 심고 땅을 어루만져 땅에서 오르는 생기를 취해다 내 중심에 심으니 복록을 얻는 법 또한 그 가운데 있느니라(이하 생략)
五十 어느날 김갑칠이 구릿골 돌밭가에서 모시를 찌다가 쉬고 앉았더니 상제께서 임어하시어 무엇을 하느냐 물으시거늘 모시를 찌나이다 하고 아뢰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모시라고 하였더냐 상질중질(上質中質)모두 빼고 모실것(慕侍)은 하질(下質)이라 하시고
또 이어서 가라사대 하질 나머지가 내 차질세 하시며 모시(苧/저)를 상중하로 가려 놓으시고 하질을 안아(包)드시었다 하니라
五十一 기유년 어느날 상제께서 쇠말뚝 한아름을 만드시더니 공우에게 명하시기를 갑칠에게 지워가지고 원평으로 가자 하시거늘 공우는 명하시는대로 갑칠을 불러 쇠말뚝을 지게에 지워가지고 상제님을 따라가니라
원평장에 가시더니 장 마당에 쇠말뚝을 친히 박으시기에 공우 물러가로되 무슨일로 쇠말뚝을 박으시오니까 하니,응 쇠말뚝에도 기운만 붙이면 되느니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정 없으면 쇠말뚝이라도 뽑아 쓰면 되지 않으랴 하시였다 하니라
五十二 어느날 가라사대 너희들은 오직 성경신을 다하여 믿음을 굳게 갖으라.상재(上才)는 병든자를 바라만 보아도 낫을 것이요
중재(中才)는 병든자를 손(手)을 써야 낫을 것이요
하재(下才)는 주문을 읽어서 병든자를 낫게 하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五十三 하루는 종도들을 둘러 앉히시고 차경석에게 명하여 종이 스물넉장으로 책을 두권 매게하시어 손으로 먹을 묻혀 책장마다 찍으신후 가라사대,이 책은 대보책(大寶冊)이요 이는 마패를 찍었음이라 하시고 또 한권의 책에다 의약복서종수지문(醫藥卜筮種數之文)이라 쓰시고 가라사대 "이는 진시황의 해원도수이니 진시황은 통일천하를 했으면서도 분서갱유로 악명만 남었으나 의약종서(醫藥種書)를 남겨서 끼친바 공이 있으니 이 한권은 신원일의 집 뒷산에 묻고 또 한권은 황응종의 집 뒤 후원에 묻어라"하시더라
五十四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써서 소화하시니 이러하니라
人生於天地爲人子而忘其父母可乎(인생어천지위인자이망기부모가호)
基礎(기초)
棟梁(동량)
背恩忘德萬死身(배은망덕만사신)
五十五 또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天地陰陽人不識 故 人之陰陽天地隱之
大丈夫大丈婦 有事中無事 無事中有事
五十六 어느날은 공사를 보시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火德之王 炎帝라
신농(神農)씨는 시교경(始敎耕)하고 상백초(嘗百草)하여 농사와 의약을 천하에 전하였으되 세상은 신농씨의 공덕을 잊고 있으며 간혹 의원가(醫員家)에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 써붙여 놓았을 뿐이요,위수조어(渭水釣魚) 강태공(姜太公)은 주인이흥(周因以興)으로 천하가 부국강병되는 술법을 내어서 세상은 그를 본(本)하여 대업을 이루었으되 이에 그 공덕을 또한 잊고 다만 디딜방아를 만들면 그 동티막이로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강태공 조작(庚辛年,庚辛月,庚辛日 姜太公 造作)이라 써붙일 뿐이니 이는 보은의 도리에 합당치 못함이라.이제 해원을 爲主하여 제극천하(除剋天下)로 상생이화(相生理化)하려면 먼저 보은줄을 바루어야(正)하리니 이제 모든 신명들로 하여금 신농과 태공의 은혜를 보답케하려 하노라"하시니라
五十七 하루는 상제께서 구릿골 약방 마루에 남쪽을 향해 앉으사 오른손을 들어서 왼무릎을 치시고 왼손을 들어서 오른 무릎을 치시니 왼손을 드실때는 제비산 머리에서 번개가 일어나 수류개봉(水流開封)밑에 벼락을 치고,오른손을 드실때는 수류개봉(水流開封) 머리(峰)에서 번개가 일어나 제비산 밑에 벼락을 치니라.이와같이 무수한 벼락을 쓰시면서 무릎을 치실때마다 죄타 죄타 하시며 무릎을 치시니 천지가 자지러지고 산악이 무너지는것 같으므로 종도들이 넋이 빠젔더라.한참을 이와같이 하시다가 무릎치심을 그치시메 벼락도 또한 그치고 세상이 고요하니 종도들이 그제서야 정신을 수습하여 서로가 말없이 바라보다가 한 사람이 종도들을 불러내,조용히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기회로다.남들이 우리들을 보고 항상 요술에 속는다 말하니 오늘은 확인함이 어떠하뇨하메,모두들 그거 참으로
가하다하거늘 이로써 두패로 갈라서 한패는 수류개봉 밑으로 가보고 또 한패는 제비산 밑으로 가보니 참으로 벼락이 내려 수목이 타고 찢기어 그 험한 참상이 이를바 없더라고 전하니라
五十八 하루는 종도들을 거느리고 금산사 밑을 지나실때 건너편 삼밭에 삼(麻)을 치고있거늘 그를 보시고 삼밭에 건너가시더니 삼 한아름을 안아다 놓고 제일 큰 상대를 추려 놓고 다음은 중대를 추려 놓고 나니 하대는 한줌쯤 남는지라.그 하대를 묶어서 손에 드시고 발로 탁 차시며 가라사대
"이것들이 내 자식이니라" 하시더라 하니라
五十九 무신년(戊申年)겨울에 정읍 대흥리에서 서너달 동안을 계시면서 여러가지 공사를 보실세 모든 공사를 고부인께 말씀하여 그 가부를 문의하신후에 승락을 얻어서 공사로써 처결하시었다 전하니라
六十 또한 진지를 잡수실때도 고부인께서 수저를 먼저 드시게 하시고 다음에 수저를 드시며 담뱃대에도 불 붙여 주신후에 담배를 피우시며 일체 범사를 고부인이 하신후에 행하시더라 하니라
六十一 어느날 문공신에게 가라사대 잠든 개가 일어나면 산호랑이를 잡는다는 말이 있나니 태인 숙구지(宿狗地)공사로 일을 돌린다(返)하시며 공사(公事)를 계속하시였다전하니라.
六十二 기유년(己酉年)와룡리에 사는 황응종이 구릿골에 가서 상제님을 뵈옵고자 하나 가지고 갈만한 봉증물(奉贈物)이 없어서 어찌할고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부엌에 닭의 횃대에서 암닭이 날아와 응종의 머리를 덮치거늘 엉겁결에 잡아들고 있으니 문득 생각되기를 상제께 봉증(奉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거늘 그 길로 출발하여 구릿골로 와서 상제님을 뵈옵고나니 토방아래 닭을 보시고 가라사대 "황계(黃鷄)가 動하니 必有赤壁大戰의 조짐(兆)이라.어서 관운장을 불러 화용도(華容道)의 목을 단단히 지키라 하리라"하시고 일어서시어 멀리 바라보며 어수(御手)를 흔드시니 동남풍이 일어나더라.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그 닭을 수증(水蒸)하여 종도들과 같이 잡수신 후 처음으로 종도들에게 운장주를 써서 읽히시니 이러하니라.
雲長呪(운장주)
天下英雄 關雲長 依幕處 近聽天地 八位諸將 六丁六甲 六丙六乙 所率諸將
천하영웅 관운장 의막처 근청천지 팔위제장 육정육갑 육병육을 소솔제장
一別屛營邪鬼 唵唵喼喼 如律令 娑婆詞
일별병영사귀 엄엄급급 여율령 사바하
註 이왕에 운장주의 구절을 쓰고 보니 생각이 나서 진액주에 대한 말을 조금 할까 하니라
侍天地家家長世 日月日月 萬事知
侍天地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 願爲大降
明德觀音 八音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三界解魔大帝神位 願趁天尊 關聖帝君
라 써서 읽으며 말하기를 원진천존관에서 띄고 성제군이라 읽어야 한다하며,만약 붙여 읽으면 관운장이신 관성제군이 되니 띄어서 읽으라 그래야 천존관의 성제군으로 읽어져서 성제군이신 상제님을 찾음이라 주장들 하는바 이는 그릇된 바이니라
제삼장 임운조화(任運造化)
一 정유년(丁酉年)으로부터 조선팔도를 유력하시고 경자(庚子/단기 사천이백삼십삼년)년에 고부 본댁으로 돌아오시어 가라사대 이사를 하리니 준비하라 하시며 이삿짐을 챙기시니,
마을 사람들이 이삿짐을 저다주려고 모여들어 한짐씩 짊어질세 참으로 성의를 다하는 사람은 일찍와서 짐도 매고 그중에 중요한것을 자기가 소중히 저다 주려고 잘 매서 짊어졌으나 성의없는 사람은 체면상 할 수 없이 오되 늦게오니 이미 이삿짐은 다 짊어지고 없거늘 짊어저다줄 이삿짐이 없다고 핑계하며 섰으려니까 상제께서 가라사대 짐이 없는 사람은 두엄자리에 두엄이라도 퍼서 짊어지라고 명하시거늘 짊었다 떠들던 사람이 두엄을 퍼서지고 따라 가더라.객망리를 떠나서 말목장터(현이평면소재지)에 이르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우리 여기서 쉬어가자 하시거늘 모두 지게를 받치고 한참동안 쉰뒤에 여러사람을 향하여 가라사대 그대들이 짊어진 대로 자기집으로 돌아가서 그 물건들을 요긴하게 쓰라하시며
나는 이길로 이사를 작파하고 가노라하시고 어디론가 떠나시니 짐을 저다주던 마을 사람들이 하는수 없이 자기집으로 짊어진 대로 돌아가더라
이때에 가볍고 허름한 물건을 골라서 지고 가던 꾀많은 자들이 말하여 가로대 같이 한짐씩 짊어졌거늘 나는 쓸모없는 것뿐이라 후회하더다 하니라
解:우리들도 오늘날 짐을 지고 상제님을 따라 가는바 성의가 있고 없음이
그때(其時) 그일(其事)과 같아서 다음에 자기 찾이가 얼마나 될는지 각자 짊어진대로 찾이할 수 밖에 없으리라
二 신축년(1901년) 유월 십육일 고부로부터 모악산 대원사에 당도하시니 그 절 주지는 강원도 금강산에 있다가 열세살에 대원사에 이르러 성장하여 이제 주지가 되어있는 오십여세의 단정한 중으로서 반갑게 맞이하더라
상제께서 칠성각을 가리키시며 가라사대 "내가 저곳에서 머무르고자 하니 그대는 허락하겠느뇨" 하시니 주지가 승락하거늘 이로부터 대원사에 계시게되어 주지 박금곡의 시봉이 시작되었으며 정남기(상제님의 처남)의 아들 정영태(鄭榮珆)가 쌀을 짊어저다 드리니라(永學으로부터 부채를 뺏은 사람이니라)
三 대원사 칠성강에 계실세 하루 밤에는 폭풍우가 크게 일어나서 정신차릴수 없거늘 금곡이 밖을 내다뵈 칠성각 위 공중은 환한데 칠성각에서 상제님의 호령소리만 크게 들리고 있을 뿐이더라.이때에 워낙 폭풍우가 심함으로 그대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니 칠성각에 봉안된 진묵대사의 영정이 마당 바닥에 떨어져있고 칠성각 建立坐向이 바뀌어 있는지라.금곡이 깜짝 놀라 상제님께 칠성각의 방향이 바뀌어진 사실을 고하니 그러하더냐 하시였을 따름인데 대답하시는 순간 칠성각의 좌향(坐向)이 원상대로 바로 놓여져 있더라 하니라
四 하루는 금곡을 부르시더니 엽전 열푼을 주시면서 술을 사오라 하시거늘 사다 올리니 한참 후에 또 술을 사오라 하시거늘 이르시는데로 술을 사다 올리니 또 한참 후에 부르사 술을 사오라 하시니라
금곡이 속으로 불평하기를 유월 난방염천(暖房炎天)에 무더위를 무릎쓰고 오리(五里)가 넘는 곳까지 달려가서 술을 사다 드리는 고생을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하루에도 수삼차 술 심부름을 시키신다고 생각했더니
그 다음에는 엽전 너돈(四錢)을 주시며,술을 사오라 하시거늘 금극이 속으로 진작에 그러하실 일이지 하며 내려가 술을 사들고 오면서 이와같이 한꺼번에 사다놓고 잡수시면 오직하나 편한가 하며 바위 옆을 도는 순간
에 술병을 부딪쳐 깨지니 남아있는 술이 엽전 열푼 어치밖에 아니 남았더라.하는 수 없이 상제님께 사실대로 고하니 책망치 아니 하시니라
다음부터는 전과같이 엽전 열푼씩만 주시거늘 받아 들고 내려가며 생각하되 심부름 길이 열푼 길이로다 하고,그후로는 하루에 여러번 심부름을 시키셔도 조금도 불평한 생각을 내지 아니하였다 하니라
관운장의 역조봉호(歷朝封號)가 있으니 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노라
漢 獻帝 建安六年 受封 漢壽亭侯
한 헌제 건안육년 수봉 한수정후
後主 景耀三年 諡 壯繆侯
후주 경요삼년 시 장무후
隨 開皇二年 勅封 忠惠公
수 개황2년 칙봉 충혜공
唐 儀鳳元年 六祖建刹玉泉山立爲伽藍之神
당 의봉원년 육조건찰옥천산립위가람지신
元 元歷八年 加封 顯靈義勇武安英濟王
원 원력8 년 가봉 현령의용무안영재왕
明 萬歷四十二年 宮中單刀伏魔十一月十一日
명 만력사십이년 궁중단도복마십일월십일일
勅封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칙봉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
五 어느날 금곡이 가로대 이 절의 감나무는 무슨 까닭으로 싱싱하게 살아
있으면서 감 한개가 열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하며 스스로 군담(窘談)을 하더라.곁에 계시던 상제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감나무는 성하면서 감이 열지 않음은 필시 괴변이 아니더냐.모든 일에는 곡절(曲切)이 있느니라.이는 지난날 진묵이 뒤에 있는 무량암(無量庵/水王寺)에서 공부하고 있을때 이곳을 오르내리며 밥을 얻어 먹더니 진묵이 공밥(空飯) 얻어 먹는 것을 싫어한 중들의 괄시(恝示)가 심하여 진묵의 식한(食恨)이 붙은 연고이니 도인의 괄시(恝示)로 인한 식한(食恨)이 수백년을 가는구나"하시며 "내가 명년부터는 감이 잘 열리도록 하여 주리라"하시였을 뿐인데 그 다음해 부터는 감이 넘치게 열렸다 하니라
六 하루는 무슨 말씀끝에 우연히 금곡(錦谷)이 말하기를 "내 평생 이절에 그냥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는데"하고 군담(窘談)을 하니 곁에 앉어계시던
상제께서 "그렇게 하여주마"하시고 승락하시는지라
금곡이 거듭하여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장수하는 것이 좋을 지니 나는 아흔한명(九十限命)을 살았으면 하고 군담이 나오니,또 가라사대 "그도 그렇게 하여주마"승낙하시고 이어 가라사대 "그대가 살다가 죽을때에는 본래 가지고 있는 본병이 도저서 죽으리로다"하시더니 과연 죽을때까지 한 평생 대원사 주지로 있었으며 아흔살(九十)먹던해에 젊어서 다친 허리에 병이 도저서 죽었다 전하니라
七 하루는 식전에 금곡을 부르시더니 분부하시기를 "이 길로 고부 객망리
나의 집을 다녀오라.내 집에 당도하여 주는 대로 가지고 오는 도중에 떼어보지 말고 당일로 돌아오라"명하시거늘 금곡이 아침밥도 아니 먹고 식전에 떠나며 생각하되 "먼 길을 떠나는 데 여비 한푼도 아니 주시며 다녀오라 하니 참으로 답답한 양반이로다" 하고 길을 재촉하며 어림잡아 십리쯤 왔으리라 생각하며 걷다보니 문득 황소리(黃牛里) 동네를 지나려 할 즈음에 느닷없이 김대연(金大連)이 나타나더니 대사(大師)오래간만이요 하면서 자기집으로 안내하더라.따라가보니 간밤에 자기의 친기(親忌/부친의 제사)를 모셨다 하면서 술과 밥을 가져다 주거늘 금곡이 생각지도 않은,아침을 잘 대접받고 길을 나서 고부 본댁을 찾아가더라.어느듯 객망리
에 찾아들어 정(鄭)부인(夫人)을 뵈옵고나니 한 봉서(封書)를 주시거늘
그 봉서(封書)를 받아다가 상제님께 올려다 하니라
八 계묘년(癸卯年/1903년)여름에 전주 김병욱이 세금독리(稅金督吏)로 남원에 가서 있더라.그때에 조정은 친로파(親露派)가 득세할 때이므로 병욱을 잡아들이라는 명(命)이 떨어지니 이는 병욱이 전날에 친일파(親日派)
박영효(朴泳孝)의 무리들과 상종(相從)하고 있었으므로,그들과 같은 당파로 연루되어 조정에서 김병욱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한양으로부터 많은 순검대원들이 병욱을 잡으러 올세,상제께서 미리 알으시고 남원에
행차하사 병욱을 데리고 남원성(南原城)밖으로 나와 가죽신을 벗기고 짚신을 신게하신후 앞서 걸으시니 병욱은 따를 뿐이더라
어느덧 병욱의 선산 밑에 이르러 쉬시며 가라사대 "그대의 선산으로 가는 길이라 하더니 선산은 어디쯤이뇨?"
대답하여 가로대 "저곳이로소이다"하고 병욱이 자기의 선산임을 알려드리니,물으시기를 "그대의 선산의 혈명은 무엇이라하느뇨?"
"와우혈이라 하나이다"하고 아뢰니
가라사대 "와우형일진데 반드시 소(牛)의 울음소리가 나야하리라"하시며 쉬시더라
이때에 산 밑에서 소 우는 소리가 들리거늘 병욱이 가로대 "저 밑에서 소우는 소리가 들리나이다" 하고 아뢰니
가라사대 "먼 데서 우는 소리는 소용이 없느니라"하시고 계시더니 한참 후에 한 사람이 소를 몰고 병욱의 선산 밑을 지나가더라
이때에 문득 큰 소리로 소가 울거늘 가라사대 "이제 혈음(穴陰)이 동(動)함이로다"하시며 병욱을 거느리고 재실(祭室)로 들어가시니라.
九 계묘년(癸卯年/1903년)에 친제(親弟)영학(永學)이 구릿골에 와서 문후(問候)를 드리며 가로대 "소제(小弟)도 도술(道術)을 통하도록 하여주소서"하며 또 전과같이 소원(所願)하니,상제께서 부득하여 부채에다 학(鶴)한쌍을 그려서 영학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 부채를 부치면서 칠성경을 읽되 칠성여래 대제군으로부터 시작하여 무곡파군까지만 읽고 이어서 대학을 읽으면 도술을 통하리라 하시니라
영학이 부채를 가지고 귀가하다가 김제군 초처면(草處面)내주평(內住坪)사돈댁(정남기의 집)을 찾아가니 정남기의 아들이 부채를 보고 탐내어 보여달라 하거늘 영학이 주었더니 가지고 돌려주지 앉는지라.부채를 얻은 사연을 말하며 돌려달라 하되 종시 주지 않으니 할수 없이 부채를 빼앗기고 그 길로 집에 돌아가 여러가지 술서를 읽고 있더라
十 갑진년(甲辰年/1904년)2월에 칠보(七寶)굴치(屈峙)에 계실세 영학에게 기별하여 "대학을 읽으라"명하셨으나 종시 듣지 아니하고 황주죽루기(黃州竹樓記)와 엄자능묘기(嚴子陵廟記)를 읽는다 하거늘 들으시고 탄식하여 가라사대 "영학을 미구(未久)에 못 보게되리로다"하시며 이르시기를 "죽루기(竹樓記)란 죽는다는 말이니 대죽(竹)을 바꾸면 죽을(死)대란 말이며,묘기(廟記)라 하는것은 죽은 자를 위한 묘당의 글이 아니더냐" 하시고,글을 써서 이도삼에게 전하라 하시니,그 글에 가로대
骨暴砂場纏有草하고 魂返故國弔無親이라 하였더라
영학은 이글을 보고도 깨치지 못하고 있더니 곧 병들어 위중하다 전하거늘 본댁으로 돌아오시어 영학의 입에다 엄지손가락을 대시고 가라사대
내가 이 손가락을 떼면 곧 죽으리라 그러니 너는 마음에 있는바를 다 털어 말하라 하시니 영학이 정신을 차려 양친께 유언하거늘 인하여 엄지손가락을 떼시니 명(命)이 지더라 하니라
十一 어느날 상제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 婦女에게 인절미떡을 준비해 놓고 상제님을 모시고 대접하려 하니 그 사람과 같이 그의 집으로 가시어 토방밑에 서시더니 가라사대 나에게 인절미를 대접하려면 해놓은 그대로 다 들어다 이 앞에 놓으라 하시거를
주부(主婦)가 그 말씀을 듣고 함지에 담은 인절미떡을 전부 가져다 토방에 놓아 드리니
이때에 상제께서 두손으로 인절미를 들어 어깨에 넘겨 허공으로 연신 던지시니 주인이 깜짝 놀래어 마당을 뛰놀며 허공으로부터 떨어지는 인절미를 받으려고 하드라
그러나 땅바닥에 떨어지는 인절미는 하나도 없으므로 한참을 헤메다가 멍하니 서서 구경만 할뿐이더라.이와같이 한참 동안 인절미를 주서 던지시니 한 함지의 인절미가 허공으로 다 날아갔드라.주인을 돌아보시며 가라사대,"너희 인절미를 참으로 잘 대접받았노라" 칭찬하신후 돌아서 가시드라고 전하니 후인들은 이 공사의 뜻을 모르드라
十二 갑진년(甲辰年/1904년) 8월 상제께서 익산군 萬中里 황사성(黃士成)의 집에 이르시니 어떠한 사람이 노기를 띠고 있다가 문을 홱 닫고 밖으로 나가더라
문을 세게 닫는 바람에 벽이 무너지니 이 광경을 보시고 형렬을 데리고 정춘심의 집으로 가시어 계시더라
그날밤에 황사성 부자가 정춘심의 집으로 상제님을 찾아와 뵈옵고 아뢰어 가로대 오늘 낮에 젊은 사람은 전주 용진면 용바위 황참봉(黃參奉)의 자제로서 전날에 황참봉에게 빚을 졌더니 황참봉은 죽고 그 아들이 빚 갚기를 독촉하며 만약 갚지 않으면 경무청에 고소하여 옥에다 넣고 받으리라하니 이를 어이 하면 좋으리까 이 화액을 면할 길이 없아옵니다 하고 끌러주시기를 애걸하니 가라사대 벽이 무너짐은 이 일이 풀릴 징조니라 하시며 여러 법을 쓰시어 황사성의 관액을 풀어 주시니라
十三 안필성이 동학 혁명군을 따라 청주까지 출전하였더니 동학군이 패전하여 죽음의 위기에서 형렬과 헤매다가 다행히 상제님의 구출을 받아 전주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심으로 이로부터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패망한 동학은 뜻이 없고 야소교(耶蘇敎/예수교)를 따르더라
그리하여 야소교 권사로 있으면서 야소를 독신(篤信)할세
상제께서 항상 가라사대 그대가 신봉하는 야소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그대는 천수(天壽)를 다 누리지 못할지언정 그대의 후손들은 자자손손이 영화를 누릴 것이니라
만약 그렇지 않고 계속 야소를 신봉하면 그대는 백수(百壽/91세부터 백수라함)를 누릴것이나 그대의 후예들은 미미(微微)하며 손자에 이르러 참혹함이 겹치리라 하시더라
안필성은 생전에 세 아들의 손(孫)이 모두 비명으로가 가문에 참화가 미치니 필성이 탄식하여 가로대 내가 증산 생전에 그분 말씀을 듣지 아니함이 오늘의 가환(家患)의 근본이 되었음이로다.이에 이르러 무엇을 원망하리요하며 탄식부지(歎息不止)하더라 전하니라
十四 어느해 봄 식전에 안필성이 씨나락을 오장치에 담아서 짊어지고 구릿골 앞들(현 금평저수지)로 나가는데 상나무쟁이(현 동곡입구) 주막거리에 이르니 상제께서 홀로 주막에 앉아 약주를 잡수시다가 안필성을 보시고 부르시거늘 필성이 대답하여 가로대 씨나락을 뿌리려고 바뻐서 못 들어 가나이다하며 지나치려 하니 친히 나오시어 길을 막아 서시며 가라사대 "나와 더부러 술한잔 하자는데" 하시니 필성이 가로대 "해뜨면 바람이
일것이라.그러면 씨나락을 고루 뿌리기 어려우므로 해뜨기 전에 뿌리려하니 다음에나 술을 주사이다"하고 사양하니 지겟다리를 잡고 "이리 들어오게"하시며 당기시니 지게가 뒤집히면서 씨나락 오장치가 땅에 나동그라져
찰볍씨 메볍씨가 뒤범벅이 되어 흩어지니라
그래도 손목을 잡고 끌어들여 주막에서 술을 강권하시니 개고기 안주로 대취하도록 마시고 해질 무렵에 씨나락 오장치를 버려둔체 주막을 나서며
안필성이 가로대 "금년 농사는 이제 다 지였다"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염려마라.씨나락은 내가 진즉에 논에다 뿌려 놓았느니라"하시더라
안필성이 다음날 새벽에 잠이 깨여 생각해보니 참으로 낭패로다 생각하고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주막거리를 나가보니,오장치도 없고 지게도 없으며 길바닥에 엎질러진 나락씨도 한알 없으므로 하릴없이 모자리판으로 가보니 씨나락이 뿌려져 있는데 그 간격이 일정하여 자기는 그와같이 고르게 뿌릴수 없겠더라.그제서야 한숨을 쉬고 돌아오며 생각하니 큰 오장치에는 메나락씨를 담았고 작은 오장치에는 차나락씨를 담았는데 섞어서 뿌렸을터이니 금년은 찹쌀이 섞인 밥을 먹겠구나 하며 술마신 일을 후회하더라
그러나 그해 가을 나락이 익을 때 보니 검정 차나락(속칭 돼지차나락)만
논한 귀퉁이에 심어져 있더라
필성이 뒷날 여러 사람들에게 가로대 흘린듯하여 그해 일년 동안을 그 쌀
로 찧은 밥을 먹으며 생각해 보면 내가 과연 쌀밥을 먹는것인가,모래를 먹으면서 증산에게 홀려있나 하고 생각한 때가 많았다고 이르더라
十五 어느해 여름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안필성이 방문을 열어놓고
밖에 내리는 비를 보고 무료히 앉았는데 뜻밖에도 상제께서 억수같은 비를 맞으시며 들어오시니 그 모습이 흡사 물에 빠졌다 나온것 같더라
안필성이 깜짝 놀라 일어서며 가로대 우장도 없이 폭우를 불구하고 오시니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시니까? 속히 방으로 드소서하며 맞으니 상제께서
방에 드시어 도포를 벗으시는데 도포에 물 한방울도 젖지 않으셨더라.마당으로부터 들어 오실때 물이 줄줄 흐르던 옷에 물 한방울 없음을 보고 더욱 유심히 살피나 의관이 깨끗하여 비맞은 흔적도 없으시더라 전하니라
十六 어느날 안필성이 함열(咸悅) 밑 함라(咸羅)에 사는 김참봉을 방문하고 집으로 오다가 금구(金溝)에 이르러 주막에서 술 한잔을 마시고 쉬어서 집에와 보니 담배 쌈지와 담뱃대를 깜박 잊고 주막에다 두고 왔거늘 하는 수 없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 앉았으니 이십리 밖에 두고 온 담뱃대 생각이나서 아무 일도 못하겠더라
이때 문득 생각나기를 상제께서 평소에 필성에게 가라사대 "그대가 나를 보고 싶거나 또 일상생활에 있어서 나에게 특별히 청할 일이 있으면 웃목에 볏짚이나 백지 한장을 깔고서 청수 한 그릇 떠다 모시고 내 이름을 세번 부르며 원하는 바를 고하면 그대의 소원이 이루어지리라"하시던 생각이 떠오르거늘 필성이 그대로 청수를 모시고 고하였더니 금구 주막에 두고온 담배쌈지와 담뱃대가 문갑(文匣)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더라하니라
(안필성은 야소교인이면서 술과 담배를 하였음)
그후로는 안필성이 상제님을 뵙고 싶거나 뵈올일이 있을 때는 그와같이
방법을 간혹 사용했다고 필성 자신이 수차 말하더라
十七 어느날 상제께서 태인을 행차하시는데 안필성이 동행하게 되었더라
도중에 비를 만나게 되어 걱정하니 쓰시고 가시던 삿갓을 벗어들고 허공을 향하여 세번 두르신 후 가시니 태인까지 비 한방울 맞지 않고 가시었다 하며,그후로도 비오는 날 길을 가실때 비를 맞지 안는 이적(異蹟)을 안필성이 많이 목격(目格)했으며 또 추운날 상제님을 모시고 동행하면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하니라
十八 어느해 봄에 안필성이 구릿골 논에서 논일을 하고 있는데 상제께서 임어하사 가라사대 그대는 피곤하지 아니하냐 논일은 나중에 하고 나하고 방죽에 가서 고기잡아 안주삼아 술 한잔하세 하며 권하시니 필성도 그리할 양으로 논에서 나와 방죽으로 따라가니라
논 옆에 있는 방죽에 가시더니 담뱃대를 방죽에 담구어 낚시삼아 고기를 낚어 내시는데 담뱃대를 방죽에 담그었다 드시면 고기가 물려 나오고 또
방죽에 담그었다 드시면 고기가 물려 나오고 하여 그 고기로 안주해 술을
잡수셨다 하며 그 후에도 그와같은 이적을 많이 보여 주시었으며 또는 담
뱃대로 날피리를 낚어서 도로 물 속에 놓아 주시는 적도 많이 목격했다하니라
十九 또 어느날은 상나무쟁이 술집에서 술을 잡수시고 필성과 담소하시다가 멍석위에 누우시며 가라사대 "내가 지금 물위에 누워 있노라.저기 나무가지까지 물이 찰것이며,이 물에 배도 뜨리라"하시더니 과연 그곳에 금평저수지를 막으니 말씀하신지 오십오년되는 임인년(단군기원 사천이백구십오년/1962년)동짓달에 완공하여 그 나무가지가 물이 출렁일때 마다 달듯 말듯하고 누워 계시던 주막마당은 완전히 물 속으로 침수되고 마니 이를 본 뒷 사람들이 말하기를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다.어찌하면 물차는 지점까지 알 수 있으리요 하며 감탄부지(感歎不止)하더라
二十 어느해 여름에 상제께서 안필성 가에 임어하사 술을 잡ㄹ수시다가 가라사대 날씨가 가무니 해갈(解渴)이나 시키고 쌍 무지개나 구경시켜줄까하고 물으시거늘 필성이 대답하여 가로대 그리만 할 수 있다면 오직이나 좋으리까 하고 아뢰니 그렇다면 냉수 한 그릇을 떠오라 이르시거늘 이르시는 대로 대령하니 상제께서 어지(御旨/손가락)에 물을 찍어 가지고 주문을 외우시며 공중을 향해 퉁기시기를 세번하시니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면서 소낙비가 쏟아져 순식간에 빗물이 마당을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할 정도로 내리어 저 멀리 냇물 소리가 요란하거늘 이만하면 하시면서 손을 들어 극락산(極樂山)쪽으로 휘 젓으시니 일시에
소낙비가 변하여 보슬비로 내리며,극락산으로부터 용방골(龍房谷) 골짜기에 꽂쳐서 쌍무지개(雙虹)가 황홀하게 떠있어 그를 구경했다 하니라
二十一 어느날은 안필성이 생각하기를 항상 술을 많이 얻어 먹었으니 상제님을 만나면 이번에는 내가 술을 대접하리라 하고 생각했더니 느닷없이 만나지거늘 필성이 가로대 오늘은 내가 술을 대접하리니 팟정(太亭)이 주막으로 가사이다 하고 아뢰니 가라사대 그대가 술을 사겠다면 안주는 내가 작만해야 하리라 하시며 장대에 새끼를 매시더니 못을 뽑아 새끼에 매달고 논으로 가시여 논 물코에다 못을 담그시더라
조금후에 장대를 채시며 "었따 이놈 크다"하시기에 필성이 바라보니 큰 붕어가 물렸거늘 필성이 받아 뀜을 만들려고 뀜꽂이를 찾아 다니면서 보아하니,못 끝을 논물에 담그고 잠시만 있다 장대를 들면 큰 붕어가 물려 나오고 또 못(釘)을 물에 잠시 담그었다 장대를 채치면 붕어가 물려 나오고 하여 연신 고기를 낚아 내시며
필성에게 가라사대 "낚음 보다 뀌임이 더디더냐" 하시였다 하니라
이리하여 필성이 술을 대접하며 붕어회를 먹어보니 여전한 물고기 맛이로데 넌지시 물어보기를 "이것이 필시 붕어회오니까?"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허허 네입은 고기맛도 모르더냐"하시더라 하니라
二十二 필성에게 가라사대 너는 장차 나의 제사(祭祀)를 받아 먹으리라
하시였다 하며 필성은 치성에 와서 주효를 대접받을때 항상 말하여 가로대 증산이 나를 보고 내 제사를 받아 먹으리라 했으나 그때는 건성으로 들었을뿐이더니 이와같이 여합부절(如合符節)할 줄이야 누가 짐작했으리요.진실로 증산은 만고(萬古)에 드문 신인(神人)이라
내가 우둔하여 옆에다 천신(天神)을 두고 그때는 신기하다 생각했을뿐 다른 생각없이 지냈으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나는 박복한 사람이니라.그대들은 복인(福人)이니 잘 믿으라하며 교인(敎人等)들의 신심(信心)을 독려했다하니라
二十三 안필성은 상제님 재세시(在世時)에 시봉한 일이 없고 종도가 아니로되 멀리 하지 않으시고 항상 친구와 같이 대하시며 만나면 농담을 하시고 지내시니 필성이 경오생(庚午生)으로서 한살 위더라
농하실때 간혹 이르시기를 "나하고 혜어진 후 오십년만에 만나세" 하시였으니,이제 증산께서 오십년 만에 오시리라 하더니 50년되던 신축년(辛丑年 단군기원 사천이백구십사년,1961년)음력 정월에 안필성이 사망하니라
二十四 갑진년(甲辰年/1904년)에 김덕찬(金德贊)이 전주에서 장보기를 해 가지고
돌아올세 용머리고개에 이르니 주막에 상제께서 계시는지라.반갑게 인사를 올리니 "무슨 일로 왔느뇨?"하시고 물으시거늘 "선모(先母)의 면례(緬禮)를 하려고 장보기를 해 가자고 오는 길이올시다" 하고 고하니,가라사대,"그대의 선모(先母)의 면례계획은 폐기되리라.선천에는 백골을 묻어서 장사(葬死)했으나 후천에는 불매백골이장지(不埋白骨而葬地)니라 하시더라.덕찬이 난처해 하며 집으로 돌아와서 예정대로 면례를 행할세 지사(地師)가 점혈(點穴)한 곳을 파니 뜻밖에 큰 개미집이 나오거늘 다른 곳을 점혈하여 파니 또 큰 개미집이더라
비로소 용머리 고개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 하릴없이 면례를 작파(作破)하고 초빈 하였다 전하니라
二十五 을사년(乙巳年/1905년) 4월에 전주 용머리 고개(龍頭峙)에서 공사를 보실세 일진회원(一進會員)과 아전(衙前)들이 서로 다툼에 일촉즉발이거늘 돈 엿냥으로 행인에게 술을 사주시면서 종이에 글을 써서 문고리와 문돌쩌귀에 연결하시어 일진회(一進會)와 아전(衙前)간에 화해되였으나
그후로도 관부(官府)에서는 계속하여 일진회원을 검속(檢束)하는바 어느날은 일진회원 한사람이 순검에게 쫒겨서 상제님계시는 주막으로 숨어들거늘 그를 보시고 가라사대 "그대들이 이같이 고난을 겪으며 하릴없는 지경에 빠저드니 무슨 죄가 있음이더냐"일진회원이 대답하여 가로대 "저희들이 무슨 죄가 있으리까,아무 죄도 없나이다"그말을 들으시고 불상히 여기시어 가라사대 "그렇다면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관부의 검속을 면하게 하여 주리라"하셨을 따름이요 특별한 법을 쓰신바 없으나 그후로는 순검들이 일진회원을 보아도 검속하지 않고 놓아두니라
二十六 병오년(丙午年/1906년)2월에 상제께서 종도들을 데리고 서울에 가시어 여러날 계시며 공사를 보실세 관헌들이 長安을 탐색하더니 하루는 상제계시는 여숙(旅宿)에 관헌(官憲)이 이르러 조사를 할세 이때에 관헌들의 태도가 매우 불손하더라
상제께서 종도들을 가리키시며 가라사대 "저 사람들과 한양 구경 왔노라"하시며 관헌들에게 술을 사주시고 그들에게 훈계하여 가라사대 "그대들도 조선사람이요,나도 조선사람이니 우리는 동근(同根)이라.하등의 혐의가 있으리요"하시니 그들이 수긍하여 두말않고 돌아가더라
장안에 여러날 계시니 비용이 적지않은지라.종도들이 속으로 걱정을 하거늘 미리 알으시고 상제께서 종도들을 불러 가라사대 "그대들이 여비가 부족함을 걱정하느뇨.내 좋은 계책을 세우리라"하시며 오의관(吳議官)의 시료(施療)를 베푸시니 오의관이 천냥 폐백을 받쳐 비용이 넉넉하더라
註 의관(議官): 이조 고종때 새로 만든 중추원의 벼슬
二十七 정미년(丁未年/1907년)초가을에 모든 종도들이 모여서 술을 대접할세 가라사대 "앉은 순서대로 시조를 부르라"하시니 차례대로 부르더라
이때에 시조를 못하는 사람은 막노래도 부르며 순서가 돌아가던바 안내성
은 태인 대각교(大覺橋)에서 뵈옵고 시봉을 시작한 후로 지금까지 방에
들라는 명이 계시지 않으므로 공사에 참여치 못하고 밖에만 있더니 그날은 안내성을 처음으로 방에 들어 앉히시므로 내성은 황공히 앉았더라
급기야 안내성의 차례가 되어 전에 듣고 배워둔 임천가(林泉歌)를 하였더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내성은 촉석루를 언제 다녀왔느뇨"하시니 내성은 깜짝놀라 속으로 생각하기를 '진실로 선생께서는 신인이시로다.내가 왕년에 촉석루에서 이 노래를 배운줄 어찌 알 수 있으리요'하고 탄식 했다하더라.이때에 박공우는 종도들의 시조 솜씨를 들어보니 모두가 시조 한가락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고 경석 형렬 광찬등이 평시조를 흉내낼 따름이요,그외는 막노래도 제대로 못 부르니,속으로 생각하기를 옳지 참으로 좋은 기회로다.내가 본래에 문자를 배우지 못한고로 무식하여 중인(衆人)
의 이목을 끌지 못하므로 항상 열등을 면할 바 없더니 오늘은 내 시조로써 방중(房中)의 이목을 집중하여 앞으로 동료들간에 월등함을 인증받고 또한 상제께서도 내 시조 솜씨를 들어보시면 앞으로는 대우가 다르리라 하며 고대(苦待)하여 차례를 기다리더라.순서대로 시조를 불러 급기야 공우의 옆 사람의 시조가 끝나고 공우가 시조를 부르려할때 상제께서 "고만"하고 어수(御手/손)를 드시어 공우의 시조를 막으시며 가라사대 "공우의 시조야 들어 보나마나 잘 하니까"하시고 시조 부르던 일을 그치게 하시었다하니라
그후 종도들이 말하기를 시조를 부르게 하신 깊은 뜻을 모르겠으나 다만 알수 있는 바는 시조를 못하는 사람은 부르게 하시고 잘하는 사람은 못 부르게 하시니,이는 우열을 고루시는(均調)법인 듯 하다고 이르더라
二十八 구릿골 감자현의 집에 계실세 자현에게 가라사대 내가 고부 문공신의 집에서 수일간 대접을 받았으니 문공신을 네 집에 청하여 잘 대접하도록 함이 옳으리라 하시니 자현은 그리 하겠나이다 하고 대답을 올린 후
실행치 못했더라
그러던 차에 어느날 자현에게 가라사대 "내가 전날에 너에게 공신을 대접하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실행치 아니하였느뇨.이후로는 공신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대접하려 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하신더니 과연 그후로는 종시 못만났다 하니라
二十九 어느날 종도들과 더불어 행단(杏檀)에 이르사 가라사대 운암강 물줄을 돌려 김만경 하류에까지 여한 없이 하리니 이 물이 대한불갈(大旱不渴)이라 하시고 앞산을 가리키시며 저곳에 콧구멍이 둘이로다.후일에 저 콧구멍으로부터 물이 나와 불을 쓰게 되리라 하시고 종이에 무엇을 그리시어 불사르시더라 하니라.뒷날에 보니 여수(麗水)로 흐르는 섬진강 물을 막아서 운암(雲巖)에다 저수(貯水)하여 행단(杏檀)앞산을 뚫어 김제 만경
(金堤萬頃)으로 흘려보내며 그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을 하니 이것이 칠보(七寶) 수력 발전소니라
이 칠보 발전소가 생기므로 콧구멍 두개가 뚫리듯이 산에다 굴을 뚫어서 수통(水桶) 둘을 놓아 물을 뽑아다 발전하니 흡사 콧구멍과 같은 형상이더라
三十 무신년(戊申年/1908년)7월달 변산에 있는 개암사에서 개벽을 잠깐
보이실세 청수 한그릇을 떠놓게 하시더니,신원일을 무릎 꿇게 하시고 당(唐)성냔갑에서 성냥 세개비를 내어 청수 그릇에 넣으시고 손가락으로 청수를 찍어 부안(扶安)석교(石橋)방향으로 뿌리시니 문득 그쪽에서 검은 구름이 일어나더니 큰 비가 쏟아지고 개암사(開巖寺)에는 청명하더라
이때에 신월일을 보시고 "네 집에 다녀 오도록하라" 하시므로 원일이 명을 받고 곧 출발하여 자기집을 가보니 대홍수로 인하여 원일의 동생의 집이 쓸려가고 동생의 가솔들이 자기집에 모였음을 보고 돌아와 고하여 가로대 "참으로 천지의 재앙이 이다지도 참혹할 수 있아오리까?" 하며 슬퍼하거늘,상제께서 가라사대 "네가 개벽을 원하더니 어찌 이러하느뇨? 개벽이란 이렇듯 오히려 쉬운 바라.천하를 물로 덮고 우리만 살아서 복될바 있으리요
濟生醫世聖人之道요
제생의세성인지도요
災民革世雄覇之術이라
재민혁세웅패지술이라
천하가 웅패에게 시달려온지 오래로다.이제 만약 청수 한동이를 떠놓고
당성냥 한갑을 청수 동이에 넣으면 이제 천하는 물바다가 되리라
내개 상생의 도로써 천하만민을 교화하여 세상을 편안케하려 하노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네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라.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남 살릴 생각을 하여야 하나니,어찌 억조창생을 멸망케하고 나 홀로 잘 되기를 도모함이 옳으리요"하시니 원일이 이로부터 두려워하여 상제께 무례한 청을 못했다 하니라
三十一 대흥리에서 종도 십여인을 뒤에 세우시고 고부인과 앞서시어 대흥리 안통을 한바퀴 돌ㄹ고나서 백지에 글을 써 불사르신 후 가라사대 "지금의 이 공사는 포정공사(布政公事)니라."하시고 포정도수(布政度數)를 부치는 법을 여러가지로 쓰신후 가라사대 "훗날 두고보라.大興하리라"하시였다 하니라
三十二 어는 그믐날 임피(臨陂)이서방(李書房)의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게 되었더니 그 집 주인이 들어오며 가로대 "사방이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하며 "달빛이 있으면 오직이나 좋을까" 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달빛이 있으면 좋겠느냐"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대 "참으로 좋겠나이다"
하니,"그러면 달 보러 가세"하시며 주인을 데리고 성산(聖山)에 오르시어 "동쪽을 바라보라"하시거늘 이르시는 대로 동쪽을 바라보니 과연 둥근달
이 환하여 참으로 휘황찬란하더라.이로써 정신을 잃고 달만 바라보고 있으니,이때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달 보았느냐" "예 보았나이다.항상 이와같이 밝으면 오직이나 좋겠나이까"하니 대답하지 않으시고 "달 보았으면 돌아가자"하시며 앞서가시기에 따라와 집 앞에 이르니 또 다시 캄캄절벽이 되어 암흑이더라 전하니라
三十三 김경학에게 가라사대 "장차 오는 세상은 태을주로써 사람을 많이 건지리라 "하시더니,샹제께서 화천하신 후 종도들이 흩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메다가 경학은 훌륭한 선생을 찾아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다 경술년(庚戌年/1910) 이월에 집으로 돌아오니 자기의 노모가 급병으로 사망하여 모든 상구(喪具)를 준비하느라 경황이 없거늘 하도 망극하여 외쳐 울며 말하기를 "내가 만고에 없는 대신인을 따르다가 노모의 임종에 종신도 못하게 되었음을 내 어찌 일찍이 생각인들 했으리요"하며 대성통곡하다가 아무런 생각없이 전에 하던 습관대로 상제께 빌기를 "선생이시여,제자의 화악을 끌러주사이다."하며 우연히 태을주를 외우게 되었더라
염습을 해놓은 노모가 꾸물거리며 살아나거늘 이로써 생각해보니 "태을주로 세상사람을 많이 건지리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고 자기에게 신의(神醫)의 화권(化權)을 주심이라 생각하니 자신이 생겨 원근의 병자를 찾아 다니며 오직 태을주로서 병을 고쳐주니 경학을 세상에서 신의(神醫)라 부르더라
三十四 하루는 구릿골 약방에서 동구(洞口)를 가리키시며 가라사대 저곳에 물이 차서 못이 될 것이며 내가 출세할 때에는 금산사로부터 물 찬 못사이에는 너희들이 살지 못할 것이니라 하시더니 구릿골 동구(洞口) 수리개봉 밑을 건너 막어 지금의 금평(金坪) 저수지가 되니라
이로써 미루어 볼진데 금산사 밑 용화동 일대는 장차 사람이 살지 못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겠더라
三十五 어느날 종도들과 구릿골 어구에서 용화동을 굽어 보시며 저곳이 나의 기지라.일후(日後)에 인성(人城)이 쌓이라나하시니 병욱이 대답하여 가로대 너무 좁지 아니하나이까 하고 아뢰데 제비산(帝妣山)을 가리키시며 가라사대 저 산만 없애면 되지 않겠느냐 하시니 병욱이 놀래며 저와같이 큰산을 무슨수로 없애겠나이까 하고 아뢰였더라.그것은 쉬운 일이로다
하시며 가라사대 그 때에 벽력신장(霹靂神將)을 두엇 불러서 사방에 불칼질을 하면 뒤 빠져 나오리라.또 아뢰기를 빠진들 그 큰산을 어데로 옮길수 있으리까.응 김만경(金萬頃) 릉제(菱提)방죽에 옮겨 놓으면 꽉 찰 것이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三十六 어느날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들이 시루떡이 익는 이치를
아느냐 하시니 아무도 대답이 없거늘 가라사대 시루떡을 찔때에 짐이 시루 가상으로 부터 오르나니,그 떡이 가상으로부터 익어 들어가 시루떡 중앙된 곳은 맨 마지막에 익은 법이라.중앙만 다 익으면 시루의 떡 익히는 소임은 다한 바니라.이어서 가라사대 세상에 시루만큼 큰 그릇이 없나니
황하수 많은 물을 길어다 붓어 보아라.아무리 길어 붓어도 시루에 물을 못 채울 것이로다.이로써 미루서 볼진데 시루는 황하수를 다 먹었으나 오히려 차지 않으니 천하의 그릇중에 제일 큰 그릇은 시루니라 하시었다 전하니라.
三十七 상제께서 아드님과 따님으 두었던바 용자(容姿)가 뛰여나 어여쁘거늘 유덕안(兪德安)이 사랑하며 어여쁘다 칭찬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너무나 지나치게 사랑하지 마라. 장차 사람 노릇 못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아드님은 네살에 요절하고 따님은 열세살에 요절하였다 하니라
三十八 기유년(1909년) 본댁에 오시어 계실세 내촌(內村)을 가시었다 쌍정리(雙亭里)를 거쳐 오시면서 나무가지를 꺾어 휘초리를 만들어 드시고 좌우로 흔들어 저으며 거르시니 흡사 무엇을 몰고 가는 모습과 같드라
이와같이 저으시며 영택(永澤/石幻의 生父)의 집으로 가시어 영택을 보고 가라사대 "네가 나를 대신하여 내 집을 돌보자면 수고가 많으리라.고목에 장차 꽃 피리라" 하시고 본댁으로 오시니 가권이 뫃이는지라,돌아보고 가라사대 "每事不待自然來"라 하시였다 전하니라
三十九 고부 본댁에서 주야로 이레 동안을 도끼로 다듬잇돌을 두드리시며 가라사대 "금강석 나오니라 금강석 나오니라" 하시며 다듬이돌을 두드리면서 공사를 보시더니 후일에 강석환을 상제님의 후계로 양자 들이게 되어 석환의 이름과 금강석(姜石) 나오라는 공사가 如合符節하였으니 금강석(石)은 금강석(金姜石)인 까닭이요 도끼는 부(斧)니라
그때에 도끼로 두드리시던 다듬잇돌이 지금도 전한다 하니라
四十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천지화권도 일유설문이라 하시니 이 말씀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으니라
譯)天地化權 : 천지의 모든 造化權度도 一由舌門....말(言)이 出入하는 門이 한 혀(舌)로 좇아(由)이루어지느니라
四十一 상제께서 네폭의 병풍을 만드시어 從叔氏(聖會)에게 주셨든바 후일에 입계자(入繼子)석환(石幻/聖會氏孫)씨가 병풍이 노후하여 새로 만들려고 해체할때 병풍(屛風)속(裡)에서 글이 나오니 이러하니라
五家養白學이요
飛去月蘆夜라 하였으니 飛去月蘆夜(비거월노야)의 밤야(夜)자가 사람인(人)변(邊)이 없으므로 무슨 글자인지 모르나 사람인(人)을 붙이면 밤야자(夜)가 됨으로 야(夜)자로 읽어보니라
四十二 안필성은 교인(敎人)이 아니면서도 치성때면 반드시 성전에 이르러 헌작을 올리고 사배하니 교인들은 종도님들을 대하듯이 대접하니라
그럴때면 필성이 술을 들며 가로대 내 본래 동학군에 종사했다가 야소교를 신봉하여 술을 먹지 못하더니 증산님으로 부터 배운바라 사양하고 아니 먹으면 양손을 모아잡고 강제로 먹였으며 한번 손을 모아쥐면 그 힘이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꼼짝할 수 없었느니 하며 또 말하기를 개고기도 증산으로부터 배웠네 그리고 증산은 한자리에서 큰 개 한마리를 다 자셨으니 이는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요 아마도 神이 먹는듯 하더라고 전하니라
四十三 하루는 임피 강모의 집에 가시니 집주인이 안질로 고통하고 있거늘 병자에게 물어 가라사대 어찌하여 그와같이 고통하느냐 하시니 대답하여 가로대 안질로 수십일 고통중이온데 이와같이 계속 아플진데 未久에 논이 멀듯 하나이다 하고 아뢰니 가라사대 시키는 대로하면 낫으리라 하시거늘 낫는다면 무엇이든 하오리다 더우기 一郡의 중책을 맡은 몸이오니 속히 낫게 하여 주시기를 소원하나이다
가라사대 一身之中有眼目은
天地之間如日月이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네 눈을 낫게 하려면 술과 닭고기를 먹어야하리라" 하시니 병자가 속으로 생각하되 '스스로 잡수시려고 그러는구나' 하며 "집에 닭도 있고 술도 있나이다" 하며 하인을 불러 '닭을 잡아 술을 올리라' 이르거늘 가라사대 "집에 있는것은 소용없다" 하시며 "사서 먹어야 하느니라" 하시니 병자가 고하기를 "그러하다면 사오라 이르겠나이다" 하며 하인에게 지시하거늘 가라사대 "집을 나가서 먹어야 되리라" 하시거늘 병자가 고하기를 "저의 안질이 극심한 데 어찌 갈수 있으리까?"하니 "사람의 부축을 받고라도 가자"하시거늘 병자가 하는 수 없어 하인의 부축을 받고 비녀의 집에 가서 닭을 잡아 주안상을 차려 드리며,"잡수시고 속히 낫게 하여 주소서"하니 "같이 먹세"하시거늘 병자가 놀래며 고하기를 "안질에 어찌 술과 닭고기를 먹으라 하시나이까,어서 드시옵소서"하니 "그렇다면 나도 먹지 않음세"하시며 잡수시지 않으시더라.병자가 하는 수 없이 먹는 체 한즉 가라사대 "배불리 먹어아"하시며 고춧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닭국에 많이 타서 먹게 하시더라.병자가 어찌할 수 없어 지시하시는 대로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눈이 더욱 아퍼서 견딜 수가 없더라.더 아프다고 고통하니 가라사대 "조용히 자라"이르시며 "내일 아침 일찍 동쪽을 향하여 해를 보라.그러면 알리로다"하시니라.그 말씀 후에 곧 잠들어 잘 자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말씀하신 대로 동쪽을 향하야 해를 바라보니,두 눈이 전(前)과 같이 환하고 그리고 심히 아프던 눈이 씻은듯이 낫았더라하니라
四十五 하루는 김준상이 달려와 아내가 흉복통으로 방지사경임을 고하며 살려주기를 청하니 상제님께서 사성음(四聖飮)한첩을 지어 주시며 농속에
갊아두라 하시거늘 그대로 하였더니 항상 복발(復發)하던 흉복통이 없어지니라.사상음을 주신지가 이십년이 지났으나 약첩을 펴보면 좀도 아니먹고 방금 지은 약과 같이 신선하므로 그대로 갊아두었다 하더라
四十六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우리 나라가 오랫동안 중국을 보고 대국이라 칭한 연고로 중국 인종이 우리나라 사람들 보다 큰것이니라
그러나 대국위에 더 큰 특등국이 있나니 그는 곧 서양 나라로서 그 인종들이 세계에서 제일 크니라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가는 일등국이 될것이요
세계일등국의 칭호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그때는 너희들이 키가 커져 세계에서 제일 큰 인종이 될것이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四十七 또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장차 이 나라가 세계의 선생국이 되어 너희들이 세계만방에 돌아다니며 타국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것이니라.그런데 선생국의 인종이 서양 사람들 보다 키가 적어서야 쓰겠느냐
이로써 내가 너희들의 키를 저들 보다 더 크게 하기 위하여 여섯자 여섯치로 쭉욱 늘려 뽑아서 세계에서 제일 큰 인종을 만들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四十八 하루는 가라사대 천하를 가르치자면 농사 짓는 것과 같으니 가득한 잡초를 다 해 버려야 불멸의 결실을 거둘수 있듯이 참으로 성의를 다해서 그 이치를 말해 줌으로써 동서남북 사방이 복종하지 않을 바 없으리로다 하니라
四十九 어느날은 원평에서 공사를 행하시고 농기구 스물네 가락에 개정국을 묻혀 김제 수각(水閣)에 사는 金相國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는 이 농기구를 가지고 가서 김제 장에 팔아오라 하시며 그 농기구를 팔아오게 하시였다 하니라
五十 하루는 가라사대 금산사 黃金大脈은 天地大龍脈이니 누구든지 감히 범접하지 못하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그후 왜정치하에 일인(日人)광업자 죽전(竹田)이라하는 자가 금산사 뒤의 비장골(鼻壯谷)에서 금맥(金脈)을 발견한 후 광산(鑛山)을 설치하려고 철근을 운반하여 접근하니 청천백일(淸天白日)에 뢰성도 없이 모악산 중간 골짜기로부터 번갯불이 내려와 광산 철근을 치니 철근 건물이 박살이 나니라.
그래도 일인(日人)은 여러달 후에 또 광산을 재건하고 작업을 계속하더니 또 어느날 번갯불이 내려쳐 광산이 박살이나 완전히 패망하여 그후로는 감히 범하는 자 없었다 전하니라
五十一 하루는 종도들을 경계하여 가라사대 고량진미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소채(蔬菜)의 신선한 맛을 항상 생각하게되고 도성(都城)에서 사는 사람은 한적한 전원에 돌아가 살기를 원하나니,이는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한 물질에만 있지 않은 까닭이라 하시였다 하더니,
오늘날 시대의 현상과 사람들의 희구하는 바가 말씀과 꼭 같이 돌아가더라
五十二 하루는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구릿골로부터 원평으로 내려가실세 물방앗간 모퉁이에 이르기 전에 오른편 소리개봉을 가르키시며 가라사대 봉(峰)을 소리개봉이라 이르나 소리개봉이 아니요 수류개봉(水流開封)이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곳을 방앗간 모퉁이라 이르나 방앗간 모퉁이가 아니요 防旱間 모퉁이니라 하시더니 후일 그곳에다가 금평 저수지를 막음에 세상사람들이 이르기를 참으로 증산은 神人이시라.과연 수류개봉(水流開封)이요,방한간(防旱間)이 적실(的實)하다하면서 讚辭不止하더라
五十三 구릿골에 계실세 하루는 김갑칠에게 명하사 낚시대에 굵은 노끈을 달으라하여 못을 매달어 드시고 갑칠에게 가라사대 우리 고기잡으로 가자 하시며 구릿골 앞들로 나오시어 논둑에 앉으사 논바닥에 못을 맨 낚시대를 드리우고 앉아 계시며 "어이쿠 물였구나 "하시면서 낚시대를 연신(連新)채치니 붕어가 낚이어나올세 갑칠은 받아서 꿈지에 뀌드라
이와같이 연신 잡아내시며 가라사대 "거참 물도 좋다" 하시였다 하며
그때에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 계시던 논까지 물에 잠기었다 전하니라
五十四 하루는 대흥리에서 공사를 마치고 구릿골로 오실세 길을 버려두시고 논과 밭을 가리지 않으며 앞서가시니
수행하는 종도들은 따르지 못했더라
사람들이 보고 말하기를 논틀로 밭틀로 헤매는 꼴이 우습다고 비웃는다하니 그 말을 들으시고 가라사대 나는 바삐 일하는데 흉보고 비웃는 자들은 한가한 자나 할 일이로다 하시니라
그 후에 신식(新式)도로(道路)가 나니 꼭 상제께서 걸어가신대로 길이 크게 터져 오늘날에 그 길로 왕래 하니라(이는 天下大道路 開拓公事니라)
五十五 정읍 대흥리 새술막 술집에서 종도들과 술을 잡수시고 계실세 어떠한 사람들이 이르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喪服을 입은 喪主일러라
술을 다 잡수시고 종도들과 경석의 집으로 돌아오시니 그들도 뒤를 밟어 따라오더라
마루에 앉아 계실세 그들이 들어오니 앞에 앉으라고 하신 후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계시는데 그들이 어깨를 움직이기 시작하여 발끝을 움직이더니 마침내는 일어나 춤을 추거늘 바라보시다가 호령하여 가라사대 "喪主가 되며는 행실을 삼가하여 근신함이 옳거늘 가락이 없는 춤을 추니 어인 변괴인고" 하시며 노여워하시니,춤추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황급히 멈추면서 미안한듯 사과하고 돌아가더라.이때에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저 사람들은 큰 술객들인데 나를 시험하고자 찾아왔노라" 하시고 선천 술법 걷는 공사를 보시며 이르시기를 "이로써 선천 술법의 모든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하시었다 전하니라
五十六 상제께서 하늘(天上)의 일을 종도들에게 이르시면 김형렬이 항상 마음속으로 '한울님 뵈어지이다'하고 소원하더니
하루는 형렬에게 안경을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을 쓰고 나를 따라오라"하시거늘 형렬이 따라갈세 문득 화려한 삼층 누각이 나타나기에 자세히 보니 이 세상에서 이르는 바 옥경(玉京)이더라
이때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 곳에 있으라" 하시며 아래층에 남겨두고 삼층에 오르시니 선관선녀와 만조백관들이 호위하여 좌정하사 "위징을 데려오라" 명하시니 위징이 대령하더라
상제께서 위징에게 크게 꾸짖어 가라사대 "그대는 어찌하여 낮에는 당태종을 섬기고 밤에는 옥황상제를 섬겼다하니 이는 두가지 마음이 아니리요" 하시며 위징을 꾸짖으니 위징이 크게 사죄하는지라
형렬이 이 광경을 보고난 후로 모든 종도들에게 말하여 가로대 한울님이 선생님이시요 선생님이 바로 한울님이시라고 하였다 전하니라
五十七 하루는 전주 우림면 절용리 이직부의 집에 이르시니 상제께서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직부의 집으로 몰려와 사랑방이 가득하도록 앉았더라
한 사람이 청하기를 "저희들이 술을 올려 대접할까 하오니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안주를 먹게하여 주소서. 안주가 좋기로는 도미회가 제일이라하니 저희들이 지금까지 맛본바 없는 도미회를 안주하여 술 먹어 보기가 소원이로소이다"하며 청하니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如出一口로 소원하거늘 처음에는 거절하시다가 가라사대 "여러 사람이 소원하니 할 일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의 원을 풀어주리라"하시며 "곧 문을 열어보라"하시거늘 방문을 여니 큼직한 도미가 있더라.가라사대 도미를 죽이지 말고 예리한 칼로 껍질을 잘 벗기고 뼈가 상하지 않게 살만 포 떠낸후 껍질을 그대로 덮어 밖에 내놓으라 하시는지라.지시하신대로 하여 도미뼈를 밖으로 내놓고 밤이 깊도록 도미 안주로 술을 마시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려고 밖에 나와 보니 문 앞에 내놓은 도미뼈가 간곳이 없었다하니라
五十八 하루는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전북 진안군에 있는 솟금산(束金山)(마이산)에 가시어 종이로 크게 연을 만들어 놓고 연(鳶)공사를 보실세 김병선(金炳善)에게 연(鳶) 속에 들어가 앉으라 명하시거늘,김병선이 명하시는대로 연 속에 들어가 앉으니 글을 써서 불사르신 후에 가라사대 그만하면 되었느니라 하시고 연을 들어 불사르시였다 하니라
五十九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수천년 동안 억눌렸던 여자들이 천하사를 한번 해볼려는 소리가 천지에 사무쳤으니 장차 여자들의 세상이 되려한다 하시더니,한동안 계시다가 가라사대 "그러리라 큰 일이야 남자가 할 수 밖에 없으리라" 하시였다 전하니라
六十 하루는 백암리 최창조의 집에서 명일 출발하리라 하시며 벽력표(霹靂表)를 묻으메 즉시 뇌성(雷聲)이 크게 일어나 천지가 진동하거늘 곧 걷으시고 익일 구릿골로 돌아오시니 신원일이 백암리에서 뇌성벽력을 쓰시던 조화를 말하다가 여쭈어 가로대 옛적에 진묵은 이레동안 북두칠성을 가두었다 전하는데 가히 그와 같을 수 있나이까 하고 아뢴데 가라사대 그러하더냐 이제 내가 시험하리라 하시고 이날부터 북두칠성을 삼개월간 가두시고 가라사대 현세에 천문을 본다는 자들이 많다하되 나타나지 않음을 말하고 발표하는자 없도다 하시더라 전하니라
六十一 어느날 차경석에게 가라사대 "동학은 차정(車政)으로 亡하니라"하시니 차경석이 말씀의 의취(意趣)를 못 깨쳤다 하니라
六十二 하루는 대흥리에서 경석에게 가라사대 너희집은 전주 이가(全州李哥)로 인하여 패망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그후 이십년이 되는 무진년(戊辰年/1928년)에 이르러 경석의 처 이씨(李氏)가 영안(靈眼)을 통하여 보니 상제께서 푸댄임에 삿갓을 쓰고 성전에서 삼황오제신(三皇五帝神)에게 쫒겨나고,삼황오제신(三皇五帝神)은 경석의 망부(亡父)차지구(車致九)라는 망설(妄說)을 듣고나서 생각할때 상제께서 천지운도의 개척될 기운을 몰아서 자신에게 주었으니 그 도수가 돌아오면 천자의 위에 등극할 것을 믿으며,경신년(庚申年/1920)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허사가 됨에 원망하다가 갑자년(甲子年/1924)을 기다려도 안 되고 마니 처 이씨의 말을 믿고 삼황오제신을 받들며 신로(信路)를 유교로 변경하니 말씀대로 되었더라
六十三 하루는 하운동에 사는 박성태(朴成台)를 보시고 가라사대 앞으로 저 제업장골(帝業創谷)에 날로 백여명의 사람이 빈번히 왕래할 것이라. 그러나 아무 여지가 없을 것이며 끝이 좋지않네 하시였다 하더니 그후 서백일(徐白日)이란 사람이 제업창골(帝業創谷)에 용화사(龍華寺)를 짓고
용화불교(龍華佛敎)를 설립하여 교세가 장히 대단하메 날로 백여명씩 그 골짜기로 왕래하더니 관청에 고소되었다가 보석으로 나왔으나 교인의 원한서린 칼에 쓰러지고 용화불교는 사양(斜陽)하여 결국 불교종단 조계종에 흡수되고 말더라.
六十四 전주 용머리 고개에서 김덕찬,김준찬등 종도들을 거느리고 천지공사를 끝마친 후 출발하려 하실세 밖에 윷치는 잡기군들이 모여들어 윷판을 벌려놓고 유인하려 하거늘 상제가라사대 저자들의 원하는 바를 성취하게하여 줌도 이 또한 해원이라 하시며 돈 오십냥을 놓고 윷을 치시더라
윷을 치기 시작하여 경각에 그자들의 돈 여든냥을 다 따신 후에 이것이 품삯이라 하시며 닷돈을 남기고 일흔 아홉냥 닷돈을 그들에게 돌려주시며
가라사대 이는 불의한 짓이니 버리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 직업을 구하여 안정하라 하시니 그들이 크게 감복하여 돌아가드라
이때에 종도들이 윷치는 법을 물으니 가라사대 더 치는 법을 일정히 하여 변경치 아니하면 그와같이 되나니 이것도 또한 일심의 법이니라
또 일러 가라사대 현금 조선의 정세가 실업자들이 여증(與增)하여 도박으로 업을 삼는자가 계속 나오리니 일후에 그 법이 엄정하여지면 저들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그러므로 이제 저들에게 살 수 있는 식녹(食祿)을 붙이었느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六十五 어느날은 안내성에게 명하시기를 "너는 집에서 나오지 말고 봉두난발(蓬頭亂髮)로 지내며 수련하라"하시거늘 내성이 명하신 대로 머리를 올리지 못하고 집에 들어앉아 독공(篤功)하더니 어느날 내성의 집으로
찾아오시어 가라사대 "오늘은 네 두발(頭髮)을 성례(成禮)시키리라 하시며 머리감고 오라 하시거늘 그대로 하였더니 친히 어수(御手)로써 내성의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어주시며 가라사대 "천하 상투가 다 잘리어도 네 상투만은 남으리라"하시더니 왜정치하(倭政治下)에 일본인들이 천하의 상투를 다 잘랐는데,안내성만은 보발(保髮)한 채로 해방후 기축년(己丑年
/1949년)까지 살았으니 내성의 나이 83살(단군기원 사천이백팔십이년
/1949년)에 선화하였다 하니라
이로써 천하(天下) 보발잔존(保髮殘存)도수를 정하사 현금에도 간혹 보발한 자가 있느니라
六十六 대흥리에서 계실세 어느날 고부인에게 가라사대 김제로 가자하시며 재촉이 성화같은지라.고부인은 어쩔 수 없이 행장을 수습하시었더니 다시는 말씀이 없으시므로,잊고 계시는데 수일후에 다시 채촉만 하시고 아무 말씀없으시더니 또 다시 수일 후에는 교자를 설비하여 놓고 가자하시며 이르시기를,"밥 한그릇 가지면 둘이서 먹고도 남는데,챙피 볼것 없지"하시고 잠시후에 가라사대 "이만하면 관세음이라"하시고 또 가라사대
"그대가 여기 있으면 몸이 커지려니와 가며는 그 몸이 부서진다" 하시니라
六十七 어느날 상제께서 김광찬을 거느리고 임피에 가시어 수일동안 계시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자식을 살려주시라 애걸하거늘 들으시고 가라사대 그대의 자식은 본래 명이 단소하여 어찌 할 수 없노라 하시니 노구 울며 가로대 이 몸이 대신 죽어 자식을 살려주시면 어떠하오리까 하며 가지않고 울부짖으니 불쌍히 여기사 광찬에게 가라사대 병자(病者)를 억지로라도 끌고 함열(咸悅)숭림사(崇林寺)를 찾아가 노장호승(老丈胡僧)을 보고 재배(再拜)하며 조문(弔問)한다 이르고 묻는 말에 대답지 말고 돌아오라 하시거늘 광찬이 노구를 데리고 병자(病者)의 집에 가서 자세히 지시하고 왔더니 병자(病者)의 가권(家眷)들이 병자를 끌고가서 그대로 실행하고 그 길로 돌아와 완쾌하여 수일후 노구가 자식을 대동하고 찾아와 폐백주찬을 드리며 백배사례 하니라
그후 전하기를 조문 받은 호승(胡僧)은 그 즉시 열반(涅槃)하였다 하니라
六十八 하루는 종도들을 거느리고 고부 거무실 방죽을 지나시며 가라사대
이 방죽을 거무실 방죽이라 이르므로 이 방죽은 없어져야 하리라 하시드니,우연히 물이 줄어들어 밭과 논으로 변하고 지금은 옛날의 방죽의 흔적도 없이되니라
제사장 천훈신칙(天訓神則)
一 임인년(壬寅年/1902년)7월 고부에 계실세 김형렬이 상제님을 뵙고자 하여 고부로 찾아가는 길에 솥우원재(鼎上院峙)밑 송월(松月)에 이르니
문득 형렬앞에 상제께서 임어하시거늘 형렬이 몹시 반가와하며 가로대 "댁으로 가신지 수십일이라 너무나 적조하여 찾아가는 길이올시다.만약에 길이 어듯났으면 서로 공행(空行)할번 했아옵니다"하고 반겨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동서로 멀리 나누어져 있을지라도 서로의 마음이 합하여 있으면 반드시 만날 것이라.네가 부귀와 권세를 좇음이더냐,아니면 지극한 성경신으로 일심하여 따름이더냐.시속에 이르기를 망량을 사귀면 잘된다하니 이는 진귀한 물건을 구해 준다 함이라.네가 만약에 망량을 사귀려하거든 진망량을 사귀라 그래야 참으로 잘될 것이니라" 하시더라 전하니라
二 하루는 공사를 보신후에 종도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줄 아느냐 하시니 아무도 감히 누구시라고 대답을 올리는 살마이 없더라.가라사대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만 하여도 반 도통은 되었느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三 어느날 공사를 보신후 가라사대 나는 예언자가 아니로다.내가 세상운수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너희들은 스스로 깨달으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부모가 이르는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은 불초한 자식이 되느니라 하시드라 전하니라
四 하루는 종도 한사람이 벽에 기대고 앉았거늘 경계하시며 가라사대 선천은 남에게 의지하는 바람에 기대고 망하나니 너희들은 하다못해 방벽이라도 기대지 말라 하시니라
五 하루는 공사를 보실세 방문을 열어 놓으시더니 허공을 향하여 천음(天音)을 크게 하사 가라사대 어찌 이러할 수 있으리
남에게 의뢰하는 근성을 벗어날 것이며 나의 從持기 근성을 벗어나라
어찌 사람의 인격으로서 이러할 수 있으리요 하시고 문을 닫으시며 공사를 계속 보시였다 하니라
六.어느날 종도들에게 문명(文命)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금옥경방시역려(金屋瓊房視逆旅)하니
석문태벽검위사(石門苔壁儉爲師)니라
이어서 가라사대 옛 고인들은 말하기를 안빈낙도라 하며 道人들에게 굶어가면서도 기꺼이 도(道)를 하라 하였으나 이는 그릇된 가르침이니라
飢腸寒背에는
諸事不成이라 하시며 장보려 가드라도 먼저 배불리 요기하고 장을 보라하시니라
七 갑진년(甲辰年/1904년)6월에 상젰께서 김형렬의 집에 이르사 형렬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전주에 가서 김병욱을 만나 언제 올 수 있는가 기약을 정하고 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청령(聽令)하고 전주에 가서 병욱에게 상제님의 명을 전하니 병욱이 그 이튿날 밤에 오겠다고 약속하거늘 형렬이 약속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장효순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리는지라.형렬이 돌아와서 상제님께 보고한 후 장효순이 죽었음을 고하여 가로대 그자는 우리의 손에 죽었어야 될 것이거늘 한명(限命)으로 갔으니 참으로 분한 일이 올시다
상제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사람의 죽음은 불상한 것이니라 하시고 곧 출발하여 고부로 가시니 형렬이 아뢰어 가로대 전주의 병욱과 약속을 정하시고 고부로 가시려하나이까 하고 아뢰나 들은 척도 아니하시고 출행하시었다 하니라
八 하루는 공사후에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무릇 모든 사람은 자기의 생일과 자기의 출생지가 있나니
각자 자기의 생일이 천하에 대기념일이요
또한 자기의 출생지가 천하에 대기념지가 되는 것이니라 하시였다하니라
九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사람이 살다가 죽게되면 삼신(三神)이 떠나감이니 이로써 사자(使者)는 저의 선영신이요,삼신(三神)또한 선영신이니라
세속에 사람이 죽으면 사자 밥을 해놓으며 초혼하나니 이는 다 부당한 짓이요,삼신에게 고함이 오른것이니라 하시더니 오늘날 세속에는 초혼의 습속이 없어지니라
十 또 가라사대 세상 사람들이 말할때에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문자를 써서 유식함을 자랑하고자 하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여 무엇하리요.그러니 저희들은 어려운 문자를 써서 말하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도록하라 하시었다하니라
十一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남이 모르는 전자나 초서를 쓰지말라.문자라하는것은 사람들에게 그 뜻을 알리자 함이거늘 남이 모르는 글을 써서 무엇하리요 하시며 꼭꼭 정자를 쓰라 하시었다하니라
十二 하루는 종도들을 거느리고 태인 하마정을 지나시다가 땅에 떨어진 붓(筆)한 자루를 주워드시고 가라사대 이것이 천하 대적(大賊)놈이로다 하시며 들고 계시던 붓을 버리시니 종도 안내성은 그때 처음 시봉하여 따라가다 그 말씀과 하시는 바를 유심히 살펴 마음에 새겨 두었다 하니라
그후 안내성이 교단을 세운 다음 교인들에게 학교 교육을 폐하라 지시하며 붓을 천하대적이라 하여 평생토록 멀리하니라
十三 태인에 계실세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세상에 인륜이 참으로 크나 인륜(人倫)보다 천륜이 더 크나니 천륜(天倫)으로써 우주 일가(一家)하리라 하시니라
十四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나의 공부는 삼등이 있나니
上等은 만사(萬事)를 심단(心端)으로 용지(用事)하고
中等은 만사(萬事)를 언단(言端)으로 용지(用事)하고
下等은 만사(萬事)를 필단(筆端)으로 용지(用事)하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十五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왕에 양반들은 장죽물고 교만부리다 손가락끝도 못 대 보고 털어버리나니
너희들은 담뱃대를 짧게하여 긴 장죽을 물고 사람앞에 교만을 부리지 말지니라 하시더니 방안에서 가장 짧은 담뱃대를 찾아오라 하시어 그 대에다 담배를 넣어 돌려가며 피우게하시니라
十六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모름지기 대중을 바르게 가르침이 만화귀일(萬化歸一)이니 너희들은 정심(正心)으로써 대중을 가르치라.이 법이 곧 귀일지법이니라 하시니라
十七 어느날 종도 한 사람이 고하여 가로대 세상 사람들이 비소하여 말하기를 종이만 보시면 사지를 못쓴다고 허러서(毁) 말을 하니 종이를 좀 적게 쓰심이 어떠할까 하나이다하고 아뢰거늘 들으시고 가라사대 내가 신미생이라 세상에서 이르기를 미(未)를 양(羊)이라하나니 양은 종이를 잘 먹지 아니하더냐 하시였다 전하니라
十八 어느날 종도들에게 훈계하여 가라사대 나를 쫓는 자는 항상 마음속으로 호생지덕을 가져야 하느니라 하시더라
十九 항상 종도들에게 경계하여 가라사대 "보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볼것이요,익히 본 후에는 마음에 걸어두지 말라.사물의 보고 들음이 마음에 걸려 있으면,복장(腹臟)에 음식이 걸림과 같으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二十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내가 우주를 주제한다 이르지 말라.너또한 우주를 주재하느니라" 하시며,또 가라사대 "나를 괴이고자(寵) 하면
먼저 네 부모를 괴이고(寵/높임) 나를 공경하고자 하면 먼저 네 형제를 공경하라.가까운 것을 잊어버리고 먼 것을 능히 가까히 못하리라"하시였다하니라
二十一 하루는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평화를 부르짖는것도 일심으로 할것이요.인애(仁愛)를 설하는 것도 일심으로 할것같으면 일심의 결과는 비록 부르짖지 아니하고 설명하지 아니해도 이미 평화가 있을 것이요,이미 인애(仁愛)가 있는 것이니라 하시더라
二十二 하루는 또 이르시기를 "오직 일심을 가지라.일심이라 하는것은 능득능광 (能得能光)한 것이니라" 하시더라
二十三 하루는 공사를 보시기 전에 종도들에게 경계하여 가라사대
"모든 일에 일심이면 이루지 못할 바 없을것이요.모든 일과 모든 것에 일심이 없으면 우주간에 만사불성(萬事不成)이니라" 하시더라
二十四 하루는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나를 찾으며 일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들어가는 그 문을 닫고자 함이니라" 하시며,또 가라사대 "始於一心하고 終於一心하라" 하시니라
二十五 어느날 가을밤에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날아가는 반딧불 빛도 반드시 그 몸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니,너희들도 한마음을 찾아라.
한마음이 없으면 너도 없고 또한 나도 없느니라"
二十六 또 가라사대 "너희들이 가난하고 병약하여 신음하는 자라도 일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는 너의 곁을 떠나지 못하느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二十七 하루는 공사를 보신 후에 가라사대
器虛卽受物이요
心虛卽受道니라하시니
풀이하면 그릇을 비워야 물건을 담을수 있고
마음을 비워야 도를 담을수 있다 하심이드라
또 가라사대 신앙은 성리(性理)와 더불어 해야 되나니 분리한즉 미신(迷信)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二十八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종도들에게 명하시기를 비록 비천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병든 자를 막론하고 나를 쫓고자 하면 허락하나니 나는 외모로써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진심을 보는 바니라 하시였다하드라.
二十九 어느날 차경석에게 가라사대 "네가 너 없이 무형(無形)으로 나를 보고,네가 너 없이 무성(無聲)으로 내 소리를 들으라 하시니라
三十 공사후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크게 덕을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생각을 하지 말 것이며,오직 너를 잘 이겨내야만이 천하를 이기게 되느니라하시더라
三十一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저 배가 물이 아니면 가지를 못하나
그 물이 배안에 들어가면 배는 반드시 침몰하느니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매사에 이러한 이치를 잊지말라" 하시니라.
三十二 종도들을 경계하사 항상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스스로 자대(自大)하지 말라.자대(自大)한즉 스스로 적은대로 돌아가느리라
또 너희들은 스스로 자존(自尊)하지 말라.자존(自尊)하면 스스로 낮은대로 돌아가느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三十三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이 스스로 높은 듯 하더냐.
그 마음을 낮추어 너희들은 스스로 높은체 하지말라.하늘보다 그 높음을 자랑치 못할 것이니.
너희들은 스스로 밝은 것 같으냐.그 마음을 어리석은 듯 하여 너희들 스스로 밝은 체 하지말라
저 창공에 밝은 해보다 그 밝음을 더 자랑치 못할 것이니.
또 너희들 스스로 원대(遠大)한 듯 하더냐.그 마음을 적은 듯 머물어서 너희들 스스로 원대한 체 하지마라
이 넓은 우주보다 그 원대함을 자랑치 못할 것이 아니리오 하시였다 하니라
三十四 하루는 경석에게 가라사대 망량의 힘과 성심(誠心_의 힘이 서로 더불어 멀리 있지 않으니
망량의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고 성심의 힘으로 사람을 설복시킴이 이와같아서 불심상관(不甚相關)이나 망량의 힘은 사람을 현혹되게 할것이요
성심의 힘은 사람을 감복시킬 것이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三十五 어느날 종도들이 말하기를 시속의 물정이 메마르다 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사람간에 인정이 응체한 것이 천하에 큰 병이요
사람간에 상해(傷害)가 일어나면 천하에 큰 원망이니라 하시었다 하더라
또 어느날은 종도들을 정좌시키고 엄숙히 명 하시기를 "네가 스스로 너를 구원해야 나도 역시 너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요,네 스스로 타력(他力)에 의지하면 아무리 너를 구원하려 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하시더라.
三十六 어느날 공사를 보시려 하실세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나는 소수의 편리를 위하여 천지 규범을 정하지 않느니라.누가 능히 이 큰 운도(運度)를 거스릴 수 있으리요.너희들은 천지대세에 항거하면서 다른 후광(後光)을 찾으려 하지 말고 너에게 있는 광명을 발휘(發揮)함이 옳으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三十七 또 어느날은 가라사대 너희가 독자(獨者)대로 자처(自處)하면서 나에게 예속된듯 생각하지말라
너희들 각자 독자(獨者)대로 자기의 독권(獨權)이 있는데 그 누가 너를 강제로 복종시키랴
너희가 나에게 복종하려면 오직 정의롭게 함이 곧 나에게 복종으로 대함이 아니더냐 하시면서 각자 돌아가 홀로서 공부하라 하시었다 하니라.
三十八 어느날은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나를 매개로 해서 통하려하지말고 너 스스로 네 심중에 직통하는 길이 있음을 깨달으라" 하시니라
三十九 하루는 차경석에게 가라시대 전권(專權)하고자 하여 권도(權度)를
빼앗는다면 그 권도는 권도가 아니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또 경석에게 가라사대 오직 네 자신의 권리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뭇 사람을 얻어라.
이어서 가라사대 나의 권능과 지혜를 너에게 붙여 행사된다면 이는 네게 오직 나로 밀미암은 행사인 것이니 어찌 너의 권능과 지혜라 하겠느냐
그러니 너의 행사가 되지 못할세 어찌 나로 말미암으려 하리요
그러니 나에게 구하지 말고 스스로 돌이켜 네 마음에서 구하라
영감(靈感)이 본래 너의 작용이니라.하시었다 하니라
四十 어느날 종도가 서로 말하여 가로대 누구는 크게 성공하였다 말을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크게 성공을 바라지 말라.보편의 것 이대로가 좋으니라.무리에게 크게 초출(超出)하기를 바라지 말라.사람마다 다 진리의 능력은 있느니라
또 가라사대 항마(降魔)가 다른데 없고 일심을 보존하는 데 있나니 일심만 보존하면 항마가 저절로 되느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四十一 하루는 어느 종도가 무슨 일로 인하여 불긍하거늘 그 사람에게 가라사대 내가 너를 그러하고자 함이 아니오,네가 스스로 좋게 여겨 이 규범속에 들어와 네 홀로 행복을 구하려 드느냐
네 행복은 네가 증진하도록 함이 옳으니라
어찌하여 그다지도 크게 어리석고 크게 지혜롭지 못하는고 하시었다 하니라
四十二 구릿골 약방에서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너희들 스스로 건강하라
그리하여 달리 의약을 요구하지 마라.너희들은 받음으로써 허비치 말것이요.보은으로나 허비하라 하시니라
四十三 하루는 차경석에게 가라사대 네가 영원히 살고자 할 진데 영원할
사업을 해두라.그러면 네 영혼이라도 영원히 살 것이며 영원한 일을 도모해 둠이 오직 영원히 사는 길이 되리로다 하시었다 하니라
四十四 어느날은 종도들 간에 우연히 사회의 혼미함을 탓할세 그 말을 들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이 사회를 먼저 개조(改造)하면 이 사회가 그와같이 될것이니,너희들 스스로를 돌아보아 너의 사회부터 개조(改造)하라" 하시고,또 가라사대 "이로부터 세계를 설단(舌端)으로써 정하니(혀로 부르짖는 대로 되도록 하심)부르짖으면 응할 것이요,찾으면 줄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들은 이제 남는것은 찾지 말고 서로 값는 것이 가한것이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四十五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結之以眞理하고
解之以柔和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풀이하면 너희들은 진리로써 결실(結實)하고,유화(柔和)로써 해원(解寃)하라 하심이더라
四十六 어느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終身爲善이 一言可敗라 하시며 말조심을 하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풀이하면 몸을 마치도록 선을 행하다가 한 마디 말로써 평생의 선행을 부서버린다는 말씀이니라
四十七 종도들에게 항상 가라사대 세상 사람들이 제 자손만 잘되어 부귀하기를 바라나 이와같은 자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천하 창생이 다 부귀하여 잘되게 하자는 것이니
너희들은 사사로움을 버리도록 하여 공변됨을 먼저할 것이요
사사로움을 먼저하여 공변됨을 뒤로함이 없도록 늘 힘써 천하를 공변되게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신명의 감화를 받아 일에 성공이 있으리라 하시었다 하니라
四十八 하루는 공사를 보시 후 종도들에게 너희들이 부귀하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으실세 모든 종도들이 일제히 대답하기를 갈망하나이다 하니 손을 젓으시며 가라사대 "너희들은 저 홀로 부자가 되고자 하지 말지니 내가 천하의 富者를 다 비로 쓸어버리노라.또 너희들은 저 홀로 貴하게 되고자 하지 말라.내가 천하에다 貴를 고루고루 이르도록 비 뿌리 듯 해놓았노라" 하시었다 하더라
四十九 어느날 종도들이 서로 말하기를 정읍 부호 아무개는 어떠한 쾌락을 누리며 살고 있고 전주 부호 아무개는 어떠한 쾌락을 누리며 호강으로 생활한다 말을 하니라
이때에 상제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사람의 공연한 말과 공연한 생각은 일시의 쾌감에 그치는 것이요 항구한 복락은 능히 얻지 못하느니 잡담은 불가하니라 하시더라
五十 어느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번민이나 쾌락은 오직 한 마음의 차이이니,대도를 배우는 자 반드시 말과 행동이 호쾌해야 하리라 하시니라
또 가라사대 주인없는 나무에 달려있는 저 열매도 달린대로 그 이름이 있듯이,사람이 하는 그 행위도 천지에 매달려 여실히 알려지느니라 하시였다하더라.
五十一 어느날 종도들에게 글을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飛鳥不壠斷大空(비조불롱단대공)이요
遊魚不獨占大海(유어부독점대해)니
故能 自由自生이니라하시니
이 글을 풀이하면 나르는 새가 저큰 허공을 밭둑 가르듯 갈라놓지 못하고
노니는 물고기가 큰 바다를 저 홀로 점령치 못하는고로 능히 자유롭게 스스로 살아가리라 하시니라
五十二 어느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은혜를 받고 내게로 歸一치 아니하면 이는 각각 나누는 것이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들은 마음에 대중(中)을 잘 잡아라
마음에 대중(中)을 잃으면 쉽게 삐뚤어지니 중심을 잃지 않도록 성력(誠力)하라 하시니라
五十三 광찬이 장래를 걱정하니 가라사대
땅을 파면 물이나고
못을 파면 고기가 나오니라
돈 전(錢)자를 잘 살펴보라.돈전(錢)자는 쇠금변에 창과 자가 둘이나 붙었으니 돈에는 창날이 둘씩이나 꽂쳤느니라
五十四 어느날 경석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임시 방편으로 융화하는 척하지마라.방편으로 융화함은 무장(武裝)하고 전쟁을 쉬는것과 같으니라
모두를 사랑으로써 능히 동물의 성정(性情)을 뛰어 넘지 못한다면 참된 진리의 사랑이 아니니라.
사랑(慈愛)이라 하는것은 고된 것이니 가족을 사랑함에도 그 많은 괴로움을 참아야되고 천하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그 많은 괴로움을 참은 연후에 선명히 신(神)기로운진리가 드러나느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五十五 어느날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자기 지혜를 먹고 살지 마라
지혜를 먹음이 힘을 먹음만 같지 못하니라
만약 지혜를 먹으면 먹는 그 자신이 원부(怨府/백성들의 원한이 쏠린 官府)이니라
능히 지혜를 찾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능히 찾음이니라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부지런하지 못한 자라 하리라 하시더라
五十六 또 가라사대 너희들의 말과 행동이 하늘과 땅에 그려지고(影) 울리어(響)나가나니 너희들 서로간에 상극을 짓지 말고 또 망언을 하지마라
그리하여 네가 스스로 너를 이겨야 참으로 승리한 자가 되나니,이로써 문을 크게 열고 너를 영접하리라
또 가라사대 너희들은 깨달으라
너희는 나의 충직한 종복이 되지말고 어진 벗이 되도록 하라 하시였다하니라
五十七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이 세계를 惡한 세계라 하지말라.너희가 善한즉 善한 세계요,너희가 惡한즉 惡한 세계니라 하시드라
五十八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높은 층대위에 상투를 높인자는 그 행위가 수고롭고 낮은 평지를 행하는 자는 평평하여 편안하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五十九 또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스스로 능하지 못한 듯 하여 너희 스스로 생각을 굽혀 다른 사람에게 이르기를 어찌해야 살며 어찌하면 죽는가 하여 무릎으로 기듯이 구원을 말하라
이것이 현금에 살아날 수 있는 원칙이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六十 어느날 가라사대 너희들이 남에게 귀중하게 여겨지기를 바라거든 너(汝)먼저 다른 사람을 귀중히 하라.너희들이 친교로 사귐에 있어 死地에 이르러 서로가 구하여 주는 것이 친우의 큰 도리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六十一 공사를 보시며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만약에 이 천하에 개인(個人)이 없다면 어찌 세상이 있을 수 있으리
그러니 세상을 광화(光華)하면 곧 모든 개인의 영화가 이름(到)이요
개인의 영광됨이 곧 세상의 광화(光華)로 되느니라 하시였다 하니라
六十二 공사를 보시고 글을 읽어주시니 이러하니라
毁人者毁至(훼인자훼지)요
譽人者譽至(예인자예지)라 하시니
풀이하면 사람을 헐뜯는 사람은 도로 헐뜯음에 이르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은 도로 칭찬함에 이른다 하심이라
六十三 기유년(己酉年)에 공사를 보시며 종도들에게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주색(酒色)을 받들지 말고 검소하여 오직 너의 온전한 심성(心性)만을 쓸것이요,시구(著龜)를 써서 화복을 점치지말고 너희들 스스로 시구(著龜)가 되라.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남의 자식보다 반드시 우수하기를 축수하나니 나 홀로 어찌 그러하지 않으랴 하시었다 하니라
六十四 하루는 이르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동(動)하면 너희들은 정(靜)하라 하시며 또 이르시기를 강포(强暴)한 자나 거짓으로 속이는 자나 교만하고 인색한 자나 시기하여 험상(險傷)한 자를 불구하고 나는 저들을 가까이 하고자하나 저들 스스로 멀어져 감이니라 하시더라
六十五 너희들은 자기의 과실이 있거든 다 생각하여 풀어버리라
만일 하나라도 남아 있게되면 그로써 자기의 신명(身命)을 끊을 것이니라
六十六 하루는 상제께서 구릿골 어구(於口)금난바위(金生岩) 위헤 올라 앉아 계실세 안필성(安弼性)이 그 부근을 지나다가 뵈옵고 바위에 올라와 앉으며 말하기를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보는 바와 같이 천지공사중일세"하시거늘 필성이 실없는 말로 "항상 천지공사한다 하시나 별일 아니 나옵디다.세상사람들은 바삐 일하는데 제자들 데리고 천지공사만 하다가 세월 다 가겠습니다"하며 원망섞인 말을 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하 사람들이 다 그래도 그대는 그러지 말지니 오늘은 내가 그대에게 한 가지를 경계하노라"하시며 문명(文命)을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勸君凡事莫怨天(권군범사막원천)하라
後人山曹皆有保(후인산조개유보)니라 하시더라
譯)勸君凡事莫怨天(권군범사막원천).....그대에게 권하노니 무릇 일에 있어서 한울을 원망하지 말아라(이글에서 한울을 원망하지 말아라하심은 상제님을 원망하지 말아라는 말씀이니라)
後人山曹皆有保(후인산조개유보)....뒷사람들인 산의 무리들이 다 보전함이 있으리로다(이 글에서 후인이라하심은 후천사람을 이르심이요,山曹라하심은 증산을 신앙하는 무리들을 이르심이며 有保라 하심은 후천에 건너감이 보존함이 아니던가)
제오장 무죄무참(無罪無懺)
一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사람들을 지도하는 자가 일의 전말(顚末)을 알면서도 그르게 지도하는 죄를 범하는 자는 天道에서 벗어난 자이니 이러한 자의 죄는 그 벌이 더욱 크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二 어느날 종도 한 사람이 무슨 일로 남과 다투고 분해하며 복수하기를 말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돌로써 치면 돌이요,떡으로 치면 떡이라 할것이라.그러나 너희들은 돌로 치는 자에게 돌로하지 말고 떡으로써 하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너희들은 말하기를 세상에 대적(對敵)할것도 많고 다스릴것도 많다하나 이는 곧 너로 말미암아 대적(對敵)할것도 많아지고 다스릴것도 많아짐이라 하시었다 하니라
三 어느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비록 지극한 선행을 할때라도 그 중(中)을 잡지 못하면 도리어 악(惡)에 가까워지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四 어느날 가라사대 너희들이 허물이 있을 때는 바로 참회함이 옳으니 거울데 티끌이 끼면 애초에 닦아야 하리라
그러나 옷에 때가 끼여 빨아 입을지라도 애초에 때끼지 아니함만 같지 못하니 너희들의 허물이 없기를 바라노라 하시였다 하니라
五 어느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제 자식이 불량한 탕아가 되여 돌아오면 너는 제 자식이 아니라 버려 두겠느냐.너는 그러지 못하리라
나도 역시 그와 같아서 너희들이 죄를 지으면 그 죄가 너에게 되돌아 감으로 나는 참지 아니하고 그를 막느니라 하시더라 이르니라
六 항상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善을 행하고도 스스로 그 善을 했음을 알지 못해야 그 善이 무궁할 것이요
惡을 행하고도 스스로 惡을 했음을 깨닫지 못하면 그 惡 또한 무궁하리라
또 가라사대 천하 이치가 물을 좇으면 축축히 습해지고 불을 좇으면 건조하게 마르는 것이니 善之潤하고 惡之燥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七 하루는 뇌성이 대단하거늘 가라사대 뇌성할때는 방안에 반드시 눕지말것이요,청수를 모시고 심고하라 하시더라
八 또 어느날 이르시기를 자기가 지은 죄를 알랴하거든 만인경(萬人鏡)에 비쳐 보라.저 스스로 지은 죄상(罪象)이 밝게 드러나 저의 죄상을 스스로 잘 알게 되리로다
사람이 죄를 짓지 말아야지 죄를 짓고 한탄하면 그 무슨 소용이라 하시더라하니라
九 어느날 가라사대 닦지는 아니하고 죄만 지어 쌓으면,
불타는 불독안이 속에, 무쇠 녹듯 하리라 하시더라
十 어느 사람이 시봉을 청하니 승락하시고 가라사대 너는 집으로 돌아가
오늘부터 출입을 전폐하고 짚시을 삼아 팔아 생활하도록 하라 하시니 그 자가 돌아가 그대로 시행 하더라.대저 그사람은 젊은 시절에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미인을 탐내어 그 본 남자를 동학군으로 거짓 고발하여 처형되게하고 그 여인과 동거하더니 그자가 상제님을 따르고자 청함이러라
그자를 돌려보내시고 가라사대 신틀은 옥중에 죄인이 차는 고채니라 하기고 김경학에게 이르시기를 아무개가 지은바 죄를 이렇게 풀지 않으면 영영 풀길이 없느니라.또 가라사대 아무개가 활발히 활개치고 출입하게되면 세상은 멀지 아니하여 회복되리라 하시더니 그가 우연히 출입을 폐하고 신을 삼으며 생활하다가 혹시 친구에게 이끌리어 어디를 놀러가려했다가도 문득 작파하고 돌아서며 말하되 신명의 비책(吡責)이 있어 못간다 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후 그는 명을 마칠때 까지 출입을 못했으며 그가 죽고 몇달 후에 일본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주권을 회복했다하니라
十一 태인읍에 사는 아전 한사람이 재산을 모아 부요하게 잘 사는바
상제께서 태인을 지나실때 간혹 그자의 집에 들리시어 쉬어 가시는 일이 있으시더라.그런데 그 아전은 항상 거만하고 언행이 불손하나 개의치 않으시더니 어느날 태인을 지나 가시다가 그 아전의 집에 들리시어 쉬실세
여전히 인사가 불손하여 언행을 조심치 않더라
이때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어른에게 말을 함부로 하면 벼락맞는 법이니라
하시니 그 즉시 청천에서 뇌성벽력이 진동하면서 그 아전에게 벼락불이 연속 내지르메 아전이 대경실색하여 상제님의 등뒤로 숨으려 하며 살려달라 애걸하거늘 놀라는 체 물러서시며 가라사대 모진놈 곁에있다 애매한 사람 벼락맞겠다 하시고 물러서시니 벼락불이 더욱 심하여 곧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 손을 드시며 그만 하시니 벼락이 그치더라.그후로는 거만하던 그 아전이 지극히 공손해졌다 하니라
十二 어느날 종도들과 고부 손바래기에 이르사 어느 집으로 들어가시니 종도들도 따르더라
방안에 들어가시더니 신삼으시는 한 노인의 곁에 서시어 이윽히 바라보고 계시다가 나오시어 종도들과 돌아오실세 채사윤이 물어 가로대 오두막에서 신삼던 노인이 누구기에 보시고 오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부친이시라"하시거늘 채사윤이 깜짝 놀래며 이렇듯이 곤궁하신줄은 몰랐도가 생각하며 오던 길을 돌이켜 쌀 한말을 사다드리고 왔더니 이 일을 알으시고 가라사대 공연한 일을 하였느니라 그 어른이 나의 부친이시나 지은 죄가 있으시므로 신날을 차고 앉아서 신을 삼으시면 이는 죄지은 사람이 족쇠를 차는 식이라.이로써 지은 죄를 탕감해 들이고자 함이였더니,오늘 너의 일로 인하여 신 삼는일을 삼년 더 물리게 되었느니라 하시었다하니라
十三 어느때 종도들과 전주 다가산(多佳山)밑을 지나실세 느닷없이 喪人한사람이 뒤를 따라오며 살려주기를 애걸하나 상제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시더라
따르던 종도들이 민망히 여겨 여쭈어 가로대 저 사람이 무슨일로 저와같이 비는자 모르오나 그 정상이 불쌍하오니 돌려보내 주심이 어떠하나이까 하니 아무 말씀을 않으시고 붓을 빼내 상인의 이마에 먹점을 치시며 가라사대 "네 보자기를 냇가에 버리라"하시더라
그 상인이 명하신 대로 보자기를 냇가에 버리고 울면서 가거늘 상제께서 그 측은한 모습을 바라보시며 가라사대 저 사람이 지은 죄가 많으니 제 죄에 제가 걸려 죽느니라 버린 보자기는 요사(妖事)를 행하는 기구가 있으니 몇시간이 지난후에 펴보아야 하리라 하시더라
그뒤에 종도들이 보자기를 풀어보니 아무 다른것이 없고 다만 돌 자갈 몇개만 있더라.그후 상인은 그 곳을 울면서 떠난후 실성하여 사방으로 뛰어 다니다가 몇일 후에 죽었다 하니라
十四 어느날 종도들이 물으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당과 지옥이 본래 문(門)이 없나니 오직 네가 좇는바 네 죄가 있느니라.이어서 가라사대 육체로서 죄악의 덩이(叢)라 하지말라.저 목석(木石)이 흙구렁에 빠졌어도 씻고 닦으면 깨끗해지니라
十五 어느날 공사를 보시려 하실세 종도들에게 엄명하시기를 너희가 진 빚이 있으면 네 스스로 갚아야 됨과 같이
네가 만약 죄가 있으면 내 스스로 속죄해야 하리니 나에게 네 죄를 속죄해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요,네 뜻을 채울 수 있는 효력을 못보리라하시었다 하니라
十六 기유년 정읍 대흥리에 계실세 고부인 앞에 단정히 서서 절을 드리니 고부인은 그 연유를 몰라서 당황하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으려니까
상제께서 어려서 유시(幼時)로부터 행하신 일을 말씀하시며 그 일이 착했던가 모질던가를 일일이 물으시고 착하지 못한일은 고부인께 일일이 용서를 간절히 비시며 속죄공사를 행하시더라 하니라
제육장 선경출세(仙境出世)
一 신축년 겨울에 천지공사를 시작하시며 가라사대 이제 선천을 개벽하여 후천선경을 건설함에 있어서
한서(寒暑)의 차이가 있고,
부유함과 빈곤함의 차등이며
極貴하고 下賤한 차등을 없이하여 인간 사회를 고르게 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선경건설이라하리요
마땅히 이 천지를 개벽하여 선경을 건설하리라 하시며
이로써 객망리 본댁에서 천지공사를 보실세 엄동설한에 홑옷을 입고 계시면서 방에다 볏짚을 깔으시고 부엌에는 불을 때지 않으시고 창에는 종이를 붙이지 않으시고 음식을 잡수시지 않으시며 물 한모금도 아니 드시면서 이레동안을 후천 부귀평등 공사를 보시였다 하니라
二 어느날 공사를 행하시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인간들이 세상일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모든 사물을 풀어 놓아 각각 자유행동에 맡기노라
이제 너희들이 나를 만나서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포한이 되리라
이로서 만고 이후로 맺혀 내려온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풀기 위하여 그
도수를 짜려하니 이와같이 더디노라 하시였다 하니라
三 공사를 보시며 늘 종도들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보는 천지공사라하는것은 선천과 후천을 갈라 도수를 제정하여 상극을 눌러 없이하고 상생으로써 모든 병을 물리치며 만세의 원을 풀어 천하만방을 널리 화육(化育)하려하니 그러려면 신명과 더부러 공사로 결정해야 선경을 이룰 수 있으리라 그러하니 너희들은 공사에 참여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서 임해야 후천 도수가 한결같이 열릴지라 하시며 항상 엄중히 명령하시였다 하니라
四 정읍 대흥리에 계시며 고부인에게 가라사대 청춘작반호환향(靑春作伴好還鄕)은 날로둘고 있으리라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나의 일은 여동빈의 일과 같으니라 하시었다 하더라
譯)靑春作伴好還鄕(청춘작반호환향)...청춘끼리 짝을 지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
五 고부 객망리 시루봉에서 공사를 보실세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五方神將과 二十八將을 불러 시루봉을 둘러세워 위(圍)요 시킨후 古阜自己神運回 公事를 보시며 이르시기를 古阜는 求禮니라
전주 고부 녹지사가 모여들어 선경을 건설하리라.이곳이 시루니 시루는 떡 찌는 것이며 떡은 큰 일에 찌나니 이 일이 크니라 하시었다 전하니라
六 종도 문공신은 항상 말하되 現今에 모든 사람들이 후천 五萬年이라 이르나 상제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오도전지팔만사천년야(吾道傳之八萬四千年也)라 하시였으니,나는 그대로 믿어서 후천은 팔만사천년 갈것이라 생각하니라 하면서 후천 오만년 說을 부인했다 하느니라
七 기유년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금산 미륵은 육장이나 나는 육장반이니라 하시더라
註 一丈이 여섯자이니 육장이면 육육은 삼십육 설흔여섯자요,육장반은 설흔 아홉자니라
상제께서 화천하신지 만 25년이요 천후께서 미륵전에 요강을 부으신지 만6년6월이 되던 단군기원 사천이백육십칠년(갑술/1934년)3월9일 밤중에 육장의 미륵상에 원인모를 불이나서 미륵불이 불타 소실되니라
구릿골에 살든 오금해의 말에 의하면 워낙 화광이 충천하여 금산사가 모두 불타없어진줄 알았다하며 모악산 넘어 완주군 구이면에 사는 사람들이 보니 모악산 상공이 환하여 이상하게 생각했다 말하는바 그토록 화광이 충천하였건만 좌우에 시립한 보처보살과 미륵전이 조금도 불에 그슬림이 없이 가운데 계시는 미륵불만 불타서 왼쪽으로 넘어질때 미륵불의 속이 터지면서 책 더미가 오른쪽으로 넘어젔든바 그 많은 책은 일본인들이 다 가저갔으며 불타고 남은 미륵불의 왼팔이 남어서 지금도 보존하니라
당시 금산사 주지 황성렬이 미륵불을 재건하려 단월시주(檀越侍主)를 받으니 시주들어온 금액이 일만육천여원이 되더라
이로써 미륵 부처님을 다시 조성할세 금산사 건너편에 있는 청련암에 큰 은행나무가 있으니 그 나무로 목불을 조성함이 좋을것이라하거늘 금산사 주지 황성렬이 청련암에 건너가 살펴보니 그만하면 됨직하여 그 나무로 조성하기로 결정하였더라
그런데 그 은행나무는 상제께서 공사를 보시려 지나시다가 은행나무를 안아보시며 가라사대 참으로 장(壯)하다 하신일이 있더라
그후 청련암 주지가 이 나무를 목수에게 파니 목수는 이 은행나무를 베어 쓰려고 거도(鋸刀/큰톱)를 댈세 청천백일에 뇌성이 일어나며 번개가 주위를 도는지라.목수가 대경실색하여 나무를 베지 못함으로 그대로 서있는 나무였더라.금산사 주지는 그 은행나무를 베여 오라하고 또 금산사 서전(대장전)앞에 서있는 큰 은행나무를 베여서 부제로 하여 미륵불을 조성할세 청련암에서 작동(作棟)해온 대로 재여보니 39척임으로 그대로 조성하게 되었더라.그때 미륵불을 조성한 담당 장공은 스믈네살 먹은 양공 김복진이였으며 그가 조각을 시작한지 만 4년만에 완성하여 단군기원 4271년(戊寅/1938년)9월3일에 육장반의 미륵불을 그 자리에 봉안하게 되니라
육장의 미륵불은 소실되고 육장반은 미륵불이 상제께서 화천하신후 29년만에 봉안되니 기유년에 종도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되여졌더라
정묘년(丁卯年/단군기원 4260년/1927년)9월21일 천후 고씨께서 고찬홍,전준엽등 십여명을 거느리고 금산사에 가시어 미륵불전에 치성을 올리시고 나서 상제님의 불신성령(佛神聖靈)이 이제 미륵전을 떠나셨느니라 하시드니,이근목을 부르시어 특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요강을 들고 올라가 미륵의 머리에 오줌을 부으라(그당시는 미륵불 뒤에 상층까지 오르내리는 사다리가 있었음)하시거늘 이근목이 깜짝 놀래어 떨고서서 감히 행하지 못하고,어찌 할바를 몰라 복지(伏地)하고 있으니 다시 가라사대 허기야 너희들이 감히 그러할 수 있으랴 하시면서도 독촉이 성화같거늘 하릴없이 근목이 요강을 들고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 너머지는체 하고 미륵전의 마루바닥에 부어버렸다고 하며 이때에 천후께서 상제님 불신성령(佛神聖靈)
이 미륵전을 떠나셨다고 聖明이 계신지 만6년6개월만에 금산사 미륵금불이 원인없이 불이나 타버리니라
그러면 육장의 미륵불은 홰 육장반으로 바꾸시는가 하면 기유년 화천하실
무렵에 이르시기를 "내가 장차 열석자(十三尺)로 오리라"하시였으니 이로써 삼십구척(三十九尺) 육장반(六丈半)의 미륵불을 모셔야 되는 요인이 비롯되니라
금산사 미륵전을 보면 삼층으로 지어져 있으니
삼층의 현액(懸額)을 보면 미륵전(彌勒殿)이라 되여있고
하층의 현액(懸額)을 보면 대자보전(大慈寶殿)이라 되여있고
중층의 현액(懸額)을 보면 용화지회(龍華之會)라 되여 있느니라
(이하생략)
八 상제께서 안내성의 집에 임어 하시어 내성(乃成)에게 가라사대 네가 오늘은 나에게 백냥의 폐백을 바치라 하시거늘 내성의 형편이 심히 궁핍하여 일푼도 없는바라.하릴없어 마을에 나가 모친을 찾아뵙고 사실을 고하니 모친이 한탄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형편에 백냥의 거금이 어디에 있으리오 내가 푼푼이 모아둔 엽전 몇잎이 쌀항에 있을 뿐이라 그러니 그라도 필요하면 쓰라하거늘 내성이 집으로 돌아와 항아리 속에 엽전을 세어보니 한냥이더라
그리하여 한냥을 올리며 사정을 고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내 이 한냥으로써 백배로 느려 쓰리라 하시며 그 돈으로 술을 사오라 하시거늘 명하신대로 술을 사오니 상을 세개 놓고 술을 삼등분하여 세 상에 차려놓고 절하라 하시기에 그대로 차려놓고 내성이 절하며 보니 상제님께서 세 상에 동시에 같은 모습으로 잡수시고 계시더라 전하니라
九 상제께서는 천수(天鬚)가 턱밑에 조금 나셨으나 천수는 항상 말어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으며
천안은 풍만하시고 좌우상하가 빠짐없이 두렸하시고
아래 입술 안에 적으 대추만한 붉은점이 있으신바 하루는 종도들에게 보이시며 가라사대 금산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여의주를 입에 물었노라 하시더라 전하니라
十 안필성은 키가 커서 신장이 칠척장신이라.그러나 상제님을 바라보면 자기보다 한치가량 높아 보였다 하며 키큰 사람이 볼때나 키적은 사람이 볼때나 무릇 대소인을 막론하고 자기보다 상제님의 키가 한치가량 높아 보였다 전하니라
十一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장차 후천에는 너희들로 하여금 천하를 돌아 다니며 세계 백성들을 가르치게 하리니
이에 삼십육만 도통군자라.이들이 천하를 가르칠때 어찌 큰 대우를 받지 아니하며 천하창생을 광제(廣濟)하니 어찌 영귀(榮貴)가 없으리요 하시었다 하니라
十二 또 가라사대 후천에는 세계사람들이 우리나라 글(書)을 배워다 쓸것이요.또한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말(言語)을 배워다 쓸것이며,그 중에 전라도 말(言語)이 온전한 전말이되리라 하시었다 하니라
十三 어느날 종도 수삼인(數三人)을 거느리고 금산사에 가시어 금산사 서전(書殿/대장전)사이에 있는 십자로(十字路)에서 공사를 행하실세 느닷없이 손사풍(巽巳風)을 불리시며 상제님께서 스스로 열병(熱病)을 잠깐 앓으시더니 가라사대 이만하면 사람을 고쳐 쓸만하다 하시고,이어서 손사풍을 더욱 세게 불리시며 가라사대 나의 도수는 더러운 병(病)속에 들어있노라 하시니
그때에 김갑칠이 곁에 있다가 물어가로대 병든자를 보시면 그 병을 낫게 하여 주시며 앞으로 좋은 운수가 있다고 하시나이까 하며 의심됨을 사뢰니,대답하여 가라사대 예로부터 속담에 이르기를 병주고 약준다는 말을 못들었더냐 내 일이 그와 같으니라
또 가라사대 이 뒤에 이름모를 괴이한 병이 침입할 때가 있으리니 그때에는 사람들의 죽음이 새비떼(새우떼)밀리듯 하리라 하시었다 하니라
十四 어느날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이후에 병겁이 침입할때 군산 개복에서 시발하여 폭발처로부터 이레동안을 뱅뱅 돌다가 서북으로 펄쩍 튕기면 급하기 이를바 없으리라
이 나라를 사십구일동안 싹 쓸고 외국으로 건너가서 전세계를 삼년동안 쓸어버릴 것이니라 하시었다 전하니라
十五 또 가라사대 이름 모를 괴이한 병이 이렇듯 급박하게 인간세샹을 휩쓰리니 이것이 이르는바 병겁이라
병겁이 들어설 때에는 어디보다 먼저 약방과 병의원을 찾아들어서 病者가
찾을바를 얻지 못하리니 이제 전인류가 가히 진멸지경에 빠지리라
이렇듯 위급지경을 당하여 무엇으로 살어나기를 바라리요.비열한듯 하지만 오직 의통일 뿐이니 너희들은 의통을 알아두라 하시었다 하니라
十六 무신년(戊申年)봄에 구릿골 약방에 만국의원을 개설하시고 여러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한 방소(方所)의 병만을 막아도 아니될 것이오,사해의 병을 다 고쳐야 하며 한때의 병만을 막아도 아니될 것이오 만세(萬世)의 병을 다 고쳐야하리니 이로서 만국의원을 개설함이라 하시더라
十七 종도 수인을 소집하사 전주에서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앞으로 오는 병겁 세상에 처하여 세계 인류가 얼마나 살게될지 그 수를 보리라 하시며 마당 한가운데 나오시어 하늘을 바라 보시고 가라사대 세상에서 이르기를 천상의 성수의 수가 인명의 수와 같다 이르나니 내가 이제 하늘을 열어 천상성수에 후천의 생인지수를 붙여 그 수를 보리라 하시더니 금시에 시꺼먼 먹구름이 하늘을 덮거늘 바라보시고 조선의 수를 보자 하시며 왼발을 구르시니 남천으로부터 흑운이 돌돌 말리며 별이 나타나매 바라보시고 응 조선의 수는 얼마로다.알았노라 하시니 금시에 또 다시 흑운이 하늘을 덮거늘 하늘을 바라보시고 가라사대 동양의 일본과 중국의 수를 보자 하시며 왼발을 구르시니 또 다시 전과같이 흑운이 말리며 별이 나타나니 바라보시고 응 동양의 수는 얼마로다 알았노라 하시니 흑운이 또 다시 하늘을 덮거늘 바라보시고 가라사대 서양의 수를 보자 하시며 왼발을 구르시니 또 다시 흑운이 돌돌 말리며 별이 나타나니 바라보시고 가라사대 응 서양의 수는 얼마로다 알았노라 하시고 가라사대 조선의 수가 동서양의 수보다 낫다 하시었다 하니라
十八 어느날 이르시기를 혼돈탁세에 너희들은 마음을 바로하고 기운을 화순하게 하여 그 몸을 안정하게 하면 생기의 도가 있을 것이나,
오욕에 가리어 모든 번뇌를 버리지 못하면 옥추문(玉樞門)을 열어젖힐때 골절(骨節)이 퇴산(退散)하여 죽을 목숨이 되리라 하시니라
十九 무신년(戊申年) 어느날 공사를 보실세 醫藥非貴(의약비귀)요 不病是貴(불병시귀)니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네가 동방에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광명을 대하느냐,사람이 살아나는 희망도 죽음에 절망치 않음이니,이제 너희들이 가는 곳에는 아무런 미로(迷路)가 없느니라 하시었다 전하니라
二十 어느날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이 저의 인격을 확실히 찾아 알아야 우주간에 자기가 실지로 있는 것일진데 하물며 너의 인생까지 버리고 다른 타물에 있다고 의지하랴
또 가라사대 옥경(玉京)이란 비밀한 속에 있지 않으니 그 규모를 네 눈앞에 열어 보이리라.이제 신비속에서 깊숙히 두어둔 옥경의 비밀한 세계를 밝혀 천하에 널리 공개(公開)하려 하니라
또 가라사대 선경의 자물쇠를 너희들이 붙잡고 있느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二十一 종도들에게 문명(文明)을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神聖之樂園이
非存於彼岸이라
二十二 또 어느날 가라사대 나는 풍운조화를 사용하지 않으려하고 다만 너희들의 그 마음을 사용하려 하니라
또 가라사대 이제 잘 듣고 명심하라.너희도 역시 전지전능하니라
이 세상을 상세(上世)에는 천존신(天尊神)이 주장했고
중세(中世)에는 지존신(地尊神)이 주장했고
이 세계로부터 인존신(人尊神)이 주장하심으로 너희들의 일신(一身)이 매이지 아니하여 임이롭고(任) 자연스러우니라
그러한 진리에 따라 돌아드는 운도니 금(禁)하는 바를 비록 날렵하게 다한다할지라도 언제나 자연스러운 생활을 떠나지 말라 하시였다 하니라
二十三 어느날은 종도들과 원평으로부터 구릿골로 들어가시며 가라사대 하늘은 공각이라 그런데 공각인 그 하늘이 선천에는 부질없이 저 홀로 높기만 하였나니,후천에는 이를 뜯어고쳐 높기만한 하늘을 나직하게 하여 사람의 키에 알맞게 하리라 하시었다 하니라
二十四 종도들을 둘러앉히시고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오는 세상은 너희들이 하기에 있나니라
너희들이 신명과 더불어 후천을 지을세 공사에 도수를 놓아 규범을 정하면 그 도수가 열리려함에 이미 세상은 그 본을 뜨리라
그러므로 나의 일은 세상이 먼저 알아 본뜨리니 이로서 너희들은 세상을
보아 능히 앞으로 전개될 바를 짐작할 것이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二十五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국가민중의 기세가 떨어지고 사회가 안도(安堵)를 얻지 못함은 모두가 부도덕(不道德)하고 불신(不信)하며 불의(不義)하여 성력(誠力)하지 않은 죄니라
내가 나라의 백서을 가리지 아니하고 나의 심신이 거치르나 배척하지 못함은,너희들과 더불어 성지(聖地)에 함께 돌아가고저 함이니 너희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려서 표내는 것은 능력이 없어 융화하지 못함이니라
二十六 기유년 유월 공사를 보시며 가라사대 한 사람이 한 마음이면 한 사람이 나를 볼것이요
천하 사람이 한 마음이면 천하사람이 나를 보리라 하시었다 하니라
二十七 하루는 종도들에게 문명(文明)을 주시니 이러하니라
博覽博識誰伏羲/박람박식수복희
天皇公庭表日暈/천황공정표일운
河圖理氣馬人同/하도이기마인동
故拔一毛爲天下/고발일모위천하
二十八 하루는 종도들과 길을 가실세 백발노인이 길가에 서서 쉬여가고 가다고 또 서서 쉬어가고 하는걸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사람이 저와같이
장수함이 옳으냐 하시니 종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후천에는 불로불사 이온데 오래도록 삶이 옳은듯 하나이다하니,가라사대 사람이 오래 수를 하여도 무병장수라야 하겠거늘 저와같이 괴로와서야 쓰겠느냐
후천에는 무병하게 하수(下壽)라야 오백세(五百歲)니라 하시었다 전하니라
二十九 하루는 전주 서천교(西川橋)를 지나실세 거지떼들이 전주쪽으로부터 다리를 건너오려 하거늘 상제꼐서 다리를 막아서시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이 이 다리를 먼저 건너가 저들에게 돈을 주어 오던 길을 되 돌아가게하라 하시거늘 김병선이 다리를 먼저 건너가서 그들에게 고루 돈을 주며 오던 길을 되 돌아 가겠느냐 하니 그들이 반가워하며 돈을 받아 갖이고 오던 길로 되 돌아가거늘 그들이 멀리 가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다가 다리를 건너오시어 목적지로 행하시니 종도들이 물어 가도대 어찌하여 그들을 멀리 쫒으시나이까 하니 가라사대 후천 거지가 더 더럽다 하실뿐이더라 전하니라
제칠장 생사일여(生死一如)
一 무신년(戊申年) 겨울 문공신의 집에 오시어 쉬시다가 정읍으로 출발하려 하시며 공신(公信)에게 옛 시조 한수를 일러 주시니 이러하니라
대천(大天)일해(一海)에 무근수(無根樹) 떠 있으니
가지(枝)는 열두 가지,잎은 삼백육십 잎(葉)에
뚜렷이 일월이 흼(白)이여
구시월 세단풍(細丹楓) 바람잡아 탄금(彈琴)하니
슬프다 저 새 소리,귀촉(歸蜀)도 불여귀(不如歸)를 일 삼더라하시고
표연히 뒤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가시더라 하니라
二 대흥리에 계실때 하루는 고부인을 불러 앉히시고 부인의 무릎을 베고 누으시더니 가라사대 너는 내가 죽으면 머리를 풀겠느냐 아니 풀겠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부인이 대답이 궁하여 머뭇거릴세 다시 물으시며 대답하라 하니 고부인이 난처하나 부득이 대답하여 가로대 어찌 머리를 풀지 않으리까 그러한 일은 염려 마소서하며 머리를 풀겠다고 응락하드라.웃방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종도들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웃기만 하였으나 그후 화천하시고 보니 그때의 말씀이 앞일을 예시하신 일임을 몰랐노라하고 문공신이 전하며 말하기를 나도 그때 껄껄대고 웃었을뿐 아무의미를 몰랐다 하니라
三 기유년(己酉年/1909년)봄에 정읍 대흥리에서 고부인에게 명하여 영변 수심가(愁心歌)를 부르라 하시며 선창하시니 이러하니라
소슬 동풍에 궂은 비는 오는데 울퉁불퉁 저기 저 남산 보아라
우리도 죽어지면 저기 저 모양 되리라
하시니 고부인도 따라 부르시였다 하니라
四 하루는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봉서사에 진묵은 삼둔을 하였고
주나라의 강태공은 오십이둔을 하였으나 나는 칠십이둔을 다 쓰노라 하시었다 하니라
五 기유년에 경석에게 가라사대 지상에 전탑(殿塔)을 세우지 말고 네 마음위에 세워라
또 이르시기를 번거롭고 좀스러운 예의는 반드시 세상을 부패하게 하느니라 하시더라
六 기유년 봄에 종도들과 공사를 보시려 전주로 행하시며 김형렬을 돌아보시고 가라사대 오늘 너희들이 서로 다투면 내가 죽으리라 이르시니 형렬이 황공하여 무슨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하고 대답을 올렸더라.그러나 그날 해질 무렵에 우연히 종도들간에 다툼이 일어났다 하니라
七 상제께서 윤경을 거느리고 백암리로부터 대흥리에 오시어 고부인과 희남의 병을 낫게 하신후 고부인에게 가라사대 내가 수만리 밖에 가있으면 찾겠느냐 하시니 고부인이 대답하시기를 어찌 찾지아니 하오리까하시니
이로써 공사를 보실세 마당으로부터 방에까지 책과 부서(符書)를 번갈아 까르시며 고부인으로 하여금 밟고 들어오게 하신후 부서와 책을 소화하시며,고부인에게 북쪽에 앉아 시천주를 스물한번 읽으라 하시고 두 분이 서로 마주서서 절하신후 글을 써 읽으시고 소화하시니 이러하니라
吾君誓約重十山
踏盡高高太乙檀이라 하시고 이어서 종도들의 서약을 받으시고 또 글을 읽으시니 이러하니라
無語別時情若月
有期來處信通潮라 하시며 고부인에게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감당하리오 하시니 고부인께서 가라사대 어디로 가시려 하시는지 저도 따르려 하나이다 하시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너는 따라올 곳이 못되느니라
그러면 언제나 오시려 하시나이까
응 네가 꼬부랑(高婦郞) 꼬부랑(高婦郞) 하면 오리라 하시였다 하니라.
八 상제께서 대흥리를 출발하려 하실세 고부인이 거처에 경석의 가권과 종도들을 벌려 앉히시고 양지(洋紙)에 부도(符圖)를 그리시고 글을 써서 북을 향하여 소화하시니 그 글에 쓰시기를 將相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라 하였더라
이때에 종도들과 경석의 가권에게 이르시기를 이 공사는 후비(后妃)책임을 정하는 공사이니 너희들은 선위봉공(善爲奉恭)하라 하시니라
九 기유년 어느날 종도들에게 옛글 한수를 읽어주시니 이러하니라
乾坤不知月長在하니
寂寞江山近百年이라
十 기유년(己酉年/1909년) 6월23일 상제께서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의 일은 수부가 있어야 되는 일이라
이제는 일이 절박하였으니 너희들중에 임술생으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로 내세우라 하시니
형렬이 여쭈어 가로대 수부는 저의 딸로서 들여 세우겠아오니 염려 마르시고 하루 속히 사업이나 추진하사이다
가라사대 네 딸을 들여 세우겠느냐 형렬이 대답하여 가로대 그리히겠나이다.깨끗한 옷을 갈아입혀 데리고 오라하시니
형렬이 명하신대로 그 딸을 약방으로 데려오거늘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藥藏)을 방가운데 옮겨 놓게 하신후 형렬의 딸에게 명하사 약장을 안고 약장(藥藏)주위를 세번 돌게 하신후에 약장 옆에 세우신후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초취와는 아주 이연(離緣)하였음을 선언하노라
후일에 너희들이 증인이 될지어다하시고 경석을 명하사 양지에
大時太祖出世帝王將相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라는 글을 쓰라 하였더니 경석이 받아 쓸세 후비소(后妃所)를 후비소(后妣所)라고 그릇 쓰니 가라사대 잘못썼느니라 하시며 불사르게 하시고 다시 쓰라하여 약장에 붙이게하신후 가라사대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라 하시며 형렬의 딸을 안으로 드려보내신 다음에 경석으로 하여금 그 글을 거두어 불사르라 하시니라
十一 기유년(1909년) 6월20일 구릿골 약방에 종도들을 모으시고 각기 믿음에 대하여 하나 하나 다짐을 받으시고 이로써 천지공사를 마치셨다 선언하시며 이를 천지에 질정(質定)하리라 하시면서 가라사대 오직 천지는 무언(無言)이니 뇌성과 지진으로 응답을 받으리라 하시고 布敎五十年工夫終畢(포교오십년공부종필)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문득 천둥과 지진이 아울러 크게 일어나더라
이때에 김경학이 청하여 가로대 천지공사를 마치셨으면 이제 출세를 하사이다 하고 아뢰니 사람이 없어 출세치 못한다 하시며 가라사대 8월1일에 환궁하리라 하시더라
기유년(1909년)6월24일 巳時(열시)에 상제께서 화천하시니 종도들이 각기 흩어져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7월말경 차경석과 김광찬이 구릿골로 김형렬을 찾아와 장차 앞일을 의논할세 경석이 말하되 선생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미륵불이라 하셨으니 우리들이 금산사 미륵불에게 정성을 드리면서 장랫를 생각해보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듯 하니 그리함이 어떠하뇨 하니 모두 옳은 말이라하여 그리하기로 결정하고 치성 공물(供物)을 장만하여 금산사 미륵전에가서 미륵님께 옥황상제지위라 써서 붙이고 정성을 다하여 치성을 올린후 붙였던 종이 위패(位牌)를 떼어 모시고 사실(舍室)에 가서 벽에다 붙여 모시고 각기 정심하고 앉았드니 형렬이 문득 신안이 열려 대장전에 들어가 석가불에게 장래일을 물으니 석가불이 책을 들고 입을 열어 막 가르치려하는 순간에 미륵불이 들어오시더니 입을 막고 책을 빼앗는지라
형렬이 하릴없이 물러나와 그들에게 사유를 말하며 공부를 파하고 돌아가자 하여 일행이 돌아와 생각해보니 바로 이 날이 8월1일 환궁하신다는 날이었음을 깨쳤다 하니라.
그때 일행이 치성 공물을 준비하여 금산사로 올라갈세 무지개 돌문(石門)
이르니 늙은 비구니(김경학의 삼종(三從)수가 과부가 되여 금산사에 신중으로 있었음)가 돌문밖에 나와 있다가 환영하여 가로대 어젯밤 나의 꿈에 금산사 여러 부처님과 오백나한이며 호위신장들이 돌문 밖에 나와 있다가 어느 거룩한(聖) 행차를 맞이하여 들어가는데 그 행차뒤에 그대들이 따라오더니 내 꿈이 어찌하여 이와같이 현실과 같으리요
내 꿈이 하도 거룩(聖)하고 생생하기에 여기에 나와 꿈을 생각하며 서 있던 참이라 하더라
十二 기유년(1909년)6월에 상제께서 안필성에게 임어하사 필성에게 가라사대 내가 오늘은 너에게 부탁이 있어 찾아왔노라
구릿골 위 지소(紙所/구릿골에서 청도리로 넘어가는 곳에 지소(紙所)가 있었음)에서 아무날 내가 죽으리라
죽기전에 그 방에서 연삼일 동안을 다투는 소리와 호령하는 소리며 꾸짖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등 여러 가지 이상한 소리가 나리라
모든 소리가 그치고 조용하면 문을 열되 다른 사람은 아무리 문을 열려하여도 열리지 않으나 너는 열리리라.문을 열때에는 나의 이름을 세번 부르고 필성이 왔다 고(告)하면 문이 열리리니 그러면 너는 나를 너의 손으로 장사하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너와는 오십년 후에 만나리라 하시니라
안필성은 부탁하신 날이 이르니 반신반의하면서 장정들을 거느리고 구릿골 지소(紙所)로 가보니 과연 이르신 바와 같이 별 이상한 소리가 다 들리거늘 멀리서 이윽히 기다리다 고요해 지므로 힘센 장정을 시켜 문을 열라 하였더니 장정이 문을 못 열고 말거늘 그제야 필성이 문 앞에 이르러 증산을 세번 부르고 필성이 왔음을 고(告)한 후에 문을 여니 힘 안들고 문이 열리더라
방안에 들어가 보니 과연 상제께서 주무시는 듯 누워 계시는 데 이미 화천하셨거늘 하릴없이 필성의 손으로 장사하고 오니라
몇일후에 소문을 들으니 구릿골 약방에서 상제 화천하시어 장태날에 장사했다하거늘 필성이 깜짝 놀래 생각하되 내가 분명히 증산의 시신을 장사했거늘 한 증산이 두 곳에서 화천했다함은 믿을 수 없는 일이로다.내 이길로 가서 확인하리라 생각하고 달려가 헤쳐보니 시신이 없고 빈 무덤이었으며 이 날이 화천하신지 이레되는 날이였다 하니라
十三 말대의 선천을 열어 잔피에 쌓인 인류를 구원하고 따르던 종도들에게 무쌍한 영화를 마련하여 주실 것으로 믿도 따르다가 뜻밖에 기유년(1909년)6월24일에 화천하시니 종도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하릴없어 몇 사람은 탄식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원평으로부터 올라오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대들의 선생께서 장승백이 술집에 계시며 술을 잡수시는 걸 보았으니 속히 가보라 하거늘 종도들이 의아하면서 장승백이로 달려가 주모에게 물으니 그러한 일이 없었다 하더라.한 종도는 주막에서 술 잡수시더라는 말이 귀에서 떠나지를 아니하여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이목을 피하여 몇일후에 구릿골 장태날에 이르러 황혼녘에 초빈을 헤치고 보니 관속이 텅비여 있더라 하며 초빈으로부터 청홍의 서기가 한울(天上)에 뻗치어 석달동안이나 가더라 전하니라
十四 그후 금구(金溝)에 사는 안필성의 친구가 필성을 찾아와 말하기를 상제께서 찾아오셨기에 술을 대접했더니 잡수시며 환담하고 노시다 가셨다 전하며 또 다른 사람도 상제께서 찾아 오셨더라고 필성에게 말하더라 하며 필성이 항상 사람들과 그 자손들에게 말했다고 전하니라
十五 그 후에 또 어느 종도는 전주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며 증산께서 별세하였다 하니 그 친구는 거짓으로 돌리며 말하되 그대는 지금 무슨 거짓말을 농하는고 내가 방금 용머리 고개에서 증산님을 뵈었느니라
의젓이 술 잡수시는 어른을 뵈었거늘 별세했다 말하니 그대가 이상하지 아니하냐 하더라고 전하니라
十六 상제께서 화천하신지 여섯달만에 전주 승암사(僧岩寺/중바우 절)에 오시어 최거사와 단란하게 노시다가 떠나심으로 거사가 대접이 소홀했음을 미안히 여기며 다시 한번 찾아 주시기를 청하여 가로대 아무날은 불공이 있아오니 그날 오시옵서서 하며 기일을 정하여 드렸더라.가신 다음 즉시 종도 김병욱에게 그 사실을 전갈하니 병욱은 김형렬에게 그 일을 통지하고 형렬은 차경석과 김경학에게 통지하여 한자리에 모이니라
모인 사람들이 서로 상의하여 새옷 한벌을 지어 가지고 그날 전주 승암사
(僧岩寺)로 가서 종도들과 최거사가 하루 종일 기다리니 오시지를 아니하고 서산에 해는 지니 하는 수 없이 절에서 하산했다 전하니라
十七 고창사람 김재인이 상제님을 뵈올때마다 항상 지성으로 공대하더니 기유년 봄에 경상도에 가서 무슨 일로 죄를 짓고 대구 감옥에 갇혀 삼년 형을 마치고 신해년 여름에 출옥되었더라
옥에서 나왔으나 갈 바를 모르고 탄식하며 있다가 무심히 고개를 들어보메 자기 앞에 상제님께서 계시거늘 너무 반가워 슬피우니 위로하여 가라사대 "마음을 잘 지키면 앞일이 열리리라"훈계하신후 따르라 이르시거늘 따라가니 의복을 사서 갈아 입히시고 배부르게 밥을 사주시며 여비까지 주시면서 집으로 속히 가라 하시더라.그 사람은 그 길로 자기집으로 돌아와 월여간(月餘間)을 쉬고나서 상제님을 찾아뵙고 사례하러 대흥리를 찾아오니 화천 하신지 수년이 되었다 하거늘 이 말을 들은 김재인은 거짓으로 돌리고 가로대 뵈옵고 은혜입었음을 인사드려야 하겠다 하며 구지 계시는 곳을 알려달라 조르더라 전하니라
十八 무신년(1908년)겨울에 대흥리에 계실세 어느날은 고부인의 방에 임어하사 붉은 주머니 두개를 주시며 고부인의 귀에 대고 가만히 "옥황상제"노라 하시고,두 주머니를 품 속에 잘 간직하라 하시니라
註 기유년(1909년)6월24일 상제께서 화천하시었으나 고부인은 모르고 계시더니 집안 사람들이 부인만 돌려놓고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종도들의 동태도 전과 같지 아니하니 의아하여 차경석에게 물으면 경석이 대답하기를 큰 공사가 있어 멀리 淸國에 가시었다 대답하더라
경술년(1910)년 9월 초순에 고부인이 주문을 읽고 계시는데 영안이 열리어 보니 방문 앞으로부터 청홍색 서기(瑞氣)가 길을 따라 북으로 나있는데 서기(瑞氣)의 끝에 초빈이 보이므로 의혹하더니 다음날 밤에는 문득 상제께서 들어오시더니 가라사대 "내가 죽었거늘 네가 어찌 나의 묻힌 곳을 찾지 않느냐"하시거늘 고부인이 대답하여 가로대 "어찌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시나이까"하니 가라사대 "진실로 내가 죽었으니 묻힌 곳을 찾아보라"하시고 고부인의 손을 잡고 이별가 한곡조를 부르신 뒤에 문밖으로 나가시니 문득 보이지 아니하니라
부인이 크게 당황하여 고민으로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에 홀로 출발하여 광명속에 나타났던 길을 바라보고 걸어가니 조금도 길이 다르지 않으며 걸음이 빨라져서 날으는 것과 같더라
경석의 가족은 고부인이 없음을 깨닫고 찾아 나서니 들의 농부들이 말하되 이른 새벽에 고부인이 정읍 통로를 바라보고 급히 가시더라 하거늘 경석과 윤칠은 급히 뒤를 좇아 태인도챙(泰仁道昌)이 고개 밑에서 만나게 되었더라
차경석이 부인에게 묻기를 어디를 가시기에 간다는 말씀한마디 없이 가시나이까 하고 물어보나 부인께서는 아무 대답을 않으시고 걸음만 걸으시니 경석이 따라가며 말하기를 아마도 선생님을 뵈러 가시는듯 하나 선생님께서 3-4일 전에 청나라(淸國)남경(南京)으로 부터 귀국하여 구릿골 약방에서 중대한 공사를 보시는 중인데 부르심이 없이는 아무도 절대로 오지 말라는 엄명의 통지가 계셨으므로 따로 명령이 계시기 전에는 아무도 가서 뵈옵지 못하고 있는 터인즉 졸지에 찾아가 뵈오면 누님은 고사하고 저에게까지 큰 책망이 있으리니 이를 어찌 하시려고 이와같이 명령없이 가시나이까.바라건대 이 길을 회정(回程)하여 집에 가서 계시면 일간에 무슨 명령이 계시지 않겠나이까 하며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청하나 고부인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걸음만 계속하여 원평에 이르시더니 윤칠에게 명하여 약간의 주과(酒果)를 준비시켜 들리더니 길을 버리고 논둑과 밭둑을 가리지 않고 걸어서 구릿골 장태날에 올라 초빈앞에 당도하였더라
고부인께서 윤칠에게 초빈을 헤치라 이르니 경석이 깜짝 놀래 가로대 만약에 남의 초빈을 헤치다가 초빈의 자손이 보고 달려와 힐난하면 그 추궁을 무슨 수로 감당하려 하시나이까 바라건대 속히 돌아가사이다 하니 고부인이 듣지 아니하고 손수 헤치기 시작하거늘 경석이 하릴 없어 윤칠에게 명하여 초빈을 헤치고 관의 천개(天蓋)를 열어보니 상제님의 천안(天顔)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더라.이때 구릿골의 김형렬이 바라보고 달려와서 참관(參觀)하니라
고부인은 품안으로부터 주머니를 꺼내 한 주머니에서 진주구슬을 내어 상제님 입안에 넣으시고 한삼을 가슴에 덮은 후 또 주머니에서 종이쪽을 꺼내시더니 피여서 한삼(汗衫)위에 덮으니 그 종이에 쓰여 있기를 옥황상제(玉皇上帝)라 하였더라
이로서 관의 천개(天蓋)를 덮은후 원평에서 준비해온 주과포를 차려 놓고 잔을 올리며 사배한 후에 초빈을 봉하고 형렬의 권유에 따라 형렬의 집으로 내려와 이틀 동안을 형렬집에서 쉬었다가 경석과 윤칠을 거느리고 귀가하시니라
十九 상제께서 화천하신 후에 박공우는 항상 허망함을 못 이기어 애통하는 마음이 간절하더니 신해년(辛亥年/1911년)봄에 전주에 가서 장을 볼세 장꾼들에게 휩싸여 경황없이 장터를 돌아다니는데
누가 등뒤에서 공우야 하고 등을 치기에 돌아보니 상제님이시라
너무나 반가워 부여잡고 슬피우니 가라사대 울기는 왜 우느냐 날 따라 오너라 하시며 공우를 끌고 주점으로 데리고가 술을 사주시나 공우는 술을 받아 들고 눈물이 흘러 마시지 못하며 고하기를 참으로 야속하여이다.어찌하여 저희들을 그다지도 답답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상제께서 가라사대 "그놈 먹으라는 술은 아니 먹고 무슨 사설(私說)만 하느냐 어서 술이라 들어라"하시며 거듭 석잔을 권하시고 일어서시므로 공우도 따라나와 따르니 사라사대 어서 불일을 보아라 하시기에 공우 대답하기를 볼일이 다 뭐이오니까 장보기를 작파하겠아오니 같이 가시기 바라나이다 하니 대답하시되 "내가 바뻐서 너하고 같이 가지 못하리라"하시며 장꾼들 사이로 이리저리 가시므로 공우는 황급히 장꾼들을 헤치고 따르다가 보니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아니하여 온장을 헤메다 힘 없이 돌아왔다 하며 공우는 말하기를 우리들의 눈 앞에서 숨었을 뿐이요 별세하셨다함은 당치 않다하면서 6월24일을 숨을 둔자(遁字) 둔일(遁日)이라 하니라
二十 상제께서 화천하신후 차경석은 매양 탄식하며 자기의 장래사를 누구에게 의탁하리 하더니 하루는 우연히 입암산 상봉에 올라가 홀로 앉아 생각하기를 만고없을 대신인께서도 가시는데 우리 같은 초로(草露)인생이 무엇 하느라 세상에 나서 이렇듯이 애통하는가 하는 생각에 젖어 저절로 슬퍼지며 앙천통곡(仰天痛哭)하더니 등 뒤에서 경석아 하고 부르기에 깜짝 놀래 돌아보니 상제께서 부르시거늘 급히 일어나 배례한즉 가라사대 내가 죽지 않았느니 너는 너무 애통말고 어서 내려가 모든 일을 잘 처리하라 후일 다시 만나리라 하시고 인홀불견(人忽不見)이 되었다 하니라
二十一 상제께서 화천하신후 전주 사람이 김을 무역하려고 전라남도로 내려가다가 송정리를 지나는데 도로변 주막 옆에 상제께서 약방을 차려놓고 계시거늘 하도 반갑고 이상하여 인사를 드린후 주안(酒案)을 대접하며 여러가지 말씀을 물은후 고(告)하기를 김을 무역(貿易)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들리겠나이다 하고 떠났다가
그 후에 돌아오며 그 곳에 와보니 약방이 없거늘 물으니 그 노인은 저안 동네로 옮겨가셨다 하거늘 그 마을에 가서 물으니 그런 분이 약방을 이사한 일 없다 하더라고 전하니라
이 외에도 남원에서 김병선이 만나 뵈었다 공언했고 갈재 넘어 사거리에 약을 걸고 계심을 뵈었다는 사람이 나타나고 또 영광 땅에서 뵙고 왔다는 사람이 나오고 하니 상제님의 신성하심은 사람의 지량(知量)의 범주(範周)로는 감히 측도(測度)할 수 없는 신적(神跡)이라 아니할 수 없더라
(끝)
단군기원 4320년 (양)7월10일
대순기원 117년 (음)6월15일 인쇄
단군기원 4320년 (양) 7월19일 발행
대순기원 117년 (음)6월24일
撰述者 정영규
발행자 강석환
다음검색
천지개벽경 제9편 기유편 공사기 (0) | 2020.07.18 |
---|---|
천지개벽경에 대하여 (0) | 2020.07.18 |
遠姓 이씨(遠姓之李)가 내사람이 되노라 (0) | 2020.07.17 |
청룡황도가 크게 열리는 해(靑龍黃道大開年)에 왕기(旺氣)가 태을선(太乙船)에 실려 오도다 (0) | 2020.07.17 |
증산상제님. 慶尙道(경상도)에 醫世大冶(의세대치)가 出焉(출언)하나니라. (0) | 2020.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