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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 - 감결(鑑訣)

▲ 비결 원문

by 雪中梅 2020. 7. 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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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 - 감결(鑑訣)

 

“完山伯有三子 長曰淋 次曰沁 三曰淵 與鄭勘 遊於八道山水 上金剛山飛簾臺

완산백유삼자 장왈임 차왈심 삼왈연 여정감 유어팔도산수 상금강산비렴대

相謂曰 天地陰陽 先爲周張

상위왈 천지음양 선위주장

 

鄭曰 自崑崙 至白頭 平壤 己過千年之地 運移於松岳 五百年之地 妖僧宮姬作亂

정왈 자곤륜 지백두 평양 기과천년지지 운이어송악 오백년지지 요승궁희작란

地氣衰敗 天運否塞 移於漢陽 其略曰

지기쇠패 천운부색 이어한양 기략왈

干戈未定君臣死 南渡蛟龍人何去 瑞日乾坤長夜明 須從白兎走靑林

간과미정군신사 남도교룡인하거 서일건곤장야명 수종백토주청림

 

李曰 來脉運於金剛 至太白小白 山川鐘氣 入於鷄龍 鄭哥八百年之地

이왈 래맥운어금강 지태백소백 산천종기 입어계룡 정가팔백년지지

元脉伽倻 趙哥千年之地 全州 范哥六百年之地 至於松岳 王氏復興

원맥가야 조가천년지지 전주 범가육백년지지 지어송악 왕씨복흥

其後未詳 不可考 坐三角白雲臺 某歲某年 有知覺者生 無知覺死

기후미상 불가고 좌삼각백운대 모세모년 유지각자생 무지각사

 

李曰 何時 其然也

이왈 하시 기연야

鄭曰 余子孫末 宮中寡婦意自專 殿下嬰兒手自推

정왈 여자손말 궁중과부의자전 전하영아수자추

國事將非 軍身無依 村村水杵 家家人蔘 家家及第 人人進士 世人偕后

국사장비 군신무의 촌촌수저 가가인삼 가가급제 인인진사 세인해후

有賢人以自乏論 士子橫冠 神人脫衣 順其理也 走邊橫己 聖諱加入

유현인이자핍론 사자횡관 신인탈의 순기리야 주변횡기 성휘가입

鷄龍石白 草浦行丹 黃霧黑雲 赤陽三日 慧星出於軫頭 入干河間

계룡석백 초포행단 황무흑운 적양삼일 해성출어진두 입간하간

起於紫微 移於牛星間 諸大中小中偕亡

기어자미 이어우성간 제대중소중해망

 

李曰 三角爲窺峰 白岳爲主峰 漢江爲腰帶 稽山爲靑龍 冠岳爲案山 王宮三火

이왈 삼각위규봉 백악위주봉 한강위요대 계산위청룡 관악위안산 왕궁삼화

冊子起炎 上憂下撓 吏殺太守 綱常永殄

책자기염 상우하요 리살태수 강상영진

 

李曰 明年春三月 安竹之間 積屍如山 聖世 秋八月 仁富之間

이왈 명년춘삼월 안죽지간 적시여산 성세 추팔월 인부지간

夜泊千艘 龍仁驪唐之間 人影絶跡 隋唐之間 鷄犬無聲

야박천소 용인려당지간 인영절적 수당지간 계견무성

 

鄭曰 是何言也

정왈 시하언야

 

李曰 保身之地 有十處 一曰豊基 二曰安東 三曰開寧龍宮 四曰伽倻 五曰丹陽

이왈 보신지지 유십처 일왈풍기 이왈안동 삼왈개령용궁 사왈가야 오왈단양

六曰公州定山三尋麻谷 七曰鎭木 八曰奉化 九曰醴泉乃永居之地賢相良將

육왈공주정산삼심마곡 칠왈진목 팔왈봉화 구왈예천내영거지지현상량장

継継而出 十曰太白

계계이출 십왈태백

 

沁曰 求穀種於三豊之間 求人種於大小白之間 此十處 兵火不入 凶年不入

심왈 구곡종어삼풍지간 구인종어대소백지간 차십처 병화불입 흉년불입

逢白衣賊人則 結婚姻兄弟話語樂談 永嘉之間 和氣融融 永嘉此山內也

봉백의적인즉 결혼인형제화어락담 영가지간 화기융융 영가차산내야

金剛之西 五臺之北 十二年賊穴 九年之水 十二年兵火 人何避之乎

금강지서 오대지북 십이년적혈 구년지수 십이년병화 인하피지호

入於十勝之地者 觀其時而徃 日暮西歸 言之長也 歸于西庵 明日又自金剛

입어십승지지자 관기시이왕 일모서귀 언지장야 귀우서암 명일우자금강

至伽倻

지가야

 

鄭曰 富者多財之故 負薪入火 貧者無恒産之故 安徃而不得貧乎 稍有知覺者

정왈 부자다재지고 부신입화 빈자무항산지고 안왕이불득빈호 초유지각자

觀其勢而往

관기세이왕

 

李曰 漢南百里人影永絶 黃平兩西則 三年之內 千里無烟 幾內東峽爲空墟

이왈 한남백리인영영절 황평양서즉 삼년지내 천리무연 기내동협위공허

賊民自全州起兵 華澤之間 萬艘橫江 此大患也 又曰末世則 吏殺太守

적민자전주기병 화택지간 만소횡강 차대환야 우왈말세즉 리살태수

 

小無忌憚 上下分裂 滅絶綱常 出主少國(危)疑孑孑之際 世祿之臣 有死而己

소무기탄 상하분열 멸절강상 출주소국위의혈혈지제 세록지신 유사이기

 

 

鄭曰 末世之事 吾末詳細然 九歲大歉 人民食木皮而生 四歲染氣人命除半

정왈 말세지사 오말상세연 구세대겸 인민식목피이생 사세염기인명제반

 

淵曰 後世愚眼 必以龍門爲隱身之方 盖山水之法以年言之則 有生氣己脫於漢陽

연왈 후세우안 필이용문위은신지방 개산수지법이년언지즉 유생기기탈어한양

其中氣穴勢皆死穴故 後人若居此則 五臺之北 賊民搜出 不一年內萬命灰死

기중기혈세개사혈고 후인약거차즉 오대지북 적민수출 불일년내만명회사

 

沁曰 若有知覺者 入於十勝地 必有愚夫愚婦挽留無論公私 大小禍福 何可盡諭

심왈 약유지각자 입어십승지 필유우부우부만류무론공사 대소화복 하가진유

 

鄭曰 鷄龍石白 平沙三十里 南門復汝子孫末鼠面虎目 大歉時至 虎患害人

정왈 계룡석백 평사삼십리 남문복여자손말서면호목 대겸시지 호환해인

魚搤至貴 泉渴山崩則 白頭之北 胡馬長嘶 両西之間 寃血漲天 漢南百里人何居焉

어염지귀 천갈산붕즉 백두지북 호마장시 양서지간 원혈장천 한남백리 인하거언

 

沁曰 木覓山 乃産陰形地 士大夫 添累則 一國無禮 此則奈何

심왈 목멱산 내산음형지 사대부첨누즉 일국무례 차즉내하

鄭曰 此則無憂 陰風防塞 黃氏無后(後)

정왈 차즉무례 음풍방색 황씨무후

 

沁曰 鷄龍開國 卞相裵將 開國元勳 房姓牛哥 如手如足

심왈 계룡개국 변싱배장 개국원훈 방성우가 여수여족

大小白之間 舊斑復古 盖人世避身 不利山 不利水

대소백지간 구반복고 개인세피신 불리산 불리수

 

最好兩弓 汝子孫末 國祚盡於八壬 乱於木卜 終於我子孫

최호양궁 여자손말 국조진어팔임 란어목복 종어아자손

 

沁曰 我子孫 殺汝子孫 汝裔殺我裔

심왈 아자손 살여자손 여예살아예

 

淵曰 十勝尤好 人世避身 然鳥及大路奈何

연왈 십승우호 이세피신 연조급대로내하

 

鄭曰 鳥嶺築城 大軍浮海船 南入全州中賊民聚黨則 華澤兩西人命殺害故

정왈 조령축성 대군부해선 남입전주 호중적민취당즉 화택양서인명살해고

此十處 不入兵火凶年 捨此何居

차십처 불입병화흉년 사차하거

 

鄭曰 張氏倡義 首乱之期在 庚炎有知覺者 去十勝之地 然先入者還 中入者生

정왈 장씨창의 수란지기재 경염유지각자 거십승지지 연선입자환 중입자생

後入者死 此十勝處 兵火不入 六道之民 有死而己 四面如是如是

후입자사 차십승처 병화불입 육도지민 유사이기 사면여시여시

歉歲九年 此處不入凶年 盖山水之法 奇哉奇哉 後有知覺者 行乞入而可

겸세구년 차처불입흉년 개산수지법 기재기재 후유지각자 행걸입이가

壬臘壬三 無事僥倖 雖有事 鄕野何安

임랍임삼 무사요행 수유사 향야하안

 

鄭曰 鷄龍之南外四郡 亦避身之一段 尤踰畿東峽

정왈 계룡지남외사군 역피신지일단 우유기동협

 

 

1. 감결(鑑訣)

 



감(鑑)은 사마휘(司馬徽), 제갈량(諸葛亮)보다 낫다.

 

한륭공(漢隆公)은 완산백(完山伯)에 봉해졌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 있는데, 맏아들 임(淋)은 일찍 죽었다. 둘째 아들은 심(沁)이요, 셋째 아들은 연(淵)이다. 심과 연이 정공(鄭公)과 함께 팔도 산수의 기이하고 절승(絶勝)한 곳을 유람하다가 금강산(金剛山)에 이르렀다. 세 사람은 대나무 지팡이에 짚신을 신고 비비대(飛蜚臺)에 올라 서로 돌아보며 말했다.

「천지(天地)는 음양(陰陽)이 먼저 주장이 되도다.」

심이 말했다.

「산수(山水)의 법이 기이하고 절승하도다.」

정이 말했다.

「곤륜산(崑崙山)의 내맥(來脈)이 백두산에 이르고, 그 원기가 평양(平壤)에 이르렀다. 그러나 평양은 이미 천년(千年)의 운수가 지나 그것이 송악(松岳)으로 옮겨졌다. 송악은 오백 년 도읍할 땅이나, 요승(妖僧)과 궁녀가 난을 꾸며 지기(地氣)가 쇠하고 천운(天運)이 막혀 운은 다시 한양(漢陽)으로 옮길 것이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난리는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충신이 죽었으니 천지가 긴 밤중이로다. 교룡(蛟龍)이 남쪽으로 건넜으니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모름지기 흰 토끼운을 쫓아 청림(須從白兎走靑林)으로 달려갈지어다.」 심이 말했다.

 

이번 세기 최고 밝기 '대혜성' 온다...최근접 시기는? / YTN

 

 

https://youtu.be/vq5FYq6wQl0

 

 

 

「금강산으로 옮겨진 내맥(來脈)의 운이 태백산(太白山)․소백산(小白山)에 이르러 산천의 기운이 뭉쳐져 계룡산(鷄龍山)으로 들어가니, 정씨(鄭氏)의 팔 백년 도읍할 땅이로다. 그후 원맥(元脈)이 가야산(伽倻山)으로 들어가니, 조씨(趙氏)의 천년 도읍할 땅이로다. 전주(全州)는 범씨(范氏)의 육 백년 도읍할 땅이요, 송악(松岳)으로 말하면 왕씨(王氏)가 다시 일어나는 땅인데, 나머지는 상세하지 않아서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삼각산(三角山) 백운대(白雲臺)에 앉아 정이 말했다.

모년(某年)이 지나 모년이 되면 지각이 있는 이는 살고, 지각이 없는 이는 죽으리라.」

심이 말했다.

「언제 그렇게 되겠는가?」

정이 말했다.

「네 자손 말년에 궁중 과부가 오로지 자기 뜻대로 하고 임금이 어려서 나라 일이 잘못되니 홀몸으로 의지할 데가 없고, 집집마다 인삼이요, 마을마다 물방아요, 집집마다 급제요, 사람마다 진사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안 후에 어진 사람(賢人; 정도령)이 나타나 폄론(貶論 : 각각 달리 논하다)하리라. 선비(士)가 관을 비뚜로 쓰고, 신인(神人)이 옷을 벗고, 주변(走邊)에 기(己)를 빗기고, 성인의 휘자(諱字)에 팔(八)을 덧붙이면, 계룡산 돌이 희게 변하고, 청포(淸浦)의 대가 희어지고, 초포(草浦)에 조수가 들어와 배가 다니고, 누런 안개와 검은 구름이 사흘 동안 움직이지 않고, 혜성이 진성(軫星) 머리에서 나타나 은하 사이로 들어가 자미(紫微)를 범하고 두미(斗尾)로 옮았다가 두성(斗星)에 이르러 남두(南斗)에서 멈추면 대중화(大中華: 중국)․ 소중화(小中華 : 한국)가 한꺼번에 망하리라. 심이 말했다.

 

「삼각산(三角山)은 규봉(窺峰), 백악(白岳)은 주산(主山)으로 삼고, 한강은 요대(腰帶)를 삼고, 계락산(稽絡山)은 청룡(靑龍), 안현산(鞍峴山)은 백호(白虎), 관악산(冠岳山)은 안산(案山), 목멱산(木覓山)은 남산(南山)이 되었다.」 정이 말했다.

「사방 도둑이 들어와 노략질하나 반드시 다시 중흥하고, 관악산을 안산으로 삼으니 왕궁에 세차래 불이 나 단우(丹宇)에 불꽃이 일어나고, 위는 근심하고 아래는 어지러우니 아전이 태수를 죽이고, 삼강과 오상(吳常)은 영영 사라지리라.」 심이 말했다.

「세 사람이 마주 대하였으니 못할 말이 어디 있겠나. 신년(申年) 봄 삼월, 성세(聖歲) 가을 팔월에 인천(仁川)과 부평(富平) 사이에 밤중에 배 1천 척이 정박하고, 안성(安城)과 죽산(竹山)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여주(驪州)와 광주(廣州) 사이에 인적이 영영 끊어지고, 수성(隨城)과 당성(唐城) 사이에 피가 흘러 내를 이루고, 한강 남쪽 백리에 닭․개의 소리가 없고, 인적이 영영 끊어질 것이다.」 정이 말했다.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은가?」

심이 말했다.

「몸을 보전할 땅이 열 있으니, 첫째는 풍기(豊基) 예천(醴泉), 둘째는 안동(安東) 화곡(華谷), 셋째는 개령(開寧) 용궁(龍宮), 넷째는 가야(伽倻), 다섯째는 단춘(丹春), 여섯째는 공주(公州) 정산(定山) 마곡(麻谷), 일곱째는 진천(鎭川) 목천(木川), 여덟째는 봉화(奉化), 아홉째는 운봉(雲峰) 두류산(頭流山)으로 이는 길이 살 수 있는 땅이어서 어진 정승, 훌륭한 장수가 연달아 날 것이다. 그리고 열째는 태백(太白)이다.」 심이 말했다.

곡식 종자는 삼풍(三風․豊)에서 구하고 인종(人種)은 양백(兩白; 정도령)에서 구할 것이다. 이 열 곳은 병화(兵火)는 물론 흉년이 들지 않고, 흰 옷 입은 도둑을 만나면 결혼하고, 형제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지내리라. '영가(永嘉) 사이에 화기가 성하다' 했는데, 영가가 바로 이 산이다. 금강산 서쪽, 오대산 북쪽은 12년간 도둑의 소굴이 되고, 9년간의 수해와 12년간의 병화가 있을 것이니 어느 누가 그것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십승지(十勝地)에 들어간 사람은 시국을 잘 관망하여 살리라.」 정이 말했다.

「날이 저물었으니 서쪽으로 돌아가자. 이야기가 길었다.」

그리하여 서쪽 암자로 돌아가니, 청아한 풍경 소리가 흰구름 사이에서 들려오고, 날아 떨어지는 폭포 소리는 귀를 씻고, 구름 골짜기는 천태만상이었다.

다음날, 세 사람은 다시 금강산으로부터 가야산에 이르렀다.

정이 말했다.

후세에 만약 지각 있는 사람이 먼저 십승지에 들어가면, 가난한 자는 살고 부자는 죽으리라.」 연이 말했다.

「어찌하여 그런가?」

정이 말했다.

부자는 많은 돈과 재물이 있으므로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과 같고 가난한 자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니 빈천하게야 어디 간들 못 살겠는가.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국을 보아 행하리라.」 심이 말했다.

두 서쪽 땅,황해도와 평안도는 3년간 천리안에 인연(人烟: 사람 연기)이 없을 것이요, 또한 동협(東峽)은 심히 꺼릴 땅이니라.」 정이 말했다.

「아무 산, 아무 물의 기세가 이러이러하니 천년 뒤의 일을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심이 말했다.

「전주에서 도둑이 일어나 호중(湖中)의 진(津)․화(華) 사이로 배 만 척이 강을 가로지르리니, 이것이 하나의 큰 근심이다.」 정이 말했다.

「이것은 작은 근심이다. 만약 말세가 닥치면 아전이 태수를 죽이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고, 상하의 구분이 없어지고,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변고가 연달아 일어나리라. 출현하는(出) 주(主 : 정도령)는 아이(少) 이고 나라는 위기를 맞으니, 대대로 녹(祿)을 먹은 신하는 죽을 수밖에 없다.」 정이 말했다.

「내 말세에 있을 재앙에 대해 더 상세히 말해 보겠다. 9년 동안 큰 흉년이 들어 백상들은 나무 껍질로 연명하고, 4년 동안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반으로 줄고, 사대부의 집은 인삼 때문에 망하고 벼슬아치의 집은 이익을 탐하는 것 때문에 망하리라.」 연이 말했다.

「후세의 어리석은 자의 눈에는 용문산(龍門山)이 몸을 숨길 만한 곳으로 보이리라. 산수법(山水法)이 아닌 것으로 말하면 생기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용문산은 한양에 그 기를 뺏겼으므로 산 가운데 기세가 다 죽은 혈(穴)이다. 따라서 도둑들이 수소문해 알아 낼 것이니, 채 일년이 안되어 목숨이 재가 되리라.」 정이 말했다.

「산수의 형상이 이토록 괴상하고 패역하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심이 말했다.

만일 후세의 사람들이 지각이 있어 십승지에 들어가려 해도 필시 어리석은 자들이 만류할 것이니 공(公)과 사(私),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화복(禍福)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형용하기가 힘들다.」

정이 말했다.

계룡산의 돌이 흰빛이 되고, 모래펄 30리에 남문(南門)을 다시 일으키고, 내 자손 말년에 쥐 얼굴에 범의 눈을 가진 자가 생기고, 큰 흉년이 들고, 호환(虎患)으로 사람이 다치고, 생성과 소금이 지극히 흔하고, 냇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지면 백두산 북쪽에서 호마(胡馬)가 긴 울음을 내고, 양서(兩西) 사이의 하늘에 원맺힌 피가 넘치리니, 한양 남쪽 백리에 어찌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연이 말했다.

목멱산은 그 형상이 아이 낳는 여자의 음부(陰部)와 같으니, 사대부가 허물을 더하면 온 나라가 무례하여 질것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정이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음란한 풍속은 막을 것이나 황씨(黃氏 : 정도령)는 후사가 없으리라.」

심이 말했다.

계룡산에 나라를 세우면 변씨(卞氏) 성을 가진 정승, 배씨(裵氏) 성을 가진 장수가 개국 일등 공신이 되고, 방성(房姓), 우가(牛哥)가 손발같이 일하리라. 대백(大白)․ 소백(小白) 사이에 옛날 양반들이 다시 일어날 것이니, 후세 사람으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자손을 대백․소백 사이에 길이 감추어 두리라.」

정이 말했다.

대개 인간 세상에서 피신하려면 산도 좋지 않고 물도 좋지 않고 양궁(兩弓)이 가장 좋다. 네 자손 말년에

국운이 팔임(八壬:全)에 다하고 박(朴)에 난리가 있고 내 자손에서 끝나리라.

심이 말했다.

내 자손이 네 자손을 죽이고 네 자손이 내 자손을 죽이리라.」

연이 말했다.

「십승지는 사람이 세상에서 피신하기에 가장 좋은 땅이다. 그러나 새재〔鳥嶺〕앞뒤의 큰길은 어찌할까?」

정이 말했다.

「새재에 성을 쌓으면 대군이 바다에 떠서 배로 남쪽 전주(全州)에 들어가고, 호중(湖中)의 도둑 백성들이 당(黨)을 이루면 화진(華津)과 양서(兩西)의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리라. 그런 까닭에 이 열 곳은 병화(兵火)가 들지 않고 흉년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을 버리고 어디 가서 살겠는가. 장씨(張氏)가 의병을 일으켜 난을 시작하는 것이 경염(庚炎)의 때이니, 지각이 있는 자는 이때 십승지로 가라. 그러나 먼저 들어가는 자는 되돌아오고, 중간에 들어가는 자는 살고, 나중에 들어가는 자는 죽으리라.」

연이 말했다.

「이 열 곳은 비록 12년 병화가 있어도 해를 입지 않지만, 6도(六道)의 백성은 죽으리라. 이 열 곳은 사면이 이러이러하므로 흉년이 들지 않는다. 대개 산수의 법은 기이하여, 훗날 지각이 있는 자가 비록 걸식을 하며 이곳에 들어가더라도 좋으리라. 신년(申年) 말과 임년(壬年) 3월을 무사히 지내면 비록 향야(鄕野)에 일이 있다 해도 요행히 편안하리라.」

연이 다시 말했다.

「계룡산 남쪽 밖 네 고을 또한 백성들이 몸을 보존할 곳이다.」

정이 말했다.

「여기는 경기도보다는 조금 낫다. 그러나 강원도 산골은 그 허다한 일을 어찌 다 기록하리요.

첫째는 풍기(豊基) 차암(車岩) 금계촌(金鷄村)으로, 소백산 두 물곬 사이에 있다.

둘째는 화산(花山) 소령(召嶺) 고기(古基)로 청양현(靑陽縣)에 있는데, 봉화(奉化) 동쪽 마을로 넘어 들어갔다.

셋째는 보은(報恩) 속리산 사증항(四甑項) 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넷째는 운봉(雲峰) 행촌(杏村)이다.

다섯째는 예처(醴泉) 금당실(金塘室)로, 이 땅에는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임금의 수레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

여섯째는 공주(公州) 계룡산으로, 유구(維鳩) 마곡(麻谷)의 두 물곬의 둘레가 2백 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다.

일곱째는 영월(寧越) 정동쪽 상류로, 난을 피해 종적을 감출 만하다. 그러나 수염 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여덟째는 무주(茂朱) 무봉산(舞鳳山) 북쪽 동방(銅傍) 상동(相洞)으로, 피란 못할 곳이 없다.

아홉째는 부안(扶安) 호암(壺岩) 아래가 가장 기이하다.

열째는 합천(陜川) 가야산(伽倻山) 만수봉(萬壽峰)으로, 그 둘레가 2백 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

동북쪽 정선현( 善縣) 상원산(上元山) 계룡봉(鷄龍峰) 역시 난을 피할 만하다.

 

 

참서(讖書)의 하나인 이 책은 여러 비기(記)를 모은 것으로, 참위설(讖緯說) ·풍수지리설 ·도교(道敎)사상 등이 혼합되어 이룩되었으며, 조선의 선조인 이심(李沁)이란 사람이 이씨의 대흥자가 될 정씨의 조상인 정감(鄭堪)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는 말도 전하나 그 종류가 많아 70종(種)에 이르며 정확한 저자의 이름과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감록》이라 하면 《감결(鑑訣)》을 비롯한 여러 비기(記)에다 《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 《역대왕도본궁수(歷代王都本宮數)》등을 합친 비기의 집성을 말하기도 하고, 협의(狹義)로는 《감결》 하나만을 떼어서 말하기도 한다. 그 명칭도 많지만, 《정이감여론(鄭李堪輿論)》 《정이문답(鄭李問答)》 《정감록(鄭堪錄)》 《감결》 《징비록(徵懲錄)》 《감인록(鑑寅錄)》 ≪천이록(天以錄)≫《동세기(東世記)》《요람역세(要覽歷世)》《동차결(東車訣)》

《경고(鏡古)》《기말록(其末錄)》《참서유취(讖書類聚)》등의 이본(異本)이 있다.

 

현재 이 제목이 붙은 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규장각본 《鄭鑑錄》:필사본. 아유까이 후사노신(점貝房之進) 1책.

② 김약술(金若述) 소장본 《鄭鑑錄》:필사본. 1책.

③ 김용주(金用柱) 발행 《鄭鑑錄》:활자본. 국판. 163쪽. 한성도서(주) 대정12년(1923)년 3월 19일 발행,

④ 현병주(玄丙周) 편《비난정감록진본(批難鄭鑑錄眞本)》:활자본. 4×6판. 100쪽, 우문관(友文館), 대정 12년(서기 1923년) 4월 18일 초판, 영창서관(永昌書舍官)에서 그해 6월 10일 재판, 운정도인(雲汀道人) 저(著)로 근화사(謹花社), 세창서관(世昌書館) 등에서 발행.

⑤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편저 《鄭鑑錄》:동경, 자유토구사(自由討究社)4×6판 국립중앙도서관 청구 기호:한-02-5.

6. 야나기타 분지로[柳田文治郞] 편집 겸 발행, <鄭堪錄>,활자본, 4x6판,3 5장(70쪽), 이문당(以文堂), 대정 12년(1923)년 3월 19일 초판, 그해 3월 30일 재판발행.

7. 鄭鑑錄(제목 없음)/영조(英祖)?/45쪽/필사본.

 

1. 鄭鑑錄/刊年未詳/編者未詳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1番/(복사본).

2. 道宣秘訣/記年未詳/玉龍子/2장:4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3番/(복사본).

3. 無學秘訣/記年未詳/朴自超/4장:7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2番/(복사본).

4. 北窓秘訣/記年未詳/鄭磏/2장:3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4番/(복사본).

5. 南師古秘訣/記年未詳/南師古/4장:7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5番/(복사본).

6. 西山大師秘訣/記年未詳/淸虛(休靜)/1장:1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6番/(복사본).

7. 土亭家藏訣/記年未詳/李之菡/25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9番/(복사본).

8. 杜師聰秘訣/記年未詳/杜師聰/4장:8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7番/(복사본).

9. 西溪家藏訣/記年未詳/李得胤/ 14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12378番/(복사본).

10. 鄭勘秘錄/編者未詳/記年未詳/22장:44쪽/

서울大學校 想白古133J459番/(복사본).

11. 秘訣輯錄/編者未詳/記年未詳/46張:91쪽/

서울大學校 奎章閣圖書館 7568番/(복사본).

12. 徵秘寶藏(징비록(徵秘錄)/30쪽/哲宗九年 戊午(단기4191〈서기1858〉)음 2월 9일/ 編者未詳/印本/국립중도서관 한-19-110/(복사본).

13. 鏡古/編者未詳/116쪽/記年未詳/筆寫本/國立中央圖書館 古

19-20番/(복사본).

14. 其末錄/編者未詳/71쪽/記年未詳/ 印本/國立中央圖書館 古

19-42番(복사본.

15. 鑑寅錄/記年未詳/編者未詳/63張:125쪽/釜山大學校圖書館/(복사본)

16. 秘覽(聽流堂陰晴錄)/필사본/22쪽.

17. 秘藏/필사본/14장.

18.鄭邯錄(盤溪訣在中附論心及楊柳問答)/ 필사본/33쪽/庚寅 臘月(陰12월) 初八日.

19.鄭賦‧沁與勘長歎賦/필사본/3쪽.

20. 東國要覽/37쪽/필사본/신해(辛亥) 9월

21. 鄭鑑錄/63쪽/이소암(李小岩)?/ 필사본.

22.鄭公李沁問答/필사본/13面.

23.雜書訣/筆寫本/23張.

24.年事錄/필사본/12쪽.

25.朝鮮秘訣全集/奎文閣 /1966년 10월 20일 발행/ 97쪽/프린트本.

8. 批難 鄭鑑錄 眞本/槿花社/100面/1923년 4월.

9. 批難鄭鑑錄眞本/雲汀道人 著/100面/世昌書館版/刊年未詳.

10. 批難鄭鑑錄眞本/玄丙周 編/100面/永昌書館/단기4254(서기1921)년 6월10일 발행.

11. <鄭鑑錄>/77쪽/연활자본./刊年 및 발행처 및 발행년도 미상.

12. < 鄭鑑錄解說>/16쪽/신세계사 간행/西紀1946년 2월 15일 발행.

13.< 鄭鑑錄에 對한 社會的 考察>/崔守正 著/55쪽/서울, 解放書林/(단기 4281) 서기 1948 年 4月 5日 發行

14. <鄭鑑錄; 원본해설>/編輯部編/66쪽/서울,昌新文化社/ 단기4288(1955)년 5월 27일 발행.

15. <韓國의 蕙眼>/權寧斗 著/100쪽/世光出版社/ 西紀 1962년 十月 五日 初版發行.

16. < 元本 鄭鑑錄解說>오륜출판사/1969년 10월 30일 발행.

17.<鄭鑑錄>/ 金水山 編/217쪽/弘益出版社/西紀一九七零年 二月 二十五日.

18.<鄭鑑錄>/金水山 編著/217쪽/明文堂/1972年 4月 15日 初版 發行.

19. <鄭鑑錄集成>安春根 編/870面/亞細亞文化社 西紀一九七三年 三月 二十五日 發行.

20.<鄭鑑錄集成>/安春根 編/870면/亞細亞文化社, 西紀一九八一年 月 日 再版發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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