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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제(李民濟) 선생의 친필 삼역대경(三易大経)원문 서 (序)

■ 삼역대경 (三易大經)

by 雪中梅 2022. 9. 14.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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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p://cafe.daum.net/dos1130 黃汝一 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 정도령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s://blog.daum.net/e-one8899 해월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s://draft.blogger.com/blog/posts/7867224050020833104?tab=rj해월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삼역대경(三易大經)은 이민제(李民濟) 선생이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으로부터

천명(天命)을 받아 기록한 글이다.

 

이민제(李民濟) 선생의 친필 삼역대경(三易大経)원문 서 (序)

李 明好汕住 自序(이 명호산주 자서)

 

 

夫三易者(부삼역자)는 天易 地易 人易(천역 지역 인역야)

 

大経者(대경자)大道之 立德也(대도지 입덕야)

 

河天 洛地之(하천 락지지 영)至爲太極(지위태극)하야

配合生子(배합생자)하니 至今靈子之符(지금영자지부야)니라

 

是以(시이)

河圖(하도)는 爲先天(위선천)하고

洛書(락서)는 爲后天(위후천)하고

靈符(영부)中天(위중천)하야

 

三天(삼천)이 立極(입극)하니 此非三易之 大経大法乎(차비삼역지 대경대법호)

 

先天(선천지도)는 龍馬負(용마부)하니 天宮之物形圖(천궁지물형도야)

后天(후천지서)는 靈龜戴(영구재)하니 地宮物形之書(지궁물형지서야)

中天(중천지부)靈人之符頭(영인지두)하니 人宮物形之符(인궁물형지부야)

 

(고)書符 三合(도서부 삼합)하야 乃大経而 以后世(내작대경이 이전후세)할세

圖其六圖(도기육도)하야

發明 三男三女之 河洛 陰陽(발명 삼남삼여지 하락 음양)하고

心性 三才 两儀 太極之(기 심성 삼재 양의 태극지)하고

其先后天 四時之(기선후천 사시지)하야

 

陰陽鬼神(음양귀신)이 化風化雲而 五方去來之間(화풍화운이 오방거래지간)

万物万事(만물만사) 弓乙靈符之理(합우 궁을영부지리)

以心性 两道(이심성 양도)経之又経(경지우경)하며 傳之又傳(전지우전)하야

立于経傳 方策之意(입우경전 방책지의)

此下 幾篇 列錄以示 有德君子(차하 기편 열록이 이시 유덕군자)하노라

 

 

 

▼ 아랫부분 전체가 기존기록입니다. ▼

 

※ 이민제(李民濟) 선생의 친필기록과 상당부분 내용이 달라서 첨부합니다.

(중요한 부분이 많이 빠져 있습니다)

 

三易大經者(삼역대경자)난 三才之正易也(삼재지정역야)라

其圖有六(기도유육)하니

 

一(일)른 先天之 先天河圖也(선천지 선천하도야)오

二(이)난 先天之 后天洛書也(선천지 후천락서야)오

 

三(삼)은 后天之 先天河圖也(후천지 선천하도야)오

四(사)난 后天之 后天洛書也(후천지 후천락서야)오

 

五(오)난 中天之 先天河圖也(중천지 선천하도야)오

六(육)은 中天之 后天洛書也(중천지 후천락서야)니

 

以先天之 河洛(이선천지 하락)으로 定太極(정태극)하고

後天之 河洛(후천지 하락)으로 定兩儀(정양의)하고

中天之 河洛(중천지 하락)으로 定四象則(정사상즉)

 

先天(선천)은 以天開於 子之運(이천개어 자지운)으로 河圖―爲天八卦(하도―위천팔괘)하고

后天(후천)은 以地闢於 丑之運(이지벽어 축지운)으로 洛書―爲地八卦(낙서―위지팔괘)하고

中天(중천)은 以人生於 寅之運(이인생어 인지운)으로 靈符―爲人八卦(영부―위인팔괘)하니

 

先天之 三男三女(선천지 삼남삼녀)와

后天之 三男三女(후천지 삼남삼녀)와

中天 之三男三女(중천지 삼남삼녀)

 

以三天之 三乾三坤(이삼천지 삼건삼곤)으로

各定其位(각정기위)하니 十八局之陰陽兩符(십팔국지음양양부) 順逆成度(순역성도)하야

 

河圖之 儒道日精(하도지 유도일정)과

洛書之 佛道月精(낙서지 불도월정)과

靈符之 仙道星精(영부지 선도성정)이

 

大三合于 亞字之田(대삼합우 아자지전) 大明弓乙之德(대명궁을지덕)하니

外一內八(외일내팔)이 四方相連(사방상연)에

四九宮之造化―(사구궁지조화―) 能作三道春風(능작삼도춘풍)하야

三八卦之 天門地戶(삼팔괘지 천문지호) 次第自開(차제자개)하니

正是枯木逢春之 運也―(정시고목봉춘지 운야―)라

 

仙家之碧桃―(선가지벽도―) 結實于三千六白年(결실우삼천육백년)하사

白十字之(백십자지) 四象八卦道德(사상팔괘도덕)이 融融蕩蕩(융융탕탕)하야

充滿于十極世界(충만우십극세계)하니 春宮桃李之夭夭夸(춘궁도이지요요과)여

志士男兒樂樂之時也―(지사남아락락지시야)라

以西方之金(이서방지금)으로 成于東方之木(성우동방지목)하야

金木(금목)이 合運(합운)에 立于中宮(입우중궁)하니 弓乙者(궁을자)난 甲乙也―(갑을야)라

土木(토목)이 合力用權(합력용권)하야 調和七十二氣候(조화칠십이기후)하니

地上天國(지상천국)이 能開人中之天(능개인중지천)하야

松柏靑林(송백청림)이 做出五萬有 四百年之 長春(주출오만유 사백년지 장춘)하니

開闢以來(개벽이래) 初有之時也―(초유지시야)라

 

三易大經(삼역대경)이 所以出世也―(소이출세야)니

以河洛之數(이하락지수)로 推算卽天地之度(추산즉천지지도) 終于癸亥之宮故(종우계해지궁고)로

天皇氏之 三八木運(천황씨지 삼팔목운)이 㪅生於大海之中(갱생어대해지중)하야

海金之乾道(해금지건도) 乃以三天之大甲(내이삼천지대갑) 者(자)로

起頭則先(기두즉선) 后中三極之乾坤(후중삼극지건곤)이 立其德(입기덕)하야

圖書符 各定其天而 六鞱三略(도서부 각정기천이 육도삼략)이

發明于世也(발명우세야)니 正是三才成功之 秋也(정시삼재성공지 추야)라

 

天地之度(천지지도) 以事豫不困之爲德(이사예불곤지위덕)으로

河圖之午正(하도지오정)에 洛書生焉(낙서생언)하고 洛書之 子正(낙서지 자정)에 靈符生焉(영부생언)하니

子午(자오)란 天地之正針(천지지정침)이오 日月之正路也(일월지정로야)라

 

夜生於晝(야생어주)와 晝生於夜(주생어야)와

陽生於冬至(양생어동지)와 陰生於夏至者(음생어하지자)

皆是物極必返而事(개시물극필반이사) 豫不困之理也(예불곤지리야)라

是以(시이)로 洛書 生焉而大禹(낙서 생언이대우) 受之(수지) 然(연)이나

至于文武周公(지우문무주공)하야 始乃彖之(시내단지)하시고

靈符(영부) 生焉而 天一生水之 水雲先師(생언이 천일생수지 수운선사) 受之(수지)나

然(연)이나 至于地二生(지우지이생) 火之火雲后師(화지화운후사)하사

始乃圖之(시내도지)하시니 何哉(하재)오

 

天運(천운)이 在木故(재목고)로 胞胎之數(포태지수)를

更定而水雲先師 以甲木立申(갱정이수운선사 이갑목립신)하사

降于甲申(강우갑신)하시니 此乃 陰中陽生 之理也(차내 음중양생 지리야)라

然(연)이나 猶在於无極之中故(유재어무극지중고)로

受其物形靈符而(수기물형영부이) 不能彰世(불능창세)하시고

秪以靈符 八卦之度數(지이영부 팔괘지도수)로

造出東經大全及(조출동경대전급) 龍潭遺詞(용담유사)하사

以詔于世而 終于甲子(이조우세이 종우갑자)하시니

推此卽天道之 㪅出于 甲子를 亦可期也(추차즉천도지 경출우 갑자 역가기야)라

 

是以(시이)로 少男之艮土丙辰(소남지간토병진)이

以震木庚子之三度(이진목경자지삼도)로 更爲頭受靈符(갱위두수영부) 于癸亥之宮(우계해지궁)하시니

意在新元癸亥之 聖訓(의재신원계해지 성훈)이 豈非指此歟(기비지차여)아

此靈符(차영부)난 亞基太極也(아기태극)라

 

天地无窮之數(천지무궁지수)와 陰陽不測之機 皆載此書(음양불측지기 개재차서)하니

勿爲虛待 龍馬金龜而(물위허대 용마금구이) 早爲覺悟靈符之運(조위각오영부지운)하야

策以乾坤(책이건곤)하고 察其旺相則 三十六符之道(찰기왕상즉 삼십육부지도)와

二十四節之德(이십사절지덕)이 瞭然在掌(요연재장)하야

卦爻彖象(괘효단상)이 無所不解而 帝出于震(무소불해이 제출우진)을 庶幾有得也(서기유득야)리니

盍相勉旃也哉(합상면전야재)아

 

=기존기록 끝=

 

 

 

 

격암유록(格菴遺錄) 송가전(松家田) 97을 보면,

 

『後天洛書(후천낙서) 又已去(우이거)中天印符更來(중천인부갱래)하니

長男長女印符(장남장녀인부중)天正易(천정역) 理奇造化法(리기조화법)

仙道正明(선도정명) 天屬(천속)하야 一萬二千(일만이천) 十二派(십이파)

坤南乾北(곤남건북) 人之八卦(인지팔괘) 地天泰卦(지천태괘) 人秋期(인추기)

八卦陰陽(팔괘음양) 更配合(경배합)에 相克變爲(상극변위) 相生(상생)일세

八卦變(팔괘변) 天正易(천정역) (법) 四時循環(사시순환) 永無故(영무고)

浴帶冠旺(욕대관왕) 人生秋收(인생추수) 衰病死葬(쇠병사장) 退却(퇴각)이라

不寒不熱(불한불열) 陽春節(양춘절) 夜變爲晝(야변위주) 晝不變(주불변)

長女長男(장녀장남) 仙道法(선도법)을 四時循環(사시순환) 無轉故(무전고)

胞胎養生(포태양생) 올수업고 衰病死葬(쇠병사장) 갈수업네

浴帶冠旺(욕대관왕) 永春節(영춘절)不死消息(불사소식) 반가워라

儒佛仙合(유불선합) 皇極仙運(황극선운) 手苦悲淚(수고비루) 업섯으며

衰病死葬(쇠병사장) 一坏黃土(일배황토) 此世上(차세상)에 잇단말가

女上男下(여상남하) 鷄龍之運(계룡지운) 男女造化(남여조화) 一般(일반)이라

海印三豊(해인삼풍) 亞米打亞(아미타불) 佛道昌盛(불도창성) 이아닌가

新運紳運(신운신운) 更新運(갱신운)에 先後過去(선후과거) 中天來(중천래)

萬病回春(만병회춘) 海印大師(해인대사) 病入骨髓(병입골수) 無道者(무도자)

不死永生(불사영생) 시키려고 河洛理奇(하락리기) 海印妙法(해인묘법)

萬世先定(만세선정) 隱藏(은장)터니 東西各國(동서각국) 除外(제외)하고

禮義東方(예의동방) 槿花國(근화국)紫霞島(자하도)로 건너와서

南之朝鮮(남지조선) 先定(선정)하야 朴活(박활)의게 傳位(전위)하사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최고운결(崔孤雲訣)에,

 

唐帝儼(당제엄) 光啓元年(광계원년)

今上晸十一載(금상정십일재) 乙巳嘉晦(을사가회) 崔致遠(최치원)

敎文人各刊(교문인각간) 吾師問於金經鐵表(오사문어금경철표리)

來賢(망내현)

恕余之暗藏(서여지암장) 於光山北(어광산북)

獲者(획자) 必有德(필유덕)

 

【당(唐)나라 황제(皇帝) 이엄(李儼) 광계원년(光啓元年: 서기 885년)

지금 우리 임금(憲康王) 11년 을사(乙巳)년의 아름다운 그믐날 밤에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문인(門人)을 가르치며 책을 펴냈는데, 나의 스승이 그 금경철표(金經鐵表)에 대해 물었다.

그 책속에는 미래(未來)의 현인(賢人 : 정도령) 멀리 내다보며 기다리는

내용(內容)의 책이니 용서 하십시오.

(스승님) 나는 그 책을 광산(光山: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의 북쪽에 숨겨 두었는데

그 책을 넣은 자는 틀림없이 덕(德)이 있는 사람입니다(必有德) 라고 하였다.】

 

 

 

◈ 또한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 일심총론(一心摠論) ◈에 ~

【 일일신유 선경전(一日身有 善慶傳)

-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고,

옛부터 전해오는 말이있는데

이말의 본뜻이, 하나(一 : 태을)이고, 태양(日)이신 분(身)이,

덕을 많이 쌓은 가문에서 나온다(有)는 뜻이다 " 라고했다 -

이는 주역(周易)의 문언전(文言傳)에 ,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는데 ,

이 의미는 착한일을 많이 쌓는 집안은, 반드시 넘치는 경사가 있을것이라고, 전하는 말인데

격암(格菴) 선생의 마상록(馬上錄)에서

태양(日)이고, 태을(太乙)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착한일을 많이 쌓은 가문에서, 태어난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최수운(崔水雲) 선생의 절구(絶句)라는 시(詩)를 보면,

 

하청봉명숙능지(河淸鳳鳴孰能知)

자하방오부지(運自何方吾不知)

평생수명천년운(平生受命千年運)

성덕가백세업(聖德家百世業)

용담수류사해원(龍潭水流四海源)

구악일세화(龜惡一世花)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고(河淸:하청), 봉황새가 울지만(鳳鳴:봉명),

 

누가 능히 성인(聖人)을 알아 보겠는가?

 

이 운수(運數)가 어디로부터 오는지(自何方:자하방), 나는 모른다(吾不知:오부지).

일찍이 천명(天命)을 받은 것은, 천년(千年)의 운수(運)요.

성스러운 덕(聖德:성덕)이 있는 가문(家門)에서,

길이길이 쌓아온 음덕(蔭德) 열매라네(百世業:백세업).

용담(龍潭)의 물의 근원이 흘러서, 천하의 바다가 되고(四海源:사해원),

구악(龜岳)의 춘(春)이 돌아오니, 온 세상이 꽃으로 뒤덮이네(一世花:일세화).“

 

라고 명산 선생의 설명이 끝나자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하였다.

결국은 해월(海月) 선생의 가문(家門)이 음덕(蔭德)을 쌓아온지 백세업(百世業)이라고 하였으니,

일세(一世)를 30년으로 본다면 삼천년(三千年)의 음덕(蔭德)을 쌓아서

이 가문(家門)에 춘(春)인 성인(聖人)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 받고 있었다.

 

 

동학가사(東學歌詞) 중의 사십구년설법가(四十九年說法歌)에,

 

『 春化之德(춘화지덕) 그 가운데 萬物化生(만물화생)

그 理致(이치)로 意思漸漸(의사점점) 廣大(광대)하야

一花二花(일화이화) 三花開(삼화개)로 三百六十(삼백육십) 花開(화개)하니

一身花(일신화) 一家春(일가춘)이 三十六宮(삼십육궁) 春(춘)이 되여

萬國花開(만국화개) 太平春(태평춘)을 弓乙花(궁을화)인줄 뉘가알꼬

花字理致(화자이치) 알고보면 二七火(이칠화=태양)花(화)가 되니 火化光德(화화광덕) 뉘가알꼬

三八木(삼팔목) 피는 꽃은 二七火(이칠화)가 德(덕)이로다

德門(덕문)열고 바라보니 鷄鳴山川(계명산천) 밝아온다

때를아는 四九金鷄(사구금계) 日出消息(일출소식) 傳(전)해주니

寅卯末(인묘말) 辰巳初(진사초)에 奉出金盤(봉출금반) 뉘가알꼬

 

일신화(一身花) 즉 하나(一)인 사람의 몸인 꽃(花)이, 만국(萬國)을 꽃이 피게 하는,

태평춘(太平春)인 궁을화(弓乙花) 즉 궁을꽃인 줄,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꽃 화(花)자의 이치(理致) 알고 보면, 이칠화(二七火)태양(太陽)이라고 하였다.

바로 불(火)이 화한 빛의 덕(光德)인 것을,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삼팔목(三八木)에 피는 꽃은, 이칠화(二七火: 태양)의 덕(德)인데,

덕문(德門: 덕행이 높은 집안 , 즉 해월의 가문)을 열고 바라보니,

닭이 울어 산천(山川)이 밝아오는데,

때를 아는 사구금계(四九金鷄 : 봉황)봉황이 우니,

해가 떠오르는 소식을 전해 주는 때가 인묘말(寅卯末)과 진사초(辰巳初)인데

이 때에 받들어 모셔야할 금반(金盤:금 쟁반=태양)이 나타나니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여기서 꽃이란 들에 피는 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一) 즉 태을(太乙)인 궁을(弓乙)의 몸을 꽃이라고 하였다.

궁을(弓乙)인 그가 나타나는 때가 인묘(寅卯)년 말(末)과 진사(辰巳)년 초(初)라고 하였는데,

이를 누가 알겠느냐고 하였다.

 

 

"해월유록 제14장 아리랑 고개 2. 육도삼략과 기묘자" 중에서

 

삼역대경(三易大經) 육도삼략(六韜三略)의 제3도(三韜)인 54궁(宮) 도수의 수운(水運)으로,

수운(水運) 최제우(崔濟愚) 선생이 오신 것이다.

수운(水運) 선생은 1824년 10월 28일 지금의 경상북도 월성군 현곡면 가정리에서 태어났으며,

제우(濟愚)라는 이름은 어리석은 세상 사람을 건져 내려는 결심을 다짐하기 위해 스스로 고친 이름이다.

(前)의 이름은 제선(濟宣)이고 호는 수운(水運)이다.

17세에 아버지를 여위고 26세 때인 1859년 10월에 처가에 있던 처자를 거느리고,

아버지가 남긴 고향의 구미산 밑에 있는 용담정(龍潭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수운(水運) 선생은 이때에 제우(濟愚)라는 이름을 고쳤으며,

 

1860(庚申)년 4월 5일 어떤 결정적인 종교 체험을 통하게 되었는데, 곧 몸이 마구 떨리고,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경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보통 이 날짜를 동학(東學)이 태어나게 된 날짜로 삼는다.

 

이후로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여져서 수운(水運) 최제우(崔濟愚) 선생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수운(水運) 선생은 자신의 가르침이 만고(萬古)에 없는 새로운 도(道)라 하며, 동학(東學)이라 불렀다.

 

서양(西洋)이 아니라 동양(東洋)인 우리나라 한국 땅에,

처음으로 하늘로부터 받은 도(道)이기 때문에 동학(東學)이라 한다고 하였다.

날이 갈수록 수운(水運) 선생의 가르침에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니,

드디어 조정(朝廷)의 관리(官吏)들도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 당시는 서학(西學) 즉 천주교(天主敎)는 우리 정부가 엄하게 금지하는 종교인데,

오히려 동학(東學)의 가르침이 서학(西學)으로 몰려서 신변의 위험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서학(西學)과 다르다고 강조하여도 신변의 위험은 커가기만 했었는데,

 

1861년 간소한 차비를 하여 전라도 쪽으로 몸을 피하였다가.

이듬해인 1862년 3월에 전라도 남원(南原)에서 경주(慶州)로 돌아왔다.

 

그의 제자(弟子) 중에서 최경상(崔慶翔: 1827~1898)을 남달리 사랑하고 믿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뒷날 동학(東學)2대 교주가 된 최시형(崔時亨, 號: 海月)이었다.

 

그 이후 동학(東學)의 활동이 활발하게 되자 소문도 점점 커져 관리(官吏)들의 지목을 피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1862년 9월에 경주(慶州) 진영(鎭營)에서 수운(水運) 선생을 체포하게 되었다.

수운(水運) 선생이 이술(異術)로써 사람들을 속인다다는 혐의(嫌疑)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갇힌 지 며칠도 안 되어 수백 명의 제자(弟子)들이 몰려와 수운(水運) 선생의 가르침은

민속(民俗)을 해(害)하지 않는다고 석방(釋放)을 요구하자,

뜻밖에도 진영(鎭營)에서는 따르는 제자(弟子)들이 많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음을 알고

무죄(無罪)로 석방(釋放)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동학(東學)의 교도가 크게 늘어가는 것을 매우 걱정하고 있었으며,

이제는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동학의 교세(敎勢)가 너무 커져 있다는 것을 알고

몰래 동학(東學)에 대한 정책을 신중히 제고(提高)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1863년 11월 20일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가 왕명을 받들고 몰래 경주를 향해 출발하였다.

곧 조정은 암행어사(暗行御史)를 급히 보내어 처리하는 방법을 세웠는데.

이때 암행어사(暗行御史)는 수운(水運) 선생이 있는 곳을 몰래 찾아가서 양유종(樑有豊) 등 두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 형편을 살피게 하고는, 12월 9일 밤에 30여명의 교졸(校卒)을 주어 수운(水運) 선생의 거처(居處)를 습격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수운(水運) 선생과 그의 교도(敎徒) 23명이 한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마침 철종 임금이 돌아 가셨으므로,

 

수운(水運) 선생을 대구(大邱) 감영에 압송(押送)하게 하였으니

1864(갑자) 1월 6일 대구 감영에 도착한 수운(水運) 선생은 이곳에서 심문(審問)을 받았다.

이해 3월 10일에 효수형(梟首刑)으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고 순교(殉敎)의 피를 흘렸다.

이때 수운 (水運)선생의 나이 겨우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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