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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一(권지일) 7장 32~36편 《 千里 / 鑑 / 堪 》

★ 해월선생의 시문

by 雪中梅 2023. 12. 6. 19:29

본문

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一(권지일) 7장 32편

 

挽外舅(만외구) 峯金先生(구봉김선생)  名守一(명수일)

 

平日安丘壑(평일안구학)  如何病洛京(여하병락경)

纔違千里(재위천리면)  已隔八年情(이격팔년정)

鄕國亡人(향국망인)  林泉失客星(림천실객성)

白雲去(나백운거)  洛有空亭(청락유공정)

 

 

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一(권지일) 7장 33편

 

送金活源(송김활원)  初覲羅州(초근나주)  名潗(명집)

 

十月淸霜凍客鬚(십월청상동객수)  水憶長途(가수억장도)

行收霞鶩留王賦(행수하목유왕부)  入奉詩書供鯉趨(입봉시서공리추)

嶺外梅花寒照驛(령외매화한조역)  樓中明月遠吞湖(루중명월원탄호)

江南自古多遷客(강남자고다천객)  客裏寬心是丈夫(객리관심시장부)

 

 

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一(권지일) 7장 34편

 

雪後(설후) 登途簡謝(등도간사) 柳聖瑞(류성서) 借馬二首(차마이수)

 

天里西土(천리서토)  暮年歸故鄕(모년귀고향)

駑蹇愁陟岵(노건수척호)  僕悴倦遊方(복췌권유방)

橋破秋霖斷(교파추림단)  關添朔雪防(관첨삭설방)

借人今見子(차인금견자)  謝免玄(다사면현)

暮空寥落(세모공요락)  天涯獨弟兄(천애독제형)

未容乘雪訪(미용승설방)  端爲望雲行(단위망운행)

殘日移山影(잔일이산영)  歸程繞海聖(귀정요해성)

那能不相憶(나능불상억)  月到月松明(월도월송명)

 

 

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一(권지일) 7장 35편

 

留題(류제) 白惺軒新居(백성헌신거)  名見龍(명현룡)

 

白叔起白閣(백숙기백각)  崒崒騰山陽(줄줄등산양) 

蘺邊一叢菊(리변일총국)  墻外數株桑(장외수주상)

敎子只爲禮(교자지위례)  見人恒勸觴(견인항권상)

試看栽竹處(시간재죽처)  別有彩衣堂(별유채의당)

 

 

海月先生文集(해월선생문집) 卷之一(권지일) 7장 36편

 

初度日(초도일)  暫開慰席(잠개위석)  助歡北堂(조환북당)

 

愛此劬勞日(애차구노일)  欣吾具慶臨(흔오구경임)

追思倚門昔(추사의문석)  却喜過庭今(각희과정금)

拂恩天舞(채불은천무)  添壽海斟(상첨수해침)  

歌陔獻嵩處(가해헌숭처)  頭揷數枝金(두삽수지금)

 

...........

 

정감록(鄭鑑錄) 감결(鑑訣) 초장(初章)을 보면

 

『完山伯 李公 有子三人(완산백 이공 유자삼인)

완산백(完山伯) 이공(李公)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長曰早死(장왈조사)

장자(長)는 (淋)으로 일찍 죽고,

 

次曰沁(차왈심)

차남(次)은 (沁),

 

三曰(삼왈)

셋째는 (淵)으로,

 

公同遊 八道 山水 倚絶處(여정공동유 팔도 산수 기절처)

이심(李沁)은 정감(鄭鑑)과 더불어 팔도(八道)의 산수(山水)가 기이하고 뛰어난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이 구절을 들어 이씨(李氏) 족보(族譜)를 아무리 조사해보아도 그런 사람이 없으니

정감록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사고(南師古) 선생의 격암유록(格菴遺錄)이나 삼역대경(三易大經)과 하락요람(河洛要覽) 등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들을 보면, 정감(鄭鑑, 鄭堪)과 이심(李沁)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삼역대경(三易大經)은 이민제(李民濟) 선생이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으로부터 천명(天命)을 받아

기록한 글(書)인 것이다.

 

 

삼역대경(三易大經)의 일월성정감장(日月星正鑑章) Ⓟ260을 보면,

 

『陽性正(양성정야) 陰心靈坮也(음심영대야)

양성(陽性)  정감(鄭鑑)이요 

음심(陰心)  영대(靈坮)라.

 

此非 心性合德而 問答之說乎(차비 심성합덕이 문답지설호)

이 어찌 (心)과  (性)  합덕(合德)하여 문답(問答)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先館老少問答之說(선관노소문답지설)

이는 선사(先師)인 노소(老少)의 문답으로,

 

一鑑李心問答也(여일감이심문답야)』

(一)  (鑑)  (二)  (心)의  문답(問答)이라고 하였다.

 

 

 

하락요람(河落要覽) 정감록(正鑑錄)

 

『西方庚辛(서방경신) 來鄭鑑(래정감) 東方甲乙(동방갑을) 逢李沁(봉이심)

서방경신(西方庚辛) 정감(鄭鑑)이 와서, 동방갑을(東方甲乙)인 이심(李沁)을 만나,

 

兩人左右(양인좌우) 還四時(환사시)

두 사람이 좌우(左右)로 돌아와 사시절(四時節)이 되니,

 

易理乾坤(역리건곤)  來運論(래운론)

(易)의 이치로 건곤(乾坤:정도령)이 돌아오는 운수를 논(來運論)한 것이라고 하였다.

 

삼역대경(三易大經) 하락요람(河洛要覽)에서 말한 것을 정리해보면,

 

정감(鄭鑑)이란

(天), 양(陽), 성(性), 서방경신(西方庚辛), 하늘(乾) 나타내는 말이며,

 

이심(李沁)이란

(地), 음(陰), 심(心), 영대(靈坮), 동방갑을(東方甲乙), 땅(坤)을 표현한 말이 라는 것이다.

 

정감(正堪)  이심(李沁)은  구체적인 어떠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음양(天地陰陽)  문답(問答)을 말한 것이다.

 

 

천지음양(天地陰陽)이란,

우주(宇宙)  근본(根本)이 되는  태극(太極)이니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선각자(先覺者)들이 정감(正堪)  이심(李沁)이라는

역리학적(易理學的)으로 상징적 인물의 대화로 엮은  정감록(鄭鑑錄)은,

천지음양(天地陰陽)의 문답(問答), 즉 하나님의 말씀이니

우리나라 성현(聖賢)들이 (傳)하는 우리의 성경(聖經)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감(鄭鑑)  양성(陽性) 정감(正堪)이라 했는데,

 

(性)이란 바로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부처님 자리인 것이다.(견성성불:見性成佛).

 

주자학(朱子學) 성리학(性理學)이라고도 하는데,

  (性)  (理)  정감(鄭鑑)이라 했으니,

바로 만물(萬物)의 근본(根本)되시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신 정감(鄭鑑) 선사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을,

우리가 흔히 정감록(鄭鑑錄)이라 하는데,

결과적으로 정감록(鄭鑑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놓은 이라는 것이다. *****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선생의 초창결(蕉蒼訣)에,

 

『無知(무지즉) 不保其命(불보기명) 愼之愼之也(신지신지야)

 

말세(末世)  (鑑) 무엇인지 그 의미 깨닫지 못하면,

그  (命)을  보존(保存)할 수 없으니  신중하고 신중하라고 하였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라마단이(羅馬單二)P 47에

 

『天以之善惡(천이지선악) 行報應(각행보응)

 

하늘이  (鑑)으로  선악(善惡)을 비추어서 각기 (行)한대로 보응(報應)한다 한 것이다.

  (鑑)이란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神)인 것이다.

 

 

성경의 에레미야 11장 20절을 보면,

『공의(公儀)로 판단(判斷)하시며

사람의 심장(心臟) 감찰(監察)하시는 만군(萬軍)의 여호와여......』

 

사람 마음을 정확하게   감찰(監察)하시는 하나님을 뜻하는 말을 (鑑)이라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鑑) 인간(人間)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라고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이 말씀하시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어떤 사람은 정감록의 원래 제목은 정감여록(井堪輿錄)인데,

이것을 줄여서 정감록(井堪錄)이라 하던 것을, 이서(異書)가 생기는 과정에서 잘못 기록되어

정감록(鄭鑑錄)으로 오기(誤記)되었다며, 틀렸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선각자(先覺者)들이 그러한 것도 구별하지 못해 잘못 전했겠나?

 

예언서(豫言書) 내용(內容) 중 크게 중요하지 않은 한두 글자가 와전(訛傳)되어 잘못 전(傳)해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예언서(豫言書)의 제목(題目)을 천하(天下)가 다 아는 정감록인데도 불구하고,

그 제목(題目)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무지(無知)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옛말에 「일지 불이 무지자(一知 不二 無知者)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이 있어 왔으니,

이런 사람을 두고 한 말인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승운론(勝運論) Ⓟ100~101을 보면,

 

『易理(역리)속의 秕藏文句(비장문구) 不勞自得(불로자득) 彼此之間(피차지간)

역리(易理) 속에 감춰진 글귀(秘藏文句) 노력없이는 알 수가 없는 것인데,

 

無知者(무지자)가 알게되면 勝己厭之(승기염지) 此世上(차세상)

무지자(無知者)가 알게 되면자기 자신보다 능력이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세상(世上)이기에,

 

眞人出世(진인출세) 못한다네

진인(眞人) 출세(出世)할 수가 없으므로,

 

是故古訣(시고고결) 預言論(예언론)

자고로 옛 비결(秘訣) 예언(預言) (論)할 때에는,

 

隱頭藏尾(은두장미) 着亂(착란)하야

(言) 머리와 꼬리를 숨기고(隱頭藏尾), 着亂(착란)시켜서 알지 못하게 하여

 

上下疾序(상하질서) 紊亂(문란)키로

상하질서(上下秩序) 문란(紊亂)시켜서 알지 못하게 하여,

 

有智者(유지자)게 傳(전)했으니

지자(知者)에게  (傳)한 것이니,

 

無智者(무지자)는 愼之(신지)하라

무지자(無知者)는 신중히 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識者憂患(식자우환) 되오리라』

공연히 아는 척 하였다가는 식자우환(識者憂患)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일부러 예언서(豫言書) 의 앞뒤 내용을 숨기고,

순서와 마디를 섞어 놓아 알아보지 못하게 했는데 제대로 해석(解釋)이 되겠는가?

그래서 조그만 지식으로 공연히 아는 척했다가는 식자우환(識者憂患)이 된다고 

경고(警告)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을 보면,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豫言)은 사사(私私)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豫言)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聖靈)의 감동(感動)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3장 16~17절에

『또 그 모든 편지(便紙)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無識)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無法)한 자들이 미혹(迷惑)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이와같이 성경 예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함부로 풀지 말라고 하였다.

함부로 풀다가는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경의 다니엘 12장 2~13절을 보면,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永生)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羞辱)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智慧)있는 자는 궁창(穹蒼)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永遠)토록 비취리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看守)하고 이 글을 봉함(封緘)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往來)하며 지식(知識)이 더하리라.

 

 

나 다니엘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江)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江) 저편 언덕에 섰더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細麻布)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奇事)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細麻布)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左右)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永生)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盟誓)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 지나서 성도(聖徒) 권세(權勢)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主)여 이 모든 일의 결국(結局)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大抵)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看守)하고 봉함(封緘)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鍊鍛)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惡)한 사람은 (惡)을 행하리니 (惡)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智慧)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廢)하며 멸망(滅亡)케할 미운 물건(物件)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일(1,290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삼백삼십오일(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福)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平安)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業)을 누릴 것임이니라』

 

이 성경의 내용은

다니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命令)으로 예언(豫言)의 말씀을 받아 기록하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그 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네가 알 바가 아니니 인봉(印封)하여 두라,

말세(末世)에 마지막 때까지 간수(看守)하고 봉함(封緘)하여 비밀로 하여둔 것이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智慧)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라고 하였다.

 

 지자(智者)만이 예언(豫言)의 말씀을 깨닫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이 숨겨 놓은 예언(豫言)의 말씀을 풀 수가 있겠는가?"

라고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이 묻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은 한참 심사숙고(深思熟考)한 후 조용히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풀어 밝히겠는가?

 

예언(豫言) 말씀을 쓰게 한 본인(本人) 직접 인간 세상에 와서 풀어 밝히는 것이다.

그가 지혜있는 자로 지자(智者, 知者) 또는 지인(知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예언서(豫言書) 와 성경(聖經)은 같은 말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인 것이다.

지인(知人) 또는 지자(智者, 知者) 라는 말을 후에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다."

 

 

이와 같은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의 설명에 주위에 있던 한 사람이 말하였다.

 

"예언서(豫言書)를 기록한 선지자(先知者)들도 다만 기록하여 전(傳)하기만 할 뿐

예언(豫言)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하였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 아는 척 해봐야 무엇을 알겠습니까?"

라는 말이 끝나자,

 

"정감록을 해석해 놓은 어떤 책에서는

하늘의 이치를 (堪)이라 하고,

땅의 이치를 (輿)라고 하여,

이는 단순한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인 감여사상(堪輿思想)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데

그러한 말이 맞는 말입니까?"

라고 또 한사람이 질문하자,

 

명산 선생님(明 선생님)

그건 바로 한 마디로 무지(無知)의 소치라 할 수 밖에 없다 하시며,

예를 들어 설명하시기 시작하셨다.

"먼저 격암유록(格菴遺錄)이 어떻게 남겨졌는지를 알아보자.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밀암(密菴) 이재(李栽)의 남격암유적(南格菴遺蹟),

만휴(萬休) 임유후(壬有後)의 격암선생유전(格菴先生遺傳),

홍만종(洪萬宗)의 해동이적(海東異蹟 ) 등에서 밝힌 바와 같이

 

『公少時(공소시) 入楓岳(입풍악) 遇神人우신인(僧:)

引入石室(인입석실) 授道書三卷수도서삼권(三篇삼편)』

 

격암(格菴) 선생이 소시풍악(少時)에 풍악산(楓嶽山, 금강산)에서 신인(神人)을 만나

석실(石室)로 인도 되어 도서 3권(道書三卷, 眞訣)을 받았다고 전(傳)한다.

 

『少時(소시) 逢神人(봉신인) 受秘訣(수비결)

風水天文(풍수천문) 俱得通曉(구득통효)

 

격암유록(格菴遺錄) 첫머리에도 소시(少時)적에 신인(神人)으로부터 비결(秘訣)을 받아서

풍수(風水)와 천문(天文)을 다 알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감록(鄭鑑錄) 중 반계(磻溪) 선생의 초창결(蕉窓訣)을 보면,

 

『磻溪公(반계공) 余之家親也(여지가친야) 學觀天人(학관천인) 不求聞達(불구문달)......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선생의 아드님이, 부친의 말씀을 기록하여 놓은 것으로써,

반계(磻溪) 선생이 천인(天人)을 직접 만나 들어 알게 된 것이지,

소문이나 전해 들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서구(李書九) 선생의

채지가(採芝歌) 칠월식과(七月食瓜) Ⓟ641에,

 

『三伏更炎(삼복갱염) 저문날에

北窓淸風(북창청풍) 잠이들어 한 꿈을 이루어 글귀 한首(수) 받았더니

七月食瓜(칠월식과) 글 넉字(자)라 解釋(해석)하라 吩咐(분부)하네

그뉘신지 몰랐더니 우리東方(동방) 先生(선생)일세

仔細仔細(자세자세) 외운 글귀 넉넉히도 生覺(생각)나서 꿈을깨서

記綠(기록)하니 이러하고 저러하다]

 

이렇게 현몽(現夢)으로 받아썼다는 것이다.

이서구(李書九) 선생은 1754(영조 30)~1825(순조 25)년의 인물로, 조선 순조 때의 문신이다.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척재(惕齋), 강산(薑山)이며,

1774(영조 5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호조판서, 홍문관 대제학을 거쳐

1824(순조 24)년 우의정에 이르렀다.

정조(正祖) 때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과 더불어 한학사가(漢學四家)로 알려졌다.

시호는 문간공(文簡公)이며 저서로는 척재집(惕齋集)과 강산초집(薑山初集)이 있다.

 

 

삼역대경(三易大經) Ⓟ248에,

 

『是以(시이)로 皇天(황천)이 有命(유명)하사

하나님(皇天)의 명령(有命)으로,

 

畵出三天三地之六圖(화출삼천삼지지육도)하야

삼천삼지(三天三地)의 육도(六圖)가 나와

 

以敎衆生(이교중생)하노니

중생을 가르치게 되었으며

 

立志誠意(입지성의)하야

正心修身(정심수신) 而通其治平之道(이통기치평지도)하라......』

 

 

팔괘구궁십승장(八卦九宮十勝章) Ⓟ253을 보면,

 

『非我言耄(비아언모)라 惟天之命也(유천지명야) 하시니라』

내 말은 털끝만큼도 없이 오직 천명(天命)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선생의 마상록(馬上錄)에서도,

 

『上唪逆二首也(상봉역이수야)

하늘에서 큰 소리가 있어, 두 편의 시(詩)를 받았다고 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로는, 전해 오는 우리의 예언서(豫言書)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감여사상(堪輿思想)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명백(明白)히 알 수 있다.

 

우리의 선각자(先覺者)들이 예언서(豫言書)를 남기게 된 연유는,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가르쳐 주고 일깨워 주고 (傳)해 주어서 알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후손(後孫)에게 (傳)하게 된 것이다.

 

삼역대경(三易大經)이나 채지가(採芝歌)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기록하여 (傳)하라 하여,

천명(天命) 받아 기록하였다고 했으며,

 

더구나 퇴계(退溪), 율곡(栗谷), 이서구(李書九),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선생 등은,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유학자(儒學者)이지,

단순한 감여가(堪輿家:풍수지리를 하는 사람)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예언서(豫言書)의 내용(內容) 가운데 풍수지리학적(風水地理學的) 용어(用語)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 추측(推測)하고 추리(推理)한 것이다.

 

선각자(先覺者)들의 예언서(豫言書)가 단순한 감여사상(堪輿思想)에서 나온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예언서(豫言書) 내용(內容)을 너무나 모르고 하는 말인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말운론(末運論 ) Ⓟ32에

 

『東西末世(동서말세) 예언서(豫言書) 神人豫言(신인예언) 世不覺(세불각)』

 

그래서 동서양(東西洋)의 말세(末世) 예언서(豫言書) 신인(神人)이 (傳)해 준

예언(預言)의 말씀임을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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