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년 세검정(洗劍亭) 부근으로 이전한 총융청(摠戎廳)이 그려져 있고, 영조의 생모를 모신 육상묘(毓祥廟)가 1754년 육상궁으로 바뀌는데 이 지도에는 육상묘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750년대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도성도(都城圖)에서와 마찬가지로 궁궐과 종묘·사직 등 국왕과 관련된 경관을 강조하여 표현하였으며, 특히 행정 구역이 비교적 상세한데 서울을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눈 오부(五部)별로 소속된 방(坊)이 표시되고 성문 밖에는 계(契)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방(坊)의 영역을 나타내기 위해 약자로 첫 자만 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성곽 주위로는 삼군문(三軍門)의 관할 영역이 표시되어 있고, 이 밖에 행정 관서, 동리(洞里), 다리 등을 가느다란 붓을 사용하여 빼곡하게 적어 놓았고, 동대문과 남대문 밖에는 중국의 관우(關羽)를 모신 관왕묘(關王廟)도 보이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明)나라를 높이고 오랑캐 나라인 청(淸)나라를 멀리했던 당시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동대문은 문 앞을 둥그렇게 차단한 옹성(甕城)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상대적으로 땅의 기운이 약한 동쪽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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