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중윤(黃中允)의 전가대보(傳家大寶) :「천군기(天君紀옥황기()」,「사대기(四代紀)」,「玉皇紀)」...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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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 울진 출신 문인 황중윤(黃中允)이 지은 「천군기」의 필사본.
[개설]
동명(東溟) 황중윤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아버지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에게 공부하여 가학을 계승하였다.
황중윤의 저술들은 『동명문집』으로 간행되기도 했으나 많은 필사본이 간행되지 않은 채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왔다.
[제작발급경위]
"숭정계유중추(崇禎癸酉仲秋)에 황중윤서(黃中允書)"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33년(인조 11)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구성/내용]
단행본 『삼황연의(三皇演義))』 내에 「천군기(天君紀)」, 「사대기(四代紀)」, 「옥황기(玉皇紀)」 세 편이 합철 되어 있다.
또한, 후손이 행초서로 쓴 「수월당중건기(水月堂重建記)」가 들어 있다.
'전가대보(傳家大寶)'라는 유려한 글씨의 표제가 붙어 있어,
이 글을 통하여 가문에 묵시한 계시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천군기」는 단독으로 간행된 적이 없고 자손들에 의하여 전해져 왔다.
학계에서는 김동협 교수가 황중윤의 소설 작품 전체를 담아 1984년 『황동명소설집』으로 간행하여
문학과언어연구회 국학자료 제1집으로 소개하였으며, 『김광순 소장 필사본 한국 고소설 전집』 제61권에 영인본으로 소개하였다.
내용의 서두에서 천군(天君)을 의인화하여
"천군의 성은 주(朱)이고 이름은 명(明)이며 ,자(字)는 명지(明之)이며 격현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천황씨(天皇氏)와 함께 살았으나 태고의 홍황박략(鴻荒朴略)한 시대에 아는 바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천군기」는 정태제(鄭泰齊)의 「천군연의(天君演義)」와 비교해 볼 때 내용이 매우 유사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황중윤이 정태제보다 35세 앞선 사람임을 감안할 때 「천군연의」는 「천군기」와 별본으로 보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흔히 「천군기」를 따로 분리하여 독립된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사실은
『삼황연의』라는 제목 안에 존재하는 한편의 글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명 황중윤선생
성명 : 황중윤(黃中允) , 1577년 ~ 1648년
본관 : 평해(平海)
자 : 도선(道先)
호 : 동명(東溟)
출생지 : 경북 안동 내앞[川前洞]의 외가
출신지 : 경북 울진 기성면 사동리
분묘지 : 평해 북쪽 먹방동(墨坊洞)
입사경로 :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내관직 :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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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81.08.04 기사
最古(최고) 天君紀(천군기) 발견 蔚珍(울진)서…光海君(광해군)때 黃中允(황중윤) 저작
最古(최고) 天君紀(천군기) 발견
蔚珍(울진)서…光海君(광해군)때 黃中允(황중윤) 저작
蔚珍(울진)】우리나라 고전문학의 天君系統(천군계통) 소설중 현재까지 학계에서
原典(원전)으로 알려진天君演義(천군연의)보다 연대가20년이나 앞서고
내용도 틀리는 최고의 천군기가 발견되어 학계의관심
「문학과 언어연구회」학술조사반 崔東國(최동국)仁川大(인천대)교수)은 지난달 27일
경북울진군 기성면사동리433 平海黃(평해황)씨 종가인黃義錫(황의석)씨(44)집에
가보로 내려오는 三皇演義(삼황연의)라는 책속에 天君紀(천군기)전문이 수록돼 있는것을 발견했다
이같은 기록으로 보아 학술조사반은 기록연대가 李朝仁祖(이조인조)11년(1633년)
光海君(광해군)때 승지직을지낸 黃中允(황중윤)이가 쓴것으로고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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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 신미년에 다음과 같은 작품이 있어 주목된다.
내가 해남에 있을 때 꿈에 한곳을 보았으니 앞에 한 산이 높고 우뚝하였다.
천제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야산이라 하셨다. ****
깨어나서 생각해보니 가야산은 합천에 있는데
어찌 다른 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좁다란 길에 나타나 그 산을 볼 수 있겠는가.
여기 이름에 미쳐 남해에 큰 산이 있으니 기이하고 수려하며 바로 바다 언저리에 닿아 있었다.
여러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가로되 가야산이라 한다.
내가 크게 놀라 다시 물으니 그 자세히 말하기를
이 산은 德山으로부터 왔으며, 현에서 예로부터 가야산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 여지승람을 얻어 살펴보니
과연 가야산이라 하였으니 의심할 것이 없었다.
아, “滿山松接海門潮” 의 시구가 이미 아름다운 바닷길에 합하였고,
또한 가야산의 꿈이 이에 응하였으니 ,부생의 떠남이 어찌 앞서 정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
느껴 이에 적노라.
“余在海南 夢寓一處 前望一山突兀 天帝曰 伽倻山也 覺而思之 伽倻山在陜川 豈他日歸鄕時
路出於陜 而見其山耶 及來于此 南海有大山 奇秀直接於海門 問諸隣人 曰 伽倻山也 余大驚再問
其詳曰 此山來自德山 縣自古名曰伽倻山 其後取輿地勝覽 而攷之 果爲伽倻 無疑也 噫 余滿山松接海門潮之句
旣合於海美之路 而伽倻山之夢 又應於此 浮生去住 豈非前定者耶 感而賦之.”「東溟先生文集」 권 3, pp. 296-297.
라고 제목을 하고 아래의 시를 지었다.
「東溟先生文集」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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