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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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독적랑(我獨藉浪)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라고 질문하자 명산 선생은 다시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이 글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나온 말인데 제20장 이속장(異俗章)을 보면,
絶學 無憂 唯之與阿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何若
절학 무우 유지여아상거기하 선지여악 상거하약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인지소외 불가불외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향태뢰
如春登臺 我獨恒兮其未兆 如嬰兒之未孩
여춘등대 아독항혜기미조 여영아지미해
乘乘兮若無所的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승승혜약무소적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若昏
아우인지심야재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약혼
俗人察察 我獨悶悶 忽兮若海 漂兮若無所止
속인찰찰 아독민민 홀혜약해 표혜약무소지
衆人皆有以 而我獨頑 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중인개유이 이아독완 사비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학문(學文)을 끊으니 근심이 없어지는구나.
정중하게 예하면 어떻고 조심성이 없어 응하면 어떻단 말인가?
선(善)과 악(惡)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남들이 두려워하는 바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으니,
세인(世人)들 논쟁(論爭)에는 그 끝이 없구나.
많은 사람은 모두 희희낙락하며,
부족함이 없이 대접(待接)받는 것과 같고,
봄철에 누대에 오르는 것 같거늘,
나만 홀로 조용히 마음의 동요가 일 기색마저 없고,
어린아이가 아직 옆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꽉 막히고 멸시(蔑視)받아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구나.
많은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만 홀로 버려진 것 같구나.
나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인가.
분별(分別)할 수가 없구나.
세상(世上)사람들은 모두가 영특(英特)한데,
나만 홀로 어둡고 우매(愚昧)한 것 같구나.
세상(世上)사람들은 날카롭고 신속(迅速)한데,
나만 홀로 어리숙한 것이,
넘실거리는 바닷물과 같고,
나만 홀로 물결위에 떠서 머물 것이 없는 것 같구나.
많은 사람들은 다 유능(有能)하지만,
나만 홀로 어리석고 촌스럽구나.
나는 홀로 다른 사람과는 달리,
나의 어머니 (하나님)의 양육(養育)받는 것을 소중하게 여긴다.***
여기의 이 내용(內容)은
말세(末世)의 하나님의 아들의 심정(心精)과
그의 주변 상황(狀況)을 밝혀 주는 글이다.
여기의 아(我)라는 말은 말 그대로 도(道)의 화신(化身)인 정도령,
즉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주인공으로서 아(我)라고 한 것이니,
자기 스스로의 심정(心精) 을 토로한 말인 것이다.
우선 남들은 다 부족함이 없이 대접받고 즐거웁게 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홀로 조용히 있는 것이,
마치 주위 사람들이 보면 꼭 어리석어 마치 바보처럼 보인다고 한 것이다.
세상(世上) 사람들은 다들 영특한데,
홀로 우유부단(優柔不斷)하고 나약하여 약삭빠르지도 못하니,
무능(無能)한 사람으로 멸시(蔑視) 받고 산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보면 어리숙한 것이 어린 아기 같고,
꽉 막힌 사람이라 타협(妥協)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상(世上)과 잘 타협(妥協)하여야 유능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세상인데,
약삭빠르게 타협(妥協)하질 못하니
이러한 사회에선 적응(適應)하여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다.
권세(權勢)잡은 자와 부자(富者)에게
잘 보이고 아부(阿附)해야 잘 살 수 있는 세상(世上)인데,
그렇게 하질 않으니 말이다.
세상(世上) 사람들은 여유(餘裕)가 있지만
나(하나님의 아들)만 홀로 버려진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머물 것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 아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의 그러한 참담(慘憺)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만 홀로 어리숙한 모습이
넘실거리는 바닷물위에 떠서 머무를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이
물위에 떠서 흔들거리며 떠다니는 부평초(浮萍草)와 같다고나 할까,
배와 같다고나 할까,
이러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하나님의 아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홀로 나의 어머니(하나님이 주신 고통)의 양육(養育)을 받는 것을,
소중(所重)하게 여긴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짜 하늘의 아들을,
이와 같이 지독하게 고생(苦生)시키지만,
그게 모두 하나님의 자식 사랑으로,
큰 인물(人物)을 키우기 위한, 즉 큰일을 맡기기 위한
교육방법(敎育方法)이라는 것이다. ***
그 아들이 나중에는 스스로 그 어머니(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소중히 여기게 된다는 말이다.
이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속에 있는 내용(內容)을
격암유록(格菴遺錄)에서 인용한 것이 되는 것이다.
아독적랑(我獨藉浪),
즉 나만 홀로 파도치는 물위에 떠 있는 궁을십승(弓乙十勝)이라고 한 것이다. ***
즉 그가 인생(人生)을 추수(秋收)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인 것이다.
위의 글 즉 격암유록(格菴遺錄) 새(塞)41장 P46에서,
『利(刃)見機 打破滅魔 人生秋收 糟米(判)端 風驅飛
糟飄風之人 (我獨籍浪) 弓乙十勝 轉白之死 黃腹再生
三八之北 出於聖人 天授大命 似人不人 枾似眞人
馬頭牛角 兩火冠木 海島眞人 渡南來之眞主
出南海島中 紫霞仙境 世人不覺矣』
3 - 8 이북(以北)에서 나온 성인(聖人)인 하나님께서 천명(天命)을 내리시는데,
그 천명(天命)을 받는 사람이 궁을십승(弓乙十勝)이며,
바로 사람 같아 보이지만 사람이 아닌 감나무이며,
하나님의 위(位)를 계승(繼承)받는 진인(眞人)이라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나타낼 자(者)이며,
해도진인(海島眞人)이며 진주(眞主)로서,
남쪽으로 옮겨가서 자하선경(紫霞仙境)을 이룰자라고 한 것이다.
이 자하선경(紫霞仙境)에 대하여는,
해월(海月) 선생께서 자세히 밝혔으니,
그때에 다시 설명하기로 하겠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7장 30편에,
요순무유야(堯舜無遺野) 건곤유기허(乾坤有棄墟)
포문란성화(飽聞蘭性化) 편애죽심허(偏愛竹心虛)
물의종우망(物議從愚妄) 거지실졸소(渠知實拙疎)
시간신상사(試看身上事) 십재일양거(十載一羊裾)
요순(堯舜)은 들에 버려지지 않았으나,
건곤(乾坤:天地將師 정도령)은 언덕위에 버려졌구나.***
많이 들어온 이야기로 난초의 성질은 교화(敎化)하는데 있지만,
편애(偏愛)하는 대나무 속은 비어 있구나.
세상(世上) 사람들의 평론(評論)이란 나아가 대체로 망령(妄靈)되고 어리석은데,
어찌 알겠는가?
열매(實:乾坤)가 불우(不遇)한 것을 이겨 뚫어 소통시키는 것을,
그의 일신상에 관한 일을 지켜본다면,
10년이 지나면 크게 상서(祥瑞)러운 옷을 입게 됨을!
요순(堯舜)같은 성인(聖人)도 그들의 부모(父母)가 버리지 않았으며,
인간(人間)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천지장수(天地將師)인
건곤(乾坤 : 정도령)은 하나님이 언덕에 버려두었다는 것이다.
어려움을 견디고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能力)을
길러주기 위해 버려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우치게 편애(偏愛)하는 대나무 속은 비어있게 됨과
난초의 성질(性質)은 잘 가르쳐 교화(敎化)하는데 있다 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군자(四君子)라 하면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이야기 한다.
일반적으로 사군자(四君子)를 군자의 절개, 여자의 정절, 고난극복 등에
비유하기도 하지만,해월(海月)선생의 시(詩)에서는
단순히 이러한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구분지어 말한다면,
난초(蘭草)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매화(梅花)는 하나님의 장자(長子)인 큰 아들을 이야기하고,
국화(菊花)는 어머니를 뜻하고,
대나무(竹)는 아우를 상징하는 말이니,
염두에 두면 해월 선생의 시(詩)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건곤(乾坤)이 불우(不遇)한 것을 견디어 자기 몸에 일어난 일을 돌이켜 보아,
자신의 존재(存在)를 깨닫게 되고, ***
하나님이 돌아가신 다음 10년 뒤에는 천자(天子)로서
등극(登極)하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월유록 P298~303 말씀(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