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월유록 요점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7-1)....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雪中梅 2020. 8. 19. 07:00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7-1)....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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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guriever.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해월 황여일 선생의 문집 목판

 

해월 황여일 선생 문집이 명계서원 주관하에 1774(영조 50,갑오)년에 판각을 시작하여

1776(영조 52,병신)년 청명절에 판각이 완각되었으며 목판은 현재 해월 선생의 종손이 보관하고 있음.
(사진은 목판의 일부)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

 

우리가 고전(古典) 문헌을 찾아보면,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 있고, 우리 인간(人間)의 몸이 죽지 않고 영원히 수가 있다며, 불교(佛敎), 기독교(基督敎) 대부분의 모든 종교(宗敎) 교지(敎旨) 보통 사람들도 장생불사(長生不死) 있다고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생불사(長生不死)하여 우리 눈앞에 감지(感知) 있도록, 우리가 납득(納得)하고 확인할 있도록 존재(存在)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성인(聖人)들의 말씀은 어떻게 것인가?

잘못알고 전(傳)한 것이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거짓으로 전(傳)한 것이다.

아니면 전(傳)하는 사람이 글을 잘못 해석해서 오류(誤謬)가 발생하여 내려온 것인지, 여러분들은 어떻게들 생각하고 있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까지 장생불사(長生不死)하여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도 없고, 전설(傳說)로만 신선(神仙) 있다고 전해왔으니 아마도 분들이 무지(無知)하여서, 단순히 오래 살고 싶어 지어낸 말로, 허무맹랑한 말로 생각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人間)에게는 하나의 희망(希望)이 사라지는 것이다.

 

종교(宗敎) 목표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人間)은 죽은 후에 말이 없으니,

사후(死後) 일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를 아는 자가 없고, 그러다보니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더더욱 삶의 괘락을 추구하고, 또한 자신과 자신의 처자식(妻子息)만이, 남보다 먹고 살기 위해 다투게 되는 것이다.

다투다 보면 세상(世上)은 더더욱 거칠어지고 혼탁(混濁)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성인(聖人)들의 말이 잘못 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성인(聖人)들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한번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

우리는 해월(海月) 선생의 글을 통하여 그가 일생(一生) 하나님과 동행(同行) 하였다는 것과 또한 하나님의 뜻을 ()로써 후세(後世) 전하게 사연을 수가 있다.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記錄)남기셨으니 얼마나 정확(正確)하고 분명(分明)하겠는가?

 

그의 글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여, 미래(未來) 되어질 일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선세계(神仙世界) 어떠한 경지인지를 여러분은 간접적으로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해월(海月) 선생의 다음 () 보자.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1 22 111편에,

南嶽丈 歸程又宿親家 穩打山水臨 別書奉

남악장 귀정우숙친가 온타산수림 별서봉

 

십년불견금강면(十年不見金剛面) 금견선생역일산(今見先生亦一山)

어대연하훈실난(語帶烟霞薰室暖) 안여옥설조인한(顔如玉雪照人寒)

사원만폭쟁분방(詞源萬瀑爭奔放) 필세천봉노굴반(筆勢千峯怒屈盤)

가소진황구해고(笑秦皇求海苦) 봉래지시재인환(蓬萊只是在人寰)

 

십년(十年)동안 금강(金剛) 얼굴을 보지 못하였더니,

이제 보니 선생 역시 하나() ()이더라.

말씀을 하시니 연하(烟霞) 둘리며, 향기가 방안을 가득하고,

 

얼굴은 마치 옥설(玉雪)같이 희어서 사람을 맑게 비추는 구나.

 

문장은 근원적으로 개의 폭포가 다투어서 빠르게 달아나는 같고,

 

필세(筆勢) 개의 봉우리가 노해서 솟아난 같구나!

 

가히 웃을 일이로다! 진시황제가 (봉래산의) 바다(:불사약) 구하였지만,

 

봉래(蓬萊) 것이 다만 경기 고을() 사람에게 있구나!

 

미래(未來) 하나님 아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설명한 글이다.

10 전의 금강(金剛) 얼굴과 10 후의 금강(金剛) 얼굴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말했다.

10 전에는 보통 사람과 같았는데 10 후에는 다르게 변화되었다고 했다.

금강(金剛) 말을 때는, 아름다운 연하(烟霞) 둘리우고, 방안에는 향기가 가득하고, 그의 얼굴은 옥설(玉雪)

같아서 주위의 사람들은 밝게 비추고, 그의 글은 수많은 폭포가 다투어서 달아나는 같고,

그의 글씨는 천봉(千峯) ()하여 솟아올라 서려 있는 같다고 표현 하였다.

 

 

그래서

10 전의 모습은 인간(人間)의 모습이고, 10 후의 모습은 그대로 신선(神仙) 모습인 것이다.

그러면 해월(海月)선생은 누구를 두고 그런 말을 하였는가?

금강(金剛)이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일까?

사람인가? 그냥 강원도(江原道) 있는 금강산(金剛山) 말함인가?

다음 구절을 보면 풀리는 것이다.

 


『가소진황구해고(可笑秦皇求海苦) 봉래지시재인환(蓬萊只是在人寰)

 

구절은

진시황(秦始皇) 그토록 구하려고 했던 것이 불사약(不死藥)인데,

구해 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하겠다고 서복(徐福,徐市)으로 하여금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이끌고, 우리나라 삼신산(三神山)으로 보냈는데, 기가 막혀 웃을 일이라고 하였다.

 

그가

말한 삼신산(三神山) 봉래(蓬萊)산인데,

봉래(蓬萊)산이라는 것이 다만

경기 고을() 있는 사람에게 있다고 하였으니,

 

표현(表現) 또한 얼마나 절묘(絶妙)한가?

 

 

우리들의 보통 상식으로는, 삼신산(三神山) 우리나라의 어느 지명(地名)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해월(海月) 선생은 그것이 지명(地名)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흔히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 불러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금강산(金剛山) 별칭인 봉래(蓬萊), 풍악(楓嶽), 개골(皆骨)이라는 말을 눈여겨보아야 이다.

 

세상 사람들은 금강산(金剛山) 아름답게 단풍진 가을철의 수려한 모습을 보고, 풍악산(楓嶽山)이라는 붙여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풍악(楓嶽) ()자가 단풍(丹楓)나무를 뜻하는데,

단풍(丹楓)나무가 ()나무 ()자로, () 뜻하는 이며, () 뜻하는 이다.

 

다시 말하면

단풍(丹楓)나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하는 나무중의 하나라는 것을 염두(念頭)에 두고, 해월(海月) 선생의 () 보아야 하는 것이다.

절에 가면 사찰(寺刹) 주위에는 단풍(丹楓)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많이 수가 있는데,

여기에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백두산(白頭山)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 백두(白頭), 백수(白首)표현하였고,

 

아들을 뜻하는 말로는, 금강산(金剛山), 또는 금강(金剛), 봉래(蓬萊), 단풍(丹楓), (), 또는 ()으로 표현하였으니

유의하기 바란다.

그러나

해월(海月)선생은, 그렇게도 사람들이 꿈에도 애타게 찾던 불사약(不死藥) 불로초(不老草), 금강(金剛)이고 봉래(蓬萊)라고 하였으며,

또한 바다()라고 하였다.

봉래(蓬萊), 금강(金剛), 우리나라 경기 고을()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제는 찾는 것이 아주 쉬워진 이다.

그가 어디에 사는 누구이며, 어느 시대(時代) 존재(存在)하는 사람인 것만 안다면, 누구나 있는 것이다.

또한

해월(海月) 선생의 ()속에, 봉래(蓬萊), 바다(),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을 단순한연의 모습을 읊은 것으로 보고 () 이해한다면, 그것은 해월(海月) 선생의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아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삼신산(三神山)이라고 하는, 방장(方丈), 봉래(蓬萊), 영주(瀛洲)란 말을, 그대로 삼신(三神)이신,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신(聖神)이르는 말로 알아야하며, 굳이 장소를 이야기한다면 성부(聖父) 성자(聖子) 계신 곳을 이르는 말이고, 그가 머무는 장소인 이다.

군데 또는 군데 고정(固定)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성부(聖父) 성자(聖子)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계신 곳이 삼신산(三神山)이요,

봉래(蓬萊), 영주(瀛洲) 칭하는 것이 합당한 이다. *****

 

성부(聖父) 성자(聖子) 머물지 않는 곳이라면, 어찌 삼신산(三神山)이라 하겠는가?

그러니 삼신산(三神山)이란 가변(可變)적이라 하겠다.

(해월유록P168~173)

 

 

해월유록(海月遺錄) 말씀(中)