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dos1130 萬事已黃髮 殘生隨白鷗 雪中梅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guriever.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격암유록(格菴遺錄)의 은비가(隱秘歌)p55~56을 보면,
『天地牛馬 世不知 鄭氏天姓 誰可知 容天朴人 容天伯
천지우마 세부지 정씨천성 수가지 용천박인 용천백
何姓不知 鄭道令 無后裔之 血孫出 無父之子 天縱聖
하성부지 정도령 무후예지 혈손출 무부지자 천종성
西讐東逢 解寃世 長安大道 正道令 鄭本天上 雲中王
서수동봉 해원세 장안대도 정도령 정본천상 운중왕
再來春日 鄭氏王 馬枋兒只 誰可知 馬姓何姓 世人察
재래춘일 정씨왕 마방아지 수가지 마성하성 세인찰
眞人出世 分明知 愼之愼之 僉君子 銘心不忘 弓乙歌 』
진인출세 분명지 신지신지 첨군자 명심불망 궁을가
이 말은 하늘은 말(馬)이고, 땅은 소(牛)인데, 세상(世上)이 모르는구나.
정(鄭)씨란 하늘의 성(姓)인데 누가 알겠는가?
하늘의 도(道)인 박(朴)을 속에 가지게 된 자(容天朴人), 즉 도(道)와 하나가 된 자(者)로서, 하늘의 장자(天伯), 즉 하나님의 장남인데, 그가 어떤 성(姓)인지 알 수가 없구나.
정도령(鄭道令)이란 대(代)를 이을 자식이 없는 사람(無后裔)으로, 또한 하나님의 대(代)를 잇는 자손(血孫)이다.
이 아이가 서(西)쪽에서 원(寃)을 맺고 동방(東方)으로 출현(出現)하여 원(寃)을 푸는데, 이 아이가 바로 서울
장안(長安)의 대도(大道)인 정도령이다.
정도령이 본래(本來)는 하늘의 왕(王)인데, 춘일(春日)에 다시 오게 된 정씨왕(鄭氏王)을 마굿간의 아기(馬枋兒只:망아지),라고 하는데, 누가 이 사람을 알아보겠는가?
세상 사람들아,
이 사람이 오리라 한 진인(眞人)정도령이 분명하니,
신중(愼重)하고 또 신중(愼重)하라. 모든 군자(僉君子)들이여!
명심(銘心)하여 잊지 말라고 한 것이다.
또한
이 아이가 하늘의 도(道)인 박(朴)을 그의 품속에 담아(抱容) 스스로가 도(道)와 일체(一體)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도(道)의 화신(化身)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도(道)자체(自體)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이 박(朴)씨이니, 응당 그의 아들,
즉 하늘의 장자(長子)인 장남 정도령 또한 박(朴)씨여야겠는데,
왜 정도령의 성(姓)이 무슨 성(姓)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는가?
세상(天下)이 다 아는 하나님의 성(姓)이 박(朴)씨 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늘의 아들은, 서로 다른 성(姓)씨로 인간 세상에 태어났으니,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 그토록 험하게 버려두었다고 하였다.
버려두었다는 말은 돌보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대(代)를 이을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참교육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인 정도령은 자식(子息)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이 하늘의 왕(王)인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났다면,
무척 좋은 집안에서 존귀(尊貴)하게 대접받고 생활하며,
또한 널리 알려진 유명(有名) 인사(人士)로 생각하겠지만,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그의 생활 하나하나가, 이미 삼천년(三千年)전부터의 기록에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이다.
그가 버려졌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혈손(血孫)이라고 한 것이다.
마성(馬姓)이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은 깨달아야하며,
이분이 그렇게도 세상 사람들이 고대(苦待)하며 기다리던 진인(眞人)인 정도령이라 하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안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고 하였다.
즉 다시 말하면
수도선출용천박(修道先出用天朴)과 용천백(容天伯)은 서로가 다른 두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서 먼저 오셔서 도(道)를 깨우쳐 하늘의 도(道)와 하나가 되신 분이라는 것이고,
즉 하나님의 장남(長男)으로서 하나님의 대(代)를 잇는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三位一體)이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다 함께 같은 일리(一理)
즉 일(一)이며 또한 리(理)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도(道)의 화신(化身)이라는 말이며, 도(道)의 근원(根源)이라는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농궁가(弄弓歌)p62 를 보면,
修道先出 容天朴 容天伯人 亦一理
수도선출 용천박 용천백인 역일리
도를 닦아서 먼저 출(出)한 분이 용천박(容天朴)이고
용천백인(容天伯人)도 역시, 일리(一理)즉 일(一)이며 또한 리(理)라 하는 것이다
격암유록(格菴遺錄) 갑을가(甲乙歌) p114를 보면,
『 柿從者生 次出朴天子 乃嘉鷄龍朴
시종자생 차출박천자 내가계룡박
世人不知 鄭變朴 鄭道令之 降島山』
세인부지 정변박 정도령지 강도산
이 말은 감(柿)나무를 따르는 자(者)는 사는데, 뒤를 이어 두 번째.
나타나는 박(次出朴)이 바로 천자(天子)로서 즐거운 계룡박(鷄龍朴)이라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정(鄭)이 박(朴)으로 바뀌게 되는 이치(理致)를 아무도 모르는데,
그 두 번째 나타나는 박(朴)이
동반도(東半島)의 계룡산(鷄龍山)에 강림(降臨)한다는
정도령(鄭道令:결혼하지 않은 총각을 높여 도령이라 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말임)
인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바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은거(隱居)하여 지내다가,
천부(天父)이신 하나님이 화천(化天)하시고 난 다음에,
뒤를 이어 나타나는 박(朴)이 사람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천자(天子),
즉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가 바로 계룡산(鷄龍山)에 강림(降臨)한다고 하는 계룡박(鷄龍朴)이라고 밝히는 말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39장 법불장(法佛章)을 보면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녕 신득일이령 곡득일이영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天下爲正 其致之 天無以淸 將恐裂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천하위정 기치지 천무이청 장공렬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裂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곡무이영 장공렬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貴高 將恐蹶 故貴以賤爲本
만물무이생 장공멸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고귀이천위본
高必以下爲基 是以侯王 自爲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耶 非乎
고필이하위기 시이후왕 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야 비호
故致數車無車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고치수거무거 불욕록록여옥 낙락여석
옛날에
일(一) 즉 도(道)를 얻었다는 것은, 하늘은 일(一)을 얻어서 맑고
땅도 일(一)을 얻어서 편안하고, 신(神)도 일(一)을 얻음으로써 영묘(靈妙)하고,
골짜기(谷)도 일(一)을 얻어서 가득차고 만물(萬物)도 일(一)을 얻음으로써 생성(生成)되고
후왕(侯王)도 일(一)을 얻음으로써 천하(天下)를 평정하고
이러한 것들을 그와 같이 되게 하는 것이 일(一)인 도(道)이다.
하늘이 일(一)인 도(道)를 얻어 맑지 않으면 장차 파열할까 두렵고,
땅이 일(一)을 얻어 평안하지 않으면 장차 무너질까 두렵고,
신(神)이 일(一)을 얻어 영묘(靈妙)하지 않으면 장차 그칠까 두렵고,
골짜기(谷)가 일(一)을 얻어 차지(盈)않으면 말라 버릴까 두렵고,
만물(萬物)이 일(一)을 얻어 생성(生成)함이 없다면 장차 멸망(滅)할까두렵고,
후왕(侯王)이 일(一)을 얻어 고귀(高貴)함이 없으면 장차 넘어 질까 두렵고,
그러므로 귀(貴)한 것은 천(賤)한 것으로써 그 근본(根本)을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으로써 그 기초(基礎)를 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후왕(侯王)은 고과불곡(孤寡不穀)이라 부르니,
그렇지가 않은가?
그러므로 수레(車)란 이름 없는 부품들이 모여서 하나의 수레(車)를 이루는 것이니, 수레(車)를 조각조각 분리해서
헤아리면, 수레(車)란 없는 것이다.
모름지기 구슬(玉)과 같이 아름답기를 바라지 말고,
이 글에서 강조한 것은 일(一)인 도(道)를 여러 각도(角度)로 설명한 점이다.
즉 일(一)인 도(道)를 득(得)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하상공(河上公)이 이르기를
일(一)이란 무위(無爲)인 도(道)의 아들이라고 하였다(一無爲道之子).
또한 도생일(道生一)이라 하였다.
즉
도(道)가 일(一)을 낳았기 때문에, 그일(一)을 도(道)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며,
그 도(道)의 아들인 일(一)을 또한 모두 도(道)라고 부르는 것이다. ***
또한 이 일(一)은 시수(始數)즉 수(數)에 있어서 첫 번째 수(數)인 것이다.
첫 번째 수(數)인 일(一)을 태을(太乙)또는 태일(太一)이라고
하며, 또한 물(水)을 의미한다.
그래서 도(道)를 설명할 때 물(水)또는 바다(海)라 설명하였다.
그래서
또한 이 박(朴)이란 말의 어원(語源)도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심오(深奧)한 도(道)자체, 즉 일(一)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람 성(姓)씨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 박(朴)에 대하여 해월(海月)선생은 자세히 밝힌 것이다.
(해월유록p340~346)
余於物 無所好 非直無好 以無能也 惟愛溪澗 樂丘壑之性
여어물 무소호 비직무호 이무능야 유애계간 락구학지성
至老而不小衰 歲辛丑春 有爲神農行者 來余曰 仙槎有一谷 名曰朴
지로이불소쇠 세신축춘 유위신농행자 래여왈 선사유일곡 명왈박
頗寬閒可耕 子盍觀諸 余欣然從之遊 舊有朱姓者居之 余問於客曰
파관한가경 자합관제 여흔연종지유 구유주성자거지 여문어객왈
谷名朴 而居者朱何也 客曰 朱亦非主 朱之王父 爲江陵尹者
곡명박 이거자주하야 객왈 주역비주 주지왕부 위강릉윤자
得於山氓之姓崔者 安知崔之前姓朴者 始居而名之歟 桑海無窮
득어산맹지성최자 안지최지전성박자 시거이명지여 상해무궁
鐵爐相遞 又安知經幾 如崔如朴 而今之朱 又不能有之 莫有値其主者
철로상체 우안지경기 여최여박 이금지주 우불능유지 막유치기주자
意者 天其或相 吾子之居之歟 余曰子言信矣 以余觀之是谷
의자 천기혹상 오자지거지여 여왈자언신의 이여관지시곡
雖以人爲朴 而以谷 而名之朴亦宜 朴者天瓢之俗稱也 羅人以始祖 生於瓢
수이인위박 이이곡 이명지박역의 박자천표지속칭야 라인이시조 생어표
故姓是朴 其後又有以匏渡海來者 曰匏公 匏亦朴也 盖渾渾沌沌之稱
고성시박 기후우유이포도해래자 왈포공 포역박야 개혼혼돈돈지칭
曰太朴 曰古朴 曰醇朴 曰儉朴 曰朴陋 曰朴野 朴之爲義遠矣 哉想
왈태박 왈고박 왈순박 왈검박 왈박루 왈박야 박지위의원의 재상
其烟霞爲國 鹿豕爲窟 隱然 有太朴未刻之氣像 崖澗邃而蒼 松櫪老而矮
기연하위국 록시위굴 은연 유태박미각지기상 애간수이창 송력노이왜
依然 若見上古 眞朴之物色 又近谷之民 愚而全眞 嗇而務本 其性醇朴
의연 약견상고 진박지물색 우근곡지민 우이전진 색이무본 기성순박
麻竹衣冠 橡栗盤飧 其事儉朴 皆谷之賜也 泉無飮者 土無耕者
마죽의관 상율반손 기사검박 개곡지사야 천무음자 토무경자
溪幽而不滌 逕塞而不剪 非朴而陋乎 以山焉 則去海十里
계유이불척 경색이부전 비박이루호 이산언 즉거해십리
以郊焉則環山萬重 人不知禮人 鳥不知避人 非朴而野乎 其爲朴不同
이교언즉환산만중 인부지례인 조불지피인 비박이야호 기위박부동
而谷乃兼而有之 若是則名之曰朴 不亦相稱乎 客曰唯唯
이곡내겸이유지 약시즉명지왈박 불역상칭호 객왈유유
然則子將何樂哉 余曰 古之人 有以己之愚 而愚其溪 愚其谷者
연즉자장하락재 여왈 고지인 유이기지우 이우기계 우기곡자
今余則 欲以谷之朴 而朴我之未盡朴者 盖余生於鄕曲
금여즉 욕이곡지박 이박아지미진박자 개여생어향곡
處於海濱 出無賢師友之警敎 入無羣從兄弟之薰澤 其朴陋無比
처어해빈 출무현사우지경교 입무군종형제지훈택 기박루무비
重以言不解漢 衣不體唐 文不入鳳閣之樣 才不中溝斷之用 腰脚頑而
중이언불해한 의불체당 문불입봉각지양 재부중구단지용 요각완이
無磬曲 形容僻而小軟媚 自分於世無一可者 其朴野 又如何耶
무경곡 형용벽이소연미 자분어세무일가자 기박야 우여하야
以是人居是谷 朴之道宜相得 今而後余乃亦 儉朴其身 醇朴其心
이시인거시곡 박지도의상득 금이후여내역 검박기신 순박기심
古朴其貌 太朴其道 爲一聖世 抱朴子可矣 客笑而去
고박기모 태박기도 위일성세 포박자가의 객소이거
나는 물질(物)에 있어서 어디에도 좋아하는 것이 없다.
단지 무능하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를 아끼고,
언덕과 골짜기를 즐기는 성품은 나이가 들어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신축(辛丑:1601, 선조34)년 봄에 신농행자(神農行者:신농의 도(道)를 행한다고 하는 사람,
즉 농부)가 나에게 와서
`선사(仙槎:울진의 옛 지명)에 한 골짜기(一谷)가 있어 이름을 박(朴)이라 하는데,
좀 널찍하고 조용한 것이 가히 경작할 만한 곳이니, 그대는 한 번 둘러보지 않겠느냐?'
고 말해서 나는 흔쾌히 따라가 노닐었다.
오래된 옛 집(舊)이 있어 주씨(朱氏) 성을 가진 사람이 그 집에 살고 있었다.
골짜기 이름(谷名)이 박(朴)인데,
살기는 주씨(朱氏)가 사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객(客:神農行者)에게 물으니 객(客)이
‘주(朱)씨 역시 주인(主)이 아니고, 주씨(朱氏) 할아버지(王父)가 강릉 부윤(江陵尹)으로 있을 때,
최씨(崔氏) 성을 가진 이주민(山氓)에게서 얻은 것이다.
최씨(崔氏)가 살기 전에 박씨(朴氏)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살았기에(始居),
이름 붙여진 것을 어찌 알겠는가?
상전벽해(桑海)가 끝이 없고(無窮) ,
철과 화로(鐵爐)가 번갈아 되는 것이,
최(崔)씨와 박(朴)씨처럼 지금의 주씨(今之朱) 또한 능히 이 곳을 소유할 수가 없는데,
어찌 그 주인(主)을 마주 대할 수가 있겠는가?
헤아려보니 기이하게도(或) 하늘(天)이,
이 곳을 그대(吾子:해월)가 차지하도록 점지해 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했다.
내가 이르기를 ‘당신 말이 믿을 만 하군요.
제가 보건데 이 골짜기가 비록 사람으로 인해서 박(朴)이 되고,
골짜기도 또한 박(朴)이니, 박(朴)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 또한 마땅하다.
신라 사람(羅人) 중에, 시조(始祖)가 박(瓢)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이 박(朴)이 되었고,
그 후 또 바가지(匏)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을 포공(匏公)이라 말하는데,
그 바가지(匏) 역시 박(朴)이다.
대개 천지(天地)가 열리지 않고,
음양(陰陽)이 나눠지기 이전의 상태를 일컬어 말하길(渾渾沌沌之稱),
태박(太朴), 고박(古朴), 순박(醇朴), 검박(儉朴), 박루(朴陋), 박야(朴野)라 하는데,
이와 같이 이 박(朴)이란 의미가 얼마나 심오(義遠)한 것인가!
비로소 상상해 보건대
아! ㅡ 연하(烟霞:고요한 깊은 골짜기)는 나라(首都)가 되고,
록시(鹿豕:북두칠성, 사슴 가문의 아들)는 굴(窟) 속에 숨어 있으나,
은연중(隱然中)에 태박(太朴) 즉 하나님이 아직 벗기지 않는 기상(氣像)이 있구나!
언덕의 산골물이 깊숙하여 파랗고, 소나무(松)와 상수리나무(櫪)는 오래되어 굽어져 있고,
의연(依然)한 것이 또한 상고(上古)의 순수하고 소박(眞朴)한 물색(物色)을 보는 듯하다.
또한 가까운 골짜기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진실 됨을 온전히(全眞)하고 있고,
검소하면서도 힘써 일하니, 근본적으로 그 성품(性)이 순박(醇朴)하다.
삼과 대나무(麻竹)로 의관(衣冠)을 하고, 도토리와 밤(橡栗)으로 식사를 하는 그 일들이 검박(儉朴)하니,
모두 이 골짜기가 베풀어 주는 것이다.
샘을 파서 물을 마시는 사람도 없고, 땅을 경작하지도 않으며, 시내가 깊어도(溪幽) 씻지 않고,
지름길이 막혀도 수풀을 베어내지 않으니, 어찌 박(朴:소박)하고 누(陋:누추) 하지 않은가?
산(山)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바다와의 거리가 10리 나 되고,
교외(郊外)로 말할 것 같으면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 있으니(環山萬重),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알지 못하며, 새들은 사람들을 피할 줄 모르니,
어찌 소박(朴)하고 촌스럽지(野) 않은가?
그 박(朴)이란 (의미는) 같지 않으나(不同),
골짜기(谷)는 그러한 성질을 겸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즉,
박(朴)이란 이름으로 서로 상칭(相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객(客)이 말하길 ‘그러하도다. 그런즉 그대는 장차 어떻게 즐기겠는가?’ 하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길 ‘옛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그 시내(溪)를 어리석다(愚溪)하고, 그 골짜기(谷)를 어리석다(愚谷)고 하였지만,
이제 나는 골짜기(谷) 박(朴)으로써 내 임금의 미진한 박(我之未盡朴)을 박(朴)하게 하는 것을
낙(樂)으로 삼겠다.’ 고 했다.
대체로 나는 외진 시골(鄕曲)에서 태어나 바닷가에서 살았고,
밖으로 나가서는 타이르고 가르쳐 줄 현명한 스승과 벗도 없고(出無賢師友之警敎),
집안에 들어와서는 선도해 주고 도와 줄 집안의 형제도 없었다(入無羣從兄弟之薰澤)
그 박곡(朴)의 누추함(陋)은 비할 데가 없는데, 거듭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한문(漢文)을 알지 못하고,
입는 옷을 보면 화려한 옷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글재주로는 벼슬길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재능을 보면 구단지용(溝斷之用) 즉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끌어 사용할 줄도 모르고,
허리와 다리가 뻣뻣(腰脚頑)하여 허리를 굽혀 절할 줄도 모르고,
얼굴 표정이 굳어(容僻)있어 상냥하고 아리따움도 없으며,
스스로는 세상에 어느 하나도 드러낼 수도 없으니,
그 박야(朴野:순박하고 촌스러움)함이 또한 이러한가?
이러한 사람들이 이 산골짜기에 살고 있으니,
박(朴)의 도(道)는 참으로 의미가 잘 맞는다. 지금 이후 나 역시,
그 몸을 검박(儉朴)하게 하고 그 마음을 순박(醇朴)하게 하고,
그 모습을 고박(古朴)하게 하고. 그 도(道)를 태박(太朴)하게 하여,
단(一)번에 성세(聖世:덕 있는 임금이 다스리는 세상)를 이루게 하고,
그 박(朴)을 손에 넣은 것(抱朴子)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니, 객(客)이 웃으면서 가더라.
후박곡기(後朴谷記)
余旣於仙槎 得朴谷 爲之說 翌年壬寅夏 喪配於襄陽 其秋卜兆
여기어선사 득박곡 위지설 익년임인하 상배어양양 기추복조
於花山臨河縣之水谷 水谷之東偏 又得一谷名曰朴 與水谷相連
어화산임하현지수곡 수곡지동편 우득일곡명왈박 여수곡상련
地平而幽 山遠而秀 略與仙槎者 相甲乙 余謂豚允曰 此殆天所以
지평이유 산원이수 략여선사자 상갑을 여위돈윤왈 차태천소이
錫我者 不然 何前後所卜 一其名耶 彼海此嶺 相望數百里 而沕然
석아자 불연 하전후소복 일기명야 피해차령 상망수백리 이물연
若一谷 而來於余 此非天耶 余於是思之 夫朴者 我國之蔬名
약일곡이래어여 차비천야 여어시사지 부박자 아국지소명
一曰瓠之卽瓠也 潔不及頻繁 快不及茄笟 美非芹 甘非蔗
일왈호지즉호야 결불급빈번 쾌불급가고 미비근 감비자
盖蔬之賤者也 然其爲 用宜於羹 宜於菜 乾之則利涉大川 熟之則羣飽
개소지천자야 연기위 용의어갱 의어채 건지즉리섭대천 숙지즉군포
其德在人用之如何 詩咏燔炮 傳稱千金 良以此也
기덕재인용지여하 시영번포 전칭천금 양이차야
天之生物 未嘗 小 殊谷之初也 叢草樹穴虎豹 更千百載 鴻荒寂寞
천지생물 미상 소 수곡지초야 총초수혈호표 갱천백재 홍황적막
而無一人顧之者 豈非賤且棄乎 其平可田 其幽可屋 其遠可賞
이무일인고지자 기비천차기호 기평가전 기유가옥 기원가상
其秀可吟 可以樵 可以泉 可以盤旋 而從老
기수가음 가이초 가이천 가이반선 이종노
忽焉一朝 合衆美 而爲我之樂土 此則 川乎 我德乎 我者也
홀언일조 합중미 이위아지락토 차즉 천호 아덕호 아자야
谷之隱顯 誠有數於朴之用舍 得名以朴 不亦宜乎 噫瓠於蔬爲朴
곡지은현 성유수어박지용사 득명이박 불역의호 희호어소위박
谷於山爲朴 余於人亦朴而陋者 自余再得乎朴 然後朴 而又
곡어산위박 여어인역박이루자 자여재득호박 연후박 이우
朴猶古人 玄玄 又玄朴之道 其盡矣乎 遂爲之朴
박유고인 현현 우현박지도 기진의호 수위지박
朴曲以自娛 曰朴朴濁濁 朴其心 濁其迹 朴朴濁濁
박곡이자오 왈박박탁탁 박기심 탁기적 박박탁탁
朴可肴 濁可酌 歌朴朴 手拍拍 人耶谷耶 同其朴
박가효 탁가작 가박박 수박박 인야곡야 동기박
나는 이미 선사(仙槎:울진)에서 박곡(朴谷)을 가지게 된 바를설명(說)하였다.
이듬해인 임인(壬寅:1602)년 여름에 양양(襄陽:지금의 예천)에서 상처(喪妻)를 하여,
그 해 가을 화산(花山)의 임하현(臨河縣) 수곡(水谷:지금의 안동군 임동면 수곡리)에 묘지를 썼다.
수곡(水谷)의 동쪽 한편에 한 골짜기(一谷)을 얻었는데(得), 이름 하기를 박(朴)이라 한다.
수곡(水谷)과 서로 이어져 있으며(相連), 땅이 평평하면서도(地平),
그윽하고(幽), 산(山)이 멀리 있는데 또한 빼어난 것,
대략 울진의 박곡(朴谷)과 더불어 서로 우위를 다툴만한데(相甲乙),
내가 맏아들인 중윤(中允:豚允)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곳은 두려웁게도 하늘이 이른바 나에게 내려준 곳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해와 올 해에 점지해 준 것이, 하나같이 그 이름이 박(朴)이겠는가?
저 바다(울진 쪽)와 이 봉우리(안동 쪽)가 서로 바라보는 것이 수백 리나 떨어져 아득한데(沕然),
마치 하나의 골짜기(一谷)처럼 나에게 왔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아니겠는가(此非天耶)?’ 라고 말했다.
내가 여기에서 그 박(朴)을 헤아려 보건데 대저 박(朴)이란 것은,
우리나라의 채소이름(蔬名) 중의 하나인 바가지(瓠)로,
그 박(瓠)이란 깔끔하기는 개구리밥과 다북쑥(頻繁)에도 미치지 못하고,
매끈(快)하기는 가지와 참외에도 미치지 못하고, 아름답기는 미나리에 비할 수도 없고,
달기(甘)는 사탕수수(蔗)에도 비길 수 없는 대체로 채소 중에 천(賤)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박(瓠)이 쓰이는 곳은 국을 끓이는데 마땅하고,
반찬으로도 마땅하고, 말린 즉 큰 내를 건너는데 이롭게 쓰이고(利涉大川),
삶아서는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으니,
그 덕(德)은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시경(詩經)에서 번포(燔炮:말리고 삶음)을 읊고,
전(傳)에서 천금(千金)이라 칭한 것은 진실(眞實)로 이 때문이다.
하늘이 만물(萬物)을 만드는데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을 때,
소(小:어린 아기)가 유달리 골짜기(谷)의 처음이다(始) ***
많은 풀과 나무가 우거진 굴(穴)에는 호랑이와 표범(虎豹)이 있으며,
또한 오랜 세월(千百載)이 지나면서 크게 황폐해지고(鴻荒) 적막(寂寞)해져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쓸모없게 되고 버려지지 않겠는가?
그 들판은 밭을 갈 수 있고, 그윽한 곳은 집을 지을 수 있고, 그 원대함은 감상할 수 있고,
그 빼어남은 가히 읊조릴 수 있고, 땔나무도 할 수가 있고, 샘도 팔수가 있으며,
이리저리 거닐 수도 있으니(盤旋), 만년을 보낼만한(從老) 곳이다.
홀연히(忽)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아름다웁게 하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즐거운 낙토(樂土)가 되게 하는데,
이는 천(川:인천)에 있는 내 임금의 덕이요(我德)요, 나의 후손이다(我者)!
골짜기(안동의 박곡)가 세상에 숨겨졌다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는 것은(隱顯),
진실로 박(朴)이 버려지고 쓰여지는 것(用舍)이 이미 정해진 운명(有數)이 있다는 것인데,
박(朴)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得名)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아! 채소로서 박(瓠)도 박(朴)이 되고, 산(山)의 골짜기(谷)도 박(朴)이 되고,
또한 사람에 대한 나머지도 박(朴)이 지만,(이러한 박(朴)이란 의미는)품격이 낮은 것이다.
나는 스스로 박(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새롭게 깨달았는데,
그러한 후에 박(朴)이란, 오히려 고인(古人)의 심원한 도(玄玄)이며,
또한 심원한 하늘의 순박(朴)한 도(道)로, 아! 그 심원한 도(道)인 박(朴)이 뜻대로 이루어지는데,
마침내 이 박곡(朴:안동 박곡)에서 정치를 하게 되는 구나(遂爲之朴)
박(朴)의 노래(曲)를 만들어 스스로 즐거이 노래 부르니, 박박탁탁(朴朴濁濁).
그 마음(其心)은 순박(朴)하고, 그 행적(其迹)은 탁(濁)하구나, 박박탁탁(朴朴濁濁).
박(朴)은 가히 술안주로 할 수 있고(可肴), 탁(濁)은 가히 잔질할 수 있다.(可酌).
노래도 박박(朴朴), 손뼉도 박박(拍拍), 사람(人)이나 골짜기(谷)나, 다 같은 박이로다(同其朴).
해월선생이 박(朴)이라고 하는 골짜기, 즉 박곡(朴谷) 또는 박골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여 이 골짜기를 손에 넣게 되었는지 설명한 글이다.
이 글속에는 하늘이 숨겨 놓은 비밀(秘密)을 기록(記錄)하여 전(傳)하기는 전(傳)해서 밝혀야 하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하고,
후세에 나타날 그의 후손(後孫)만이 그 비밀(秘密)을 어찌하면 알 게 할 수 있을까
고심(苦心)하면서 쓴 글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비밀(秘密)이 유지되어 온 것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깊은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당시(當時) 사람들은 한문(漢文)공부는 많이 하였지만,
글의 형식(形式)에만 너무 치우치고 또한 틀에 박힌 사고방식(思考方式)으로 해석(解釋)을 하다 보니,
해월(海月) 선생의 마음속 깊이 담아둔 그 뜻을 거의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다만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의 서문(序文)을 쓴 성리학(性理學)자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선생은,
해월(海月)선생의 글속에는 알기 어려운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이상의 심오(深奧)한 뜻은 알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해월(海月)선생은 그의 후손(後孫)중에서 정확한 의미를 밝혀 낼 것을확신하고 쓴 글인데,
해월선생의 글을 이해하려면 먼저 유불선(儒佛仙)의 모든 경서(經書)와 성경(聖經) 및 동서(東西)를 말라한
예언서(豫言書)의 깊이 숨겨진 내용(內容)까지도 파악(把握)해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유교경전(遺敎經典)인 사서삼경(四書三經)만을 공부하고서는 이해(理解)되어 질수 있는 내용(內容)은
아닌 것이다.
글의 내용을 보면 해월(海月)선생은,
경상북도 울진군에 있는 박곡(朴谷)과 안동(安東)에 있는 박곡(朴谷)을 얻게 되었다.
먼저 선사(仙槎:지금의 울진)에 있는 박곡(朴谷)을 말한다면,
1601(辛丑:선조34년)년 선생의 나이 46세 때의 10월에 예천(醴泉)군수를 제수 받았는데,
이 때 부임하기 전 봄에 울진에서 박곡기(朴谷記)를 썼으며,
후박곡기(後朴谷記)는 예천군수로 부임한 후 1602(壬寅:선조35년)년 선생의 나이 47세 여름에 쓴 글이다.
박곡(朴谷)이란 단순히 박(朴)이란 이름의 골짜기 유래(由來)를 쓴 것이 아니라,
박(朴)이란 골짜기가 숨겨진 땅으로, 박(朴)의 성질을 가지는 어떠한 인물이,
후세(後世)에 나타나서 무엇을 하게 되는 지를 밝혀놓은 글이다.
먼저 울진의 박곡(朴谷)을 보도록 하자.
해월(海月)선생은 나는 물질(物質)에 관하여 아무런 욕심이 없다고 하였다.
욕심이 없는 것은 무능(無能)해서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1601(辛丑)년 봄에 신농행자(神農行者)가 나타나서,
선사(仙槎:울진)에는 박(朴)이라고 불리워지는 좀 한가하고
널찍한 골짜기가 있는데, 가히 경작할 만한 곳이니 한 번 둘러보지 않겠느냐고 한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따라 나섰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곳에는 아주 오래된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주씨(朱氏) 성(姓)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고 하였다.
골짜기의 이름은 박(朴)인데, 살기는 주씨(朱氏)성 가진 사람이 사니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객(客:神農行者)이 이르기를 주(朱)씨 역시도 주인(主)이 아니고,
주(朱)씨 할아버지가 강릉(江陵) 부윤(府尹)으로 있을 때,
최씨(崔氏) 성(姓)을 가진 이주민(移住民)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최(崔)씨가 살기전에, 박씨(朴氏) 성(姓)을 가진 사람이 처음 살았기에,
박(朴)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하였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철이 화로가 되고, 화로가 철로 번갈아 되듯이,
또한 최(崔)씨와 박(朴)씨처럼 지금의 주(朱)씨 또한,
이 곳을 능히 소유(所有)할 수가 없는데 어찌 그 주인(主)을 만나서 마주대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기이하게도 하늘(天)이 그대가 이 곳을 차지하도록 점지해 놓은 것이군요.
라고 신농행자(神農行者)가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해월(海月)선생은 박(朴)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박(朴)이란 속칭 바가지(瓠)라고 하는데,
신라(新羅)인 중에 시조(始祖)가 박(瓠:바가지)에서 태어나서 성(姓)이 박(朴)이 되었고,
그 후 바가지(瓠)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사람을 포공(匏公)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박(朴)이라고 하는 진정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천지(天地)가 열리지 않고, 음양(陰陽)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상태(渾渾沌沌)를 일컫는 말인데,
즉 만물(萬物)의 근원(根源) 근본(根本)이며 시(始)인 도(道)를 뜻하는 말로,
태박(太朴), 고박(古朴), 순박(醇朴), 검박(儉朴), 박루(朴陋), 박야(朴野)라 하여,
박(朴)이란 의미는 참으로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비로소 상상(想像)을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안개와 노을(烟霞)이 진 나라가 되고(爲國), 녹시(鹿豕:북두칠성, 사슴 가문의 아들)가
굴 속에 숨겨져 있는데, 드러나지 않은 기상(氣像)이 있다는 것이다,
해월(海月)선생은 자신의 가문(家門)을 은연(隱然)중 그의 시(詩)속에다 녹문(鹿門)이라고 하였다.
녹시(鹿豕) 즉 사슴(鹿:북두칠성, 술그릇)인 아들, 바로 사슴가문의 아들이라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1590(庚寅:선조 23)년 10월에는 자식(子息)들을 경계(警戒)하기 위하여 스스로 백록동규범(白麓洞規范)을 지어, 큰 아들인 중윤(中允)으로 하여금 항상 암송(暗誦)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사슴은 하나님의 아들을 뜻하는 말 중의 하나이며,
또한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굴(窟)속에 숨어 있는데,
은연중에 태박(太朴) 즉 하나님이 아직 벗기지 않은 기상(氣像)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미래(未來)에는 그 기상(氣像)을 벗길 것이라는 말인 것이다.
글 속에 객(客)이 그대는 장차 무엇으로 즐기겠는가? 라고 하였다.
해월(海月)선생이 이르기를,
나는 골짜기의 박(朴)으로써 내 임금의 미진한 박(我之未盡朴)을 박(朴)하게 하는 것으로
낙(樂)을 삼겠다고 하였다.
즉 박(朴)의 의미를 정확(正確)히 알려주는 것으로도 즐겁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박곡(朴谷)에 사는 사람들의 순박한 생활과 이 골짜기(谷)의 도(道)는 참으로 그 의미가 잘 맞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이와 같은 박(朴)의 도(道)를 어느 하나라도 세상에 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박야(朴野)하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지금 이후, 내가 나의 몸을 검박(儉朴)하게, 그 마음을 순박(醇朴)하게 하고, 그 모습을 고박(古朴)하게 하고, 그 도(道)를 태박(太朴)하게 하여서, 단(一)번에 성세(聖世)를 이루게 하고, 포박(抱朴) 즉 박(朴)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라고 하자, 객(客)이 웃으면서 갔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박(朴)과 하나가 되면, 세상은 성세(聖世)가 되게 하고, 그 박(朴)을 가지게 된다(抱朴)고 하였다.
이미 이 말은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과 격암유록(格菴遺錄)에서 설명한바 있다.
후박곡기(後朴谷記)를 보면은 1602(壬寅)년 여름에, 양양(襄陽:지금의 예천)에서 상처(喪妻)를 하였고,
그 해 가을 화산(花山) 임하현 수곡(水谷: 지금의 안동군 임동면 수곡리)에서 묘지를 썼는데,
또한 수곡(水谷)의 동쪽에 있는 한 골짜기(一谷)을 얻었다(得)고 하였다.
그런데 그 골짜기의 이름 또한 박(朴)이라고 하였다.
이 곳은 수곡(水谷)과 서로 이어져 있는데,
그의 장자(長子)인 중윤(中允)에게 이르기를
이 곳은 두려웁게도 이른바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곳인데,
그렇지 않다면 어찌 지난해와 올해에 점지해 준 곳의 이름이 모두 박(朴)이겠는가?
바다 쪽 울진에 있는 박곡(朴谷)과 이 곳 안동에 있는 박곡(朴谷)은,
수백 리나 떨어져 아득한 데도 마치 하나의 골짜기같이 나에게 왔으니,
어찌 하늘이 나에게 준 곳이 아니겠는가! 했다.
그러면서 앞에서는 사람에 대한 박(朴)을 설명하였는데,
이번에는 채소인 박(朴)을 설명하면서,
박(朴)이란 우리나라의 채소 이름 중에 하나로 바가지(瓠)를 말하는데,
깔끔하지도 않고, 매끈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대체로 채소(菜蔬)중에 천(賤)한 것이지만,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드는데 마땅하고,
말려서는 큰 내(川)를 건너는데 이롭게 쓰이고(利涉大川),
삶아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배부르게 할 수 있으니, 그 덕(德)을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박(朴)이란 굶주린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곡식(穀食)이며,
또한 큰 내(大川)를 건너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미 여러 예언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정도령이 곡식이 되고,
큰 내(大川)를 건너는데 이로운(利涉大川) 목(木)의 도(道)라고 하였는데 그 목(木)의 도(道)가,
한 마디로 계룡(鷄龍) 정도령이 박(朴)이라는 말을,
이렇게 슬쩍 평범(平凡)한 이야기로 쉽게 밝혀서 전하는 것이다.
또한 한 마디로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만드는데,
어느 것도 느낄 수가 없을 때(未嘗) 소(少)
즉 어린아이가 유달리 골짜기의 시(始) 즉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이 아이(少)가 만물(萬物) 처음(始)이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최치원(崔致遠)선생이 밝히신, 만물의 선(萬物之先)이요,
천지의 원(天地之元)인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데 해월(海月)선생은 매우 망설였던 것 같지만,
한 마디로 이 아이(少)가 골짜기의 주인(主)이라는 말이다.
그리고는 이 골짜기의 숲속에는 호랑이와 표범(虎豹)의 굴(穴)이 있다고 하였다.
이미 울진의 박곡(朴谷)에서는 사슴과 돼지(鹿豕) 이야기를 하였고,
안동의 박곡(朴谷)에서는 호랑이와 표범(虎豹)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이미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 속에서 여러 번 밝혔듯이,
호랑이(虎)와 표범(豹)은 주역에서, 성인군자(聖人君子)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해월 선생은 호랑이와 표범을, 자신의 후손(後孫)으로 말세(末世)에 태어날 현인(賢)
즉 진인(眞人) 정도령을 이르는 말이라고 밝힌 것이다.
즉 호랑이와 표범(虎豹)의 굴이란,
성인군자(聖人君子)인 정도령의 혈(穴),즉 정도령이 거(居)할 명당(明堂)을 뜻하는 말을,
이와 같이 해월 (海月)선생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가볍게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박곡(朴谷)이 오랜 세월(千百載)이 지나면서,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으니 쓸모없게 되고 황폐(荒廢)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이 갑자기 홀연히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바뀌어 낙토(樂土)로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는 것은 천(川) 즉 인천(仁川)에 있는 나의 임금의 덕(我德)때문이라고 하였다.
바로 나의 후손(後孫)이 이와 같이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이다.
이 골짜기가 버려져서 쓸모없이 지나온 것과 앞으로 크게 드러나서 명성(名聲)을 얻는 것도,
이미 정해진 운명(有數)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박(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더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채소의 이름으로 박(朴)이라는 말과 산(山)의 골짜기의 이름이 박(朴)이라는 말과 사람의 성씨(姓氏)에
박(朴)이라는 말이, 모두 박(朴)이라는 의미는 있으나 품격이 낮은 의미이다.
그러나 진정한 박(朴)이라는 말의 의미를 거듭 다시 깨달아 알게 되었는데,
바로 그 박(朴)이라는 말이 고인(古人)의 심원(深遠)한 도(玄玄)라고 하였다.
즉 박(朴)이란 도(道)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지, 채소 이름이나,
골짜기의 이름이나, 사람의 성(姓)을 뜻하는 박(朴)이라는 말은, 등급이 떨어지는 의미라고 하였다.
심원한 박(朴)의 도(道)가 뜻대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마침내 이 안동(安東)에 있는 박(朴)에서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박(朴)에 대한 노래를 짓고는 즐거워하며
박박탁탁(朴朴濁濁)
그 마음은 박(朴)하고, 그의 행적은 탁(濁)하구나.
박박탁탁(朴朴濁濁)
박(朴)은 가히 안주로 할 수 있고 , 탁(濁)은 가히 잔질할 수가 있구나.
박박(朴朴)이라 노래하고, 박박(拍拍)이라 손뼉을 치면서,
사람(人)이나 골짜기는(谷)는, 다 같은 박이로구나(同其朴)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러야 할 대상이 박(朴)이라고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밝힌 시(詩) 중에,
아가(我歌:나의노래)즉 아가(아기장수)에 대한 노래가 불리워질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나의 노래가 바로 술 노래라고 하였다.
즉 그 술 노래는 바로 박(朴)을 찬미(讚美)하는 노래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박(朴)이 하나님의 아들로,
만인(萬人)의 양식(糧食)이 되고,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술과 술그릇이 된다고
해월(海月) 선생은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지어서 우리에게 전(傳)해주는 것이다.
이 글속에는 이렇게 하나님이 해월(海月) 선생을 통(通)해서 우리 인간(人間)에게 큰 희망(希望)을 주는 숨은 뜻이 은밀(隱密)하게 담겨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인 박(朴)이, 이 안동(安東)의 박(朴)에서 통치(統治)하게 된다는것이다.
이렇게 이 골짜기(谷)인 박(朴)에서 통치하게 된다는 말을 아주 조심성 있게 드러내는 것이다.
(해월유록p1007~1022)
해월유록(海月遺錄) 말씀(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